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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구약

오병이어 기적의 구약 모형(왕하 4: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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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와 예수 그리스도- 오병이어 기적의 구약 모형(왕하 4:38-44)

 

왕하 4:38-44- 풍성한 생명의 기적

창조주와 예수 그리스도- 오병이어 기적의 모형(왕하 4:38-44)

 

 

가. 들면서

 

1. 가끔 야생 버섯이나 열매나 이파리들을 독이 있는지 모르고 약초라고 생각하고 먹다가 그만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

2. 오늘 본문에는 그런 야생 식물을 먹다 탈이 나버린 이야기가 나온다.

3. 오늘 본문은 풍성한 생명의 기적을 보여주는 본문이다. 즉 오병이어 기적의 모형이라 볼만한 본문이다.

 

 

나. 본문

 

1. 독소 제거의 기적(38-41)

1) 엘리사의 지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찾아왔다. 당시 엘리사는 길갈에서 신학 교수가 되어 선지학교 선지자 생도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엘리사는 생도들에게 큰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 지시한다.

 

2) 야채 국을 끓이는 생도

생도 중 한사람이 국거리를 구하려고 들로 나갔다가 야생 덩굴에서 들 외를 따가지고 돌아와 국솥에 넣었다. 야등덩굴 열매는 식용이 아니다! 야등 덩굴(=파쿠오트= 쪼개다/ 깨트리다)의 열매는 첫째 황갈색 오렌지 색으로 쓰고, 먹으면 복통과 신경통 증세를 일으키며 다량 섭취 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둘째 들외는 생김새가 도토리 유사한 것으로 1인치 정도 초록색 껍질을 거졌으며 쓴 즙이다! 카일은 첫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말한다. 끓이면서도 독소가 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결국 국을 퍼다 먹다가 그만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솥에 사망의 독이 있다!"

 

3) 엘리사의 처방

엘리사는 곡식 가루를 가지고 오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솥에 그 곡식 가루를 던져 넣었다. 그 때 놀랍게도 독소가 제거되고 국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을 따라하지 말라! 이것은 과학이 아니라 기적이었다. 마치 여리고 물을 소금 뿌려 정화 시킨 것과 유사한 기적이었다!

 

 

2. 100명을 먹인 기적(42-44)

 

1) 기적의 시작

어느 날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삼상 9:4= 사울이 아버지 나귀를 찾으려고 다닌 지역= 본래는 기름진 땅)에서 처음 추수한 보리로 빵 20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를 선지자 엘리사에게 가져 왔다.

 

2) 믿음이 일으킨 기적

엘리사에게 가져온 이 행위는 처음 익은 열매를 율법에 따라 여호와께 바친 믿음의 행위였다(레위기 23:9-14; 34:26; 26:3-10). 믿음은 전혀 뜻밖의 기적을 일으킨다!! 여기서 채소(= 카르멜= 곡물= 옥수수류= 곡식의 구운 이삭/카일 주석= 레위기 2:14= 이것도 유월절 풍습/ 레위기 23:10 참조)는 일반적 채소와 조금 다르다. 채소는 오로트이다(39). 먹을 수 있는 푸른 풀(일반 채소)이 채소이다. 그 빵과 채소를 가지고 엘리사는 자기 사환에게 생도들을 먹이라 지시하였다. 그런데 생도들이 100명이나 되었다. 20개를 가지고 어떻게 100명 생도를 먹이는가!

 

3) 기적의 선지자 엘리사의 명령

엘리사가 명령하다. "먹여라! 여호와께서 그들이 충분히 먹고 남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담대한 선지자만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이었다. 정말 놀랍게도 빵 20개 가지고 생도들을 먹이고도 남았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의 모형이었다!

엘리사의 기적과 오병이어의 기적은 마술이 아니었다. 자연적 기적도 아니었다. 오로지 창조의 기적이었다. 본문과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이었다.

 

 

3. 본문의 도전과 가르침

 

1) 엘리사의 기적은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기적이었던 것이다. 엘리사의 능력이 아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1) 밀가루가 해독제였다고 억지 해석을 하지 말아야 한다. 독소는 밀가루로 제거 되지 않는다. 밀가루는 해독제가 될 수 없다.

 

(2) 빵이 컷기 때문에 20개로 장정 일백 명이 먹을 수 있었다고 억지 해석을 하지 말라! 20개로 장정 100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차력사나 마술사나 초능력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엘리사는 지금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람이다. 여러분도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2) 어떤 절망도 소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죽음의 절망 조차 소망으로 바꾼다. 죽을힘이 있으면 죽을힘으로 살아야한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피투성이라도 살라(16:6)!!!!!! 왜 죽으려 하는가! 피투성이라도 살아야한다!

 

4. 최근 우리 사회 자살의 충격

 

1) 자살하지 말라

 

2천년대 들어 우리나라는 OECD 가운데 실질적 자살 최고 국가가되었다. 재벌, 고위공무원, 전직 대통령, 현직 도지사, 대기업 임원, 전현직 시장, 심지어 판사까지, 그리고 계속된 연예인들의 충격적 자살 소식! 더욱이 유명한 자살 연예인들이 거의 모두 교회 다니는 교인들이었다. 교회가 무언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교회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려는 곳이 아니다! 왜 패배주의에 빠지는가? ? 인기? 외모? 모두 허망하다! 출세하고 성공했던 사람들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연예인의 자살은 무엇을 말하는가? 썩어질 것! 소멸될 것들은 모두 허망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도 사람은 우울증에 갇혀버릴 수 있다.

 

2) 참 하나님을 만나라!

 

참 하나님을 만난 증거는 다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사람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구별해야 한다. 아내에 대해서 아는 사람과 아내를 아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은 아내에 대해서는 아나 아내를 알지는 못한다. 마귀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보다 더 잘 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참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라!

 

 

3) 제임스 패커 목사의 권고

 

(1)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다.

 

오직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11:32)!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참 용기를 보라(채식 고집/ 한달 기도 금지 명령 위반 시 사형 명령에도 하루 세 번 기도! 뜨거운 에너지!)!

 

(2)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위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우주를 위한 기도! 세계를위한 기도! 조국을 위한 기도! 가정과 자식을 위한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 북한을 위한 기도! 얼마나 위대한가! 위대한 생각의 회복이 중요하다!

 

(3)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담대함( boldness)과 대담함이 생긴다.

 

위대한 담대함: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대담함: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but even if he does not!). 풀무불에서 구조되지 못한다 해도!

 

(4)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커다란 만족이 있다

 

영원한 샬롬이 있다. 8!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7)

 

 

다. 나가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라! 기적의 하나님을 믿으라!

 

협소한 자기 생각에 갇혀버리지 말라! 인터넷의 네티즌들 반응에 골몰하지 말라! 위대한 정력과 위대한 생각과 담대함과 커다란 평화를 가져라.

 

재벌, 인기 연예인, 전직 대통령이 무엇이 부족한가! 인기/ / 외모 무엇이 부족한가! 그럼에도 왜 생명을 끊는가! 주님을 만나라!

 

설령 연예계 쯤 은퇴하면 어떤가! 그래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은퇴한다! 나는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리라! 나는 캄보디아, 베트남, 몽골로 간다! 세계는 넓다!

 

가난한 나라로 선교 여행을 떠나라! 만일 최진실이나 노 전 대통령이 인터넷과 여론에 갇히지 않고 이웃 나라로 훌훌 봉사하러 떠났다면 그 나라 사람들의 칭송이 어떠했겠는가! 한류 최고 인기 스타가 복음 전하러 우리나라 방문했다고 아마 엄청난 호응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들었으나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안타까움!

 

세상적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진실처럼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얻어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쌍한 존재이다! 하나님을 만나 참 하나님을 알아야 정력과 담대함과 위대한 생각과 큰 만족감이 생겨난다.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다. 인간은 우리 하나님 그분을 볼 때 비로소 만족함을 얻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과 영생을 믿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우리 근원적 절망을 엄청난 풍성한 소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