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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신, 빅뱅, 우주(지구)창조, 우주 나이 논쟁(창조와 진화 3-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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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에 대한 해석(신, 빅뱅, 연대 논쟁)

교재: 강건일 박사(창조론과 진화론 이해)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

 

Ⅰ. 창조에 대한 해석

1. 어거스틴(354-430)과 그 이후

1)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401-415): 창조의 날들은 동시 창조를 이야기 형식으로

2) <신의 도성/신국론>(413-326): 지구 나이 문자적 해석 경향, 그러나 “욤”을 서로 다른 “날”로 해석(토마스 아퀴나스), 1-3일-> 오랜 연대, 4-6->짧은 연대

3) 어거스틴의 시라크의 잘못된 라틴어 번역 의존 비판(종교개혁의 루터와 칼빈)

 

2. 찰스 핫지(1797-1878, 구 프린스턴신학)와 그 이후

1) 처음에는 간격설 지지, 이후 날-시대론

2) ‘씨앗의 나무 성장 논리’-> 6일 창조 은유적 해석, 창조의 6일을 오랜 연대로 해석

3) 아더 피어선(평택대 전신 피어선신학교 설립자): ‘욤’을 24시간으로 볼 수 없다.

4) 스콥스 재판의 반진화론 변호사 브라이언: 날-시대 이론 지지ㅏ

 

3. 로마 가톨릭

1) '날'을 24 시간으로 보지 않음

2) 벧후 3:8(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3) 빛 창조(첫째 날)와 이후 두 큰 광명 해와 달 창조(넷째 날)의 딜레마 

4) “열매를 따먹는 날 정녕 죽을 것”(창 2:17)에서 “이렇게 아담은 930세까지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남"(창 5:5)의 딜레마 

 

Ⅱ. 빅뱅 가설

 

“빅뱅”은 정말 창세기 1장을 부정하는가?( 창세기 1장,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 빅뱅과 성경 계시 비교는 다른 차원이다.

 

‘빅뱅’론은 성경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 계시는 초월(超越) 계시요 과학 영역은 초월에 대응하는 내재(內在)의 영역이다. 초월과 내재는 직접적 비교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신 계시로 믿는다. 반면 과학은 그 피조 세계의 질서를 탐구하는 즉 내재를 다루는 도구의 학문(causa instrument)일 뿐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목격한 것처럼 과학은 오류를 토대로 발전한다. 즉 과학은 오류를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Carl Sagan). 언제나 특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으나 그것은 잠정적이다. 가설이 세워지지만 그 가설도 언제나 반박될 수 있다. 이렇게 과학은 수정과 반박이 가능한 학문이다(Karl Popper). 반면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과학의 질서를 만드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참 된 과학은 당연히 성경적 질서와 조화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무리한 성경 적용이 사이비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내재의 도구를 다루는 과학(causa instrument)을 내재의 원인이신 창조주 하나님(causa prima)의 초월 계시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미숙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비 학문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2. 정상상태 우주론과 팽창 우주론

 

우주의 기원에 대한 생각은 ‘우주형태론’(cosmograpy)과 ‘우주생성론’(cosmogony)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인간이 사는 세계의 이미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절대자의 창조-섭리로 보려는 관점과 자연-우연 발생의 관점에서 보려는 두 입장이다. 이 두 설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대단히 다양한 양상을 가진다. 왜냐하면 기원론은 필연적으로 지구와 생명과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화와 종교와 민속과 문화와 사회적 해석 시기를 거쳐 기원론은 고대 헬라 철학자 중심으로 시작된 천동설(geocentric theory)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을 지나며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한때 우주기원론은 H. 본디, 프레드 호일(1915-2001)이나 위클라마 싱 그리고 한때 아인슈타인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상상태우주론이 지지를 받는 듯했다. 

 

3. 우주 팽창론(빅뱅론)으로 기울어진 과학

 

정상상태우주론은 오래가지를 못했다. 1929년 허블(1889-1953)이 도플러 효과에 의한 적색 편이(red shift)을 관측함으로써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하고, 1948년 조지 가모프(1904-1968)가 빅뱅(대폭발)에 의한 우주기원론을 제창한 후, 동년 프레드 호일은 정상 상태 이론을 내었으나, 1965년 미국 벨(Bell)연구소 연구원들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1970년)하면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은 최근에는 과학적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물론 빅뱅 우주론도 이론이기에 여전히 딜레마들이 남아 있다. 빛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인 우주의 지평 밖에 위치하는 사건들에는 어떻게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느냐 하는 ‘우주의 지평 문제’ 문제나 어떻게 인류가 우주에 서식할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편평도의 문제, 원시 입자의 존재 등에 대한 의문은 빅뱅우주론의 완벽성에도 틈새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계속 던져왔다. 

 

그런 가운데 최근 우주 최초시기에 근접한 분자가 발견되었다는 <네이처>지의 논문 기사가 나왔다.

 

천문학계에서는 수소화헬륨(HeH+)을 우주 진화(생물 진화와 혼동하지 말 것)의 시발점으로 여긴다. 우주가 식고 수소화헬륨과 수소 원자가 결합하면서 비로소 별과 은하의 주원료인 수소 분자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논문 대표 저자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롤프 귀스텐(Rolf Güsten) 박사는 “수소화헬륨의 존재는 수십 년간 천문학의 딜레마였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초기 우주의 화학반응에 대한 의심이 해소됐다.”고 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빅뱅은 성경적인가를 생각해보자. 최소한 정상상태우주론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주장이 과학적으로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데 힘이 실리는 관측이 한 가지 더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전부다. 빅뱅이 성경의 오류성이나 무오류성을 확증하는 주장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4. 과학의 본질과 성경 계시의 진리는 직접적 비교 대상이 아니다

 

혹시라도 우주의 물질이 한때 한 점에 뭉쳐 있었다고 하더라도 왜 그곳에 물질이 한 점으로 있었는지? 그 이전에는 어떤 상태였으며 그 태초 물질은 어디서 왔고 무엇이 폭발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덧붙여서 물질을 담은 공간은 어디서 왔고 시간은 어떻게 우주에 들어온 것인지,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이 섭리 하셨는지 이런 문제들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학적 판단은 언제든지 변하고 수정될 수 있다. 대 과학자 뉴턴(만유인력, 기계론)도 아인슈타인(통일장, 정상상태론 등)도 스티븐 호킹(타임 머신 주장 등)도 그들의 이론이나 주장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으며 착각이었다고 고백하거나 수정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오히려 그렇게 수정되는 것이 건전한 과학이고 과학의 당연한 본질이다. 

 

반면 성경은 여전히 세상과 생명의 기원과 인류의 구원에 대한 진리를 계시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책으로 굳건하다. 그리고 최근의 수소화헬륨의 관측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한 가지 증거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전부다.

 

 

5. 빅뱅은 창세기 1장과 조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빅뱅은 창세기 1장과 조화될 수 있는가 살펴보자. 

 

 

“빅뱅우주론”은 21세기 가장 유력한 과학자들의 신뢰를 받는 우주기원론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또 어떤 탁월한 과학자가 나타나 이 이론을 미세 조정할지 아니면 뒤집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떠할까? 필자가 보기에 성경은 ‘빅뱅’을 긍정도 부정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즉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은 빅뱅의 방법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으로 하셨는지, 아니면 그 유사한 방법으로 하셨는지 말씀하시지 않는다. 

 

이것은 인류가 찾아서 탐구할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적 발견은 어떤 또 다른 결론을 유도해낼지 아무도 모르며 언제든 유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사실을 선포할 뿐 과학적 증거인 ‘빅뱅’을 말하는 책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빅뱅은 무조건 반성경적이라는 억지 주장은 제발 이제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늘 유동적인) 최근의 가장 유력한 과학적 이론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래서 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3명도 어김없이 모두 우주팽창론자들이었음에도 전혀 분노하거나 실망할 거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분노하는 일부가 있기는 하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이 아닌 ‘빅뱅’을 수용하면 무조건 불신자라고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성서근본주의자들이나 ‘창조과학자’들만 실망하고 분노할 뿐이다. 성경은 어떤 과학적 주장이나 발견 앞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진리 안에서 자유케 함을 잊지 말자.

 

 

6. 창조 연대에 대한 자유함

 

따라서 창조과학이 창세기 1-11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창조의 시기를 주전 4000여 년 전으로 보는 것이나 과학이 지구의 나이에 대해 대략 2500만년으로 시작(1850년)하여 2000만년(1862년, 크리스천과학자 Kelvin), 4000만년(1897년, Kelvin), 10억년(1921년, Rayleigh), 45억년(A. Holmes), 최근(2018년) 대략 46억년으로 확장되어 오며 심각한 충돌을 야기하는 딜레마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자유함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해석의 핵심적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자유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7. 과학으로(빅뱅이든 창조과학이든) 창세기 1장을 재단하지 말라

 

이제 창세기 1장과 빅뱅의 입장을 결론 내어 보자. 즉 빅뱅은 인류가 현재까지 찾아낸 우주 기원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기원론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이론은 물질과 공간과 시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뚜렷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가 없으며 물질은 왜 그곳에 모여 있었으며 빅뱅이 일어난 원인과 동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성경은 빅뱅과 달리 그저 물질과 공간과 시간의 창조에 있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신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선포한다. 

 

빅뱅으로 창세기 1장을 설명하려는 것은 초월의 성경 계시를 내재 학문인 과학 아래로 격하 시키는 것이며 빅뱅을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무조건 반박하는 것도 옳지 않다. 

 

과학적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성경의 내용과 해석을 수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전혀 계시가 아닐 것이다. 또한 수천 년 동안 교회 전통을 따라 이루어진 성경에 대한 해석 방식을 20세기 시작된 창조과학이라는 운동으로 수정하고 재해석하는 방식도 전혀 옳지 않다. 

 

이 방식도 성경 계시의 초월성을 무시해 버리는 아주 나쁜 해석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과학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인류는 성경을 아주 어리석게 해석해 왔다는 이상한 결론에 빠져버리게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과학은 과학 시대의 선지나자 제사장의 자리로 올라가 버리게 되는 큰 참사를 만들어버리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주신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내려주신 참 된 창세기 해석법을 찾아야 한다. 즉 바른 해석의 문제다. 따라서 빅뱅을 긍정하건 빅뱅에 큰 반감을 가지건 그 같은 태도는 창세기 1장 해석에 그리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없다. 

 

 

Ⅲ. 창조 연대 논쟁의 출발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있어 연대 논쟁은 주로 젊은 창조 연대를 지지하는 그룹에서 나왔다. 따라서 창조 연대 논쟁하면 주로 기존 우주 연대에 대한 젊은 연대 쪽에서의 도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창조 연대 논쟁은 주로 과학의 문제로 치부되어 온 면이 있다. 하지만 논쟁 자체의 출발점이 성경이고 일부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주류 과학계에 도전하는 형태를 띠었으므로 다분히 신앙적이고 신학적이다. 따라서 이 논쟁을 위해서는 창세기 1-11장에 걸친 성경 전반부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주요 주석들에 대한 검토와 과학적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폭 넓게 정통해야 한다. 특별히 창세기 1:1-2:3에 나타난 하나님 계시를 통한 하나님의 일하시는 섭리에 대한 신앙적, 신학적 검토가 필수적이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창세기 전반부는 "신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것은 그 동안 국내에서 창조나 창조연대 논쟁이 신학자들과의 별 소통이 없이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무슨 문제는 없었을까?

 

지금까지의 창조 연대 논쟁이 성경적, 신학적으로 볼 때 분명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신학적 근거가 빈약한 논쟁은 결론에 이르기가 어려울 뿐더러 감정적 싸움으로까지 확장되기 때문에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원 연구는 계속 되어야 하지만 복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로 적전(敵前) 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 논고는 창조 연대 논쟁이 벌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

 

1. 창조 연대 논쟁의 간략사(簡略史)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창조론자이다. 물론 창조를 믿는 다른 종교들도 많다. 따라서 창조론 운동은 다양한 종교인들이 뛰어들 여지가 있다. 하지만 창조 연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이슈화 시킨 것은 주로 기독교 진영이었다. 교부시대로부터 종교개혁 시대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창조 연대 논쟁이 근래 들어와 크게 불거진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이에 동조하는 기성 과학자들은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필연적으로 우주와 생명의 유지기간을 연장시켜 왔다. 다윈의 진화론 탄생을 전후하여 연대 논쟁과 관련하여 기독교 진영에는 중요한 두 가지 역사적 기록이 있다. 하나는 17세기 아일랜드 출신의 대주교 제임스 엇셔(James Ussher, 1581-1656)가 세계 창조가 기원전 4004년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의 독창적 계산은 아니었지만 오늘날 그는 이 주장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있다. 두 번째는 간격 이론(Gap Theory)을 수용한 보수 기독교인들 사이에 권위 있는 <스코필드 참조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 1909)이 나온 것이었다. 이것은 진화론의 패러다임을 수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이처럼 창조 연대 문제와 관련하여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자 신학이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방관만 할 수는 없었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는 조심스럽게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한 후 다윈주의는 무신론의 배경이 있음을 밝혔다. 핫지의 신학적 견해는 북미 몬트리올의 존 윌리엄 도슨(John William Dawson, 1820-1899)과 프린스턴의 아놀드 귀욧(Arnold Guyot, 1806-1884) 등에게 이어졌다. 1922초에는 장로교 평신도로서 미 대통령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세 번 낙선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에 의해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려는 운동이 켄터키에서 일어났다. 브라이언은 진화론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적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다윈주의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그는 신앙인으로 이 문제의 중심으로 뛰어들었으며 미국 반진화론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상징적 인물만 되었을 뿐 1925년, 스콥스 재판(Scope's Trial)이 끝난 후 닷새 만의 사망으로 인해 반진화론 운동의 전면에서 바로 퇴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미국에서 시작된 반진화론운동에 주로 적극적으로 동조한 교파는 일부 루터교(미주리 종교회의 루터파), 침례교, 세대주의자들이었고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 성공회 등은 비교적 방관자적 입장이었다. 당시 반진화론 진영의 대표적 인물로는 미네아폴리스 제 1 침례교 목사이자 1919년 '세계 기독교 근본주의 연합'(the World's Christiam Fundermentals Association)을 설립한 윌리엄 라일리(William Bell Riley, 1861-1947)와 장로교 목사요 연구과학기관(Research Science Bureau)을 설립한 해리 림머(Harry Rimmer, 1890-1952)가 있다. 문제는 반 진화론 진영이 연대 문제에 있어 통일을 이루지 못한 점이었다. 귀욧과 도슨과 브라이언과 라일리는 창조의 날들을 시대(ages)로 보는 반면 해리 림머는 간격 이론을 선호하였다. 심지어 찰스 핫지의 뒤를 이은 강력한 성경무오론자요 프린스턴의 개혁신학자였던 벤자민 워필드(B. B. Warfield, 1851-1921)는 오히려 핫지와 반대로 진화론을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2. 안식교 신자 프라이스의 역할

 

이 같은 창조론 진영의 연대 논쟁에 쐐기를 박는 인물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선두 주자는 캐나다 동부의 작은 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제 7일 안식교 신자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 1870-1963)였다. 그는 정통 지질학을 배우진 않았으나 독학으로 격변론적인 대홍수 지질학을 구축하였다. 물론 그의 견해는 노아 홍수가 진화론자들의 근거가 되는 화석 기록을 설명한다는 안식교 선지자 엘렌 지 화잇(Ellen G. White)의 영감을 충실히 따르기 위한 결단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프라이스는 지질학을 연구하면서 1923년에 절정에 달했던 창조론의 몇몇 결과물을 <새로운 지질학>(The New Geology)이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창세기의 첫 부분에 대한 "단순한" 혹은 "문자적" 해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6,000-8,000년 전에 창조하셨고 지구의 지질학적 과거를 형성하기 위해 대홍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라이스는 이전에 훈련이나 현장 경험이 전혀 없었던 독학 지질학자였다. 그는 신앙적 열정에 기초하여 태고의 지구의 모습을 알려 주는 지질학적 단층과 여러 증거들에 대한 기존의 이론을 공격했다. 물론 전문 지질학자들은 프라이스의 생각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프라이스의 생각은 안식교 모임 밖에서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그는 20세기에 등장한 <창조과학> 운동의 원조임은 분명했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루터 교회의 미주리 회의였다. 미주리 회의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다른 종교적인 질문들은 제 7일 예수 안식교의 그것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지만, 현대 세계를 열정적으로 비판했던 몇몇 사람들은 프라이스의 성서적 문자주의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때 쯤 드디어 젊은 연대 논쟁의 상징적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남 침례교 배경의 수력공학자였던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였다.

 

3. 헨리 모리스, <창조과학> 운동의 원조

 

프라이스를 제외한다면 헨리 모리스는 <창조과학> 운동의 원조라고 불릴만한 인물이다. 그는 신앙으로서의 안식교에는 동조하지 않았으나 프라이스의 책에 감명을 받고 창조론 운동에 뛰어 들었고 창조론 운동이 젊은 창조 연대로 방향을 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처음에 그는 보수적 복음주의 과학자들이 1941년에 설립한 미국과학자연맹(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ASA)에 참여하였다. 모리스는 ASA가 성경의 권위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고수하며 자연 세계 위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옹호했지만, 이곳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오랜 연대(날-시대 이론 혹은 단절 이론)를 따른 다는 것을 알고, ASA와 결별하였다.

 

4. 조직신학자 버나드 램의 입장

 

그런데 1950년대 들어 새로운 인물이 한 사람 등장한다. 복음주의 침례교 신학자인 버나드 램(Bernard Ramm)은 1954년, <과학과 성경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The 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이 책은 자연의 증거와 성경의 이해를 화해시킬 수 있는 좀 더 유연한 접근 방법을 제안했기 때문에 ASA 구성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램은 근본주의자들이 적절한 문화적 상황 안에서 성경을 읽지 못하고 17세기 베이컨 시대의 본문인 것처럼 성경을 읽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나친 교조주의의 가장 심각한 오류는 조화에 방법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의 언어와 그 언어에 수반된 문화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주어졌다는 명제가 진실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램의 해석은 분명 프라이스나 림머와 다른 것이었다. 버나드 램은 성경해석학 책을 쓸만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칼빈이 해석에 사용했던 성경 해석과 신학 방법론으로서의 "적응"(눈높이)의 방법을 잘 아는 조직신학자였다.

 

 

램의 책이 나온 바로 직후 헨리 모리스는 은혜 형제 교단인 그레이스 신학교의 구약신학자인 존 휘트콤(John C. Whitcomb, Jr.)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1961년, <창세기의 대홍수>(Genesis Flood)라는 책을 공저로 발간하였다. 이 책은 프라이스 저작을 개작한 것이기는 하지만, 휘트콤의 신학적 기여와 모리스의 과학적 전문 지식을 통해 프라이스의 논점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한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한 미국 보수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엄청난 주문이 쏟아졌고, 젊은 연대와 격변론적 대홍수 지질학을 바탕으로 한 "창조과학" 운동이 비로소 본격화 되었다. 창조과학은 곧 영국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전까지 영국에서는 보수적인 반 진화론자들도 지구의 형성 연대가 오래지 않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본 적이 없었다. 이후 <창조과학> 자료들은 이슬람교의 교육을 위해 터키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로도 번역되었다. 창조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연구 기관들이 설립되었고, 열정적인 평론가들은 공식적인 공개 토론에서 진화론자들과 논쟁하면서 창조과학을 옹호했다. 대학에서 훈련받은 지질학자들 중에서도 점차 창조론의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중에 법정에서 뒤집어지기는 했지만, 아칸소와 루이지애나 주의 입법자들은 창조과학을 진화론의 대안 이론으로 가르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 후보는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시간을 똑같이 배분해야 한다고 공립학교에 요청했다.

 

이에 상처 입은 기존 과학의 옹호자들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진화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가르쳐서는 안 되는지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마을과 도시에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1960년 이후 창조과학을 중심으로 한 창조론 논쟁은 미국의 공공생활에서 낙태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문제보다 더욱 격렬한 문화적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 운동은 영국 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한국(KACR), 일본 등지로 확장되어 갔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