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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신앙/창조와 신학

창세기 1장 해석의 딜레마와 바른 해석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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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해석의 딜레마와 바른 해석을 위한 제언

조덕영 박사, 20일 온라인 창조론 오픈포럼서 발표

기독일보 장지동 기자(zidgilove@cdaily.co.kr)

조덕영 박사 ©창조신학연구소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Th.D., 전 김천대·안양대·평택대 겸임교수)가 20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20회 창조론 오픈포럼에서 ‘창세기 1장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조 박사는 “창세기 1장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 딜레마가 있다. 먼저, 최초의 언어는 어디서 온 것인가라는 것”이라며 “성경은 에덴동산에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계시된 언어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성경 토라 언어(히브리어) 이전에도 문자가 존재한 것인가. 현재 히브리어 이전 수메르의 설형문자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가운데 세계 최초 문자 발명 증거가 노출된 지역은 고대 수메르 도시 우륵으로, 현재의 Warka이며, 성경에서는 창세기 10장 10절에 Erech가 된다”며 “물론 이 학문적 성과가 곧 최초 언어 확인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의 언어 또한 알 수가 없다. 바벨탑 인류 언어 혼잡 사건이 일어나면서 노아와 그 가족의 언어 원형이 추적이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모세 이전 이스라엘, 이스마엘 후손들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은 분명 히브리어가 아닌 고향 갈대아 우르 ‘쐐기문자’ 속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홍수 이후 바벨론의 언어가 혼잡 이래, 불가능해진 언어 통일을(창11:9) 창세기에서는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 조상들은 우상 문화 언어였던 메소포타미아 최초 문자 영역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했다.

이어 “모세 이전에 창조 계시가 없었다고 볼 수 없기에, 알파벳 이전 이 쐐기문자의 한계와 우상 문화 코드 속에서 성경 인물 중 ‘하나님의 친구’로 칭함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 밖에 없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창조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며 “애굽의 아브라함 후손들은 400여 년간 어휘가 풍부하지 못한 이방 우상 문화 코드를 가진 애굽 상형 문자 속 계시의 명료한 이해를 상실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창조주 하나님이 험난하신 것이 아닌, 죄 많은 우리 인간의 본성 속 언어의 엔트로피가 증가, 즉 무질서해졌다. 아브라함 이후 야곱 후손들은 선조들의 본향 메소포타미아보다 언어적으로 더 낙후된 종교, 문화 환경 소 이방인으로 창조 계시를 보존해 왔다. 다시 말해서 창조 계시는 단순히 모세가 히브리어로 받은 것이 아니”라며 “생각보다 지난(至難)한 과정을 창조 계시(창세기 1~11장)는 거친 것”이라고 했다.

조 박사는 “문자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면, 알파벳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자를 융합하면서 시나이 반도에서 탄생했다”며 “모세(애굽 탈출 시대)와 다윗 시대(가나안 입성 시대) 사이 히브리인들은 자신들만의 히브리어를 구축해 가며 원 셈어와 여기서 파생된 다른 셈어 문자들의 단어에 담긴 우상 문화 코드들을 구분·정리하고 히브리 민족에게 계시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기술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서 비로소 오늘날 인류가 접하는 창세기 1장과 토라가 탄생했고, 이것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 원시 히브리어 속 보존된 창세기 1장 해석의 딜레마를 만든다”며 “즉, 딜레마의 원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문제가 전혀 아닌, 죄악에 물든 인간의 문제로, 바른 해석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창세기 1장 해석의 구체적인 딜레마에는 먼저, 기독교 전유물인 아닌 창세기 1장 해석에 있다”며 “증명 불가한 초월 계시인 창조 계시와 종교마다 미묘한 해석의 차이 그리고 모두를 설득 가능한 보편타당한 정설의 불가에 있다”고 했다.

이어 “두 번째는 19세기 현대과학이 나타나면서의 문제”라며 “근대과학의 등장과 함께 파생된 새로운 해석들로서 기원론, 빅뱅 우주론, 진화론 등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미숙한 창세기 1장 해석은 과학에게 늘 밀려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창세기 1장의 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먼저, 설득 가능한 해석의 마지노선을 정해야 하며, 현실적인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특정 해석이 기독교 진리로 훼방할 위험성을 늘 경계하고, 역사 속 현대과학에 늘 밀려난 문자적 해석 즉, 과학을 과학으로 두고, 진리 안에서 자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조 박사는 “창세기 1장의 바른 해석을 위한 제언으로는 먼저, 교회 역사의 창세기 해석을 존중해야 한다”며 “성령의 사람들인 어거스틴, 루터, 칼빈, B. 워필드, A. 피어선 등의 창세기 해석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인류에 적응(눈높이)의 성경해석을 원리로 하고, 단일신이 아닌 삼위일체 사역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두 번째로 현대과학적 해석을 조심해야 한다“며 “성경은 문자적 해석만이 아닌 해석되어야 하는 책이며, 과학적 창조해석은 삼위일체 창조론에서 이탈하며 영지주의 창조논리에 매몰될 위험성이 있고, 성경은 과학기술시대만이 아닌 인류 모든 역사와 열방과 민족에게 준 책으로서, ‘창조냐 진화냐’ 논쟁보다 ‘창조냐 우연이냐’의 구도가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마지막 세 번째로 정답 같은 해석은 없다”며 “해석의 공통분모를 정하고 바른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며, 관련 학자들의 견해에 대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창조 계시는 삼위일체의 창조 계시이며, 타락과 구속과 하나님 나라(새 하늘과 새 땅)까지 내다 본 계시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