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훈 박사
<한동대 신문사 이메일 인터뷰>
[오래 전 인터뷰지만 여전히 필요한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창조론과 기독교 세계관을 강의하고 계시는 양승훈 박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박사님께서는 한국창조과학회 설립 초기부터 함께하신 원년 멤버이셨다. 그런데 2008년 한국창조과학회를 탈퇴하셨다. 왜 떠나셨나?
한국창조과학회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제명하겠다고 해서 탈퇴한 것이므로 쫓겨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필자가 2006년에 출간한 <창조와 격변>(예영)이라는 책이 있다. 이는 필자가 물리학에서 창조론(당시에는 창조과학)으로 주 전공을 바꾼 1997년 이후 10여년 가까이 연구한 결과를 담은 책이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창조과학의 2대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젊은우주/지구론(젊은지구론)과 단일격변설(노아홍수설)은 과학적으로 전혀 방어할 수 없는 주장이며, 도리어 오랜우주론과 다중격변설이 과학적으로는 물론 성경적으로도 더 그럴듯한 이론임을 제시했다.
- 한국창조과학회는 어떻게, 왜 창립되게 됐나?
한국창조과학회는 1980년 ’80세계복음화대성회 때 부속집회의 하나로 CCC 정동채플에서 미국 창조과학자들을 초빙하여 창조과학 시리즈 세미나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1981년 1월 31일에 창립되었다. 당시 창조과학 운동은 해외에서 공부를 한 엘리트 기독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성경이 과학적으로도 정확하다는 것을 변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지적 콤플렉스를 해결해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나 일반 성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한동대
- 한국창조과학회는 역사적으로 한동대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박사님께서는 그 관련성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나?
한국창조과학회는 1980년 당시 KAIST 재료공학과 교수였던 김영길 박사님이 창립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그리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십 수년 간 창조과학회를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90년대 중반에 개교한 한동대와 연결되었다. 또한 창조과학회의 몇몇 초기 멤버들이 한동대 교수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한동대가 창조과학과 깊은 연관을 맺었다.
- 과거 ‘열혈 젊은지구론자’이셨다. 왜 입장이 바뀌셨나?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째, 1997년부터 원래의 전공이었던 물리학을 떠나 창조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었다. 그 때까지 필자는 주로 국내외 창조과학자들이 제공하는 문헌들만 접했는데 물리학을 떠나서(동시에 한국도 떠나서) 창조론(실제로는 창조과학)을 연구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창조론을 연구하면서 비로소 필자는 해당 분야를 전공하는 복음주의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을 폭넓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필자가 터무니없는 동굴 속에 갇혀 지냈음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 많은 야외 및 박물관 탐사여행을 하면서 그 동안 창조과학자들의 문헌들을 통해서만 공부했던 바가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캐나다 서부 록키산맥이나 앨버타 공룡박물관, 워싱턴주 컬럼비아 계곡으로부터 시작해서 옐로우스톤, 요세미티, 그랜드 캐니언, 베링거 운석공 등에 이르는 미국 서북부, 서부, 서남부는 격변 지질학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탐사지역이다. 기본적인 지질학 훈련에 더하여 이들 지역을 단 하루만 돌아다녀 봐도 젊은지구론이나 단일격변설이 틀렸음을 쉽게 알 수 있다.
- 과거에는 왜 ‘젊은지구론’을 주장하셨나?
앞에서 언급했지만 국내외 창조과학자들이 쓴 문헌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창조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까지는 반도체 물리학 실험을 전공했다. 그 때까지는 물리학 연구로 인해 분주했기 때문에 창조과학자들이 쓴 아마추어 문헌 외에는 접할 수 있는 기회나 시간이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젊은지구론, 단일격변설 문헌밖에 읽지 못했고, 따라서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 그럼 현재는 지구연대에 관해 어떤 입장이신가?
해당 분야 전문학자들이 제시하는 연대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나이는 45.7억±2500만년, 우주의 나이는 138억±1억년 정도로 본다. 지구나 우주의 나이는 생물 진화론처럼 “고준위 해석”(high level interpretation)이 아니라 “저준위 해석”(low level interpretation)에 해당한다. “저준위 해석”이란 데이터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젊은지구론은 비전공자들이 전문학자들의 데이터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지구 연대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무엇인가?
신, 불신을 막론하고 전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지구 연대를 둘러싼 논쟁은 없다. 아니 오래 전에 이미 끝났다. 논쟁이 있다면 지구나 우주 연대의 끝자리 숫자 혹은 오차의 한계가 얼마인가를 두고 논쟁할 뿐이다. 한 예로 한동안 우주의 연대는 137억년이라고 알려졌지만 근래 여러 연구들을 종합한 결과 138억년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정도이다. 지구 연대를 둘러싼 논쟁은 기독교 내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지구론자들이 주장하는 논쟁의 핵심은 방사능 연대의 불확실성인데 이들이 제시하는 문제점들은 해당 학문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있다.
- 오랜 지구를 옹호하는 건, 진화론과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오랜 지구를 옹호하는 게 정말 진화론과 다를 바가 없나?
오랜지구론을 진화론과 동일시하는 것은 젊은지구론자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일종의 마녀사냥 전술이다. 유신 진화론자이든, 자연주의 진화론자이든 진화론자들은 모두 오랜 연대를 지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랜 연대를 지지한다고 모두 진화론자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복음주의 과학자들이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 “진행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 혹은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 주장자들은 대부분 진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오랜 지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 종종 성경과 과학을 대립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다. 성경과 과학을 어떤 관계로써 이해해야 하나?
흔히 전투적 과학관이라고 불리는 이 입장에서는 성경과 과학을 적대적 관계로 본다. 대표적으로 성경 문자주의자들이 견지하는 입장이다. 필자는 과학이란 미명으로 슬며시 끼어들어오는 세속 이데올로기들은 반기독교적이지만 바른 과학은 바른 성경해석과 대립되지 않는다고 본다. 갈릴레오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이라는 책과 성경이라는 책을 주셨다고 믿는다. 이 두 책의 저자가 한 분이기 때문이 바른 성경해석, 바른 과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주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교수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교수가 한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성경의 관점에서 우리의 학문을 연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확실하게 발전하는 학문의 관점에서 우리의 성경 이해를 수정하는데 대해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 복음주의권에서는 오랜지구론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복음주의권에서는, 특히 복음주의 학자들 공동체에서는 오래된 지구 연대가 대세라고 할 수 있다. 지구나 우주 연대와 유관한 분야에서 연구하는 복음주의 학자들은 100% 오랜지구론을 지지한다고 보면 된다. 젊은지구론자라는 말은 비전공자 혹은 딜레땅뜨(dilettante)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창조과학회 내부에는 수많은 석 박사가 있다. 그들도 과학을 전공하신 분들인데 젊은 지구를 대담하게 주장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
간단하게 말하면 그 분들은 자기 전공에서는 훌륭한 학자들이지만 창조론 관련분야의 전공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토목공학자나 생화학자는 젊은지구론을 소심하게 주장하든 대담하게 주장하든 자신의 학문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전공이 지구나 우주 연대와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라면 젊은지구론을 주장할 수가 없다.
- 한동대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그간 진화론에 매몰된 학생들을 위해 창조과학을 가르친다”라고 말했다. 창조과학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진화론, 특히 무신론적 진화론을 배격하기 위해 창조과학을 가르친다는 말은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창조과학의 2대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젊은지구론과 단일격변설은 무신론적 진화론 못잖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필자는 한동대는 창조과학 교육이 아니라 창조신앙 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다.
- 어떤 교수는 “과학적으로 젊은 지구는 아닌 것 같지만, 오랜 지구에 대한 확신도 없다”라고 말했다. 박사님도 불가지론으로 상당 시간 힘들었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오랜 지구를 지지하게 되셨나? 과정을 듣고 싶다.
그 고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필자 역시 1997년부터 2003년 사이에는(넓게는 1987년부터 2003년까지) 젊은지구론과 오랜지구론 사이에 끼여 밤잠을 설치는 지적 고문을 당했다. 젊은지구론에 대한 필자의 미련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젊은지구론을 버리게 된 것은 2003년이었지만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에 대해서는 2008년, 미주 지역 어느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비교적 자세히 밝혔다. 관심 있는 분들은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974 에 있는 “대중적 캠페인에 목매지 말고, 연구에 집중해라”를 참고하기 바란다. 좀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분들은 필자의 저서 <프라이드를 탄 돈키호테>(2009, SFC)를 참고하기 바란다.
필자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는 복음주의 계열에 속한 학자들 중 창조 연대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책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언뜻 생각나는 책으로는 Davis Young의 <Christianity and the Age of the Earth>, Hugh Ross의 <Creation and Time>, <A Matter of Days>를 권한다. 아마 이들 중 일부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좀 주저되기는 하지만 필자가 쓴 <창조와 격변>(12-14장), 금년 여름 출간을 위해 마지막 탈고를 하고 있는 [지금은 출간되었음] 가칭 <창조연대논쟁>(SFC), <우주의 창조>(SFC)도 바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창조연대논쟁>은 부정할 수 없는 오랜 지구의 증거들에 더하여 젊은 지구를 보여준다는 증거들이 어떻게 잘못 인용되고, 잘못 계산되고, 잘못 해석되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논문으로 발표되었지만 “젊은지구론에 대한 비판적 소고,” <창조론오픈포럼> 9권(1호) (2015.2.) 99-115면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한국창조과학회의 모태인 미국창조과학연구소(ICR)의 현재 위상은 어떠한가?
미국 남부 지역의 근본주의, 문자주의를 대표하는 극우 보수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이들은 전문 과학자들이 아니라 대중들을 상대로 사역하기 때문에(주로 대중강연을 통해) 일반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에게는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문 과학자 공동체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고 복음주의 학계에서조차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운 기관으로 인지되고 있다.
- 과학을 전공하는 기독교인 학생들에게 하실 말씀은?
필자는 오늘날 젊은지구론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는 기본적으로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공학도들이나 과학도들이 과학의 권위를 앞세워 신학적 함의가 매우 큰 논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본다. 이 이론은 편향된 신학, 치우친 성경해석, 교회사적 무지가 빚은 일종의 아마추어 담론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과학을 전공하는 기독교인 학생들은 어떤 분야를 전공하더라도 최소한의 건강한 신학적 소양, 특히 복음주의적 신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 노력할 것을(독서나 강좌 등을 통해) 당부하고 싶다.
- 한동대에서 창조과학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하실 말씀은?
창조의 과학적 측면과 무관한 분야를 전공하는(혹은 전공할) 학생들은 젊은지구론을 받아들이든, 오랜지구론을 받아들이든 전공 연구에 별 지장을 받지 않는다. 인문학도들, 사회과학도들, 심지어 공학도들조차 어떤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자신의 연구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초과학, 특히 우주론, 천문학, 지질학, 지리학(특히 자연지리학), 생물학, 생화학, 인류학, 고고학, 고생물학, 그 중에서도 창조의 과학적 증거와 직접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젊은지구론이나 단일격변설의 함정을 단호하게 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분야 학자로서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끝-- [20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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