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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창조와 신학과 과학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신학적 해석학 Theological Hermeneutics for the Major Issues of Creation and Science in Evangelical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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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창조와 신학과 과학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신학적 해석학 Theological Hermeneutics for the Major Issues of Creation and Science in Evangelical Perspective 




<Abstract> 
This Paper tries to provide some major issues of creation and science with evangelical perspectives. Particularly focused on the creation issues, the author propose the principle of shalom by "Speaking the truth in love". Also humility and patience, clarifying the creational providence and active accomodation in scientific research are recommended.  


  조 덕영(Th. D., 조직신학) 
Duk Young. Cho    





  1. 복음주의 과학관의 어원적 뿌리 

  복음주의의 어원은 종교 개혁 시대로 올라간다. 복음주의는 독일에서 루터 교인들과 개혁주의자들을 포괄적으로 부르던 개념이었다. 처음 반개혁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을 루터파 교도(Lutheraner) 또는 마틴파 교도(Martianer)라 불렀으나 1521년 루터는 복음주의자(Evangelisch)라고 고쳐 불렀다. 

  루터 이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복음주의는 오늘날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복음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매우 포괄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미국 복음주의 기관지로 간주되는 『오늘의 기독교』(Christianity Today)는 1979년 북미 인구의 20%가 복음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하고 또 조지 갤럽은 30%라고 말한다. 침례교 계통의 버나드 램(Bernard Ramm)은 이런 복음주의 안의 갈등을 상세히 잘 서술한 학자이다. 그 갈등 가운데는 성경과 과학에 대한 견해차가 포함되어 있다. 블러쉬(D. G. Bloesch)는 먼저 복음주의를 전통과 의식을 중시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구별한다. 둘째는 이단적인 것에 반하여 정통적인 것, 셋째는 현재적 또는 자유주의적인 것에 반하여 전통적 또는 보수적인 것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신학적인 탐구보다는 생활과 체험을 강조하는 입장을 가리키고 영어권 나라에서는 침체된 교회 활동에 대해 영적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정신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하였다. 즉 복음주의는 일련의 역사적 물결 또는 동심원을 통하여 발생하여 일정한 색깔과 특징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개혁과 청교도주의, 경건주의, 그리고 근본주의와 그에 대한 대안과 반발로 태어난 신복음주의 등이 그것들을 대표한다. 

  맥그라스(Alister McGrath)에 따르면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였다. 그것을 중세 말기 교회의 형식적 신앙에 반기를 들고 성서적 신앙회복을 주창했던 카톨릭 저술가들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특히 1520년에 이르러 불어 에방겔리끄(&eacute;vang&eacute;lique)와 독일어 에판겔리쉬(evangelisch)는 종교개혁 초기 논쟁적 작품에서 크게 부각되었고 개인적 구원의 경험을 강조하는 복음적 태도와 그것을 중시하는 영적 운동이 이태리 귀족사회에서 일어났다. 이것이 복음주의의 초기 형태이다. 

  맥그라스는 복음주의의 주요 원천으로 종교개혁과 청교도 운동 그리고 경건주의를 든다. 그래서 16세기 종교 개혁 시대의 복음주의는 반카톨릭 교회적인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종교 개혁 시대의 주요한 과학적 논점을 다룬다. 청교도 시대의 복음주의적 과학관의 흐름도 살펴본다. 종교 개혁 신앙의 표어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의 원리는 복음주의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데 이것은 복음주의 과학관을 다루는 데도 표준이 될 수 있다. 즉 종교 개혁은 복음주의의 초점과 표준이 되었다. 복음주의는 종교 개혁의 결과로 생겨난 여러 고백서에서 확대되고 명료케 되며 더욱 분명하게 정의되었으며 그 결과로서 16세기 이후 복음주의자를 특징짓는 잣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은 17세기 청교도 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현대 복음주의자들 역시 청교도들의 후예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종교 개혁 신앙과 닿아있는 것이다. 

  17세기 정통주의 개신교는 종교 개혁의 생명력 있는 신앙을 상실하고 형식화, 교리화 되기 시작했다. 특히 루터교 정통주의는 “따뜻한 종교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하나의 이론 체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가운데 경건주의는 17세기 독일 루터교회 안에서 일기 시작한 신앙운동으로 이 운동을 주창한 필립 야콥 스페너(Philipp Jacob Spener)는 루터 교회가 안고 있는 경직성을 탈피하기 위해 6개조 신앙 개혁안을 담은 ⌜경건한 소원들⌟(Pia Desideria,1675)을 발행하였다. 교회 개혁을 위한 이 6가지 제안에서 볼 수 있듯 슈페너의 개혁은 대단히 성서적이며 실천적임을 알 수 있다. 슈페너는 당시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생명력 없는 형식적 신앙생활에 대한 각성 운동으로 성서에 대한 열심 회복과 선행과 거룩한 생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경건주의의 근본 목적은 엄격한 형식과 교리에서 벗어나 성서 중심, 실천 중심의 교회 개혁을 통한 생동감 있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김문기 박사(평택대)는 슈페너가 성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 신학자요 목회자로서, 설교에 있어서도 하나님 말씀 중심의 설교에 집중했으며 경건 향상의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생활에서 실천적인 운동을 요청했다고 논증한다.

성경 중심, 실천 중심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경건주의는 분명 복음주의에 닿아있다. 그것은 분명 생명력 있는 신앙에 대한 욕구를 촉구했다. 프랑케의 할레 경건주의는 개인의 변화를 통한 세상의 변혁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독일에서 시작된 이들 경건주의 운동은 18세기 영국교회에 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복음주의가 성경과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경건주의 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복음주의는 1720년대 시작된 제 1차 각성운동과 1740년대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와 조지 휫필드(George Whitfield, 1714-1770)의 설교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와서 그 절정에 달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요한 웨슬리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를 통해 영국교회 갱신 운동이 일어났으며 미국에서 에즈베리에 의해 계승되었다. 제 2차 각성운동은 19세기 초 찰스 피니 등의 주도로 미국에서 일어났다. 19세기 초 미국 복음주의의 특징은 부흥운동을 발전시킨 것과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누리게 한 것이다. 이것이 과학과 신앙의 분리를 촉구하여 훗날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오히려 과학과 종교의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부흥 운동과 국교(國敎) 분리의 결함은 미국 교회에 활력을 가져다 준 반면, 실용성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원리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리의 문제를 실용의 문제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대각성 운동은 복음주의를 19세기 미국 교회의 지배 세력으로 부각시켰으나 동시에 개인적 종교 경험과 지성적 엄격성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긴장을 일으켰다. 
    현대 복음주의는 이들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및 부흥운동의 산물로 그 근본 토대와 기반을 형성했다. 오늘날 복음주의 운동은 과학적 사고와 경험적 접근 및 상식주의와 같은 현대의 도구를 사용하면서 조금씩 분화 되고 보다 세련화 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복음주의 진영의 다양성을 가져다주고 과학적 해석에도 혼돈을 야기한 경향이 있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공동체 속에 공통 유업과 관심사를 결합하는 자들의 초교파 그룹 및 모임이기도 하다. 1846년에 영국에서 창립된 ‘복음주의 동맹’(Evangelical Alliance; EA)과 1942년 미국에서 창립된 ‘전국 복음주의자 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NAE) 등이 그것이다. 마크 놀은 복음주의를 초자연적 중생의 필요를 강조하고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고백하며 선교와 전도를 통해 복음전파를 촉진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구속적 의미를 강조하는 것으로 지적했다. 앤더슨(R. S. Anderson)은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독특성을 세 가지 관심, 즉 정통주의 교리, 성서의 권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체험에 대한 관심에 의해 표현했다.

복음주의를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맥그라스는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복음주의에 통일성을 가져다주는 공통된 특징이 무엇인가를 기술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복음주의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는 분명 명백한 ‘가족적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이 충분하다. 여기서 신학적 방법론에 관한한 어느 정도 일반화가 가능해진다. 복음주의는 청교도 작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가 남긴 "본질적인 것은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은 자유를, 모든 일에는 사랑을”(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freedom; in all things, love/ in necessariis unitas, in non-necessariis livertas, in utrisque caritas)이라는 명언처럼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는 한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날 복음주의는 우리 시대의 주도적 세계관과 대면하면서 복음주의적 지성을 담아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의 말처럼 복음주의자는 이성과 학문의 위험성을 아나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리를 버리는 일에 익숙한 포스트모던의 상황에 복음의 진리를 담아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 과학은 기독교가 없었다면 출현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최근 복음주의 연구에 뛰어든 탁월한 복음주의 신학자로는 역사신학의 조지 마르스덴(G. Marsden), 창조 과학에 매우 비판적인 마크 놀(M Noll), 데이빗 웰즈(D. Wells), 네이던 해치(Nathon O. Hatch), 데이튼(Donald W. Daton), 도널드 블러쉬(D. Bloesh), 카펜터(Joel A. Carpenter), 성경과 과학에 관심을 보인 신복음주의 성향의 침례교 신학자 버나드 램(B. Ramm), 근본주의적 관점의 데이빗 비일(D. Beale), 최근의 신진 신학자 맥그라스(A. McGrath)와 스탠리 그랜츠(S. Grantz) 등이 있다. 본 논고는 이들 다양한 복음주의자들의 관점의 차이를 깊숙이 비판하거나 시비를 거는데 있지 않다. 그 접촉점을 찾아가며 복음주의 과학관을 통한 최근의 포스트모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그렇다면 복음주의 과학관은 어떤 것일까. 복음주의 과학관은 이들 복음주의 학자들의 견해로부터 출발한다. 옥스퍼드대의 맥그라스는 성경의 권위와 신앙적 전통,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성령의 주권, 인격적 회심의 필요성 그리고 복음 전도의 강조가 일반화된 복음주의의 여섯 가지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과학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복음주의 과학관은 복음주의자들처럼 성경의 권위와 전통에 의존한다. 복음주의 과학관은 앞에서도 서술한 것처럼 복음주의의 근간이 되는 성경이 증거하고 정통 교회가 고백해 온 모든 교리와 전통의 범위의 신학 방법론을 벗어나지 않음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루터와 더불어 복음주의자의 뿌리와 같은 칼빈의 신학 방법론 가운데 적응의 방법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복음주의 과학관은 성경 없이도 인격적 창조주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연신학은 부정하나 피조된 자연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자연 계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즉 복음주의 과학관은 자연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를 넘어 자연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속성이 발현됨을 믿는다(시 19편 ,롬 1:20, 사 40:26). 여기에는 하나님의 공유적, 비공유적 특성 가운데서 나타나는 완전성, 영원성과 같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 그리고 삼위일체적 사역의 흔적까지 포함한다. 그러므로 일신론적 계시가 아닌 자연에서 삼위일체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찾으려 했던 어거스틴의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Vestigium Trinitatis)가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 그의 방법에 당연히 주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복음주의 과학관은 적응(Accommodation)의 방법을 가지고 해석한다. 적응의 방법은 피동적 해석법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이요 청지기로서 미래의 자연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적응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그러므로 기원과 윤리에 대한 반성경적 주장에 대한 적극적 반응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복음주의 과학관의 실천적 모색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계속>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