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경 박사
신앙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 자녀로 입양되는 것,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일
칼빈의 진정한 관심은 무엇이 참된 신앙의 본질이냐 하는 문제
신앙의 목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
박해경 박사(전 ACTS, 백석대 교수, 조직신학, 현 문형장로교회 담임목사)
칼빈에 의해서 정의된 신앙은 한 마디로 구원의 신앙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신앙의 목표(scopos fidei)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신앙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것이며,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일이다. 기독교강요 초판에서도 칼빈은 신앙의 본질적 특성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의를 확신하는 것이며, 그 목표는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과 성화를 얻는 일이며, 마지막 날에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한다.
다른 하나의 유형은(참된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자로 참되게 인정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의(de bona Dei erga nos voluntate)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신앙이다. ...또한 우리가 그를(그리스도) 통해 죄 사함과 성화를 얻게 되는 것처럼 마지 막 날에 나타날 하나님 나라에 마침내 우리가 들어가기 위해 구원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주께서 그의 거룩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제공하시며 약속하시는 모든 일들의 핵심 주제(head)이며, 총화(sum)이다. 이것이 그의 성경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목표(goal, meta)이며, 과녁(target or mark, scopos)이다.
앞에서 언급된 칼빈의 기독교강요 최종판에 나타난 신앙의 정의에서 신앙의 목표(과녁)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구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이 내용이 초판에서도 잘 지적되어 있음을 본다. 칼빈은 초판에서 이미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냐"(what the nature of this faith ought to be, qualis esse haec fides debeat)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칼빈은 신앙을 두 가지 형태로 구별하면서 신학자들이 흔히 부르는 "역사적 신앙"(fides historica) 혹은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신앙내용들을 믿는 인지적 신앙" (fides quae creditur)은 실상 참된 믿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믿음은 마귀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약 2:19).
실제로 칼빈의 관심은 fides quae 라든지 fides qua의 구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진정한 관심은 무엇이 참된 신앙의 본질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는 성령의 으뜸가는 사역으로서의 신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천국을 소유하게 되도록 하며, 한 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될 때 참 신앙이라는 것이다. 물론 신앙이 한 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그리스도를 아는 것도 첨가되어야 한다고 했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고도 하였다.
칼빈은 그의 신앙의 정의에서도 삼위일체론적 정의를 하고 있음을 앞에서 보았다(III. 2. 7). 즉 1) 신앙은 우리에게 선의를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다. 성부께서는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죄 사함과 성화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선의(benevolentia)를 가지신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다. 2) 또한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자비의 약속과 진실성에 기초한 하나님의 선의를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납해 주시고 사랑하여 주시는 자비의 약속을 확증하시지 않는다면 신앙의 확실성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3) 이 신앙은 "성령"에 의해서 우리의 지성에 계시되고 우리의 마음에 인친 바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영혼은 참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의를 의지하게 되고, 우리의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에서 떠나 방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의에서 칼빈은 정의된 각 부분들이 모두 신앙의 목표임을 말한다. 하나님의 선의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의 약속과 성령의 인치심이 모두 그러하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과녁, 곧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선의(the divine benevolence toward us)의 내용은 "구원"과 "영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신앙의 본질적 특성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불신자들이 그것으로 인하여 명확하게 구별되는 근본적인 내용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 구원의 신앙을 정의할 때에는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여 주는 특별한 표식(the special mark)을 언급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신자와 불신자가 구별되는 특별한 표식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약속을 붙드는 확고한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신앙이다. 우리가 신앙을 논하는 목적은 "구원의 길을 파악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지는 믿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구원의 신앙"(saving faith)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선의를 바라보는 것"이라 할 때 그 내용은 구원과 영생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신앙의 본질상 참된 구원의 신앙이 가지는 특성은 이 세상에서의 부귀나 장수보다는 "내세"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세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단정한다. 물론 칼빈은 강요 II권에서 일반은총으로서의 현세의 여러 가지 학문과 예술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리고 III권에서도 현세 생활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현세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한다. 더구나 III권 10장에서는 현세 생활을 기독교인이 올바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논하기까지 한다. 강요 IV권에서도 20장에서 세속정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은 영지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현세 생활은 신자들의 "구원"을 촉진(promote)시키도록 예정된 것이며, 현세 생활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의"(divine benevolence)를 증거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의 목표는 하나의 과녁을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라는 것이다. 이 과녁을 통해서 신앙의 본질적 특성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알 수 있게 된다. 칼빈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는 하나의 중심점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선의"라는 것이며, 이 신앙의 본질적 특성은 우리를 참 신자가 되게 하며,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구원과 영생 복락에 참여자가 되게 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게 하며, 거듭나서 하나님의 양자로 되게 하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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