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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신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사회

정인 양 학대치사 사건, 위선적이고 거짓된 신앙이 낳은 비극<박욱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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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디트리히 본회퍼, 오해와 편견 (5) 세상의 성인, 교회의 어린이

 

기독교인 범죄 무마하려는 시도, ‘값싼 은혜’로 지탄

본회퍼, 자멸하는 기독교인들 보고 참담함 금치 못해

정인 양 바라보는 한국교회 심성, 이와 다르지 않아야

성경과 본회퍼 가르친 참된 어린아이 찾아볼 수 있나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기독교인 가정의 영아 학대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 ⓒSBS 캡처

◈신앙과 어린이: 어린아이에 대한 본회퍼의 신학적 인간학

지난 한 주, 대한민국 전역은 한 기독교인 가정에서 발생한 극악한 아동학대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지도층부터 일반인들까지, 인간 이하의 악랄한 심성을 가진 가해자들에게 큰 분노를 표하는 동시에 사망한 입양아 정인 양에게 죄책감과 애도감을 표하고 있다.

본 사건을 통해 사회적 관점에서는 입양절차나 아동학대 감시체계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고, 윤리적 관점에서는 부모나 보호자들이 어린 자녀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온전히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도록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관점에서, 신앙과 신학의 관점에서는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성해야 하는가?

기독교적 관점으로는 한국사회 전체의 공분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동시에, 해당 사건이 기독교인 가정에서 일어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침 몇 주간에 걸쳐 본회퍼 신학에 대한 논평이 이어지고 있었던 만큼, 이 악독한 죄악을 본회퍼의 기독교적 타자윤리 관점에서 진지하게 되살피고 반성해보고자 한다.

본회퍼는 그의 저서 <행위와 존재>(Akt und Sein, 1930) 마지막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소외와 고독 속에서 성인이 된 자가 고향에서는 어린이가 될 것이다. 이 고향은 그리스도의 공동체이며, 항상 ‘미래’이고, 즉 ‘신앙 안’에서 현재가 되는 미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미래의 어린이기 때문이다. …

미래의 새로운 인간은 세상의 협소함으로부터 하늘의 광활함으로 거듭나는 인간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인간은 그가–전에 그런 사람이었든 아니든 간에–하나님의 피조물, 즉 어린이가 된다.”

본회퍼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성인과 어린이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이 두 개념을 신앙의 입장에서 새롭게 재해석한다. ‘소외와 고독 속에서 성인이 된 자’란 구성적으로 인식하는 의식과 자율적인 자기실현의 운동을 추구하는 정신 속에서 자신의 지혜에 도취된 자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에서 지혜 있는 자(고전 3:18)”와 상통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 장성한 자라고 여기는 교만의 심성은 피조물인 인간 존재의 기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무력화된다.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도래할 소망의 미래를 기다리는 신앙인들의 인격은 기본적으로 어린이의 심성으로 성격이 규정된다.

여기서 어린이란 자기 존재의 고향이자 창조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계시와 선하신 성품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전한 겸손과 온유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인격을 말한다. 이는 이전의 논평에서 언급한 인간 인격의 ‘선의 가능태’가 온전하게 현실화된 상태를 말한다.

이처럼 본회퍼는 육체적인 나이의 적고 많음에 상관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서 철저하게 겸비하는 어린이의 심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행위와 존재>의 결론으로 내세운다.

존재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무지를 절박하게 수긍하고, 자기 행위의 불완전함과 타락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오로지 그리스도의 삶과 계명으로부터 자기 삶의 방향성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디트리히 본회퍼와 그의 쌍둥이 자매 사빈 본회퍼. ⓒdietrich-bonhoeffer-verein.de

◈신앙과 윤리: 신앙의 진정성 판별을 위한 기독교 윤리적 지혜

어린이에 대한 본회퍼의 신학적 고찰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의 것(막 10:14-15)”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심성이 기본적으로 어린아이들의 심성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맥락에서 어린이들에 대한 인격적 존중과 보호의 심성은 기독교적 인격과 문화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하나의 주된 기준이 된다.

참된 기독교 신앙인은 그 스스로가 자고하는 성인의 심성을 포기하고 어린아이의 겸손과 온유함을 가져야 하기에, 실제 육체적으로 나이가 어린 아이들의 삶과 심성 역시 보호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아울러 그 자신도 그리스도 앞에서 어린이가 되어야 하는 처지에 있기에 무지하고 연약한 아이들의 처지에 깊은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신앙인들이 마땅히 보여야 할 회심의 증거이다.

다시 말해 만일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자가 자녀들에 대해, 어린아이들에 대해 무자비하며, 그들의 약한 처지를 이용해 지배하려 하며, 아이들에게 폭력과 학대를 일삼는다면, 그런 이의 신앙은 성경적으로 말해 외식이고, 통상적인 말로 지독한 위선이라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대다수 서구 선진국에서는 어린이들의 인격 존중이 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이는 기독교의 어린이에 대한 자애와 근대적 인격 존중 사상이 결합된 결과로서,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사상적 근거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디즈니의 대중문화 콘텐츠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의 주요 가치들을 거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어린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는 기독교적 인간이해와 상통하는 측면을 보인다.

▲디즈니 콘텐츠들이 기독교적 요소를 거부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기독교 신앙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atlantaparent.com 캡처

결국 정인 양의 학대치사 사건은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위선적이고 거짓된 신앙이 낳은 비극이라 말할 수 있다.

정인 양을 입양한 가해자 부부는 모두 경북 지역 목회자 자녀이며, 기독교 신앙의 색채가 짙은 한동대 출신이다. 양부 안모 씨는 기독교 방송국 CBS의 행정직 직원이기도 하다. 물론 안모 씨는 최근 정인 양의 학대 사망 사건이 불거지면서 CBS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이들이 생후 8개월 된 어린아이를 입양해서 자행한 학대 행위는 엽기적이라 할 만큼 잔혹하다. 이들의 범죄 행위는 기독교인의 외모를 걸친 인간들의 외식, 참된 어린아이의 심성을 갖지 못한 이들의 불신앙을 입증하는 증거라 볼 수 있다.

물론 한 개인의 신앙의 온전함에 대한 판단권은 인간 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전적으로 귀속되어 있지만, 우리는 성경과 신학의 분명한 가르침을 기준 삼아 우리 자신의 신앙의 진정성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통상 구원 섭리의 무조건적 효력에 기대어 기독교인들의 명백한 반기독교적·반신앙적 행각을 무마하려는 시도들이 존재해 왔지만, 이는 신앙을 맹목적이고 반지성적인 것으로 포장하려는 무지의 소치일 뿐, 진정한 기독교적 지혜가 아니다.

본회퍼는 이처럼 구원 섭리의 무조건적 효력에 기대어 인간이 품고 있는 악의 가능태를 은폐하고 기독교인들의 범죄를 무마하려는 시도를 ‘값싼 은혜(cheap grace)’에 기댄 불신앙이라 지탄한 바 있다.

본회퍼는 독일 교회 내부에서 유대인 혈통이라면 어린아이들까지 혐오와 증오로 대했던 반기독교적 신앙인들을 목격했다. 그는 값싼 은혜에 기대 자멸해가는 독일 기독교인들의 행태 속에서 인간 타락의 가장 저열한 양상을 발견하고 참담함을 금하지 못했다.

정인 양의 비참한 죽음을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심성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교회가 그간 일부러 외면해온 값싼 은혜와 구원에의 맹신을 입증하는 극명한 사례로 지목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신앙으로 포장된 불신앙의 습성이 ‘소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확인되는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의 순전함을 주장하는 것은 극단적인 외식에 불과하다.

한국교회 안에서 과연 성경과 본회퍼가 가르친 참된 어린아이를 찾아볼 수 있는가? 이 물음에 자신있게 답하기 어려운 참담한 현실이 가슴아플 따름이다. <계속>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오늘 우리는 값비싼 은혜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본회퍼)”. ⓒspotlight.africa 캡처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