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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진화론과 기독교 반응으로서의 미국 스콥스 재판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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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콥스 재판이란 무엇인가

(진화론과 그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으로서의) 미국 스콥스 재판에 대한 평가

교재: 강건일 박사(창조론과 진화론 이해)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

1) 스콥스 재판 이전 미국의 상황

(1) 1923년 오클라호마 주: 교사나 교과서가 진화론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공립학교에 무료 교과서 공급 법안 통과

(2) 플로리다 주: 반진화론 법안 통과

(3) 1925년 테네시 주 의회, 당시 민주당 하원의원이던 존 워싱턴 버틀러 주도로 소위 '버틀러 법안' 통과: 

"주의 모든 대학과 사범대학 그리고 기타 공립학교의 교사, 교원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하나님에 의한 창조 이야기를 거부하는 어떤 이론을 가르치는 것과 대신 하등 동물로부터 유래한다고 가르치는 것을 위법으로 규정한다" 

2) 스콥스 재판이란?

(1) 1925년 7월 21일, 24세의 생물교사이자 미식축구 코치인 존 스콥스(John Thomas Scopes, 1907-1970, 테네시 주 데이턴의 고등학교 교사)의 자백으로 시작, 즉 자신이 당시 통과되었던 “공립학교에서 인간의 진화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테네시 주 법”을 위반했다고 자백함으로 시작된 재판.

(2) 이 재판은 진화론 옹호 측과 반진화론 진영의 국제적 관심을 불러온 이슈가 됨

(3) 연방법과 상관없는 주 법에 의한 재판 진행

(4) 기소를 위해 원고 측 대표 변호인으로 미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 3번 낙선(1896, 1900, 1908)했던 저명한 장로교 보수기독교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 검사 등장, 피고 측 변호인은 클래런스 대로우(1857-1938) 

(5) 브라이언 검사는 당시 보수 기독교인들의 존경을 받던 존스 홉킨스 대 산부인과 의사 하워드 켈리(1858-1943)와 신시내티 대학의 학장이자 물리학자였던 루이스 모어(1870-1944) 등에게서 반(反) 진화론적 응원을 기대하였으나 실망스런 응답(아담과 하와의 특별 창조는 믿으나 생명 연속성에 대해서도 열어놓은 켈리, 진화론을 작업가설로 수용한 모어)

(6) 재판의 희화화: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신랄한 독설, '한 개의 주가 대륙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한 개인이 미국이 과연 제대로 된 문명의 혜택을 받은 국가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테네시 주와 브라이언은 그 어려운 일을 동시에 해냈다.'

 

3) 스콥스 재판 결과

(1) 유치한 성경 해석 싸움으로 변질(중국 역사 5천년, 가인의 아내는?, 뱀의 저주 등 공방), 

(2) 브라이언 검사의 젊은 지구론을 믿는 과학자 발굴의 한계(겨우 지질학자이자 성직자 조지 프레데릭 라이트Wright,1838-1921, 안식교의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Price, 1870-1963)

(3) 하지만 1심 결과 원고 승소(배심원들이 9분만에 유죄 판결): 재판장은 법률이 정한 최저액인 100달러 벌금 부과. 피고 측과 피고 변호사는 상소.

(4) 2심 결과: 피고 측 주장( '진화'라는 애매모호한 단어, 교사의 개인적인 언론의 자유 문제,. ' 인문학과 과학을 우대할 의무가 있다.'는 주 의회 법에 어긋난 판결, 진화론과 개신교와 국교 문제 등)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각

* 이미 '진화'라는 단어를 정의해서 사용하고 있으므로 '진화'라는 단어는 애매모호하다 볼 수 없다.

* 공립학교 교사는 공무원이기에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 함.

* 이는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에서 맡아야 할 문제.

* 이는 특정 종교나 종파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므로 국교를 정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5) 이 버틀러 법안 자체는 1967년까지 테네시주 법으로 존속.

4) 스콥스 재판 이후

(1) 법 위반을 스스로 자백했던 존 스콥스는 사실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의 시범 사례에 지원한 대리교사였음. 

(2) 이들은 테네시 주의 '버틀러 법안'이 시민자유의 위반으로 보고, 필요하면 대법원까지 끌고갈 의도가 있었음

(3) 하지만 로울스톤 판사에 의한 100 달러 벌금형 선고(50 달러 이상은 배심원들이 결정)로 인해 항고가 불가능해지며 연방대법원으로 가져가지를 못하게 되다.

(4) 따라서 양 진영은 결국 자신들이 승리한 판결이라고 자화자찬의 정신승리

(5) 양 진영의 팽팽한 입장을 확인한 주 교육위원회와 교과서 출판업자들의 고민

(6) 브라이언 검사의 급작 스런 사망으로 이 세기적 재판은 막을 내리다(사실, 브라이언은 장로교 보수 기독교인이었음은 분명하나, 창조 6천년 설을 문자적으로 믿는 오늘날의 창조과학적 입장을 가진 검사는 아니었음, 당시 미니애폴리스 제일침례교회의 담임이었던 근본주의 운동의 중심에 있던 윌리엄 B. 라일리<1861-1947> 목사도 6천년 설은 거부 ).

(7) 결국 이 재판은 이후 벌어질 지구촌 인류의 세속화 속 종교와 과학과 정치는 서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암시가 담긴 이슈였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8) 광활한 우주의 태양계 속 지구의 지극히 작은 티끌에 불과한,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이 유한하면서도 "호모 사피엔스"(지혜 인간)의 파라독스적인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논리로 이 문제를 끌고 갈까? 이 역설적 인간의 진정한 꿈은 무엇이고 어디로 가야할까? 단순한 진화적 논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막다른 골목은 어디일까?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