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코로나19의 창조신학
Ⅱ. 미생물 분류와 분류학의 아버지 린네
미생물의 분류
미생물(microorganism , 微生物)은 육안의 가시한계를 넘는 0.1mm 이하 크기인 미세한 생물로 주로 단일세포 또는 균사로써 몸을 이루어 최소 생활단위를 영위하는 생물로 주로 조류(algae), 세균류(bacteria), 원생동물류(protozoa), 사상균류(fungi), 효모류(yeast, 뜸팡이류), 곰팡이 등과 한계 생물이라 할 수 있는 바이러스(virus) 등이 이에 속한다.
본래 이들 미생물은 분류학상으로 보면 은화식물(隱花植物, 민꽃식물, Cryptogamae)에 속한다. 민꽃식물이란 꽃을 피우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의 총칭이다. 크리스천 과학자였던 분류학의 아버지 린네가 「식물의 종」(1753)에서 식물계를 24강(綱, class)으로 분류하고, 그 중에서 양치류(羊齒類)·선태류(蘚苔類)·조류(藻類)·균류(菌類)를 하나로 통합하여 민꽃식물이라 했다. 사실 이 같은 분류법은 크리스천 과학자였던 린네가 원조였다.
생물분류학의 원조 아담?
생물은 본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아담이 그 이름을 지었다고 성경은 말해준다(창세기 2장 19절). 오늘날 생물은 그 종류가 약 200만 종 가까이 되는데, 멸종된 동물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도대체 무슨 재주로 아담이 그렇게 많은 생물들의 이름을 불렀느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류학자 린네가 홀로 8,000가지의 식물과 4,162종의 동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분류하였다는 것을 안다면, 아마도 아담이 주변 동물의 이름을 명명하였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성경에 의하면 아담은 홍수 이전의 다른 사람들처럼 930세까지 장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분류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에 의하면 200만 종 가까이 되는 생물 중 100만 종은 식물이며, 새우, 게, 물벼룩과 같은 81만 5천 종에 달하는 절지동물을 포함한 90만 종 이상의 동물들이 해양 생물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아담이 일차적으로 명명한 동물의 숫자는 3,500종의 포유동물과 8,000여 종의 조류 등 1만 5천 종 내외였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적 방법대로 교배가 가능한 생물을 같은 종류끼리 통합하면 그 수는 훨씬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주신 뛰어난 재능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행위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가 혼란스럽게 되면서 생물들의 이름은 민족과 나라마다 통일되지 않은 상태로 다양하게 바뀌었다.
분류학의 아버지, 목사 아들 린네의 믿음과 학문
아담 이후로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생물의 이름을 사람들이 서로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신실하면서도 뛰어난 생물학자를 한 사람 이 땅에 보내주셨다. 바로 오늘날 식물학의 시조이며 생물 분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를로스 린네(Carolus Linnaeus, 1707-1778)였다.
린네는 루터파 기독교인들이 모여 살던 스웨덴의 작은 마을인 라슐트에서 목회를 하던 보수적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린네는 모태 신앙인으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으며, 관찰력과 분석력이 뛰어났고, 끊임없는 호기심과 인내심을 지닌 아이로 자라났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과학자가 지닐 수 있는 대부분의 소양을 갖춘 아이의 모습을 보인 린네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인물임이 분명하였다. 일찍부터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보이며 유명한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공부하던 그는 1729년, 식물의 번식에 관한 관찰을 정리하여 최초의 책을 쓰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평생 동안 저술한 180여 권의 서적 중 한 권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린네(필리핀 마닐라 국립박물관 사진)
1730년, 식물학 교수의 조교가 된 린네는 식물원의 관리를 맡게 되면서 수년간 식물 조사 연구를 위해 라플란드를 비롯한 여러 지방을 다녔으며, 영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였다. 1732년에는 네덜란드에서 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742년 린네는 모교인 웁살라 대학의 식물학 교수 겸 의학교수로 다시 돌아왔다. 훗날 린네는 분류학과 식물학에 있어서 그의 뛰어난 업적으로 스웨덴 최초의 귀족 과학자 칭호를 받게 되는데, 이때(1761년)부터 그의 이름은 귀족을 상징하는 칼 폰 린네로 불려졌다.
오늘날 분류학의 시조로 불리는 린네는 생물을 분류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확고한 기본 입장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성경 창세기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의 종류를 분류해 보는 것과, 그 종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종류로 절대 변화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것은 모태 신앙인으로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보수적 신앙의 유산 덕분이었다. 생물의 종(種)에 대해 그는 전혀 우연론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생물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攝理)였다. 예를 들어 린네가 볼 때 라플란드 이끼의 변종(變種)이 이곳에서는 자라고, 저곳에서는 자라지 않는 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믿음에 린네는 원칙만 따르는 도서관 직원 같은 기질을 가진 인내심 강하고 정확한 스웨덴 사람이었다. 토마스 쿤과 프린스턴대학에서 교수를 지낸 과학사상가 찰스 길리스피(C. C. Gillispie)가 린네는 자연을 볼 때 사상이 아닌 신앙의 눈으로 보았다고 평가한 것이 이해가 간다.
오늘날도 쓰이고 있는 린네가 창안한 명명 방식은 "이명법"(二名法)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매우 간단하면서도 뛰어난 것이었다. 이명법이란 종의 학명으로서, 그 종이 소속된 속명(屬名, generic name)과 그 종 자체의 종소명(種小名, specific name) 2 단어를 연속하여 쓰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사자는 Felis leo, 호랑이는 Felis Tigris, 고양이는 Felis catus다. 여기서 Felis는 속명이고 그 다음에 사용된 라틴어가 종소명이다. 우리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린네"라고 부르는데, "호모"는 속명(屬名)을, "사피엔스"는 종명(種名)을 나타낸다. 그리고 맨 뒤의린네는 이 학명을 지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라틴어 표기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속명의 첫 글자는 항상 대문자로 쓰고 전체는 반드시 이탤릭체로 표기하였다.
린네가 이명법을 도입하기 전, 브리손(1756)이라는 학자는 사자를 "꼬리의 끝에 뭉치가 달려 있는 고양이", 호랑이를 "길고 검은 무늬를 가진 황색 고양이" 등으로 불렀다. 생물에 통일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얼마나 번잡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여기에 비하면 린네의 명명법은 얼마나 뛰어난 것이었는가? 라틴어 성경에 능숙했던 린네는 영어 성경에서 "종류"(kind)로 표기된 창세기에 나타난 히브리어 "민"(Min, 우리말 성경에는 "종류"로 표기된 말)을 그의 라틴어로 된 분류 체계의 종명과 일치되도록 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일단 종을 나눈 다음 그 종 안에서의 특성으로 생물을 구별해 보고자 했던 린네의 분류 방법은 참으로 성경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그는 철저한 창조론자였다!
동물보다 식물을 다루는 데 있어 린네는 더욱 꼼꼼하게 관찰하고 발전하였다. 17세기, 식물의 꽃은 식물의 성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퍼져있었다. 린네는 꽃의 형태를 분류에 활용한다. 린네는 식물을 꽃의 수술의 수, 비율, 배열에 따라 24개의 강(綱, class)으로 나누었다. 강은 암술대의 수에 따라 목(目, order)으로 나뉘고, 목을 결실 방법에 따라 속(屬 )으로 나누었다. 속은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특징에 따라 종(種)으로 분류하였다. 이 같은 린네의 명명법은 동물학으로까지 확장되어, 주요 성질은 속(屬)으로 부수적인 성질은 종(種)으로 명명되었다.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J. J. Rousseau, 1712-1778)는 린네의 분류법을 수 주간 연구한 후 자신이 마치 박물학자가 된 기분을 느꼈으며 자연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사실 루소가 린네라는 한 박물학자의 새로운 학문적 주장을 따랐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루소가 린네의 팬이 된 반면 독일의 문호 괴테는 결코 린네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굴욕으로 여겼던 것에서도 린네의 사상이 얼마나 혁명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식물의 변태>라는 책을 쓴 괴테(1749-1832)는 세익스피어와 스피노자 이외의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더 영향을 받은 사람이 린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성과 상상과 문학의 언어에 호소하는 문호 괴테가 보기에 린네의 작업은 단지 비인간적인 해부학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즉 괴테가 볼 때 이것은 생명의 흐름을 해골로 모자이크하는 작업일 뿐이었다. 괴테는 린네와 달리 자연에서 하나님의 활동보다 자연의 연속성(훗날 진화론의 실마리로 작용하는 흐름의 연속성)과 자유로운 영혼을 찾고 싶은 자유주의자였다. 따라서 괴테가 린네뿐 아니라 뉴턴의 과학적 성과조차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근본적으로 괴테의 과학은 자연의 과학이 아닌 영혼 내면의 문학과 예술이 자연과 어우러진 요사스러운 과학이었다. 이렇게 린네 당시 유럽 세계의 여론 주도층들도 린네의 탁월성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린네에 의하여 비로소 세계 각국의 학자들은 동일한 학명으로 동일한 생물을 이해하고 명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린네는 과연 진화론자였는가?
그의 철저한 성경적 믿음에 관하여, 진화론을 서술한 어느 책은 이렇게 그를 묘사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린네는 종(種)이란 변하지 않고 고정(固定)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의 정확한 해석에 따라서 모든 종들은 특별히 그리고 완전하게 창조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관점으로 진화란 있을 수도 없으며 변화된 형태란 발견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같은 철학에 따라 린네와 초기의 여러 분류학자들은 각 종류를 고정시켜 유연성 없는 분류 체계에 의해 분류하는 데 몰두했었다. 그런데 분류학이라는 것은 보통 생물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므로 린네의 철학은 진화라는 개념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어 버렸다.”
또한 린네는 이런 주장을 펴기도 했다. 영원불멸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수만큼의 많은 종이 존재한다. 새로운 종은 전혀 없다. 그는 분명, 아담이 생물을 명명한 이후 바벨탑의 언어 혼잡에 의해 흩어져 버린 생물의 이름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신 과학자였다. 린네는 종이란 고정된 것임을 확고히 믿었으며 자연은 탄생하고 소멸할 수 있는 불연속 생물군을 가질 뿐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점에서 그는 고생물학과 비교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의 칼빈주의자(위그노) 조지 퀴비에(1769-1832)와 입장을 같이 하며, 종을 생명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소용돌이처럼 여겼던 퀴비에의 박물관 동료였던 라마르크(1744-1829)와는 갈라졌다. 이렇게 라마르크는 다윈보다 먼저 진화 생물학의 길을 열었다.
린네는 스웨덴이 자랑하는 한 과학자로서 뿐 아니라 오늘날 생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거부하는 많은 생물학자들은, 린네가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이 주신 생물의 종류를 분리해 보고자 시도된 분류학(分類學)을 거꾸로 종류가 진화되어 간다는 진화론의 도구로 바꾸어 버렸으니, 린네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과연 무어라고 외칠지 궁금하다.
필자가 한때 린네의 전기를 신문에 연재할 당시 어떤 형제는 “린네는 진화론자인데 어떻게 창조론자라고 부르느냐”고 필자에게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린네는 찰스 다윈보다 1세기 이전 사람이기에 최소한 과학적 의미의 생물진화론은 아직 본격적으로 태동하지 않았던 시기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오히려 린네보다 린네의 학문성과에 감탄도 하고 비판도 했던 문호 괴테가 “모든 식물은 시간을 거슬러 존재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가면 도달하는 원형식물(原形植物, Urpflanz)의 변형”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린네보다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괴테는 정밀한 식물학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고 또 이 같은 괴테의 생각과 사상이 본격적인 진화론의 태동을 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괴테는 생명의 흐름에 있어 생물학적 연속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린네와 분명 달랐다.
린네는 뛰어난 수집가적인 재능도 지닌 학자였다. 그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식물과 곤충 그리고 무수히 많은 광물의 표본을 모았으며, 그것을 박물관을 만들어 보존하였다. 그런데 훗날, 그가 모으고 연구한 귀중한 자료들은 그가 죽은 후 역사상 유명해진 몇 가지 우여 곡절을 거친 끝에 모두 영국으로 넘어가 버리게 되었다. 이때 린네가 남긴 연구 자료와 소장품은 모두 스물여섯 상자나 되었다. 이 가운데 3,000여 권이나 되는 책은 여섯 상자에 담겨졌고 식물이 다섯 상자, 광물이 네 상자, 곤충 표본이 두 상자에 달했으며, 조개껍질과 물고기, 산호의 표본이 각각 세 상자에 달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린네의 귀중한 자료들을 손에 넣은 영국인 제임스 에드워드 스미스라는 사람은, 그가 배운 의학을 버리고 린네가 남긴 자료를 가지고 평생을 생물학 연구에 바쳤을 뿐 아니라 명성과 명예도 얻게 되었다. 린네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던 스미스는 1788년 마침내 린네를 기념하여 린네 학회까지 창립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일로 오히려 훗날 영국의 귀족들에게 주는 나이트 작호까지 받게 된다.
린네 이후
식물학의 아버지로도 불렸던 린네 사후 프랑스 식물학자 A. T. 브로냐르는 식물계를 꽃의 유·무로 크게 나누어 꽃을 피우는 것을 현화식물,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을 은화식물로 정리하였다.
이 은화식물의 균류 안에 쪽팡이(세균, bacteria)와 진균류(眞菌類)의 뜸팡이(효모)와 곰팡이가 존재한다. 이 가운데 쪽팡이(세균, 박테리아)는 인체에 들어와 감염성 질병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식물학의 아버지 린네도 모르던 미시의 생물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감염성 질병을 일으키는 이들 미생물은 세균 말고도 바이러스가 있다. 바로 코로나19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이들 감염성 질병을 일으키는 두 미생물인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평택대 <신앙과 과학> 교수,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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