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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칼빈의 신앙론 6-신앙과 경건(박해경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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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경건-칼빈의 신앙론 6(박해경 박사)

 
 

6. 신앙과 경건

기독교강요는 경건대전(summa pietatis)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한 선결조건

칼빈에게 믿음은 경건, 경건은 지상의 것들을 넘어서서 각종 난관을 극복하고 하늘의 하나님께로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여 그 분만을 바라보는 것

박해경 박사(전 ACTS, 백석대 교수, 조직신학, 현 문형장로교회 담임목사)

 

칼빈은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에 나타난 "독자에게 드리는 글"에서 저술의 의도를 말하는 가운데 "순수한 경건"의 교리를 보존하여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의도도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1536년 초판 발행시의 라틴어 제목은 역시 경건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강요. 구원론에서 알 필요가 있는 제반 사항과 "경건"의 대요를 포함하고 있으며, 경 건에 열심히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읽을 가치가 충분한 저서이고, 최신판이다. ...

기독교강요를 경건대전(summa pietatis)이라고 하고, 칼빈이 말하는 신앙의 지식을 경건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저술활동 뿐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나타난 경건과 경외 때문이다. 실제로 칼빈의 저작속에 "경건"이라는 말은 빈번하게 나오며, 경건은 교리와 불가피하게 관련되어 있다.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한 선결조건이므로, 기독교강요에서는 세속적인 지성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일깨워주는 경종처럼 계속 울리고 있다. 두메르그(E. Doumegue)는 칼빈에게 있어서 종교와 경건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라고 하였고, 헌터(M. Hunter)는 칼빈의 인격의 핵심이며(Keynote) 그는 하나님께 사로잡힌 영혼의 소유자였고, 학문 자체로서의 신학이란 그에게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칼 바르트가 예정이라는 개념이 그 자체 때문이 아니고 (기독교의) 설명을 위하여, 또 음식으로서가 아니고 음식의 "소금"으로서 나타나고 그래서 중요하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런 말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칼빈에 있어서의 "신앙의 지식"은 "경건"이라는 소금으로서 모든 교리 연구와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근본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치 성경의 모든 구절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성령의 감동을 받듯이, 또 성경의 매 구절 속에서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향하게 되듯이 칼빈의 삶과 신학 속에서 경건이라는 믿음은 언제 어디서나 우러나오는 향기와 같다고 하겠다.

실제로 칼빈은 강요 III. 2. 7에서 신앙의 정의를 내린 직후, III. 2. 8에서 바로 말하기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나 경건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구원에 대한 믿음이나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논박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멸하는 사람들조차도 성경이 제시하는 것에 동의만 하면 믿음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거룩케하심(성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지 못하며, 믿음이란 경건한 성향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까닭이다.

칼빈은 믿음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로 사용되지만 성경에서 "경건에 대한 건전한 교리"(sound doctrine of godliness, Sana pietatis doctrina)를 의미하는 때가 많다고도 하였다. 믿음은 "하늘에 속한 교리 전체"(totam caelestis doctrinae summam)로 볼 수 있고, 믿음은 이러한 하늘의 교리에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건한 자의 마음은 번뇌와 고통으로 시달릴 때에도 결국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신이 상실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믿음의 확신을 가져다 준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두렵고 떨림으로"(빌 2:12)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는 것은 확신을 감소시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주의 권능을 높이며, 자신을 낮추는 일이 습관화 되도록 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는 담대한 믿음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마땅히 느껴야 하는 "경건한 두려움"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경건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낳을 뿐 아니라 낙심한 사람에게도 은혜가 임하면 그에게 경외심과 찬양으로 가득 채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권능에 순복하게 한다.

칼빈은 경건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의식(sense of the power of God)이 우리에게 적절한 경건의 교사가 되며, 거기서 종교가 나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유익을 앎으로써 생기는 하나님 에 대한 사랑에 존경이 결합된 것을 경건이라고 부른다.

경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grace)와 그 유익(benefits)을 아는 지식(신앙의 지식)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신앙의 지식)은 우리에게 경외를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 경건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즉 신앙의 지식도) 없다는 것이다. 강요 I권에서 경건한 사람의 특징을 논하는 가운데, 칼빈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에게 집중하는 신앙을 논하고 있으며, 모든 일의 배후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는 신본주의 신앙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III권 2장에서 신앙론을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임과 아울러 나머지 강요의 모든 교리 서술의 내용도 같은 방식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알기 위해서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하늘의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일종의 승천의 신앙이 요구되고 있다.

디도서 1:1의 주석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반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지성에서 나온 헛된 것과는 대 조되는 하늘에서 온 진리다. 바로 이 진리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것만이 명실 상부한 진리라고 부를 가치가 있다. ... 교리에 대해 오직 한 가지 추천할 만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에서 가장 크 게 진전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가장 훌륭한 제자요 그 사람만 인간의 양심을 자극하여 하나 님을 경외하도록 하는 참된 신학자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히브리서 6:19의 주석에서는 "신앙이 하나님께 미치지(도달) 않으면, 신앙은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멀리 하늘까지 솟아오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칼빈에게 믿음은 경건이고, 경건은 지상의 것들을 넘어서서 각종 난관을 극복하고 하늘의 하나님께로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여 그 분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즉 믿음이란 본질상 한 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이다. 믿음이란 여기저기를 주목하거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에게 연합하고, 그에게만 집착하는 것이다.

칼빈은 성화를 계속적인 회개의 실천으로 보는데, 여기서 회개란 우리의 삶을 참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전향)이며(true turning of our life to God), "하나님"을 참으로 신실하게 두려워하므로 전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는 옛 사람과 육을 죽이고, 성령의 살리심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회개는 믿음과 떨어져서는 성립할 수 없고, 언제나 회개와 믿음은 항구적으로 묶여있어 함께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분명한 결론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믿음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처럼, 회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칼빈이 말하는 기독교는 "하나님" 중심의(신본주의) 종교이다. 모든 교리가 "하나님"의 진리이다. 구원도 하나님의 구원이고,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이고, 칭의는 하나님이 의롭다하여 주시는 은혜이고, 성화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되어져 가는 은혜이며,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면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고, 회개도 하나님께로 계속해서 일생동안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일생에 한번만 하는 회개로서의 회심도 있으나 구원받은 자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들어 올려 하나님께로 향하는 일은 성찬에서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도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어야 하고, 경건의 실천으로서의 삶이어야 한다 이 경건의 실천은 필연적으로 선행과 연결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을 완전하게 받아주신다는 확신도 가지게 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지식이란 두 가지 확신이다. 우리의 믿음과 선행을 하나님이 받아주신다고 하는 확신이다. 이 확신은 경건한 삶을 위한 든든한 기초이다. 그리고 이 확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의를 가지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통하여 나의 선행과 봉사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약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7. 결론

칼빈이 말하는 믿음의 지식이란 주지주의적 의미에서의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선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다. 이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약속하신 말씀에 뿌리를 둔 것이며, 성령의 인치심으로 우리 지성과 마음에 주어진 것이다. 이 신앙은 구원의 확신뿐 아니라 선행에 대한 확신도 포함된다. 믿음은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지식이라기 보다는 보다는 그 분이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바 구원의 호의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것은 구원의 신앙이며, 복음신앙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승천의 신앙으로 또 산 신앙으로 되어져야 하므로 이 복음신앙은 칭의와 성화라는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신본주의 믿음이며,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에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언제나 의식하며 선행을 힘쓰며, 죄짓지 않으려고 언제든지 우리의 마음과 삶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회개를 실천하는 성화의 신앙이며 경건을 실천하는 신앙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학과 목회 사역 및 우리의 모든 삶은 이러한 구원의 확신과 경건에 바탕을 둔 복음 신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