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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 질의 응답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지적 설계와 양립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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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지적 설계와는 양립할 수 있는가?

패러다임이란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주장한 이론이다.

쿤은 과학의 통일성을 부정한다. 그러면서 과학이 일직선으로 점진적 발전을 해온 것이 아니고 한 시대의 과학의 틀이 한계에 봉착하면 다른 체계가 대체해왔다는 패러다임(paradigm)이론을 주장하였다.

쿤에게 있어 과학혁명이란 하나의 패러다임이 그것과는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전체 또는 부분적으로)되는, 누적적이 아닌 변화의 에피소드를 가리킨다. 그리고 과학혁명들 사이에서 과학자들이 정상적으로 행하는 안정된 작업을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 하였다.

즉, 쿤에 의하면 정상과학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으로 패러다임 아래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정상과학은 이론과 실험 사이에서 정확성을 높이는 활동, 더 많은 현상들을 포괄하도록 패러다임을 확장하는 활동, 보편적 상수의 값을 측정하는 활동, 패러다임을 분명하게 표현해 줄 정량적·수학적 법칙을 만드는 활동, 어떤 분야가 가장 연구할 가치가 있는 가를 모색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정상 과학의 상태에서 확립된 패러다임에 따라 패러다임이 제공한 현상과 이론을 명료화 하는 것이 과학자들이 지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결국 패러다임을 연구하는 한 연구는 세계관과 미적 가치를 포함한 패러다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가치 중립적이라 보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 패러다임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패러다임이란 한 공동체의 일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이론, 법칙, 방법, 지식, 믿음, 가치, 전통, 기술 등의 전체적 집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과학의 기초가 궁극적으로 사회적이요 상대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과학도 다양한 세계관에 의존한다는 일종의 상대주의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래서 쿤은 자그마치 스물 두 가지 의미로 패러다임을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 쿤의 생각은 자연과학 뿐 아니라 사회학, 과학사, 철학, 과학철학,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 언어학 등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대적 고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과학의 포스트모던 화에 있어 쿤의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되지 않는다.

지적 설계 운동은 쿤의 패러다임을 완전 긍정도 완전 부정도 하지 않을 듯 싶다. 아직 패러다임의 정의가 정확하지도 않다는 면에서 쿤의 이론은 다분히 포스트모던적이다,

지적 설계는 모호한 개념은 아니다. 그런 면으로 보면 지적 설계는 패러다임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무언가 새로운 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선 지적 설계 운동가들도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포퍼의 경우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인데 비해 쿤이 말하는 과학의 발전은 패러다임이 변하면 대단히 급진적으로 일어난다. 즉, 과학은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과격하기까지 하다. 지적 설계가 자연신학에 대한 재검토로부터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기존 과학의 무신론적 틀에 대해서 볼 때는 대단히 혁명적인 면도 있다.

패러다임은 분명 과학도 유동적이고 혁명적 변이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리에 수긍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복음은 새로운 진리를 찾지는 않는다.

과학의 포스트모던 화에 공헌한 패러다임 이론은 과학 혁명의 흐름을 예견하기에는 유용한 이론이나 그 자체를 복음주의는 진리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와 무관한 개념이라고 패러다임 이론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정상적 과학이 지속되면 과학자들의 모든 과학적 행위의 기준점이 되는 패러다임이 생긴다. 그리고 당연히 이 패러다임을 따르는 과학자 집단이 생겨난다. 이것을 쿤은 과학자 사회(scientific community)라고 불렀다.

즉, 무신론적 윤리나 진화론적 윤리가 패러다임 화 한다면 그것이 과학자들의 과학적 행위의 기준점이 된다는 말과 같다. 복음주의는 복음과 복음 전파의 사명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반(反) 기독교적 과학자 사회가 조성되는 것을 늘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