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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구약

신부를 향한 솔로몬의 찬가-사랑의 행복과 기쁨(아가서의 아포리즘 12. 아 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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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행복과 기쁨(아가서의 아포리즘 12. 아 4:9-16)

 

사랑하면

기쁨과 행복이 가득해진다.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신부를 향한 솔로몬의 찬가를 들어보자.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아 4:9-16)

 

1) 사랑하면 마음을 빼앗긴다(9절)

 

(1) 사랑에 있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아주 좋은 감정을 품었다는 것을 말한다.

(2) '누이'(9절)는 친밀한 칭호요 '빼앗김'(9절)은 ‘정복당함’, ‘사로잡힘’을 말한다. 신랑은 신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신부는 신랑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3)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빼앗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4)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아주 순간적이다. 눈짓 한번으로, 목걸이 보석 하나로 빼앗긴다. 부모는 자녀의 눈짓 한 번으로 마음을 빼앗긴다. 필자도 자녀 셋을 키우면서 자녀를 만났던 출산 당시의 그 첫 순간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자녀를 키우며 많은 순간들이 지나갔고 잊혀진 것들이 많지만 그 첫 순간만큼은 잊지 못한다. 사랑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마음을 빼앗는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하나님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빼앗은 복 된 존재다.

 

(5) 참 신앙도 미적거리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내어맡기며 빼앗긴다.

(6) '눈'(9절)은 소망을 의미한다. 한 번 본 눈으로 하나님께 빼앗긴 사랑은 천국을 향한 소망으로 인도된다(히 6:19). 순간적 기쁨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빼앗은 사람들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자들이요 영원한 천국 소망을 품은 자들이다.

 

2)사랑의 행복과 선함("토브")(10-15절)

 

(1) 사랑은 포도주보다도 달콤하다. 여기서 포도주는 (세상) 재미를 말한다. 사랑 없는 세상 이란 무의미하다. 술람미 여인과의 아름다운 사랑은 포도주보다도 진했다.

 

(2) 술람미 여인의 몸에서는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한 기름의 향기가 났다.

(3) 하지만 사랑은 어떤 향수보다도 향기롭다. 기름은 성령의 상징이기도 하다(요일 2: 27). 성령의 사람은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다(고후 2: 15).

 

(4) 또한 사랑은 어떤 아름다운 입술과 혀와 옷 같다. 신부 술람미 여인의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았다. 이 아름다운 시적 은유(隱喩)를 보라! 여기에 무슨 해석이 필요한가. 사랑하면 모두 시인(詩人)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이 모두 시인이었다. 사랑은 아름다운 입술과 혀와 옷처럼 우리를 설레게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시인이 되게 만든다..

 

(5) 사랑은 잠근(공개되지 않은) 동산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신비로운 감정이다. 결혼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신비로운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아직 다 공개되지 않은 신비함으로 우리를 설레게 한다. 이 신비로움을 캐는 것이 신앙이다. 사랑은 절대 따분하지 않다. 이런 신비로움이 없는 지루하고 따분한 신앙은 거부하라.

 

(6) 사랑은 덮은(독점적인) 우물과 봉한 샘처럼 자기만 소유하는 행복도 있다. 사랑은 어느 면에서는 독점적이다. 부부를 남에게 나눌 수 없으며 자녀를 나누지 못한다.

(7) 하나님도 질투의 하나님이다(출 20:5). 자신의 사랑을 결코 빼앗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자녀 됨이 그래서 중요하다. 질투를 뜻하는 히브리어 "킨아"의 명사 강조 형은 오직 독점적으로 하나님께만 사용된 단어들("킨나"= 출 34:14; 신 4:24; "칸노"= 수 24:19; 나 1:2)이다. 하나님의 독점적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8) 사랑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일 같아 단조롭지 않다. 다양한 과일의 즐거운 맛처럼 아주 풍성하다. 신앙은 절대 단조롭고 지루하지 않다. 도적은 도적질하고 죽이러 오나 예수님은 자기 양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하게 주러 오셨다(요 10: 10).

 

(9) 사랑은 가장 좋은 온갖 모든 향품 같다. 고벨화(검은 색의 수피와 가늘고 길게 늘어진 녹색 잎과 강한 향기를 가진 긴 꽃송이들이 있는 관목으로 고대 근동에서 신부의 꽃이었음)와 나도풀(인도에서 나는 쥐 오줌풀 과에 속한 식물)과 나도(나도풀의 섬유 뿌리에서 채취한 향료)와 번홍화(사람 무릎 크기 정도로 자라는 붓꽃과의 다년생 식물로 꽃줄기와 꽃이 방향제나 염색용으로 쓰임)와 창포(창포과에 속하는 다년생 습지 식물로 기름과 향수로도 사용함)와 계수(녹나무과의 상록수로 잘 크면 10미터 가까이 자라며 가공하면 방향제와 음식물 향료 등으로 쓰임)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그리고 가장 좋은 “모든 귀한 향품", 이보다 더 한 극찬의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10) 사랑의 생명력은 동산의 넘치는 샘 같고 생수 우물 같고 레바논 높은 산에서 녹은 눈들이 늘 흐르는 시냇물 같다. 이 물들은 팔레스틴의 생명수요 팔레스틴의 초원과 광야의 젖줄 역할을 하였다. 이 물(이스라엘 국립공원 속 시냇물)에 직접 발을 담가보았다. 정말 그 생명력 넘치는 시원한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11) 물과 샘은 아내를 상징하기도 하며(잠 5:15-18) 물과 생명수는 그리스도의 상징이다(요 4: 10-11; 계 22:17). (@ 노트: "토브"는 위의 8가지 경우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12) 사랑의 기쁨과 신앙의 기쁨은 유사하다. 왜냐 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을 "토브"로 창조하셨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므로 당연하다. 따라서 신앙을 소유하면 놀랍게도 이 사랑이 회복되는 것이다.

 

3) 사랑은 그 향기로 인해 열매를 맺는다(16절).

 

(1) 바람이 불 때 향기는 널리 퍼진다. 북쪽의 찬바람과 남쪽의 따뜻한 바람이든 상관없다. 바람은 동산의 향기를 날리고 향기는 멀리 퍼지며 동산의 생명력을 사방에 퍼뜨린다.

(2) 사랑도 그 향기를 날려야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고후 2: 12). 그 신앙의 향기가 널리 퍼져 나가야 한다. 꽃의 향기는 열매를 맺기 위한 도구이다. 사랑은 그 향기로 인해 열매를 거둔다. 자녀의 열매, 신앙의 열매, 전도의 열매, 성숙의 열매를 맺는다.

 

(3) 마음을 빼앗기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사랑하면 마음을 빼앗기듯 하나님의 마음을 빼앗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세상이 모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하나님의 사랑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4) 사랑하면 모든 게 즐겁고 기쁘다. 사랑하면 모든 게 행복하고 기쁜 것처럼 신앙에 마음을 빼앗기면 모든 게 즐겁고 새로워진다.

 

(5)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 사랑하면 그 감정을 숨길 수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숨길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 신앙의 향기가 반드시 신앙의 열매(갈 5:22-23)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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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풍경 12-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을 때

 

가끔 누군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어할 때

 

바람이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아도

우리 마음과 살갗을 스쳐지나가듯

 

들리게 말씀하지 않아도

언어의 주인이고

시(詩)의 주인이고

우리 몸짓의 주인이고

하늘과 달과 별과 빛의 주인이고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내가 스스로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래도 하나님께서 혹시 내가

당신의 도구로 필요할 때

오직 당신이 주신 선물로

당신을 향하게 하소서

(조덕영 詩集, <사랑, 그 지독한 통속> 중에서)

 

 

조덕영

충북 충주 생

전 한국문학연구회 충북지부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1978년 <충청문예>에 시를 내며

고향에서

고 고찬재(시인, 전 민예총 충주지부장), 정재현(시인, 전 민예총 충주지부장), 한우진(시인), 홍종관(대구교대 교수, 목사), 서효원(무도인) 등과 교류하며

동인 활동을 했다.

오랫동안 전 국내최장수 월간지,

월간 <새벗>의 필진과 편집자문위원을 지냈으며,

한국기독교 최고 권위의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어린이도서부문 최우수상을

최초 2년 연속 수상했다.

ACTS, 강남대, 건양대의대 치유신대원, 명지대, 백석대, 한세대 신대원 등과

김천대·안양대 겸임교수, 평택대 <과학과 신학>교수를 지냈고

에일린신학연구원 대학원장을 거쳐

지금은 신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