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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X행성 지구 충돌 종말론의 진상(조덕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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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도 찾아온 X행성 충돌 종말론

  •  조덕영

X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여 종말이 온다는 루머를 2012에 한국 방송이 다루기도 했다

 

2012년의 지구종말설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 종말설이 등장했다. 영국 일간 메트로에 따르면 ‘X행성 : 2017 도착(Planet X : The 2017 Arrival)’의 저자 데이비드 미드는 올 가을(10월)에 ‘X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드는 “이미 전 세계 부호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으며, 충돌을 대비해 개인 지하 벙커를 짓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드는 최근 싱크홀이 발생하고 지진의 빈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그는 지구적 천재지변을 종말의 전조라고 주장했다. 미드의 대변인은 “세계 언론이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구 종말 신호를 숨기고 있다”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미드는 그동안 수차례 지구 종말설을 주장했으나 단 한번도 실현된 바 없었다.
 

기독교의 시간관과 종말론

 

기독교의 시간관은 독특하다. 창조와 마지막이 있는 직선적 시간관(linear view of time)이다. 따라서 분명한 종말론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고대 인도 종교들이나 힌두교, 불교, 유교 등 타종교들은 우주를 동일 과정의 영겁(永劫)의 반복으로 보는 순환적 시간관(circular view of time)을 가진다. 타종교와 다른 이런 기독교 시간관의 독특성을 처음 신학적으로 발견한 사람은 시간 연구의 선구자 성 어거스틴이었다. 마야(Maya)의 역사관에도 동일한 사상의 주기적(週期的) 회귀(回歸) 사상이 있다.
 

2012년 종말론의 리바이벌? X-행성 충돌

 

종말을 겨냥한 2012년의 종말론은 조금 특이했다. 직선적 시간관을 가진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 바깥에서 종말 사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마야 역법과 소행성 충돌이라고 하는 두 종말 사상이 강력한 상승 작용을 하면서 2012년 종말 사상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길흉을 다루는 일부 인터넷 사이트들과 종말론을 가진 기독교 일부 이단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들 종말 사상에 현혹 되어 기독교의 종말론과 혼합 시키면서 믿음 약한 기독교인들에게까지 불안감을 조성시킨 바 있다.

 

2017년 지구혜성충돌 종말설은 바로 2012년 소행성 충돌설의 2017년판 리바이벌인 것이다. 2012년, 니비루(Nibiru)' 또는 '플래닛 X(Planet X)라고 불리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칭 '니비루' 전문가인 낸시 리더는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니비루라고 불리는 행성 X가 3600년 주기로 움직이는데 지구보다 4배가 크고 45˚ 기울어진 상태로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NASA와 JPL에서 적외선 위성을 하늘로 띄워 보냈는데 ‘니비루’가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고 보고하였고, 1983년 12월 31일에 워싱턴포스트 머리기사에 실렸다고 한다. 이는 고대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행성 ‘니비루’와 궤도가 비슷했다. 또한 네티즌들은 2003년 봄에 행성 니비루가 찍힌 사진들을 낸시에게 보내왔다고 한다. 행성 ‘니비루’가 접근하면 지구의 자기장에 의해 지구의 자전축이 바뀌고 남북이 바뀌는 현상도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낸시 리더는 당초 충돌을 2003년 5월로 잡았으나 이를 마야 예언에 따라 2012년 12월 21일로 수정했다.

 

이런 니비루 신화가 나오게된 배경에는 바벨론신화가 있다. 니비루는 가끔 마루둑(Marduk) 신과 대화했다는 바벨론 점성술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니비루는 앗수르바니팔(Assurbanipal, King of Assyria, 기원전 668-627) 도서관에서 발굴된 바빌론 창조설화인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에 드물게 등장하는 이름이다.

 

이런 니비루가 태양계 12번째 행성이라는 주장은 유대계 언어학자인 스가랴 시친(Zecharia Sitchin)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니비루가 수메르인들에게 잘 알려진 행성이었다는 주장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기록을 연구하는 전문 학자들에 의해 반박되었다. 수메르인들은 문자를 사용하고 농업과 관개, 도시를 만든 인류 최초 문명인들이었기는 하나 천문학에 관한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그들은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의 존재를 몰랐다. 또한 행성들이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니비루 소행성을 알았겠는가.

 

이런 주장에 대해 에임스 연구소의 나사 우주과학자로 주로 이 문제에 대해 코멘트하는 데이비드 모리슨(David Morrison) 박사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The pseudoscientific claims)이라고 잘라 말한바 있다. 우주 사이트 스페이스닷컴에서 모리슨 박사는 “전 세계 약 200만 개의 웹사이트에서 니비루 충돌설에 대한 글이 올라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어린학생들까지 지구멸망이 일어날까 두렵다고 메일을 내게 보내곤 한다.”고 했다.

 

모리슨 박사는 “니비루가 알려진 행성이나 소행성이라는 주장은 전혀 실체가 없는 상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태양계의 갈색왜성이라 알려진 니비루는 현재의 우주과학기술로는 단 한 차례도 관측된 적이 없는 가상 행성"일 뿐이라고 그는 잘라 말했다. 그는 “음모설을 퍼뜨리기 위해서 많은 이들에게 그럴듯하게 근거 없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건 문제이며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니비루는 분명 속임수다(Nibiru hoax)”고 음모론자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NASA의 지구근접궤도 담당 국장인 단 요먼스도 "니비루는 가상의 물체에 불과하다" "아무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지구충돌설을 제기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요먼스 박사는 “이 소행성이 오는 12월 21일 지구궤도에 진입하려면 지금쯤 사람의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 니비루의 존재는 완전 허구”라고 반박했다.
 

그치지 않는 지구 종말설

 

시한부종말론은 앞으로도 멈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X-리스크의 설립자 필 토레스(Phil Torres)에 의하면 ISIS는 알 카에다보다 훨씬 더 종말론에 중점을 둔 단체다. 기독교도 극단적 세대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의 숫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토레스는 21세기말까지 종말론적 테러는 인류문명에 가장 심각한 위협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퓨(Pew) 여론조사에 따르면 2050년 기독교인은 29억 2천만(31.4%), 무슬림은 27억 6천만(29.7%)에 달할 것으로 보았다. 현재는 기독교 약 20억, 무슬림이 약 15억명이다. 이 같은 결과에 기초하여 2050년에는 말 그대로 아마겟돈이 임박했다고 믿는 수십억의 신자가 있게 될 것이라고 토레스는 평가했다.
 

종말에 대한 바른 성경적 견해

 

그럼 성경은 과연 이런 종말 사상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성경 안에도 이런 시한부종말론에 대한 실마리가 있을까? 성경에는 가끔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들이 있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절대적(비공유적) 속성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 중에 핵심은 시간이다. 시간은 타종교가 말하는 것처럼 우연히, 영원하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말씀의 첫 마디를 태초(히브리어의 베레시트)라는 시간의 단어로 시작하셨다. 시간은 당연히 사람보다 먼저 창조되었고 존재하였다. 이것으로 하나님은 시간에 대해 사람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셨다. 시간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간의 어떤 부분에 대해 사람들의 접근을 늘 막아 놓고 계신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우리들이 쉽게 발견을 할 수 있다.

 

먼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셈과 함과 야벳의 서열이 불분명하다. 한글 성경에는 셈이 장남인 듯 하나 영어 흠정역(KJV)을 보면 야벳은 셈의 형으로 소개된다. 연대기적으로 보면 야벳이 서열상 우위인 것이 좀 더 성경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우리 성경(개역 한글, 공동 번역, 개역개정판)은 셈을 야벳의 위로(형으로) 소개하고 있다(창 10:21). 하나님께서는 사본(寫本)들의 인간적 실수를 통해 서열을 의도적으로 숨기신 면이 있다고 보여 진다. 인간은 서열을 중시하므로 인간의 족보에는 사실 이런 실수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런 경우가 생겼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 경우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장남인 듯 표현되고 있다(창 11:26, 31). 사본과 성경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난관이 있다. 물론 성경의 원본이 존재한다면 그 서열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숨기신 것으로 여겨진다. 서열을 중시하는 인간 사회에서 하나님은 육적 서열이나 육적 장남보다 영적 장남을 찾고 계신 듯하다. 이렇듯 하나님은 인간이 이 부분에 접근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삶은 시간과 늘 공유되어 있다. 탄생과 죽음, 삶의 역정이 그러하고 진보와 서열의 구분이 모두 시간으로부터 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궁금해 한다. 창조의 연대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창조의 시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이나 과학을 통해 명확하게 알려 주실 듯도 한데 전혀 그렇지를 아니하다. 성경과 과학은 이 부분에 대해 모두 침묵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설정해 놓으셨다.

 

성경이 좀 더 짧은 연대를 지지하는 듯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언제쯤이라고 확정할만한 근거는 주지 않는다. 창세기 11장과 누가복음 3장에는 셈과 아담까지 이르는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중 누가복음에는 창세기의 계보에서 볼 수 없는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가이난이라는 인물을 첨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창세기에 보면 분명 아르박삿은 셀라를 삼십오 세에 낳았다고 하였는데 셀라의 위에는 아르박삿이 아니라 가이난이라니!

 

그렇다면 창세기 11장에 나타난 셈의 후예들의 나이는 다른 의미란 말인가? 혹시 연대기를 말한단 말인가? 가이난 단 한 사람으로 인하여 큰 혼돈이 일어난다. 그래서 보수적인 학자들까지도 가이난은 필사자들의 실수로 첨가되었을 거라고 주장할 정도이다. 사본적 실수이든 원본에 기록된 인물이든 이 한 사람의 첨가로 인해 연대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숨기신 것이다.

 

과학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창조의 연대에 있어 오직 침묵한다. 창조의 시기에 있어 짧은 창조와 긴 창조 어디에도 과학은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6천 년 설을 고집하고, 어떤 이들은 1만 년 설을 고집하고 어떤 이들은 진화론적 연대를 고집하며 그것을 가지고 서로를 불신하기도 하니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다 부질없는 일이다.
 

예수님 탄생까지 숨기신 시간의 주관자

 

시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는 예수님의 탄생까지도 숨기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당연히 AD(Anno Domini-'주의 해에서'라는 뜻) 1년에 탄생하셨다고 간주하나 그렇지 아니하다. 하나님은 생애를 태양력(BC와 AD=주전 및 주후)으로 표시하였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숨기시려는 의도를 엿보게 한다.

 

마태에 의하면 예수는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마 2:1) 태어났다. 역사의 명확한 기록은 헤롯이 BC 4년에 사망하였으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히 그 이전이 된다. 최소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태양력은 이미 4년 이상 비껴나 있다는 결론이 된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탄생이 기원 전 4년이라는 확신도 없다. 마태복음 2장에는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한 베들레헴으로 향한 별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별이 역사적으로 어떤 별이었는지 기록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금성이었는지, 시리우스별이 움직였는지, 대유성이 떨어졌는지, 갑자기 혜성이 나타났는지, 신성(新星) 혹은 초신성(超新星)이 출현했던 것인지, 행성(목성과 토성)의 접근으로 인한 소동이었는지 불분명하다.

 

아마 이런 천문학적 현상 중에 하나가 베들레헴의 별이었다면 역사적 기록과 함께 생각할 때 BC 7년으로부터 4년 경 사이가 아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해일 것이다. 물론 12월 25일이 성탄일이라는 확신도 없다. 하나님은 이 귀중한 날까지 숨기셨다. 하나님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게 해 놓으셨다(벧후 3:8).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수 없도록 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벧후 1:20). 

조덕영 박사는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ACTS,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