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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도서 소개

『진화론의 상징들』(조나단 웰스 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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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상징들』(조나단 웰스 저, 서평)

 

서평: 조나단 웰스, 『진화론의 상징들』

Book Review: Jonathan Wells, 『Icons of Evolution: Science or Myth?』

 

 

성경훈

Kyunghoon SUNG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

ACTS Seminaries, Trinity Western University

7600 Glover Road, Langley, BC V2Y 1Y1, CANADA

E-Mail: yhjeon68@naver.com ivfdpm@naver.com

 

 

(Received on February 17, 2020,

Revised and accepted on March 14, 2020)

 

조나단 웰스의 『진화론의 상징들』(한글판 제목)은 단순히 진화론을 대표하는 여러 상징들에 관한 책이 아니다. 흔히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진화론의 대표적인 10가지 상징들, 예를 들어 ‘밀러-유리 실험’이라든지, ‘헤켈의 배들’, ‘시조새’, ‘회색가지나방’ 등등이 진화론의 증거로서 타당성이 있는지 검증하는 작업은 이미 저자가 2000년에 쓴 『Icons of Evolution: Science or Myth?』에서 다루었다. 그렇다면 17년이 지나서 저자가 다시 『진화론의 상징들』, 영문판 제목의 부제에서 보듯이 『More Icons of Evolution』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번에 번역된 한글판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의 문제의식은 타당성이 없거나 혹은 증거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진화론의 상징들이 진화론자들조차 스스로 오류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폐기되지 않고 좀비처럼 살아나 생물학 교과서에 들어간다는 데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좀비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2017년 판 『진화론의 상징들』의 원제는 사실 『Zombie Science: More Icons of Evolution』이다. 쉽게 말해서 “왜 다시 살아나는가?”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저자는 이전의 책에서 다룬 진화론의 10가지 상징들을 2000년 이후의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재검토하는 한편, 이 책의 부제 『More Icons of Evolution』에서 알 수 있듯이 6가지 추가적인 상징들을 검토하고 있다. 이전의 10가지 상징들이 오래전부터 주로 사용된 고전적인 상징들이라면, 추가적인 상징들은 주로 유전공학과 관련된 신다윈주의의 상징들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최근의 DNA 연구와 더불어 암, 항생제, 흔적 구조 등 진화론과 관련된 의학적 이슈들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상징들을 다루는 미시적인 접근 방법은 “왜 좀비 과학이 되살아나는가?”, “누가 무슨 이유로? 왜 그러한 상징들을 살리는가?”하는 거시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한 과정이다. 우선 책을 보는 내내 독자들은 각각의 상징들이 가진 논리들이 처참하게 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일종의 통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진화에 관한 실험을 바탕으로 대진화도 가능하다는 식의 억지 논리를 보고 있으면, 논리적 비약을 진리로 둔갑시키는 진화론자들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윈이 19세기에 대진화와 소진화를 구분하지 못한 것은 그 시대의 한계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연구와 발전을 이룬 오늘날까지 다윈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절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독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이 진화론 논쟁에서 과학이 아닌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게 될 것이다. 진화론의 상징들이 무너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다. 진화론을 가르치고 홍보하기 좋기 때문에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리-밀러 실험, 시조새, 심지어 초기부터 명백한 조작으로 밝혀진 헤켈의 배들 역시 좀비와 같이 과학 교과서에서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실증 과학의 문제,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문제, 세계관의 문제이다. 특별히 신과 종교를 배제하고자 하는 물질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회색가지나방은 환경에 따른 개체 수의 변화를 보여줄 뿐, 다른 종으로의 진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날개가 넷 달린 돌연변이 초파리 역시 짧은 수명과 장애라는 측면에서 진화를 이루었다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다윈의 핀치’라고 부르는 갈라파고스 핀치들의 부리 크기 변화는 다윈이 언급한 적도 없다.

 

저자는 이처럼 왜곡된 정보들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왔는지 다윈의 시대 때부터 역사적으로 추적해 나간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진화론과 관련된 과학사 서적을 읽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단순히 진화론의 논리를 깨는 것을 넘어 진화론의 역사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누구를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졌는지 역사적으로 검토한다는 면에서 저자는 매우 치밀하며 설득력이 있다.

 

특별히 저자는 이번 『More Icons of Evolution』에서 유전학으로 무장한 신다윈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진화론의 상징들에 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였다. 『이기적 유전자』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을 검토하는 부분이 눈에 띄는데, 도킨스는 소위 ‘쓰레기 DNA’라고 불리는 부분을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증거로 제시하지만, 저자는 이후에 그것이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는 연구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학자들이 그것을 특별한 목적과 기능을 가진 ‘비단백질 코딩 DNA’로 부르는데 왜 도킨스는 아직도 그것을 ‘쓰레기’라고 부르는가?

 

그 외에도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흔적으로 퇴화되거나 버려졌다고 여긴 충수와 같은 흔적 기관들이 이후에 면역 체계의 일부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망막이 거꾸로 된 척추동물의 눈을 불완전한 설계로 설명하는 도킨스의 견해를 보면서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저자는 거꾸로 된 망막의 이점을 설명하는 연구들이 이미 1986년 이전에 발표되었으나 도킨스를 포함한 신다윈주의자들은 과학 문헌을 조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기에 발견된 삼엽충 화석의 눈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도 살피지 않았다.

 

대신 도킨스는 컴퓨터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눈이 진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는 닐슨과 펠저의 연구를 사용하는데, 그것의 진위 여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2003년 수학자 버린스키에 의해 도킨스가 제시한 컴퓨터 모델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고 눈의 진화를 그린 그림들이 실제가 아니라 그저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그림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도킨스와 신다윈주의자들은 그와 같은 진화론의 상징을 수정하거나 폐기할 생각이 없다.

 

계속해서 저자가 강조하듯이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지키고 선전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거짓과 날조도 서슴지 않는 도킨스와 신다윈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위 학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양심이 이렇게까지 망가졌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학자가 아니라 체제 선전에 몰두하는 선동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항생제의 내성과 암에 대한 부분도 흔적기관에서 다루었듯이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진화론의 증거로 활용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인류가 질병을 극복하고 건강을 찾는 데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의학 교육에 진화론을 필수적으로 가르치고, 심지어 의사 면허 시험에도 진화에 대한 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것은 순전히 의학과 교육계까지 물질주의적 세계관의 세를 불리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과학이 아니라 정치이자 사상이다. 저자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으로 무장한 진화론자들이 지금도 연구비와 생존을 위해 활동하면서 종교계와 교육계, 과학계를 얼마나 오염시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화론자들이 과학계의 공적 자금을 관리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이에 민간 재원을 통해 지적 설계 운동을 일으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저자와 지적 설계 진영의 노력과 시도를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마치 흡혈귀를 죽이기 위해 흡혈귀를 햇빛에 직접 노출시켜야 한다는 저자의 비유와 같이, 지적 설계 진영은 세상을 지배하려는 물질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다양한 증거들을 통해 진리의 빛을 비추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진화와 지적 설계 사이의 치열한 전투현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언젠가 이런 시도들을 통해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과학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책은 그와 같은 희망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는 저자의 도전이 아닐까? 쉽지 않은 문제이다. 단순한 논리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이권을 두고 싸울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까? 저자가 말하듯이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오는 임계점에 도달하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권에 대한 관심에서 진리에 대한 관심으로 계속해서 초점을 바로잡는 것, 그것은 결국 신앙의 문제가 아닌가?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맥락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선지자적인 면이 있다. 따라서 그동안 진행된 진화론과 관련된 논쟁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지적 설계 및 창조론이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앞으로도 유익한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