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대해(레위기 10장 19~20절-성경 난해구절 해석)
레위기 10장 19~20절 해석(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례를 통해보는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대해)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레위기 10장 19~20절)
1. 본문은 구약의 대단히 난해한 구절 가운데 하나로 속죄 제물을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않고 불태워 진 것에 대해 모세가 제사장들(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향해 책망하고 분노(10: 16) 하자 대제사장이요 모세의 형이었던 아론이 모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모세는 그 아론의 말을 좋게 여겼다는 내용입니다.
2. 이스라엘의 제사는 여호와께 드린 제물 가운데 먹을 수 있는 부분을 제사장들이 먹음으로 온전히 마치게 됩니다. 소제의 남은 것은 누룩을 넣지 않고 거룩한 제단 곁에서 다 먹어야 했으며(12절) 화목제물의 흔들어 바친 가슴 부분과 들어 올려 바친 뒷다리는 정한 곳에서 제사장과 그 가족이 먹어야 했습니다(14절). 그것들은 제사장 가족들의 영원한 소득이었는데 토지를 분배 받지 못한 제사장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3. 그런데 속죄제물의 처리는 조금 달랐습니다. 속죄제물은 대단히 거룩하여 제단 북쪽 여호와 앞 번제물 잡는 곳에서 잡아야 하고 제사장은 그 제물을 성막 뜰, 곧 거룩한 뜰에서 먹어야 했습니다(레 6: 25 이하). 하지만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죄하게 한 속죄제물은 제사장이라도 먹지 못하고 불로 태우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6: 30). 즉 같은 속죄제물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경우(번제물 잡는 곳에서 잡은 경우)와 먹을 수 없는 경우(성소에서 속죄한 제물의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9장에 보면 아론은 두 번 속죄제를 드립니다. 자신을 위해서 제단으로 나아가 속죄제물로 잡은 수송아지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단의 네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단 밑에 쏟았습니다.(9: 10). 그리고 나머지를 여호와의 명령대로 일부(기름, 콩팥, 간꺼풀)는 단에서 불태우고 일부(고기와 가죽)는 야영지 밖에서 불에 태웠습니다.
백성을 위한 속죄제 때는 수송아지가 아닌 염소를 잡아 자기 죄를 위한 속죄제를 드릴 때처럼 백성의 죄를 위해 속죄제를 행했습니다. 아론이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다 드리고 백성을 축복하고 단을 내려오니 여호와의 영광의 광체가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고 불이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완전히 태워버리는 놀라운 광경이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9:24).
이 같은 배경 가운데 모세가 노한 이유와 아론의 설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모세가 분노하며 질문한 내용(레 10:16-18절)
‘성소에 가지고 들어오지 않은 속죄제물(염소)이니 당연히 먹었어야 했는데 제사장들은 왜 안 먹고 그것들을 불에 태워버린 것인가?’
2) 아론의 짧은 해명에 담긴 의미(19절)
‘오늘 그들이(내 아들들이)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다른 불로 향을 사르다가) 이런 (슬픈) 일이(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내게 임하였다. 이런 날 내가 단순히 율례를 따라 속죄제물을 먹었다고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 것 같은가? 성물을 먹기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 자인가!(keil) 아들들을 잃고 충격을 받아 하나님 앞에 도저히 성물을 먹을 수 없는 내 겸손의 마음을 헤아려 주게나(Calvin). 그리고 모세, 혹시 내 아들들이 죽었다고 지금 먹을 제물과 못 먹을 제물까지 내가 구별 못한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흥분하고 착각하여 율법을 들이대면서 괜한 화를 내는 것은 아닌가? (동생) 모세, 하나님을 향한 내 경외와 중심을 정말 모르겠는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아마 이런 의미가 담겼을 거라고 봅니다.
3) 그렇다면 모세가 형 아론의 말을 듣고 좋게 여겼다는 구절(20절)의 의미는?
모세가 아론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깊이 깨닫고 좋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 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으나 아마 제가 해석한 위 내용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4) 본 구절의 더 깊은 의미(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정을 통해보는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본 구절의 정황상 모세의 분노가 맞았을 수도 있고 아론의 해명이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은 실은 모두(모세, 아론, 아론의 산 아들, 죽은 아들들을 포함하여) 나답과 아비후처럼 저주 받은 자들이라는 것과 모세가 옳든 아론의 해명이 옳든 하나님의 은혜로 이 문제가 슬기롭게 정리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구약이 아닌 은혜 시대의 시선으로 보면 이 같은 율례를 위반하는 것이 당연히 심각한 저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요.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자 율법의 시대에도 율법의 상징인 모세의 꾸중으로부터 덕스러운 제사장으로서의 아론의 은혜스러운 중재자적 모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들들을 잃고 동생 모세로부터 꾸중까지 듣는 와중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려는 대제사장 아론의 모습과 주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모세와 아론, 두 형제의 모습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최근 한국교회를 보면 모세처럼 너무 정죄와 분노가 난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 또 사실 모세 같은 분노가 필요한 만큼 나답과 아비후같은 인물이 넘쳐나는 것도 사실이 아닐까 하는 걱정과 근심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아론의 중재자적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일부 실수한 것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론의 변명과 모세의 묵인을 통해 이 문제를 조용히 덮으십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 참 된 의인은 없는 것이지요. 아론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한 금송아지를 방치한 장본인이었고 진노하셔서 대제사장 아론을 멸하려한 하나님께 모세는 아론을 위해 기도합니다(신 9:20). 이렇게 인간은 초대 대제사장뿐 아니라 모두가 죄인이요 모든 건 은혜입니다.
본문의 사건에 나타난 모세와 아론의 해결 방식에는 분명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그리스도 십자가의 모형)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본문은 이것이 구약 속에도 당연히 담겨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 배00 집사님께서 하신 질문을 다시 정리함.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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