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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신앙/창조와 신학

창조신앙으로 돌아가자(김영길,조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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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신앙으로 돌아가자

과학이 맹신되고 절대시되어 가는 시대

<글: 김영길,조덕영>

 

 

지금까지 한국창조과학회는 하나의 학설이요, 가설에 지나지 않는 진화론의 비과학성을 과감히 지적하며 과학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왔다. 과학이 맹신되고 절대시 되어가는 오늘날, 과학과 신앙을 양립할 수 없어 고민하던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일반인들에게 성경에 바탕을 둔 과학적 창조론의 전파는 큰 충격이었다. 창조과학회의 활동이 본격화되기 전인 80년대초 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진화론은 모든 학문의 기본 전제가 되어 있었으며, 그 누구도 진화론의 문제점에 대하여 과감히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여전한 일이지만 과학을 등에 업은 진화론의 권위(?)에 주눅이 든 일부 신학자들은 진화론의 논리를 성경에 끌어들여 성경의 권위를 무참히 격하시키곤 한다.

 

 

오늘날 성경의 노아 홍수 사건을 성경 그대로 믿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다.”고 당당히 말하던 어느 신학대학 도서관장의 말은 이와 같은 상황을 대변해 준다. 아무튼 신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이 오랫동안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창조과학회의 이와 같은 활동은 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던진 게 사실이다.

 

 

이제는 중, 고등학교나 대학교 등에서 진화론을 일방적으로 가르칠 경우, 한 두 학생들이 창조론으로 반론을 제기할 만큼 상황이 많이 변하고 있다. 진화론 일색의 기존 교과서들에 대한 반성의 경향이 증폭되고 있으며, 창조과학회가 대학 교양교재용으로 제작한 창조론의 입장에서 과학의 여러 분야를 다룬 자연과학은 이미 여러 대학교와 신학교 등에서 교재로 채택되어, 학계와 교계에서 창조론에 대한 인식이 상당한 수준으로 변화되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창조과학회가 활동을 시작하던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다.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12:4)는 말씀처럼 놀랄 만큼 빠른 과학과 기술의 시대인 오늘날, 과학을 통한 ''''창조 메시지''''의 전파는 분명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교회와 크리스천 과학자들 모두가 이 시대의 물질 문명 앞에 기독교적 대안을 갖고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분기점에 도달한 느낌이다.

 

 

과학기술 이데올로기 시대에 새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국교회는 테크노피아(technopia)의 환상에 젖어 있는 과학기술 이데올로기 시대에 새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과학의 여러 문제에 대하여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시대를 앞질러 가지는 못할 망정 과거의 매너리즘에 빠져 개혁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 문명과 관련된 교회 밖의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과학기술이 잉태한 환경오염 문제라든가 생명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자살, 낙태와 같은 일들이 일상화되어 가는 요즘, 교회는 과연 얼마나 앞장서서 이 문제들에 고민하고 기독교적 양심으로 외쳤는가? 진화론적 세계관과 이와 같은 일들이 과연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인가?

 

 

그 동안 한국교회는 여러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기도와 헌신을 통하여 놀라운 양적 성장과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혜를 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만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교회의 부흥과 사회의 집단이기주의가 동반하여 성장해 왔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문제는 진화론의 논리가 이러한 사회와 교회의 세속화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는 점이다. 물론 세속화되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타종교권과 비교해 보아도 인구의 약 25 %(카톨릭 포함)나 되는 기독교인을 지닌 국가의 윤리, 도덕적 수준으로서는 너무도 한심스럽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명백한 자화상이다

 

 

 

진화론의 허구성과 정체

 

 

신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이 오랫동안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창조과학회의 이와 같은 활동은 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던진 게 사실이다.

 

 

진화론이 사회의 윤리, 도덕에 미친 영향은 과연 무엇이며, 교회의 세속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진화론이 왜 그토록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그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진화론은 과학의 기본 법칙에 위배된다. 진화론은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갖지 못한 ''''이론(theory)'''' 이면서도 마치 과학적 ''''사실(fact)''''인 것처럼 우리들에게 일방적으로 교육되어 왔다. 미국창조연구소의 총아인 헨리 모리스 박사는 진화론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과학적 기본 사실로 증명된다고 하였다

 

첫째, 모든 역사를 통하여 진화(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예로 관찰된 생물이 없으며, 다만 멸종해 버린 생물의 종류들만 확인된다는 것.

 

둘째, 완전히 과도기적인 구조(반쯤 발달한 머리나, 날개, , , 생식기관 등)를 지닌 생물이 과거부터 보존되어 왔거나, 진화론자들이 수십억 년 되었다고 주장하는 지층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

 

셋째, 우주의 질서는 끊임없이 붕괴하고 감소되어 간다고 하는 과학의 기본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이 있다. 그러나 우주가 점점 더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변화되어 간다고 하는 진화론의 논리는 이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어느 땐가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가 완벽한 질서를 유지한 적이 있었으며, 현재는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그 질서가 일정하게 붕괴된다고 하는 것이다 (8:22).

 

 

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이 우연히, 저절로, 점차적으로, 복잡한 구조로 변화되어 왔다는 것을 믿는 단순한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진화론은 고대로부터 다양한 생각들과 혼합되어 수많은 진화의 가설들을 만들어 내었다. 진화를 믿는 믿음은 동일해도 진화에 대한 메커니즘이나 그 경로는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밝혀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진화론은 일치된 견해가 아닌 더욱 혼잡스럽고 다양한 이론들로 난무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이 일치하지 않고 제각기 고집과 주장을 꺾지 않는 완고한 모습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기에 진화론은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10년 또는 20년 뒤에는 또 다른 진화론의 모습으로 완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또 진화론은 성경 말씀과 어긋나는 견해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는 10회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동, 식물을 그 ''''종류대로'''' 번식하도록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물론 성경이 말하는 ''''종류'''' 는 생물학에서 말하는 ''''()'''' 의 개념과는 다르다. 즉 하나님은 일정한 종류의 기본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그 종류 안에서 환경에 따라 적응하여 일정하게 변천할 수 있으나, 다른 종으로 변화하는 데는 한계를 정하셨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종류의 범위를 인위적으로 벗어나게 하는 일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19:19). 이것은 하나님이 설정하신 자연계의 순리에 대응하는 인간의 자세와 성별된 자의 분리된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에 주시는 이중의 교훈으로 생각된다.

 

 

또 진화론적 우주 및 생물관은 하나님의 방법과 어긋난다. 일반적으로 진화론에 의한 역사관은 부적합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심지어 해로운 생명체들의 발전까지를 포함한다.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창의 방법'''' 이라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우연하고, 비효율적인 낭비의 과정을 사용하셨을까 의문이다. 더욱이 동물과 사람들의 약육강식 사상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사랑, 비이기적 희생, 기독교적 사랑과 공의의 교리에 정면으로 모순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질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진화론, 그 심각한 위협과 경고

 

 

진화론은 우리의 양심에 반하여 윤리, 도덕적 기준을 허물어뜨리며 선악의 기준을 제거할 뿐 아니라, 결국은 인류 스스로의 타락과 파멸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진화론은 우리의 양심에 반하여 윤리, 도덕적 기준을 허물어뜨리며 선악의 기준을 제거할 뿐 아니라, 결국은 인류 스스로의 타락과 파멸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오늘날 이와 같은 경향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나 자본주의 국가를 막론하고 그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 가를 보여준다. 교조주의적 진화론자였던 도브잔스키는 ''''적자생존은 자기 본위, 쾌락주의, 비겁함속임수와 약탈을 뒷받침할 수 있다. 윤리학은 인간을 위한 윤리학이다. 그것은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다.”라고 하였다.

 

 

진화론은 히틀러가 사용한 나치즘의 윤리였으며,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이론의 과학적 토대로 세웠던 것도 진화론이었다. 인간을 고도로 진화된 고등동물로 취급하는 심리학과 사회학의 다양한 현대적 기초도 진화론에서 왔다. 심지어 에모리 대학의 머디 교수는 ''''미래의 다른 세대에 대해 아무 고려 없이 행해지는 한 세대의 무분별한 방종은 생물학적 진화의 과정이며, 이성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고까지 하였다. 모리스 박사는 진화론적 사고가 세계와 인류에 미친 영향은 온통 유해하고 부패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8)고 하셨다. 하나님의 원칙과 어긋난 진화론이 팽배한 곳에서 결코 좋은 열매가 맺힐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동안 학문의 영역에서 머물러 있던 진화론이 어느 사이엔가 교회까지도 슬그머니 침투해 들어왔다. 일반 성도들이 아닌 신학자들이 공공연히 성경의 권위를 왜곡하고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으로 과학적 진화론(?)과 부합되지 않는 성경의 내용을 들먹거리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한국의 여러 신학교들이 장차 목회의 일선에 나설 신학도들에게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교육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과학적 변증과 관련된 부분에서이다. 그리하여 순수한 신앙적 열정이 신학교육을 통하여 변질된 상태에서 교회로 들어와 차마 성도들에게 그와 같이 설교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노아의 홍수가 다만 히브리의 전설이라든가, 지역적 홍수에 불과하다는 신학교육을 성도들에게 그대로 전할 수는 없지 않는가?

 

 

과학의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그리스도인

 

 

한국창조과학회는 우리의 활동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시대에 허락하신 특별한 복음전파의 사명으로 깨닫고 부단히 기도하며 노력하여 왔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창조 기사의 궁극적 권위가 과학적 증명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기록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 이 전해지는 데 얼마나 귀중한 역할을 하는가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과학주의가 팽만한 이 시대의 지성인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성경 첫 장에 나타난 창조의 증거를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설득력 있는 복음전파의 한 방법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활동이 단순히 창조와 진화에 관련된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에 부여한 ''''약속된 질서'''' 인 과학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분야의 문제에 대하여 기독교의 입장에서 답하여야 한다는 책임이 수반된다. 이 일은 창조질서와 그 보전의 문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오염의 문제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낙태 등), 유전공학, 성경적 건강 등에도 우리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일들이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전반적인 기독교문화에 따라 크리스천 과학도로서의 책임이 끝나는 때일 것이다.

 

 

앞으로 세워질 창조과학교육관은 창조를 증거하는 과학자료들 특히 화석들을 각각 그 종류별로 전시하여, 화석들이 진화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실제로 이 일은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필요로 한다. 본 회는 하나님이 창조세계에 허락하신 다양한 과학자료들을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전시교육하고 연구도 할 수 있는 대규모(14천평)''''창조과학교육관(Creation Science Education Center)''''을 한국에 착공하여 건립 운영할 계획이다. 이 교육관은 생명과 지구 및 우주가 진화론적인 우연의 산물이 아닌 창조된 과학적 증거물(1:20)이라는 것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될 것이다. 본회는 경기도 용인군에 소재한 베델선교원 내에 이 교육관 건립을 추진하였으나, 베델선교원 내부사정과 여러 난관으로 지연되고 있다. 그러나 본회는 중부권에 이 창조과학교육관 건립을 재차 시도할 예정으로 있다.

 

 

현대 과학은 분명 창조주의 설계와 그 존재를 뚜렷하게 증거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연사 박물관이나 과학관에서 그것을 보여주는 곳은 없다. 오히려 모든 자연사 박물관들이나 과학전시실은 최신 기술을 다 동원하여 무신론적인 진화론을 주입시키고 전시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 모든 자연사 박물관들은 마치 화석들이 진화론을 증거하는 것처럼 전시하고 있다. 앞으로 세워질 창조과학교육관은 창조를 증거하는 과학자료들 특히 화석들을 각각 그 종류별로 전시하여, 화석들이 진화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또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현재 알고 있는 생명과학 지식과 자료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게 하고, 지구촌의 환경관리의 중요성이 인식되도록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들도 제기하여 전시할 것이다. 생명의 자연발생 등을 부정하고 창조론적인 해석을 도입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자연과학도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참신하고 다양한 과학적 사고의 폭을 넓혀주고자 한다. 즉 지금까지 자연과학 분야에서 눈밖에 두었던 자연과학의 실체를 체계적으로 종합 정리하여, 창조론적인 시각에서 소개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교육관을 통해 창조의 과학적 증거자료들을 전시, 교육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분께 영광 돌리기를 우리는 기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재정 및 기도 후원이 절실히 필요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인력의 장, 단기 자원봉사 및 자재 지원과 협력이 크게 요청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부족한 우리들에게 항상 필요한 것들을 적절하게 공급해 주신 주님께서 이 일도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1:6).

 

 

과학의 영역에도 기독교윤리가 필요하다

 

 

과학의 영역에 있어 궁극적인 기독교의 대응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먼저 인간이 하는 일은 완벽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인간이 완벽할 수 없음은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범죄 하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과학적 영역에 있어서도 완벽한 행위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범죄 행위는 그 죄악된 본성에서 기인하였다. 마찬가지로 과학 행위도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인간의 욕심을 앞세운 ''''잘못된 과학행위'''' 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많은 문제점들과 부산물들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과학의 영역에 기독교 윤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올바른 과학 행위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과 그에 따르는 치유의 방법이 생각처럼 간단한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 대한 치유 방법과 동일한 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를 포함한 대다수의 모든 국가는 교육과 학문을 진화론적 철학과 세계관 아래에서 강요하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도 기독교 윤리를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조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 진화론적 인본주의 아래 황폐해가고 있는 여러 영역, 그 가운데서도 과학의 영역에 있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명령하시고 허락하신 유일한 생명의 고향인 이 지구 환경과 그에 따르는 영역에서 - 올바른 ''''과학 행위'''' 를 행해야 한다.

 

 

올바른 과학 행위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과 그에 따르는 치유의 방법이 생각처럼 간단한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 대한 치유 방법과 동일한 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 치유가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듯이, 과학적 영역도 그 주체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안에 있는가 하는 것이 판단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참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1:7, 2:3, 9:10)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과 함께 하는 이상 과학의 여러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경고와 외침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에 대한 외침과 동일한 것일 수밖에 없다. 오직 ''''과학 안에서의 문제점'''' 에 대한 해답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인간의 죄 문제에 대한 해답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문제도 이 땅에서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세상 안에서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주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5:13~16)이라고 하셨다. 이 어두운 세상을 등지고 떠나라는 말씀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 안에서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행위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된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세상 안에서 세상의 부패를 막고, 빛의 직분을 수행해야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빛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만 한다. 과학에 대한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대응도 바로 그와 같아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주님을 따르기 원한다면 올바른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들에게 명확히 알려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7:17).

 

 

진화론적 사고가 가져다준 혼란과 가치관이 난무하는 오늘날 지구촌의 모습을 보며, 또 지구 생태계 파괴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과학기술 문명임을 생각할 때, 과학이 결코 세계를 구원할 궁극적인 희망이 될 수 없음을 이제 우둔한 우리 인류는 막 깨닫기 시작하였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끝없는 갱신을 추구하며 창조신앙의 기틀을 굳건히 해야 할 때이다. “창세기로 돌아가자 !”

 

 

- 목회와 신학(두란노 서원 간) 및 국민일보사 발행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김영길, 조덕영 공저)에서 일부 인용-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