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홍등(紅燈)
홍등과 함께 자란 내 유년
새벽 예성
골목길을 찾아오면
늙은 주모(酒母)는 여전히
달빛처럼 잠이 없습니다
酒母는 죽은 귀신
마주보는 선수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떠난 막달라 마리아
그리며 있습니다
손대 내리듯
달빛 담은
새벽 헛간
빈터에 물러선
누추한 그림자 따라
새벽 구렁이는
담배 연기 자락만 피워 올립니다
새벽에 왔습니다
늙은 주모는 내게도 휘파람 불고
아름다운 우리 뒷골목 외로운 헛간 능구렁이도
익숙하게 휘파람 따라 붑니다
어둔 골목길이 생각 날 때
멀리 꼬리를 그리며 달려간
淪落의 매끄러운 자락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시간의 바람만 소리 없이 슬쩍 휘돌아갑니다
이 낯선 초록별에만 있는
홍등가(紅燈街)의 문이 닫혀도
늦은 가을바람은 반갑게 불기에 가끔씩
늙은 주모가 그립습니다
세상 모두에게 눈을 빛내던
외로운 능구렁이처럼 몸을 일렁이던 늙은 주모
이스라엘 최고 신랑 보아스의 모친 라합을 닮은 여인
사랑하면 외로움으로 헛간을 뒤지지 말아야 합니다
헛간 냄새 맡으며 오늘도
그 늙은 주모는
목로(木爐)에 앉아 휘파람 불고
가을바람이 불면 주당(周堂) 귀신들은
수줍게 떠나갑니다
모두가 서둘러 슬그머니 달아난 그 자리
이제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만 세상을 향해
세상 수줍어 서 있습니다
새벽에 보니 역시
그리운 꿈이었습니다
다시 꿈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면
예성 내 고향 뒷골목
사랑 한 줌 부끄럽게 퍼주고 오겠습니다
※고향 예성
우리 집 작은 뒷문을 열면
바로 윤락가와 통하는 골목이었습니다.
친구들 일부도 당연히
그곳 출신들이었지요.
국밥 장사하시며
늘 아들을 걱정하시던
친구 어머님이
늘 그립습니다.
조덕영 詩集
<사랑, 그 지독한 통속(通俗)> 중에서
조덕영
전 한국문학연구회 충북지부 사무국장,
전 국내최장수 월간지, 월간<새벗> 편집자문위원,
1978년 <충청문예>에 시(독경 소리는 젖어서)를 내며
고향에서 시인 고 고찬재(전 민예총 충주지부장), 정재현(전 민예총 충주지부장), 한우진(시인), 홍종관(대구교대 교육심리학 교수, 목사), 서효원(무도인) 등과 교류하며 동인 활동.
한국기독교 최고 권위의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어린이도서부문 최우수상을
최초, 2년 연속 수상하다.
지금은
신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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