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학/신학 질의 응답

기독교 사상 등장 이전 불거진 세 가지 논점(유대교와 결별 문제, 거짓 사상가 출현, 헬라 철학과의 관계는?)

728x90

 

기독 사상가들의 등장 이전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기독교 사상가 등장 이전 불거진 세 가지 논점

(유대교와 결별 문제, 거짓 사상가 출현, 헬라 철학과의 관계는?)

1. 교회의 응전(應戰)의 필요성이 생긴 세 가지 요소

​1) 유대교와의 결별과 박해 문제

 

기독교와 외형부터 다른 유대교 회당(베를린 소재)

(1) 나사렛 예수의 등장 이후 <성경 종교>는 완전히 새로운 <은혜 종교>의 길로 들어섰다.

(2) 유대교에서는 전혀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이었다.

(3) 같은 구약 성경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초대 교회 당시에는 유대교와 큰 충돌 없이 접촉(사도 바울은 선교 여행 시 주로 안식일 날 유대교 회당을 선교의 접촉점으로 활용)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유대교와는 분명 다른 길을 걷는 종교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유대교와의 결별은 핍박으로 다가왔다.

(4) 물론 기독교가 무섭게 박해를 받는 동안에도 복음은 계속 확장되었다.

(5) 그러나 기독교는 왜 유대교와 다른 것인지 명쾌하게 설명하고 구분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6) 누군가 그것을 바르게 설명할 기독교 인물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학)사상가들의 출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2) 이단들의 출현(거짓 사상과 사상가들 등장)

(1) 박해 못지않게 기독교를 위협한 것은 이단의 발흥이었다.

(2) 1-2세기 경 이미 기독교를 위협하는 심각한 이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초기 대표적인 이단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영지주의:

시몬 마구스(마술가 시몬?/행 8:9-24/초대 기독교사상가 이레네우스 주장)/

영지주의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사도 바울(고전 2:6; 골 1:5; 딤전 1:4, 딛 2:4)과 사도 요한(요일 1:5-6; 요일 2:4; 요2 1:7)이 경고/

하나님과 물질 사이의 존재론적 이원론/

신령한 내적 자아 중시와 육체 무시(육체는 더러운 것)/

구원은 그 특별한 신령한 지식을 아는(소유하는) 일/

이레네우스의 <이단 논박>,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의 <요한복음 주석> 등에 등장/

영지주의는 오늘날까지 다양한 모습으로(포장만 달리하여) 세계 사상 속에 건재함을 잊지말 것

* 마르키온(84-160):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극단적 이원론/

신구약 신은 서로 다른 하나님/

성육신 부인/

재림 거부/

사도 바울만 중시(12 사도는 변질되었다고 봄)/

사도 바울의 10개 서신(딤전, 딤후, 딛 제외)과 부분 삭제된 누가복음만 '마르키온 정경'/

'마르키온 정경'으로 인해 초대교회 참된 정경화(신약 27권 확정) 작업의 시급한 당위성 발생 /

초대 기독교 사상가 저스틴, 이레네우스, 터툴리안, 폴리캅(마르키온은 '사탄의 장자'이다)이 언급

*몬타니즘(2세기):

밀교 신비주의의 중심지였던 프리지아(Phrygia)에서 발생/

몬타누스는 본래 밀교의 사제였음/

임박한 재림 주장(계 21장의 새예루살렘이 페푸자라는 마을에 곧 임한다고 본 열렬한 시한부 종말 사상)

황홀경 체험/

강림한 주 하나님/

이적과 예언 은사 강조/

엄격한 금욕주의/

신학자 터툴리안도 208년 이후 몬타니즘으로 개종/

성경보다 성경밖(초월적이고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신비 체험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오순절 신비주의와 많이 닮음

* 마니(215-277)교:

마니(Mani)는 페르시아 수도 바벨론 왕가 출신으로 영지주의 만다이즘 감화/

12세 천사 환상 체험으로 241년 자기 종교 시작/

금욕과 이원론적/

배화교와 영지주의와 마르키온과 불교에 기독교 혼합/

그리스도는 빛의 대표, 사단은 어두므이 대표/

그리스도 육체는 온갖 환영(가현설적?)에 불과/

훗날 어거스틴이 청년 시절 심취했다 버리고 회심에 이름/

중국 돈황석굴에서도 발견된 마니교 경전 (총 7권)

(3) 이들 거짓 사상들의 출현은 기독교를 보호하고 이단들을 구별해내고 그들과 결별하기 위한 시급하고 명쾌한 성경적 설명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인물을 필요로 하였다.

3) 헬라 철학(자연은총 영역의 가장 오래된 학문)과의 관계 설정 필요성

(1) 헬라 철학의 3 시조(이오니아 밀레토스 지역(학파)/ 질료Matter 철학자들/ 즉 phsica자연철학자들)

(1) 탈레스(주전 624-546): 철학의 아버지, 만물의 근원은 물

(2) 아낙시 만드로스(주전 610-545): 만물의 근원은 Apeiron무한정자(the infinite), 영혼의 윤회, 진화론 원조(?)

(3) 아낙시메네스(주전 585-528): 만물의 근원은 공기

(2) 변화(Change)에 대한 질문

(1) 에베소의 헤라클레이토스: 만유는 변한다, 따라서 만물의 근원은 불

(2) 파르메니데스: 단일한 항존하는 존재가 있다.

(3) 아그리켄토의 엠페도클레스: 종합론자/ 물, 불, 흙, 공기(오늘날 과학철학자 바슐라르, 문학에 까지 영향)

(3) 인간에 대한 관심

(1) 고전 철학이 "질료"에 대한 관심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오다.

(2) 궤변론자(소피스트): 인간의 학문과 “지혜”에 대한 지식 대중화, 웅변과 궤변으로 지식을 팔아 사례를 받다.

(3) 소크라테스(주전 469-399): 소피스트들을 좋아하지 않음, 인간에 대한 관심, 앎(arete), “너 자신을 알라”,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참 된 선(덕, 탁월성, 능력, 분별력, 앎 등)

소크라테스(그리스 아테네 학술원 앞)

(4) 고전 철학의 3 영역(오늘날 신학에서 발견되는 영역들)

(1) 자연철학(physica): 기원론, 창조론, 물리학, 천문우주학

(2) 윤리학(ethica): 기독교 윤리학, 성서 윤리학

(3) logica(변증학, 문법학, 수사학->에토스/파토스/로고스): 성서신학, 선교학

(5)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준 세 철학 사조(유사한 듯 다른 헬라 철학과 기독교의 하나님)

(1) 플라톤(주전 427-347)주의:

실재와 변화 구분(영원 불변의 참 된 실재로서의 Idea론)/

무감각한 신/

암모니우스 사카스와 플로티누스에 의해 신의 궁극적인 초월성을 강조한 신플라톤주의로 발전

플라톤(그리스 아테네 역사박물관 내)

(2)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주의:

실재와 변화 구분/

세상은 질료(가능태dynamis)와 형상(현실태energeia)의 복잡하고 다양한 결합/

보기=>나무는 질료이나 나무로 만든 통나무집, 나무 책상, 이쑤시개는 형상/

스승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이상주의와 다른 길로 감/

형이상학

 

데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광장

(3) 스토아(Zeno/?-주전 263년, 스도이고)학파와 에비구로 학파(행 17장)

* 스토아학파:

금욕주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세계는 정신과 물질로 구성/

세계는 신의 몸이다/

범신론=> 하나님은 “세계 영혼”, “세계 이성”(로고스)

하나님은 절대적 필연성/

만물은 결정된 숙명을 따르는 운명을 가짐/

신의 보복과 자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두상(그리스 아테네 국립박물관내)

*에비구로(에피큐로스) 학파

쾌락주의/

유물론적 행복론/

고상하고 정신적인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다가 후대로 올수록 세속화되어버림/

(6) 초기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준 헬라 철학

(1) 헬라 철학의 용어나 틀을 보편적으로 사용한 경향

(2) 소크라테스의 참 된 지식과 선 추구(지적 오류는 죄): 소크라테스는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다(순교자 저스틴)

(3) 플라톤의 이원론, 지고선(Sumum bonum) 개념, 영혼 선재설, 영혼 불멸 사상,

이데아 사상의 영향

(4) 어거스틴과 여러 교부들의 사상에 나타난 신플라톤주의 영향:

하나님의 초월성,

불가지성(不可知性),

영성,

무시간성(無時間性)

. 나가면서

초대 기독교 사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루는

(1) 유대교와의 관계 설정,

(2) 이단의 출현으로 인한 그리스도교의 위기

(3) 헬라 철학 사상과의 관계 설정 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을 배경으로 기독교 사상가들이 필연적으로 출현할 당위성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

참고:

1.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지역과 라틴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나뉜다.

2. 최초의 기독교 이방인 공동체는 헬라인이었고, 신약성경도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초창기 서방교회들도 헬라어를 통용하였다. 로마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3. 3세기까지 로마교회도 헬라어가 훨씬 더 통용되었다.

4. 3세기 접어들면서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신학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레니우스의 등장을 시작으로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신학이 태동되었으며,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라틴신학이,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는 알렉산드리아신학이 형성되었다.

5. 이들 신학은 신학적 입장이 뚜렷이 구분될 정도로 독특한 특징들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신학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고

라틴신학은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

동방신학의 대표자 오리겐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라멘트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6. 그들의 작품에는 플라톤주의적 요소가 상당히 농후하게 나타난다.

7. 이 중에서 알렉산드리아신학은 로고스 사상을 통해 헬라사상과 기독교를 조화시키려했다.

8. 라틴 기독교의 최초의 흔적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발견되었다.

아프리카인 터툴리안(2세기말)이 가장 뛰어난 라틴 저술가였다.(박용규 저, <기독교 역사와 역사 의식>,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 참조)

조덕영 교수(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