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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창조론, 노아 홍수 논쟁들(격변, 노아의 방주-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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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노아 홍수 증거들(격변, 노아의 방주)

교재: 강건일 박사(창조론과 진화론 이해)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

1. 격변의 증거

1) 창조과학은 퇴적암 지층과 그 안의 화석을 주로 노아 홍수의 결과로 본다.

2) 격변론적 퇴적암과 화석에 대한 주장: 주로 구약신학자 위트콤과 ICR 회장이었던 헨리 모리스 공저의 <창세기 대홍수>와 부회장을 역임한 생화학자 듀안 기쉬의 <화석: 화석은 아니라고 말한다>로부터 기인한다.

3) 세인트 헬렌 산 폭발(1980년)의 격변론적 증거(스티브 오스틴 박사)

4) 그랜드 캐년에 대한 현대 지질학(모두 고생대로 주장)과 창조과학(동일과정설로 설명할 수 없는 격변의 증거들 주장-고생대지층인 레드윌 석회암에서 나온 선명한 오징어 화석)) 사이의 상반된 주장

로널드 와이어트가 방주 잔해라 주장하는 주디산, 이슬람 경전 꾸란은 주디산을 방주가 간 곳이라 주장한다.

성경은 꾸란과 달리 방주가 아라랏산( 사진, 1994년 nasa)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2. 노아 홍수와 방주

1) 성경 창세기 6-9장

2) 방주 크기: 장(300규빗) 광(50규빗) 고(30규빗)

3) 노아 방주의 미스터리(그 실제 크기와 모습과 참된 의미는?)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창 6: 15-16)

 

(1) 규빗은 성경의 언어가 아니다

 

창세기 6장 말씀은 창세기 기자(모세)가 하나님 계시를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말 "규빗"이라 말씀하신 것으로 오해한다. 그런데 실은 성경 창세기 6장 15절 본문에는 "규빗"이라는 말은 없다. 즉 규빗은 성경 원문 히브리어가 아니다.

그럼 우리 성경의 규빗은 도대체 어디서 온 단위일까?

이 말의 히브리 원어는 “암마”(ammah)이다. “암마”는 아마 아카드어 아마투(ammatu)에서 왔을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로 인간의 지체(肢體)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규빗은 바로 "팔꿈치"를 나타내는 라틴어 "큐비툼"(cubitum)에서 온 말이다. 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히브리어 “암마”는 라틴어 “규빗”으로 바뀌게 되었다.

 

 

(2) 규빗의 단위

 

보통 라틴어의 규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가 기본적인 길이의 단위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규빗을 얼마로 계산하였을까? 실로암 비문에 히스기야의 도수터널(tunnel)의 길이가 1,200규빗이었다는 기록을 참고하고, 실측에 의해 그 길이는 533.1m였으므로,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면 1규빗은 약 44.425cm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같은 수치는 이스라엘의 규빗이 바벨론의 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략 45cm 내외를 한 규빗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성막 및 성전 건축에 쓴 규빗이 바로 이 길이였다(출 25-27장,왕상6-7장,대하3-4장). 이를 바탕으로 1규빗을 약 18인치(약 45 센티미터 내외)로 보면 방주는 길이 약 133-137미터, 폭 23미터, 높이 약 13-14미터 가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기록된 방주의 치수를 확정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몇 가지 난제가 있다.

 

 

(3) 방주의 규빗 단위를 규정하는 난제

 

라가슈의 제사왕 구데아(Gudea, 전 2000년경) 의상에 새겨진 척도표에 따르면, 1규빗은 지금 단위로 약49.5cm이다. 이것은 보통의 규빗인데, 왕실에서 사용하는 규빗은 그보다 큰 55cm였다. 바벨론 사람들은 약 50.3센티미터에 해당하는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규빗’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에집트의 척도표에서도 한 규빗은 45cm, 왕실 규빗은 55cm였다. 또 다른 기록에 보면 애굽 사람들은 약 67.5센티 미터와 44.7센티미터에 해당하는 긴 규빗과 작은 규빗을 가지고 있었다. 애굽에서 일반 규빗과 왕실 규빗을 다르게 적용했던 것처럼 에스겔 선지자도 장대 규빗(long cubits)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장대 규빗은 보통의 규빗에 한 손바닥을 더한 것이다. 즉 에스겔은 일곱 손바닥의 규빗을 쓰고 있다(겔 40:5). 이스라엘에서도 바벨론, 애굽과 마찬가지로 장ㆍ단의 규빗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반 규빗은 45cm이고 장 규빗은 52cm로서, 애굽의 그것에 근접해 있었다.

 

또 한 가지 난제는 홍수 당시 규빗을 지금의 규빗 단위에 과연 적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홍수 이전에는 인류가 오늘날보다 훨씬 더 장수하였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 수명이 기록된 홍수 이전의 실명 인물 가운데 에녹을 제외할 경우 계산해 보면 평균 912세가 된다. 노아는 5백세 되던 해 아들 셈을 낳았다. 오늘날 인간의 성장은 대개 20살을 전후하여 멈춘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는 생리적 출산 가능 연령은 60세 전후하여 멈추게 된다. 이것은 남녀가 거의 일치한다. 물론 이것은 생리적 가능성일 뿐 현실적인 사회문화적 조건 아래서 실제 자녀 출산 가능 연령은 그보다 훨씬 더 젊은 나이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성경의 노아는 5백세가 지난 후 셈과 함과 야벳을 낳은 것으로 보아 홍수 이전 인간의 성장 연한은 20세를 훨씬 넘어 10배 이상 즉, 수백 년(최소 250년 이상)간 지속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체형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규빗(“팔꿈치”) 단위로 제시된 방주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아주 달랐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900세가 넘게 살던 인류의 팔꿈치 크기를 지금의 우리식 판단대로 45cm 내외라고 판단하여 방주 길이는 137m이고 배수량은 32,800톤이라는 규정은 너무 순진하고 소박한 발상일 뿐이다.

 

1세기 때 유명한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1규빗이 20인치라고 했다. 고대 화폐 단위와 도량형을 연구하기 위해 고대 여러 지방을 여행한 바 있는 그레이브스는 1규빗의 길이가 거의 22인치에 달한다고 보았다. 네빈 목사가 저술한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히브리 사람들은 규빗을 모든 도량의 모체라고 부른다. 즉 팔꿈치로부터 가운데 손가락 끝부분까지의 길이는 균형 잡힌 남자 신장의 4분지 1이라고 한다. 보통 한 규빗은 18인치이다. 카펠러스 등은 히브리인에게는 두 종류의 규빗이 있었다고 했다. 즉 하나는 종교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것이다. 종교적인 것은 36인치이며 일반적인 것은 16인치가 된다. 아마도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규빗의 길이가 조금씩 다르게 표시 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남녀노소 사람마다 인종마다 팔꿈치 길이는 천차만별이다.

 

이 같은 규빗 단위의 변천을 통해 볼 때 성경 원문에 나타난 방주의 칫수 “암마”(규빗)의 단위에 대한 정확한 규명은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가능할 뿐, 당시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우리들은 잠정적인 상상의 칫수 만을 말할 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마 정확한 방주의 규모 파악은 방주의 실물이 발굴되는 그 날이 와야 확인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 속에서 그런 날을 허락하실까?

 

 

(4) 방주가 알려주는 참된 의미는(방주의 크기와 모습이 아니다)

 

방주(方舟)는 히브리어로 '테바'라고 한다. 그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배를 나타내는 애굽어 텝트(Tept)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학자(Keil, Kalisch)들은 추정할 뿐이다. 이 단어는 아기 모세를 나일강으로 태워보냈던 갈대 상자(출 2:3, 5)에 사용되었던 바로 그 단어였다. 아기 모세가 탄 갈대 상자나 노아의 방주가 동력이나 키를 가진 배가 아니라 안정하게 물 위에 부유하는 오늘날의 바지선과 같은 부류의 선박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방주의 참된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창세기 6장의 방주가 알려주는 진정한 의미는 '규빗' 단위나 배수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 과학적 결과에 집착할 필요도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방주의 참된 의미는 방주의 칫수나 배수량이 아니라 오늘날 구원의 방주로서의 교회를 예표한다는 것이다(마 24: 37-39; 눅 17: 26-27).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교회의 몸이기 때문이다. 방주가 생명선인 것처럼 저주와 죽음의 길 앞에 인류는 영원한 생명선인 교회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방주가 크든 작든, 나일강의 흔들리는 초라한 갈대 상자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음으로 방주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예배당 건물이 크든 작든, 화려하든 초라하든 전혀 상관없다. 믿음으로 교회의 일원이 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신약 시대에도 방주 사건이 중요함을 분명 알려주셨다. 다만 과학적 언급이 아닌 방주 사건의 구원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예수님의 마태복음(24장)과 누가복음(17장) 설교는 인류에게 과학적으로 전혀 규정할 수도 없는 방주의 '규빗'에 대한 규명과 집착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설교였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믿음 안에서 방주가 지니는 구원의 예표를 깨달으라는, 방주가 구원의 전형적 모형임을 명확히 말씀하신 것이다.

3. 방주 발견(?)

1) 유대-로마 역사가 요세푸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책 중 아마도 성경을 제외한 최초의 상세하면서도 본격적인 방주 이야기는 요세푸스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일 것일 것이다.

주후 37년에 태어나 100년에 세상을 떠난 유대 제사장 가문출신의 로마 역사가였던 그는 유명한 ‘유대 고대사‘에서 노아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낙히 체반” 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는데 이곳은 “내려온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유는 그 근처에 구원의 방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지금도 방주의 유물이 그곳 주민들에 의하여 곧잘 발견되곤 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런 흥미있는 이야기도 써놓았다.

“페르시아만에 있던 고대 왕국이었던 갈대아의 베로서스라는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홍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아르메니아에 있는 고디엔 산맥에서는 아직도 방주의 일부를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방주에 붙는 역청 조각을 떼어다가 주로 재앙을 물리치는 부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는 또 다메섹 사람 니콜라스가 쓴 책 제 96권에서 보았다며 이런 이야기도 들려준다,

“미니아스 너머에 있는 아르메니아에 가면 바리스라고 부르는 산이 있다. 과거 대홍수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피해 목숨을 건졌고, 특히 한 사람이 방주를 타고 그 산꼭대기에 이르렀으며, 지금도 그 방주에 쓰인 나무조각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방주에 탄 그 사람은 아마도 바로 모세가 쓴 글(창세기)에 나오는 사람 같다.”

2) 1850년대, 영국의 고고학자들

성경에서 니느웨라고 불리는 한 도시에서 옛날 앗시리아의 왕이었던 아쉬바니팔의 서재를 발굴한 적이 있는데, 점토로 된 10만 개에 달하는 그곳 서재의 토판 중에 “내가 이제 홍수 이전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3) 주전 275년경, 희랍어로 기록된 바벨론의 역사서

큰 홍수가 있었는데 “지우스드라”라는 영웅이 홍수에서 살아 남았다고 성경의 홍수 사건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4) 1737년, 윌리엄 휘스톤

요세푸스의 책을 번역하면서 아라랏산 근처에 있는 “아그리 다기” 라고 부르는 도시의 기슭에 있는 한 지역이 요세푸스가 말하는 “방주에서 내려온 곳”과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5) 에피파네스

4세기경, 팔레스타인 태생의 기독교 성직자였던 에피파네스는 역사가 베로서스가 방주가 있는 곳이라고 말한 고르디엔이 성경에 나타난 아르메니아의 영토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아 방주의 잔해가 지금도 쿠르드 나라에 있는데도 우리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걱정되는 일인가? 만일 우리들이 찾으려는 열심만 있다는 노아가 산 기슭에서 방주를 떠나면서 하나님께 정결하고 살진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낸 제단의 흔적을 틀림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6) 크리소스톰

초대 교회의 성직자 중에 요한 크리소스톰은 홍수에 의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말하면서 “노아의 방주가 있는 아르메니아 산맥이 그 증거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방주의 흔적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훈계와 경고의 표시라고 말입니다”라고 방주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7) 마르코폴로

‘동방견문록’의 저자 이탈리아 사람 마르코폴로도, 15세기말 유럽에서 극동으로 가는 길인 아르메니아의 산중에 방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중앙에는 아주 크고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위에는 노아의 방주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산을 노아의 산이라고 부른다.”

8) 아담 올리어리우스

1633년 아라랏산 근처에 살았던 아담 올리어리우스라는 사람이 또 1647년에 방주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아르메니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은 그 산 위에 방주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러서 방주는 완전히 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우리는 메디아 페르시아에 있는 샤마키라는 곳에서 아주 검고 단단한 나무 십자가를 보았는데 그곳 주민들은 그것이 방주에서 나온 나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9) 아라랏산에 관한 관심

아라랏산에 남아 있다는 노아의 방주에 관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그렇지만 18세기까지는 본격적인 탐험에 의한 목격담이나 기록은 별로 없었다. 그 이유는 “아라랏”이라는 지명 자체가 원래 지역 전체를 부르는 이름인 데다 그 범위도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어느곳을 탐험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이 아라랏산의 가장 높은 두 개의 봉우리는 3920미터와 5160미터나 되어 만년설로 덮여있기 때문에 탐험이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오면서 유럽의 각국들이 과학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아라랏산의 방주를 찾기 위한 탐험과 관심이 지금까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4. 수증기 궁창(궁창 위의 물) 이론(?), 기후 변화

1) 무디 출판사의 홍수 이전 지구 수증기 궁창(vapor canopy) 이론(1981, Joseph C. Dillow, 오레곤 주립대 전기공학 학사, 달라스 조직신학 박사)

2) 대격변(기후 변화) 이후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동일과정설과의 대화 가능?)

3) 프랑스와 러시아의 북극권 탐험대가 발견한 완전히 보존된 털복숭이 매머드

북극권 타이미르반도 얼음 속에서 발견하였다. 이 탐험대는 헬기를 사용하여 이 매머드를 남동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진 하탕가라는 지역으로 옮겼다. 매머드의 일부가 나온 적은 많이 있었으나 완전한 형태의 매머드가 처음 나온 것이다.

완전한 형태의 매머드라고는 하나 실은 마른 고기의 형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마른 고기 형태의 매머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거에도 여러 번 매머드의 생생한 유체가 발견되었다. 현재 미국 뉴욕 아메리칸 박물관에 전시 중인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아기 매머드도 마른 고기 수준의 매머드였다. 알래스카에서 발견되는 유해들은 지금도 그대로 개의 먹이로 충분할 만큼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확인된 유체만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50여 구 이상이 된다.

과거의 발굴과 달리 이번 매머드가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된 것은 신속하게 보도하는 발달된 최신 방송 환경 덕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최근 '복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혹시 이 신기한 동물도 완전한 유체가 발견되었다면 복제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호기심이 더욱 큰 관심을 끈 원인이 되었다.

매머드는 코끼리에 비하여 검고 긴 털과 두꺼운 피하 지방을 가지고 있었다. 외형은 유난히 등과 머리 꼭대기가 높으며 반대로 허리 부분은 낮은 모습이었다. 전체 크기에 비하여 꼬리와 귀는 비교적 작다. 전체의 덩치는 어깨 높이 2.8미터 정도의 오늘날 인도 코끼리 크기로부터 어깨 높이 4미터에 달하는 북아메리카 매머드가 있었다.

진화론자들은 매머드가 약 250만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나 지금으로부터 4000~1만년 전에 멸종하였다고 한다. 멸종의 원인은 최종 빙하기에 사라졌을 거라고 추정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빙하기는 2백만 년 전에 시작되어 지금으로부터 약 1만1천 년 전에 끝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매머드에 대한 이런 주장들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들 진화론적 주장에 반하는 격변론적 주장은 어떠할까?

첫째, 매머드와 빙하시대에 대한 해석이다.

매머드는 왜 시베리아 동토에 냉동되어 있었을까? 성경은 빙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시기와 횟수가 문제이다. 성경적으로 보면 빙하시대는 여러 번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홍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홍수 이후 남극과 북극 지대는 지금보다도 더 두꺼운 얼음층이 생기고 추위가 닥쳤다. 대 빙원이 북극을 덮고 있었다(욥 37:8~10, 38:22~23, 38:29~30).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홍수 당시 있었던 깊음의 샘으로 표현되는 지하수 용출과 지진 그리고 수많은 대 화산의 폭발로 인한 화산재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창 7:11~12). 화산재는 지구 온도를 급강하시키는 역할을 한다.

1883년 동인도 제도의 크로카토아 화산이 폭발한 적이 있다. 이 화산은 희생자만 4만 명이나 발생한 큰 폭발이었다. 화산에 의한 파도는 30미터 높이로 솟아올랐다. 유명한 진화론학자 아이삭 아시모프에 따르면 시속 720킬로미터의 속도로 솟아오른 크로카토아 화산 먼지가 땅에 내려앉는데 걸린 시간은 2년이나 되었다.

이 때문에 미기상국 웩슬러(Wexler) 박사는 화산 폭발시 지면에 도달하는 광선의 양은 2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실제로 크로카토아 화산에 의해 지구는 3년 동안 기온이 떨어졌고 동인도 제도에는 6주 동안이나 비가 내렸다. 폭발로 인한 화산재와 수증기의 영향이었다. 한 개 화산의 효력이 이 정도라면 창세기 대홍수 당시 동시 다발적으로 터진 화산에 의한 지구 기온의 급강하는 지구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홍수 이후에도 일부 활화산 활동은 지속되었다고 보여진다. 이들 활동에 의해 지구는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기온이 낮았던 것이다. 빙하의 지역과 한대(寒帶) 지역은 지금보다 광범위할 수밖에 없었다. 화산의 영향이 줄어들면서 동결 지역은 지금의 모습처럼 축소되었을 거라도 추정된다.

이것은 매머드에 대한 진화론적인 예측과 다른 것이다.

둘째, 이 매머드들이 급작스럽게 파묻혔다는 증거가 있다. 즉 노아의 홍수와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매머드의 위 속과 입안에서는 소화되지 않는 음식이 발견된다. 급작스럽게 매몰되었다는 증거이다. 입안에는 녹색 식물, 블루벨(blue bells), 아기미나리아재비류(buttercups), 사초과의 각종 목초(sedges), 야생 콩 등이 발견된다. 이들은 아열대 지방의 식물들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매머드들은 빙하의 고통 속에서 극심한 식량 부족으로 멸종의 길을 걸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뱃속은 텅 비었고 굶주려 죽어간 매머드 시체들은 다른 동물로 인해 모두 부패되어 소멸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매머드의 뱃속에서는 풍족한 식물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 매머드의 모습은 마치 풍요를 누리다가 급작스럽게 냉동창고 신세가 된 듯하다.

매머드가 발견되는 곳에서는 또한 다람쥐, 오소리, 양 낙타, 하마, 들소, 말, 호랑이, 소, 사자, 등 수많은 동물들이 매머드와 함께 발견된다. 이들 사체들이 발견되는 지역은 이번 매머드가 발견된 타이미르의 북서쪽 1천여 킬로미터 떨어진 유리배라는 지역부터 5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알래스카 페이뱅크스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헨리 모리스에 의하면 알래스카에 있는 한 섬의 경우는 모래와 빙하와 더불어 매머드의 뼈들이 그곳 섬 토양의 주된 구성 성분일 정도로 매머드는 과거 북반구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북부 시베리아 해안을 따라 알래스카에 이르는 지역에는 수백만 마리에 달하는 매머드 유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어쩌면 그 이상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베리아 매머드의 상아는 오래 전부터 아랍 상인들의 교역 품목이었다. 지금도 외국에 수출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수집된 매머드 상아는 작은 언덕처럼 보일 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상당한 수의 매머드가 살았었다는 증거이다. 그만큼 매머드는 유사이래 인류에게 노출되어 있던 동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유럽남부와 우크라이나 동굴 유적에는 인류가 그린 매머드의 벽화가 남아있다. 매머드는 인류와 함께 산 것이다.

매머드의 사체들은 앞으로도 계속 발굴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다양한 멸종설이 등장할 것이다. 이들 사체들에 대해 창세기 홍수와 연결된 성경적 해석의 설득력이 진화론에서 수용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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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시베리아 해안을 따라 알래스카에 이르는 지역에는 약 500만 마리에 달하는 맘모스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보다 더 많은지도 모른다. 어떤 섬은 모래와 빙하와 함께 맘모스의 뼈들이 이 섬 토양의 주성분이 되어버렸다.

이들 맘모스들이 급작스럽게 묻혀버렸다는 증거가 많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들 맘모스 위 속과 입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들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입안에는 녹색 식물, 블루벨, 버터컵(우리말로 아기미나리아제비, 황갈색의 꽃이 피는 식물), 사초 과의 각종 목초, 야생 콩 등이 발견된다. 흥미 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들이라는 것이다.

진화론대로 라면 이들 맘모스들은 먹을 것이 없어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다가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 맘모스 뱃속에는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풍성한 열매들이 들어있었다. 이는 시베리아는 과거 추운 동토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맘모스가 음식을 먹으려다 구덩이나 강으로 추락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백만 마리에 달하는 맘모스 사체에 대한 설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물론 모든 맘모스가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서 발견된다. 이 밖에도 이 지역에서는 양, 낙타, 하마, 들소, 말, 호랑이, 소, 사자 등 수많은 동물들이 함께 발견되고 있다. 이 모든 동물들 역시 먹을 것이 없어 얼어죽었다는 진화론적 해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따뜻한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열매를 먹던 맘모스나 모든 동물들이 갑자기 빙하 속으로 묻혀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동물들의 집적인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 7:21-22)”

 

조덕영 교수(환경화학공학,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