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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신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문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경계에서, 복음 전파와 선교의 고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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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경계에서, 복음 전파와 선교의 고민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1.

포스트모던(Postmodern)은 무엇일까? 포스트(Post)는 ‘후(後)’라는 뜻이다. 과학도 포스트모던과 관련되어 있다. 보통 ‘과학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자연에 영원히 순응하는 질서가 바로 과학이다.

2.

하지만 성경에는 그렇지 않은 기사들이 많다. 오병이어(五餠二魚)를 보자. 과학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부활도 마찬가지다. 이제 과학자들도 과학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3.

모더니즘의 시대은 거대담론(巨大談論)의 시대였다.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다. 거대담론은 무엇인가? 기성세대는 모더니즘의 시대를 살았다. 모더니즘 시대는 이념(理念), 종교(宗敎), 충(忠), 효(孝), 국가(國家)등 거창한 담론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중학교 입학 할 때만 해도 중학 입학시험이 있었다. 시험이 끝난 후에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대한민국 최고 석학이 만든 헌장이었다. 석학이 만든 헌장이 첫 마디부터 거대담론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중략”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의미가 민족중흥이라니! 요즘의 아이들에게 이런 글을 읽어 주면 아이들은 비웃을 것이다. 이것이 거대담론이다. 최고 사상가의 헌장이 청소년들에게조차 조롱거리가 되는 세상! 세상의 관점과 담론이 바낀 것이다.

4.

선교에 있어 무척 중요한 팁이 여기에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우리는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진리(Text)는 안 바뀐다. 하지만 상황(Context)은 늘 바뀐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5.

상황이 바뀌었다. 취직을 위해 기도원을 찾아가 주님의 뜻을 묻던 시대가 바뀌었다. 해군 입대 전 기도원을 찾은 막내가 부모에게 한 말이 충격이었다. 이제 기도원에 나를 데려오지 말라고~~ 내 또래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기도원에 가서 부르짖지 않아도 인터넷 안에 모든 세상이 열려 있다. 더는 기도원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는다. 포스트모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좋고 나쁨의 구별이 아니다.

6.

이런 시대에도 복음은 전파되고 선교를 해야 한다. 요즘 기독교인구가 줄고 있다.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기독교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이다. 거대담론에서 포스트모던으로 줄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대해 진단을 내려야 한다.

7.

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대를 결정하는 시대가 일찌감치 열렸다. 이것을 이 강좌를 통해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거장찬 담론의 시대에서 작은 담론의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는 정형(定形)이 폐지되었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부모는 공양(供養)하고 자녀에게는 공양 받지 못하는 세대다. 공양하는 마지막 세대다. 며느리에게 의지할 시대가 아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는 문제가 생기면 기도원으로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기도원에 잘 가지 않는다. 내가 결혼 전 기도원에 가서 성경책의 모든 찬송을 1절 씩만 불러 보기로 했다. 거대담론식 사고방식이다. 결과는 실패였다. 10시간을 계속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정형이 파괴된 시대다.

8.

파리 중심가에 퐁피두센터가 있다. 퐁피두센터는 센(세느)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퐁피두센터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최고의 건축가가 선정되어 설계했다. 모습은 우리나라의 광명전철역과 무척 흡사하다. 퐁피두 센터에서는 단순한 예술품뿐 아니라 서점 등이 들어선 종합건물이다.

 
전형적인 포스트모던 건물인 퐁피두 센터(Centre Georges Pompidou) by E. S. Cho1969년 황량한 세느 강변의 보부르(Beaubourg)라는 한 소박한 동네를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는 세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바꿔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 건물은 단순한 현대미술관을 넘어 비주얼 아트, 영화관, 음악, 극장, 열람실, 서점등을 아우르는 건축물이었다.세계 최고의 600여 건축가들이 경쟁한 가운데 선발된 영국의 Richard Rogers와 이탈리아의 Renzo Piano가 드디어 1977년 이 건물을 선보인다. 처음 파리 시민들은 이 건물을 보고 크게 당황하게 된다. 당황을 넘어 시민들의 분노는 엄청난 것이었다.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골조와 파이프만 남은 듯 황량하고 이상했으며 안과 밖은 바뀐 듯하며 구조물만 덩그라니 남아있는 칙칙한 고철덩어리 같았기 때문이다. 건축의 고정 관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건물이었던 것이다.​하지만 괴팍스러워보이던 이 건물은 외부 파이프를 다양한 색으로 입혀 그 상징성(붉은색은 움직임과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수도관(액체를 상징하는 초록색), 전기 전선(경고를 상징하는 노란색), 환기구(공기를 상징하는 푸른색) 등을 색으로 나타내었다. 대들보가 다 드러나는 건축의 고정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이 건축물은 오늘날 포스트모던 건물의 선구자적 상징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건물이다. 파리 시민의 반응은 어땠을까? 시민과 언론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왜? 포스트모던 시대 건축물의 서막이었다. 정형이 파괴된 건축이다. 배관은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건축의 정도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건축은 다르다. 형광등은 위에 있어야만 할까? 바닥에 깔려 있다. 이것이 정형이 파괴된 포스트모던이다(참고로 이 건물 지하 예술작품은 한국인 예술가 양해규의 작품)

 

9.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예수도 파괴의 대상이다(이 글을 정리하는 2024년 여름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벌어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기독교 모독의 퍼포먼스를 보라!).

이런 시대에 어떻게 선교를 해야 할까? 충효가 전부였던 세대에서 스펙(Specification)을 쌓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10. 과학에도 당연히 포스트모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적설계도 이와 관련이 된다. 정치에도 포스트모던이 들어왔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포스트모던적 현상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지난 날 같으면 그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던 정형의 사람이 노무현 후보였다. 그는 마치 럭비공과 같은 사람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포스트모던적 인물상이 젊은이들에게 먹힌 것이다. 오바마는 마약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유명 대학 출신으로 흑인에 대한 배려 정책으로 변호사가 된 사람이다. 넥타이를 삐딱하게 매고 와이셔츠 걷어 부친 것이 매력으로 다가 온다. 투표 당일 오후 젊은이 표가 갑자기 노무현 후보에게 쏠려 그는 당선될 수 있었다. 포스트 모던적 현상이다. 여기에서 포스트모던의 사회성을 엿볼 수 있다.

11.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이렇게 공동체성 생명체다. 하지만 요즘 새로운 공동체가 나타났다. 이미 우리는 이것을 적나라하게 체험했다. 바로 2002년 월드컵이었다.

모더니즘 시대 반공 구호를 외치는 타율적 공동체가 아니라 이제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시청 광장 등으로 나왔다. 이 때 붉은 악마 옷을 입지 않은 꼬마(우리 아들)는 왕따를 당했다.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이다.

12.

선교에서 어떻게 활용할까? 성경에서는 집단회심, 집단추락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 크리스마스라고 교회를 무작정 가지는 않는다. 전에는 떡 준다고 교회를 갔다. 극심한 쏠림 현상 속 개척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쏠림 현상때문이다. 큰 교회로 쏠린다. 포스트모던의 집단적 쏠림 현상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베스트셀러만 팔린다. 홍보로 잘 포장된 서적만 잘 팔린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를 어떻게 해야 하나? 개척하면 과거보다 더욱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쏠림 현상이다. 시대를 읽어야 한다. 우리는 선교에 있어 과학기술 시대를 사는 현재의 프리즘을 통해 시대를 바라보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과학과 관련한 신학 커리큘럼이 별로 없다. 모더니즘 시대의 관성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포스트모던 시대, 선교에 있어서도 과학기술시대의 의미를 잘 판단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한세대 신대원생 강의 필기 노트에서 (2)-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