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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왜 필요하고 중요한가(신학 서론 강의, 조덕영 교수)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한 증거Evidence of knowing God(J.I. 패커)
1)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위대한 에너지(Those who know great energy for God)가 있다
2)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위대한 생각들(great thoughts of God)이 있다
3)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위대한 담대함(great boldness for God)을 보여준다.
4)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커다란 만족감(great contentment in God)을 가진다.
본 내용은 신학 강의 첫 수업을 위한 신학 기초 자료입니다.
기독교 신학 서론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Ⅰ. 神學은 왜 重要하고 必要한가?(Who needs theology?-S. Grenz)
1. 신학이란 무엇인가
1) theology= "theos"(神)+ "logos"(理性, 知慧, 思考)
2) 文字的으로 神學= 모든 인간이 알고 싶어 하는 하나님에 관한 학문
3) 모든 사람은 신학자다(Everyone is a theologian)
사람은 누구나 전제(前提) 가운데 살아간다(“무신론자는 무신론을 전제한 신학자”).
2. 신학은 왜 중요한가
1) 신학과 신학자들에 대한 편견
"Happy is the Christian who has never met a theologian!"
2) 기독교역사는 이단 사상과 바른 신학과의 싸움(다른 신학과 바른 신학의 싸움)
3) 신학 부재(不在)의 결과
“기준이 사라지고 대혼란에 빠진 한국교회”
“바른 신학(조직신학)의 부재로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목회자와 신자들”
“겉으로는 부흥하였으나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한 근본적 이유는 바른 신학의 부재!”
4) 신학은 위대한 기독 사상가들(사도 바울, 베드로,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루터, 조나단 에드워즈, 칼빈, 칼 바르트 등)과의 성경공부(알리스터 맥그라스)
5) 신학은 하나님과 바르게 이야기하기(신학보다 보람 있고 귀한 학문은 없다!)
3. 신학은 다 같은 신학이 아니다(Not all theologies are equal!)
1) 모든 신학이 다 같은 신학은 아니다.
2) 정맥과 속맥(바둑):
“어떤 길은 사람들 보기에 옳으나 필경은 패망의 길!
3) 그럼 어떤 신학을 해야 하나?
“참된(좋은) 세계관(진, 선, 미, 지속성)과 나쁜 세계관”이 있는 것처럼,
신학도 “좋은 신학과 미숙한 신학, 나쁜 신학” 등이 있다!
3) 신학의 스펙트럼(스탠리 그랜츠)
-> 民俗神學folk theology : 성경(Norma Normans규범시켜 주는 규범, Norma absoluta, Norma causativa, 계시) 밖 신학
-> 平信徒神學lay theology : 기본적 교리(Norma normata, 규범되어진 규범)
-> 牧會神學ministerial // : 신학도들의 학문과 신학(성도 교육 가능 수준)
-> 專門神學professional // : 신학도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의 신학
-> 學術神學academic // : 사유화하고 철학화 된 수준의 신학
4) 바르게 믿어야 하는 이유(하나님을 기쁘시게- 평생 젖만 먹을 것인가)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은 신앙과 지나치게 유아적이고 유치한 신앙을 구별할 것"
"단단한 식물을 먹을 줄 아는 장성한 자가 되어야"(히 5:12-14)
"바르게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4. 신학과 신학자들의 도구
1) 啓示(revelatio)
“두 가지 책(冊)”(一般啓示와 特別啓示인 성경)
(1) 계시는 하나님이 창조, 역사, 인간의 양심과 성경 등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자신의 뜻을 현현(顯現)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감추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보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자기 작정을 바르게 인간에게 전달하고 알리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히브리어 “깔라” 관찰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함(창 35:7)
(3) 헬라어:*아포카룹시스=감추인 것을 드러내 보이다, 베일을 벗다.
*파네로시스=뚜껑을 열다
(4) 누구에게?(시 103:7) 모세와 그 백성들에게
(5) 계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
하나님 자신의 영광, 능력, 속성, 성품, 의지, 뜻, 목적 등
(6)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욥 11:7-8절, 전능자를 어찌 능히 알까?, 롬 11:33-34, 부요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그 측량치 못할 판단, 찾지 못할 길)
(7) 계시는 성부 하나님(Deus Pater)에게서 유래(origo)하나 성자 하나님 곧 하나님의 로고스(Verbum Dei)를 통해서 옵니다.
하지만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처럼 <아들이 곧 계시와 일치한다>고 보면 안 됩니다. 이건 좀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나 계시가 곧 아들이 아니라 칼빈이 말한대로 <성령께서 우리가 계시를 수납할 수 있게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계시를 이해케 하신다>고 보아야 합니다.
(8) 계시 종류
첫째 자연(일반계시):
하나님은 만드신 세상과 역사와 사람의 양심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신다(시 19:1, 롬 1:20). 그러나 일반계시에는 한계가 있다(인류 범죄로 인한 두 가지 결과=롬 1:21-24). 자연 안에서 구속에 이르는 참 된 진리를 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연도 계시이기는 하나 불완전 한 것입니다. 신학이 뒷받침 되지 않는 창조과학이나 지적 설계 같은 과학적 변증이 기독교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둘째 특별계시:
(a) 현현의 방법으로: 불, 연기, 구름 속(출 33:9, 시 99:7,), 그룹 사이(시 80:1), 폭풍우 가운데(욥 33:9, 시 99:7), 세미한 음성,성육신(요 1:1-12,1:14,골 1:19,2:9
(b) 예언으로: 꿈, 환상, 제비뽑기,우림과 둠밈(민 12:5-7), 예언의 정의(암 3:7-8, 벧후 1:20-21)
(c) 이적으로: 예언의 말씀 확증(막 16:20, 행 14:3), 성육신 사건(사 7:14, 마 1:23).
(d) 성경으로 충분
특별계시에는 자연계시에서 불충분한 <구원의 계획>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범죄한 인류를 죄의 세력에서 구출하여 신체와 영혼의 전인격적(지,정,의)인 새로운 피조물로의 재창조하시려는데 있습니다.
*계시와 영감(Inspiration)과 조명(Illumination)의 차이와 관계의 중요성(What과 How와 Why의 관계):
계시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전하시는 행위 자체와 내용을 말하고, 영감은 그 계시를 권위있게 전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사람의 인격을 초자연적으로 주장하시는 사실을 가리킵니다(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여 계시하심). 아무리 계시가 있고 영감의 말씀(성경)이 있어도 조명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고전 2:6-16). 조명은 성경을 읽는 인간의 마음을 <성령>께서 밝히 비추시는 신비로운 사역을 말합니다.
아이에게 미적분 책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하면 영감된 성경 책도 단순히 역사책, 아포리즘을 담은 책, 아름다운 시편 정도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2) 聖經(Scriptura sacra):
성경은 기독교 지식의 유일한 원천(fons unica)이요 규범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신앙과 생활의 유일 규범(fidei et vitae norma unica ad salutem)입니다. 즉 Sola Scriptura.
3) 敎理(dogma):
"symbola", 함께 고백하는 것
성경은 ‘노르마 노만스’(‘norma normans’= 규범 시켜 주는 규범, norma absoluta, norma causativa)이고 교리나 신조는 ‘노르마 노마타’(norma normata= 규범 되어 지는 규범)
4) 믿음(fides):
인간의 측면에서 중요!(sola fide, solus Christus)
5) 理性(ratio):
“重生(renata)한 理性이 必要”
“人格(知-情-意)의 未熟性”(철학)
客觀主義= “共通 中心”--> 과학, 경험
主觀主義= “나 中心”--> 신비주의
5. 신학에 대한 오해
1) 신학이 기쁨을 빼앗아간다?
(1) 역사적으로 참된 신학자 가운데 신학 때문에 기쁨을 상실했다는 사람이 전혀 없음을 기억하라!
(2) 오히려 나쁜 신학이야말로 사람을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간다(역사 속 미숙한 신학의 열매들).
2) 신학은 신자를 분열시킨다?
(1) 참된 분리라면 분리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님.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마 10:34).
(2) 반대로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위장 전법(고후 11:14)
즉 성령은 성령의 신학 안에서 성도를 하나 되게 하고 오히려 미숙한 신학, 나쁜 신학, 거짓 신학이 신자를 분열시킨다.
“가능한 화평을, 그러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마르틴 루터)
3) 신학은 지나치게 사변적(思辨的)이다?
(1)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즐거워하고 오히려 즐긴다.
불신자들에게도 있는 책 읽는 기쁨(일반 은총)!
(2) 그리스도인들도 신학과 경건 서적에서 불신자와 차원이 다른 사변(思辨)의 따분하고 지루함이 아닌 성령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Ex.: 칼빈이나 마르틴 루터 등의 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볼 것).
4) 신학은 멈추어진 따분한 학문이다?
(1) 해 아래 새것은 없다!
(2) 하지만 신학의 해석과 적용은 무궁무진 하다.
6. 역사에서 찾는 신학의 중요성(이슈)의 보기<정통(바른 신학)과 나쁜 신학(가짜 신학)의 갈림길>
1) 靈知主義 논쟁 ->
<Against Heresies>, 최초 조직신학자 Irenaeus(130?-200년경)가 저지
2) 삼위일체 논쟁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세 위격이면서 한 실체인 문제)-> 성령 안에서의 일치(초대 교회 헬라파와 라틴파 신학자들 사이의 일치)
첫째, 헬라신학, 본질(본체, 일체)에 대한 Arius(250?-336?, 類似本質)-Athanasius(297?-373, 同一本質) 논쟁:
둘째, 헬라 신학, 위격(hypostaseis, 삼위)에 대한 갑바도기아 교부들(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329?-395, 가이사랴의 바실329?-379과 동생 닛사의 그레고리335?-395)의 역할
<페리코레시스>(co-inherence, 공동내재, 상호상통, 상호관통)
<專有, appropriation>: 로고스, 보혜사, 은사-열매(성령의 사역)
<Per Fillium>(성자를 통하여)-> Filioque(그리고 성자로부터)
셋째, 라틴 신학, 어거스틴(354-430)의 삼위일체론
Ⅱ. 신론 서론
"하나님은 영이시며,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그 존재가 변치 않으시는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과 정의와 선하심과 진리이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4-
"아마도 인간이 쓴 바,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정의이다"(Charles Hodge)
1. 기독교 신학에서 신론은 왜 중요한가
1) Knowing about God? versus Knowing God?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
2) 르네상스(15-16C, 고전 문화 부활)와 인문주의(Humanism) 등장 이후 인간 중심 사상이 증폭 되면서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 사소하게 생각하는 경향
3) 초월에 대해 의심하는 회의주의 사상 증폭
2. 역사 속 이해된 신론
1) (철학과의) 타협과 수용(일반 계시)과 충돌(구속 계시):
(1) 탐색:
헬라 철학과 고대 영지주의 환경 속의 성경적 신론 전개 과정
(2) 수용 또는 사용:
존재, 실체, 속성, 우연(우발), 본질, 필연, 지성 등
(3)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문제:
성경과 상황을 어떻게 잘 융합할 것인가
(4) 종교개혁사상:
철학적 언어를 구원론에서 제거(성만찬은 물질적인가 아니면 인격적 은혜인가
(5) 구원론과 달리 중세 선배 신학자들의 신론은 과감하게 수정하지 않은(존중한) 종교개혁자들:
초대 교부들과 중세 신학자들 존중, 좋은 신학은 역사적이라는 측면에서 성경 해석에 있어 종교개혁자들의 중요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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