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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역사 & 세상 만사

러시아가 성경에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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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민족의 성경 속 기원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에 다양하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야벳 후손 메섹 땅 러시아의 과거,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을 소개합니다. 

메섹의 정착지

야벳 후손 메섹(Meshech)의 이름은 “늘이다”, “키가 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역대상 1장 17절에는 셈의 아들로 묘사 되나 셈의 아들 가운데 메섹은 없었으므로(창 10장) 이는 아마 아람의 아들 마스(Mash)의 오기(誤記)일 가능성이 있고(창 10:23)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이 모르는 다른 곡절이 있을 거라고 본다.

고대 악카드 문헌에 보면 무쉬키(Muški)라는 이름이 나타나고 앗수르 문헌에는 무스키(Mushki)라고 불려지는 북방 족이 등장한다. 이는 메섹 일족을 말함이 분명하다. 헬라는 전통적으로 흑해 남동쪽에 자리 잡은 이 민족을 무스코이(Muschoi, Μοσχοι)라 불렀다. 즉 야벳의 후손 메섹은 같은 형제 두발과 동행하면서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의 생명의 고향이요 조상의 근원인 아라랏 산 방향으로 되돌아와 북쪽 카프카스(Kavkaz, 영어 명은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을 향하였고 중동에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같은 무력의 지배자들이 나타나면서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시베리아와 지금의 광활한 러시아 땅으로 들어가 오늘날 러시아 땅의 주인이 되었다.

성경 속의 메섹

성경에서 메섹은 늘 두발과 함께 언급된다. 메섹과 두발이 러시아의 주류가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메섹과 두발은 주로 에스겔서에 함께 등장한다. 에스겔 선지자는 메섹을 두발과 야완과 더불어 두로에 노예와 놋그릇을 파는 무역상(겔 27:13)들이라고 묘사했다. 산악 지역에 살면서 일찍 야금(冶金) 기술에 눈을 뜬 메섹과 두발의 후손들은 많은 철공 기술자들을 길러냈고 이는 거친 군사 능력으로 나타났다. 

철기를 다루던 이들이 일찌감치 산악과 고원 지대와 대륙을 달리면서 거친 민족이 되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거기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면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살륙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었으나 그들이 할례 받지 못한 자 중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이 용사들은 다 병기를 가지고 음부에 내려 자기의 칼을 베개하였으니 그 백골이 자기 죄악을 졌음이여 생존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에스겔 32:26-27).

영육 간의 이런 야만적 모습은 애굽에 대한 신탁(神託)에서도 나타난다. 에스겔 선지자는 애굽에 내려질 심판을 전하면서 메섹과 두발 족처럼 할례 받지 않은 다른 야만인들과 더불어 음부에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누리는 권력과 물질적 번영이란 겨우 음부로 들어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자도 잘난 사람도 모두 늙고 언젠가 한줌의 흙으로 들어갈 뿐이다.

성경(겔 38:2; 겔 39:1)은 메섹이 두발과 더불어 마곡 땅의 왕, 곡에게 종속된 민족으로 표현한다.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메섹과 두발은 아주 가까이 지내던 민족임이 분명하다. 이들 후손들은 대홍수와 바벨탑 분산 이후 함께 흑해 남동쪽에 살았다. 이곳은 두발의 땅이었다. 이후 두발의 후손들은 지금의 조지아 땅을 중심으로 살면서 일부는 러시아의 변방 시베리아로 향하였고, 메섹의 후손들은 북방으로 가 러시아 땅 전체의 주인이 되었다.

역사 속의 메섹 족

메섹은 기원전 1100년경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1세(Tiglath pileser 1, B.C. 1115-1076)의 삼릉각 비문(三稜角 碑文, Prism Inscription)에 최초 등장한다. 이 디글랏 빌레셀 1세는 성경 열왕기하(15:29; 16:7-10)에 등장하는 디글랏 빌레셀과는 다른 인물이다. 성경 열왕기서의 인물은 디글랏 빌레셀 3세(B.C. 745-727)를 말한다. 고대 기록 가운데는 앗수르 왕이 무스키의 다섯 왕들과 전투했다는 내용도 보인다. 다른 앗수르 왕들의 기록에도 메섹족은 등장한다. 메섹족은 사르곤 3세(B.C. 722-705)의 연보(年譜)와 도로 비문(Pavement Inscription)에도 자주 나타난다. 앗수르 왕은 전쟁을 좋아하는 무스키 족을 정벌하기 위해 주변국들과 군사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결국 앗수르가 메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무스키 왕 미타(Mita)는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고대의 메섹 족은 중동의 변방에 살면서 중동 땅 강자로 등장한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등에 밀려 중동 땅을 벗어나 서서히 사람이 드물던 먼 북방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흑해 주변에 살던 두발족이 시베리아로 진출한 것처럼 메섹 족은 흑해 북쪽으로 나아가 오늘날 러시아 땅의 주인이요 슬라브 족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메섹(Meshech)이 러시아 땅의 주인이라는 것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Moscow)의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모스크바도 당연히 메섹에서 온 말이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인 동시에 그 도시를 둘러싼 지역의 명칭이기도 하다. 현재에도 그 주변 지역 이름 가운데 메스체라 로렌드(Meschera Lowland)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메섹의 이름을 따라 불려지고 있다.

우리 민족과 메섹 족의 관련성

그럼 우리 민족과 메섹 족은 어떤 접촉이 있었을까? 메섹의 성경적, 역사적 출발점이 카프카스 산맥 남쪽 두발 땅이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기원과 관련하여 대단히 흥미롭다(참조: 두발 족에 대한 본 필자의 글을 참조할 것).

이제 우리 민족의 주류를 북방에서 찾는 것은 역사학계에서도 아주 자연스러운 정설이 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가라’(kara)라는 지명이다. 이병도 교수는 가라라는 지명이 김해의 가라(가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너무 시야가 좁고 순진한 발상이다. 가라(가야)는 한반도 전역에 퍼져있는 가장 대중적 지명이다. 놀랍게도 이 고대 지명은 오늘날까지 한반도 전역에 퍼져있다. 가라(가락, 가야)를 지명으로 하는 곳은 한반도 전역(평북, 황해, 강원, 경기, 서울, 충남, 충북, 경북, 부산, 전남, 경남)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한반도 고대 변진 12국 중 10국이 모두 ‘가라’라는 이름을 가진 제국이었다. 그리고 이 ‘가라’ 제국들은 모두 신라의 박혁거세 세력과 닿아있는 이름들이다. 변한 지역에 존재했던 귀틀집은 우리 민족 특유의 집이 아니라 그 기원이 바이칼 호수 서부와 알타이 지방 및 에니세이 강 유역이다. 

따라서 기원전 북방계 주민이 한반도 변한 지역에 들어왔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그럼 kara라는 이 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말은 사실 ‘검다’는 뜻의 이란어 kara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말은 검다는 뜻의 일본어 ‘흑’(黑, kuro)와도 연결된다. 이란어는 또 있다. 서울 ‘한강물’을 순수 우리말로 ‘아리수’라고 하는 데 아리(Ali, ara)는 이란어로 강(江)을 말한다. 영국 필립사는 <The University Atlas>(1974)에서 세계의 ‘가라’계 지명을 추적한 결과 무려 200여개를 찾아냈다. 그 중 60%는 터키와 카라카스와 이란 북부에 집중 되어 있고 이 지명은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우리 민족과 닿아 있는 스키타이 족의 활동 무대와 모스크바 지역 그리고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의 곰 토템을 가진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필자는 과거 우즈벡에서 소수 민족 자치구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곳 이름도 카라칼팍(kara-kalpak)이었다. 이 끈질기고 강렬한 이름은 우리나라와 일본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한강변과 낙동강 변의 고대 부족국가 주변에 ‘가라’의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가라’라는 지명은 놀랍게도 그 넓은 중국 대륙과 동남아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지명이다. 우리 땅에서 출토되는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출자형 금관(出字型 金冠), 황금제 장식(裝飾), 환두대도(環頭大刀), 동물양식 대구(帶鉤) 등도 모두 중국 대륙과는 무관한 북방 스키타이 관련 유물들이다. 전형적 적석목곽분인 경주 천마총의 천마를 보면 어깨 위 날개와 몸 전체에 반달형 무늬가 있다. 반달형 무늬는 전형적인 스키타이 기법이었다. 일본에서는 한(韓)도 ‘kara’로 읽힌다. 고대 일본인들이 볼 때 자신들의 고향 한국(韓國)은 얼마나 '가라'라는 지명이 많은지 ‘가라’(韓)의 ‘구니’(國)였다. 심지어 일본의 대마도(對馬島)도 ‘쓰시마’가 아니라 고대에는 ‘kara sima'로 읽혔다는 주장이 있다. ‘가라’라는 지명은 분명 우리 민족의 기원을 추적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들 모든 자료를 따라 우리 민족의 주류를 역추적 해보면 남방이나 중국 대륙이나 산동 반도(물론 이들 경로를 통해서도 반도로 들어옴)가 아닌 한반도->만주(고조선, 부여, 고구려)->내몽골->시베리아->흑해 연안(스키타이, 두발, 메섹 족)->카프카스(코카서스) 산맥->(터키, 아르메니아의) 아라랏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고고학 전문가가 아니다. 목사요 창조신학자요 조직신학자일 뿐이다. 앞으로 이 방면의 탁월한 크리스천 전문 학자가 배출되어 이에 대해 더 깊은 연구 결과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러시아 민속 박물관

성경에서 메섹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민족(시 120:5)으로 묘사된다. 성경 속 메섹은 이스라엘에 적대적 민족이었다. 세속 역사 속에서도 구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유난히 유대인들을 박해하였다. 유대인 박해에 있어 스탈린은 히틀러보다도 냉혹한 인물이었다. 스탈린은 너무나 많은 피를 손에 묻혔다. 그러니 유대인들의 희생은 얼마나 컸을까? 

유대인이었던 레닌은 살아생전 스탈린의 그런 부족한 품성을 알아차리고 그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였었다. 레닌이 죽은 지 4개월 후 공개된 유언장에서 레닌은 ‘스탈린이 너무 거친 인물’임을 분명히 하면서 “사적으로는 참을 수 있지만, 서기장(소련 최고 지도자) 자리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스탈린을 물러나게 하고 그보다 참을성 있고 성실하며 예의 바르고 다른 사람들 말에도 귀를 잘 기울이고 스탈린처럼 변덕스럽지 않은 사람을 서기장으로 선발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유대인이었던 레닌의 이런 충고가 스탈린의 기분을 더욱 상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고르바초프에 의해 러시아가 개혁, 개방된 후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스탈린이 처형한 러시아인은 무려 1천 만 명이 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 숫자가 2천만 명이 넘는다는 주장을 폈다. 정말 그렇게 많은 러시아인들이 처형당했을까? 

그럼 유대인들은 얼마나 많이 희생당했을까? 당시 레닌을 비롯한 러시아의 많은 초기 핵심공산당원들이 유대인이었던 점을 감안하고 레닌에 대한 스탈린의 섭섭한 감정을 감안한다면 희생당한 사람들의 많은 인원이 분명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1960년 샘플로 뽑아본 이스라엘 내 유대인들의 출생지는 러시아가 52%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1965년 미국 내 유대인들의 출신지는 41%가 러시아였다. 이들은 왜 집중적으로 러시아를 떠났던 것일까? 1941-1945년 사이 구 소련 연방에 살던 유대인들의 숫자는 약 280만 명에서 120만 명으로 4년 사이에 무려 160만 명이 줄어들어있었다. 구 소련의 연방이었던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의 유대인들도 25만 명에서 22만 명으로 줄어있었다. 

모든 진실이 차단된 공산철권통치시대의 일이라 우리는 그 정확한 진상과 희생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대숙청과 전쟁으로 인해 전체 소련 인민의 1/10이 희생되었으니 그 가운데서 유대인들이 당한 고난의 강도가 얼마나 컷을 것인지 짐작이 간다. 

러시아 민속 박물관©조은선

동서를 포함하는 광활한 지역에 걸쳐있으면서 춥고 거친 그 땅에 뿌리박고 견뎌온 메섹 족은 계속 거친 민족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러시아의 역사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시베리아 벌판의 매서운 날씨처럼 쓰라린 역사가 많았다. 

스탈린은 러시아 지도자가 된 후 한 연설에서 ‘옛 러시아의 특징은 그들의 후진성으로 인해 받은 끊임없는 패배’였다고 했다. “러시아는 몽골의 칸에게 패했고, 터키의 지방장관에게 패하고. 스웨덴의 봉건영주에게 패했으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영주들에게 패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가에게 패하고, 일본의 남작에게 패했다. 러시아가 뒤쳐진 탓에 모두에게 패했다. 군사적으로 뒤떨어지고, 문화적으로 뒤쳐지고, 국가가 뒤떨어지고, 산업이 낙후되고, 농업이 뒤쳐져서 패했다.”고 했다. 

스탈린 이전 러시아의 한 시인은 자신의 조국 러시아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너는 비참하다. 너는 풍요롭다. 너는 강력하다. 너는 무력하다. 나의 조국 러시아여." 

러시아 민속 박물관

러시아는 그저 역사 속에서 늘 느리고 둔한 시베리아의 곰 같은 이미지로만 남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메섹 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이스라엘만 하나님 것이 아니다.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요, 세계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체도 다 하나님의 것이다(시 24:1). 

이 말씀에 순종하여 개혁과 개방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구(舊) 소련 땅으로 들어갔다. 우리 선교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온전한 변화는 아직 멀었지만 수많은 선교사들의 기도와 수고로 그곳에 사는 고려인 동포들이 변화되었고 러시아 땅의 여러 소수 민족들과 러시아도 변화하고 있다. 

러시아 민속 박물관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해 세계의 질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푸틴이 러시아의 전부는 아니다. 메섹의 땅 러시아의 광활한 모습을 보라! 레닌과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큰 흐름을 푸틴 한 사람이 맞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결코 모든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민족이다. 러시아는 면적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분명 강국이다. 야벳을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메섹 족을 통해서도 어김없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신앙의 물결까지 막을 수는 없다. 전쟁의 상처는 역설적으로 신앙의 불쏘시게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메섹 족도 차별없이 사랑하신다. 메섹이 영적으로도 세상을 주도하는 민족이 되기를 기원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