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성경적이라 볼 수 있나요?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
미셸 노스트라다무스(M. Nostradamus, 1503-1566)는 의사이자, 점성술사, 천문학자, 발명가로 독특한 삶을 산 프랑스인이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본 블로그에 이미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인물이지요. 그의 예언시에 대한 해설서만 500종이 넘고 요즘도 매달 연구서들이 4-10권씩 쏟아진다고 하니 그의 예언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00편을 한 단위(세기)로 4행시를 지었습니다.
그의 예언 가운데 20세기를 뜨겁게 달군 예언이 있었습니다. 바로 20세기말에 대한 예언때문이었지요. 즉 이 16세기 예언자가 쓴 예언시 가운데 ‘1999년 7월 하늘에서 위대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는 예언으로 인해 유난히 사람들이 그 해 종말과 하늘의 징조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1999년 여름, 공포의 대왕 즉 몽골(앙골모아Angoumois) 대왕의 부활은 내려오지도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7월은 결국 공포스럽지 않게(?) 지나갑니다.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부활한다던 앙골모아의 대왕도 결코 부활(?)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99년 7월 18일 존 에프 케네디 2세와 아내 캐롤라인 비셋 그리고 그의 자매인 로렌 비셋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자 특정 사건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슈호닝(shoehorning)을 한 노스트라다무스 추종자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1999년 8.11일의 일식 예언이라던가 나사의 우주탐사선의 지구 추락을 예언한 구절이라는 주장도 있었지요.
거짓 예언가들의 특징
거짓 예언가들은 자신의 실수나 거짓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을 일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마 모든 점쟁이들이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그러하듯 노스트라다무스 추종자들도 같은 전철을 밟아왔습니다. 즉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틀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 해석이 틀렸다고 둘러대면서 그들은 분명 노스트라다무스식 새로운 시한부종말론을 위한 작전을 펼칩니다. 일본의 노스트라다무스 추종자들은 이전에 다섯번이나 종말 시기를 수정한 전례가 있습니다. 1999년의 다른 달이나 2000년 혹은 2038년이 이들 노스트라다무스 신봉자들의 새로운 종말 시기가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종말의 연기가 전혀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지요. 왜냐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은 이미 노스트라다무스 추종자들의 괜찮은 밥벌이 도구가 되고 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스트라다무스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점성술에 참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개신교인으로 유명한 과학자였던 케플러(1571-1630)도 한때는 호구지책을 위해 자신이 배운 천문학적 재능을 잠시 점성술에 사용하다가 곧 손을 뗀 적이 있습니다. 케플러의 경우는 점을 쳤다기 보다는 자신의 천문학적 지식을 활용한 결과였습니다. 지금의 일기 예보와 비슷한 예측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 된 선지자
성경은 사람들이 미래를 점치는 일에 유별나게 호기심이 많음을 경고합니다. 구약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던 듯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가 헛된 예언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듣지말라” 했고, 이사야 선지자는 “네가 많은 모략을 인하여 피곤케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월삭(月朔)에 예고하는 자들로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케 하여 보라 그들이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 못할 것이라(이사야 47:13-14절)" 경고하였습니다.
사실 노스트라다무스도 그런 예언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점쟁이들과 달리 그의 예언집은 수수께끼 풀듯 교묘하게 시적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이것이 사람들에게 소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노스트라다무스 추종자들의 그럴 듯한 한 가지 풀이를 살펴봅시다. 한 부류의 노스트라다무스 추종자들은 노스트라다무스 시대의 7월은 현재의 8월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1999년 8월 19일 지구를 중심으로 종축(縱軸)에 태양, 수성,목성,천왕성,해왕성이 늘어서고, 횡축(橫軸)에 화성, 목성, 토성, 명왕성이 늘어서는 소위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우주 공간에 거대한 십자가가 그려진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인류 재앙의 전주곡이라 호들갑을 떨었고 수많은 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었지요.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 이런 일들은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천문학적으로 이런 유사 현상은 일상적이라는 의미이지요. 우주 공간에서 이런 유사 현상은 하룻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 공간 차원에서 보면 행성 간 공전은 매우 느리므로 특정한 하루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며칠 씩 계속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것도 완벽한 그랜드 크로스가 아니라 그랜드 크로스 비슷한 경로를 그릴 뿐이지요.
1982년에도 태양계 행성들이 직렬로 늘어서서 지구에 큰 재난이 온다는 낭설이 세상에 번진 적이 있습니다. 행성이 일렬로 늘어서면 중력이 지구 표면 한점으로 몰려 바다가 갈라지고 엄청난 해일이 일어나 지구에 재앙이 닥친다는 식이었지요. 조석(潮汐) 간만(干滿)을 일으키는 힘은 천체 사이의 거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질량이 태양의 약 3천만 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달이 조석 간만에 주는 영향이 태양보다 오히려 약 2배 정도 더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행성들이 아무리 정확하게 일렬로 늘어서도 이들의 힘은 달이 미치는 기조력의 수만분의 1에 불과합니다. 1999년 5월 19일에도 행성 직렬이 또한번 있었습니다. 물론 지구에는 아무런 제앙도 없었습니다. 행성 직렬이든 그랜드 크로스든 지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지요.
거짓 선지자들이 넘쳐나는 세상
세계에서 유명한 예언자들의 예언을 일년에 두번씩 싣는 미국의 <내셔널 인콰이어러>지에서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당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점쟁이들의 예언 적중율을 조사한 적이 있었지요. 그들이 예언한 364개의 예언 중 틀린 것이 360개, 맞은 것은 겨우 4개였습니다. 즉 적중율은 1.1%에 불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는 미래를 예언하는데 있어 어떤 실수도 범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단 한번만이라도 그릇된 예언을 하면 그는 바로 거짓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있어 예언의 빗나감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더구나 점성술은 구원의 도리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습니다.
요한 칼빈이 살던 당시에도 점성술에 대한 관심은 지금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연구하는 한 분야인 천문학 탐구는 찬성하였으나 점성술에 대해서는 경고합니다. 특히 칼빈은 ‘믿음이 어린 사람들일수록 참된 천문학과 마술사나 마법사들의 거짓 점성술의 미신을 분별치 못하고 쉽게 속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성술은 모든게 헛되고 무익하며 하나님께 버림받는 행위로 그분의 영광을 침해하는 것”이라 했지요.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신 18:21-2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말라“(예레미야 10:2절)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근본적으로 점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노스트라다무스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두려워(?) 아주 성경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결부 시켜 연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텍스트(성경)과 컨텍스트(context)를 구별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는 예수님의 간곡한 경고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은 바로 그런 두려움의 근원을 구분 못하는 유혹의 시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일개 점장이에 불과한 노스트라다무스를 성경과 결부시켜 신비시하거나 우상시하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공포의 대왕이 왕림을 연기하였다거나 해석이 틀렸다는 식의 변명에 휘말려드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젠 정말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T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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