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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신앙/창조와 과학

다윈의 이전에도 진화론은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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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이전에도 진화론은 있었는가?

 

다윈의 진화론 이전에도 진화론은 있었는가? 당연히 있었다!

 

다윈 진화론은 19세기 중반에 나타났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것은 1859년이었다. 그런데 이미 19세기 초부터 오늘날 비교해부학의 아버지요 고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려지는 프랑스의 퀴비에(1769-1832)의 대격변론(다중격변론)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질학 뿐만 아니라 생물학계에서도 진화론을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퀴비에(1769-1832)의 대격변론이나 린네의 종의 불변설에 생물학적으로 반기를 든 사람은 라마르크(1744-1829)였다. 그는 생물을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종으로 나열하여 정리해 보기도 하는 등 종의 진화에 관하여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1802년, 그는 진화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 이론인 용불용설(用不用說)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사실 생물학적 진화의 출발이 되는 생명의 자연발생설은 고대 희랍의 철학자들에게서도 그런 착상이 있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피큐로스, 탈레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시만드로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오니아 학파에 속하였던 탈레스(BC 640-540)는 모든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주장을 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식물이나 동물이 전혀 생육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애서는 사람의 상식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식을 뛰어넘어 식물과 동물의 기원까지도 물로부터 진보발전하여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반대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기원은 불이라 하였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 하였다.

 

탈레스와 아낙시메네스와 같은 이오니아 학파의 아낙시만드로스는 사람이 물고기로부터 생겨났다고 주장하여 지금의 진화론과 유사한 생각을 펼쳤다. 그는 물보다는 아페이론(apeiron, 무한정자)이라고 불리는 것이 세상에는 있어서 이것이 더운 것과 찬 것에 의하여 분리도 되고 혼합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액체도 되었다가 고체도 되며 그렇게 되는 중에 조금씩 변화되어 생명이 탄생하였으며 사람으로까지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고기는 사람의 조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진화론자들의 생각과 거의 유사한 면이 많이 있다.

 

심지어 그의 제자였던 크세노파네스는 화석으로 된 조개류 등을 직접 발견하여 아주 구체적인 오늘날과 같은 진화 이론을 전개하게도 하였다. 이런 생각은 데모크리투스나 플라톤 같은 유명한 고대 철학자들에게까지 지속되었다. 이것이 근대 과학이 시작되면서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되기 시작한 것이 진화론이다.

 

라마르크의 이론에 따르면 어떤 생물체가 살고있는 환경에서 무엇이 필요해지면 생물은 스스로 그가 필요한 새로운 기관을 만들거나 자신의 기관을 변형시키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해서 생긴 기관은 지속적으로 사용이 되면서 크기나 기능이 점점 증대되고, 반대로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하거나 결국은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기관을 생물학적 용어로는 <획득 형질>이라고 부르는 데 이것이 바로 자녀에게 전해져서 진화된다고 보았다.

 

진화가 일어난 원인에 대한 설명만 다를 뿐 이 이론의 골격은 오늘날의 진화를 설명하는 방법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목이 긴 기린이 어떻게 해서 목이 길어졌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라마르크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본래는 목이 짧았던 기린의 조상이 높은 곳에 위치한 나무의 열매를 따 먹기 위해서 목을 길게 늘어뜨린다. 이런 행동이 점점 거듭되면서 마침내 목을 길게 만드는 유전 형질이 새끼들에게 전달된다. 물론 목이 긴만큼 적을 잘 발견하게 되어 도망가는 일도 보다더 유리해진다. 이런 행동이 점점더 반복됨에 따라 마침내 기린은 오늘날과 같이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마치 테니스 선수나 야구의 투수가 거듭된 훈련에 의하여 길어지게 된 한쪽 팔이 그들의 자녀에게도 전달된다고 주장하는 이론과 같다. 그렇다면 태어날 때 아직 목이 자라지 않은 어린 기린은 어떻게 높은 곳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왜 다른 동물들은 목이 자라지 않았는데 기린만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점과,무슨 이유로 기린은 지상의 풀이나 열매는 그대로 두고 나무 위의 열매만 따 먹으려고 애를 썼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또 목이 길다는 것은 적을 발견하기도 쉽지만 반대로 적에게 발견되기 쉬운 치명적인 결점도 된다.

 

그밖에도 라마르크는 동굴 속의 물고기는 그들의 조상이 어두운 환경 가운데서 여러 세대를 살았기 때문에 눈을 사용하지 않아 결국 퇴화되어서 눈이 멀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주로 어두운 밤에 다니는 박쥐도 그렇게해서 밝은 데서 적응하는 눈이 어두워져버렸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실은 박쥐는 눈이 있어 밝은 곳에서도 먹이를 아주 잘 먹는다.

후천적인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이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19세기말엽까지는 대체적으로 학자들이 인정한 이론이었다. 그런데 19세기말 독일 과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교미하기 이전의 생쥐의 꼬리를 계속 잘라줌으로써 꼬리없는 생쥐를 만들고자 20세대에 걸쳐 이 실험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세대까지 그들의 조상과 똑같은 길이의 꼬리를 가진 생쥐가 태어날뿐 꼬리없는 생쥐는 전혀 생겨나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 실험은 후천적인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최초의 증명이 되어버렸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얻어진 획득 형질은 절대로 진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므로서 라마르크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런데 오늘날도 이 이론은 마치 진화에 관한 대단한 이론인 것처럼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지 이것이 증명된 사실이라기보다 생물학적 진화에 관한 최초의 이론이라는 단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어 폐기처분된 이론을 그토록 교과서가 지속적으로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유가 참으로 아리송하기만 하다.라마르크의 이론의 골격이 오늘날의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이론과 과연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마르크 당시보다 좀더 과학적으로 세련되게 포장되었다는 것이 다를 뿐 진화론의 그 기본적 입장은 오늘날도 전혀 아무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하기야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도 진화론자였다. 일반 대중들은 오직 다윈이 진화론의 창시자라고 단순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화론의 역사는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배경 하에서 마침내 다윈의 생물진화론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창조신학연구소

조덕영 박사(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