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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이슈들/기타(일반 과학 질문)

진화론의 원조? 진화론은 다윈의 독창적 주장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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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원조는? 진화론은 다윈의 독창적 주장이었나요?

 

 

오스트리아 비엔나 자연사박물관 전시물

그렇지 않습니다.

1. 19세기 <종의 기원>(1859)을 통해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1809-1882)은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주장한 프랑스의 라마르크(1744-1829)가 한창 활동하던 1809년, 영국의 쉬루스베리에서 의사였던 로버트 다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 그런데 라마르크 뿐 아니라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도 있었습니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은 의사요 시인이며 물리학자로 <주노미아>(Zoonomia,1794-1796)라는 동물 생리학에 관한 책을 썼는데, 이 책은 환경에 대한 동물의 능동적 반응에 관해 다룬 책으로 이것은 훗날 적자생존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이론과 일부 유사한 면이 있었습니다. 찰스 다윈이 할아버지로부터 진화에 관한 어떤 착상을 얻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3. 따라서 다윈은 어떤 식으로든 용불용설과 자신의 조부 에라스무스 다윈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다윈 이전 18 세기 이미 지질학 분야에서도 진화론적 지질학이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질학자이자 내과의사, 박물학자였던 제임스 허튼(1726-1797)과 층서학을 개척하여 영국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스미스( 1769-1839)가 있었습니다.

 

5. 그런데 근대 과학 뿐 아니라 고대 서양철학 속에도 오늘날의 진화론와 유사한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6. 고대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이오니아 밀레투스의 3대 (자연)철학자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그리고 아낙시메네스에게서도 우연과 진화에 대한 사변적인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초기 철학을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자연철학(Physica)이라 부르는 것도 이들이 일종의 우주론, 기원론 학자의 원조라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초기 철학자들의 관심은 자연의 움직임(변화, Change)이었던 것이지요.

탈레스(Thales of Miletus, 주전 624경-545경)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하여 처음으로 물이 변화하는 현상을 조물주의 개입 없이 설명합니다. 그는 액체에서 기체로 또는 고체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에는 신이 부여한 생명력이 이미 함유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애굽을 여행하는 길에 나일강의 진흙에서 작은 생물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면서 이 같은 생각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주전 610-546)는 만물이 어떤 근원적인 실체로부터 유래했지만, 다시 변화하여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만물의 기원을 이 무한정자(apeiron)를 가지고 설명한 것입니다. 또 다른 밀레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주전 585-528)는 공기(Pneuma)가 만물의 근원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는 영혼도 공기이며, 공기가 탁해지면 물질이 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것도 변화와 관련된 사유였습니다. 진화도 바로 변이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오니아학파(Ionian School)로 불리는 이들 세 사람의 주장이 유신론을 정면으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사고는 물질 자체에 이미 조물주의 생명력이 주입되어 있다고 하는 생기론(生起論) 또는 물활론(物活論)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 같은 사고는 범신론의 범주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관찰의 방법에 의해 자연적 발생을 주장한 것이기에 최초의 자연발생론(spontaneous generation)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철학의 원조들을 자연 철학자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유물론자들이 이들을 자신들이 주장하는 유물론의 창시자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7. 이 같은 철학의 경향은 중세까지 지속되었는 데 아니작 뉴턴이 자신의 명저 이름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일명 프린키피아)라 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자연과학의 발아기에 살았던 뉴턴은 수학도 철학에서 나왔기에 자신이 자연과학이 아닌 자연철학의 수학 분야를 정리했다고 소개한 것입니다.

 

8. 우주가 로고스(이법, 이성)에 의해 작동된다고 여겼던 또 다른 고대 헬라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주전 504-433)는 생명체는 보다 고등한 생명체로 서서히 변화하고, 식물은 동물보다 먼저 출현했으며, 보다 덜 적응된 형태는 잘 적응된 형태로 대치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엠페도클레스의 로고스는 당연히 성경의 로고스(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형적 무신론자도 아니었습니다. 아덴(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논쟁하며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종교성이 많다고 접근한 것이나 폐허화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제우스 신전은 이들의 종교성을 보여줍니다. 즉 헬라는 전형적 무신론 사회가 아닌 신화적 신들을 가진 다신론 문화 사회였음을 말해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그리스 데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광장, by D.Y. Cho)

9. 고대 서양 철학을 종합·완성한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도 생명은 자연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자연은 사다리(ladder of nature)의 연속체로 비 생물로부터 식물, 하등동물, 고등동물 그리고 결국 인류로까지 이르는 연속체로 절대적인 신이 부여한 힘에 따르는 단계를 거친다고 본 것이지요. 참 된 창조주를 알았다기보다 일종의 물활론적, 목적론적 사상이었습니다.

 

10. 다윈 이전 일반적 생물진화론을 구상한 사람으로는 라마르크 이전 마우퍼튜스(Maupertuis, 모페르튀이Pierre-Louis Moreau de Maupertuis, 1698-1759)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수학자, 철학자, 문학가였던 그는 한 가정의 4세대에 걸친 가계도 연구를 통해 다지증(polydactyly)의 유전물질이 입자이며 한 가정의 부모를 통해 자손에 전달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이의 특성이 엄마와 아빠에게서 받은 입자에 의해 발현된다는 일종의 범생설(pangenesis theoly)이었습니다.

생물학과 과학사회학의 저명한 사학자인 피터 바울러(Peter J. Bowler, 1944~)는 유전에 관한 연구, 인간 인종의 자연적 기원, 그리고 생명체 모양이 시간에 따라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우퍼튜스의 공로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마우퍼튜스는 선하고 지혜로운 창조주에 대해 회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정통 생물학자 반열에 오른 인물은 아니었으나 찰스 다윈도 신학과 의학의 1년 정도 기초를 공부한 것이 정식 학업의 전부였으니 마우퍼튜스의 관찰도 다윈 수준의 학자로서의 범주와 역할을 한 인물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해 아래 새것이 없다(전 1:9) 했지요. 이렇게 한 이론에도 다양한 사람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이론이 타당한 가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요.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 T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