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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신앙/창조와 신학

"태초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느님"(몰트만의 창조자 하느님은 누구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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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느님"(몰트만의 창조자 하느님은 누구인가(2)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

“태초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느님”

 

이 말을 부정하는 정상적 그리스도인은 없다.

 

이 성경의 창조에 대해 몰트만은 “이스라엘의 신앙이 거친 기나긴 사유의 과정을 요약한 것이다. 이 사유의 과정은 이집트와 바벨론 종교의 천지창조론과 대결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마치 종교 진화론을 수용하는 듯한 이 같은 몰트만의 서술은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의 책으로서의 성경을 고려하기보다 성경이 창조에 대한 전설과 신화로 점철된 고대 근동의 창조 설화가 진화된(?) 책이라는 오해나 뉘앙스를 풍길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고대 근동 창조 설화와 전혀 다른 차별성을 보인다. 고대 근동의 신들이 천상에서 일어난 신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세상이 탄생되었다고 서술하는 데 비해 성경의 창조 계시에는 분명 이 같은 요소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중동의 어떤 창조 설화도 성경의 창조와는 전혀 다른 뚜렷한 구별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창조의 서술이 이집트나 바벨론 종교의 천지창조론과 대결하면서 기나긴 사유 과정을 거친 창조론이라 부르는 것은 종교 진화론의 범위조차 벗어나는 급진적 도약의 해석 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의 창조론은 종말론과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기독교 신학은 무너진 창조 세상이 마지막때 회복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종말론의 신학자 몰트만이 창조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종말의 때에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에덴동산의 회복인가 갱신인가 아니면 인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그야말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서의 새 창조인가에 대한 입장은 창세기의 창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양상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시간과 공간(하늘)과 물질(땅)을 창조하신 하나님 개념은 전통적인 창조론이다. 물론 시간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 신학이 시간의 영역 밖에 존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반면 몰트만은 미래를 하나님 자신의 본질로 소유하시는 하나님 개념 속에서 하나님을 시간 속에 예속시키는 종말론을 향한다(Theology of Hope, 29, 30-32, 42).

 

종말은 있으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그런 종말론이 아니고 미래를 향해 열려진 자유라는 모호하게 감추어진 미래를 향하는 종말론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희망의 신학”이라는 인간 중심의 미래 소망을 품은 단어로 치환 시킬 때 대중들은 몰트만의 신학에 호감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몰트만의 신학이 성경 중심, 신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정통신학이기보다 신정통주의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리고 그 신정통신학의 출발은 역시 몰트만의 “신정통적 창조 신앙”에 그 출발점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