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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 질의 응답

신앙(하나님 이해)을 위한 신학의 출발점에 대한 4가지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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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에 대한 4가지 이해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 신학자들을 표현한 그림(독일 베를린 역사박물관 내)

‘Intelligo et credo.’에 대한 질문입니다

 

존경하는 교수님, 안녕하시지요?

저희들에게 꼭 필요한 넓고도 깊은 창조신학을 알게 이끌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여쭙고자 하는 내용은 가톨릭,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식견을 갖고자 함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한 ‘Intelligo et credo. 나는 이해하고 믿는다?(해석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라틴어 et는 그리고, 또한의 뜻)’라는 말은 5세기 어거스틴의 ‘지성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 그대로 받아들여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이 되면 인간의 지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 즉 인간 지성이 성령의 조명아래 빛을 받아 지성이 새로워짐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영광의 신학을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가톨릭 또한 개신교와 같이 가장 근본적으로 먼저 100% 하나님의 은혜로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후에 인간 본성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은혜에 따라 회복 가능한 지성에 따라 하나님 존재를 증명(플라톤과 같이 연역적 방법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적 방법을 이용)하는 말로서 이성으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이성을 강조하고 있음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직 부족한 학식에 따른 견해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여쭈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세대 신대원-

 

A.> 신학(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에 대한 4 가지 이해

 

1) 언급하신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

(1) 영광의 신학은 주로 루터가 자신의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과 대응되는 단어로 사용한 말입니다.

(2) 루터는 모든 올바른 신학은 십자가의 지혜(sapientia)로부터 온다고 보았습니다.

(3) 즉 참된 신학과 참된 하나님 인식은 특별계시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 바로 십자가 신학의 출발점입니다.

 

2)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1) 반대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B.C. 384-322)의 방법론과 원칙을 바탕으로 신학을 전개하였으므로 자연신학적이고 영광의 신학적이라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2)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저히 철학적 신학을 전개한 것은 아니고 계시에 기초를 둔 종교적 신학이 필요함도 역설하고 있습니다.

(3) 즉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이라는 두 날개로 신학을 전개했을을 알 수 있습니다.

 

 

3) 로마 가톨릭 신학

(1) 따라서 전도사님께서 질문했듯, "로마 카톨릭 또한 개신교와 같이 가장 근본적으로 먼저 100% 하나님의 은혜로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후에 인간 본성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은혜에 따라 회복 가능한 지성에 따라 하나님을 존재를 증명(플라톤과 같이 연역적 방법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적 방법을 이용)하는 말로서 이성으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이해"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2)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라철학과 이를 이어 받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충실한 가톨릭 철학은 자연신학적이라 표현하는 것이 명쾌해 보입니다.

 

4) 루터란들이 보는 가톨릭 신학

(1) 루터란들이 본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영광의 신학이 분명하다고 볼 겁니다.

(2) 왜냐하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자연(이성)과 은혜를 모두 존중한다는 개념보다 자연에서 은혜로 나아가, 그 은혜는 결국 자연보다 더 높은 차원이 되는 데 이것은 결국 은혜가 죄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립한다는 결과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지요.

(3) 즉 <은혜가 자연을 보충하고 앙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회복한다는 개혁신학>과 조금 다른 결론이지요.

(4) 정리하면 신학(하나님에 대한 이해)이 추구하는 관점은 다음 4가지 출발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신학(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에 대한 4가지 이해>

1.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성과 능력 신뢰>: "나는 이해하고, 믿는다"(intelligo et credo).

 

1) 이 같은 입장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이성과 능력과 신뢰하고 확신한다는 면에서 하나님의 특별 계시 없이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자연신학과 연결됩니다.

2)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용한 로마 카톨릭 신학은 바로 이 자연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3) 토마스 아퀴나스가 “은혜는 자연을 찢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라고 한 말이 이것을 잘 증거합니다.

4) 신앙을 실증적이고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들에 근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창조과학운동”이나 “지적설계운동”도 이 같은 경향이 반영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5) 변증학에서는 이 같은 접근을 험증학(Evidentialism)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2. 신앙에 있어 믿음 선행: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믿는다”(Credo ut intelligam).

 

1) 신학의 출발점을 믿음(fides)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즉 신학의 출발점을 창조와 자연과 이성이 아니라 믿음과 특별계시로 봅니다. 그리고 이 믿음조차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봅니다.

2)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 인간은 이성으로 믿고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모든 것에 선행하며(히11:3)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믿고 참된 하나님 인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3) 자연신학이 자연에서 은총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이 입장은 오히려 은혜가 자연을 회복한다고 봅니다.

4) 어거스틴과 개혁주의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하지요.

5) 코넬리우스 반 틸 같은 신학자의 전제주의(Presuppositionlism)는 바로 이 같은 개혁주의 입장에서 나온 변증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좌로부터 칼빈, 루터, 멜랑흐톤(멜랑흐톤 하우스)

 

3. 하나님의 초월성, 타자성 강조: “불합리하므로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est).

 

1) 이 신학은 기독교 진리는 합리적 분석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고 계시를 (그리스도와의) 실존적 만남으로 보고 주관적이며 내면적인 종교경험을 신앙의 근거로 내세우는 입장입니다.

2) 따라서 이 신학적 입장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성, 타자성을 강조하게 됩니다.

3) 개혁주의와 약간 다른 점은 개혁주의가 계시와 성경과 믿음과 그에 따른 교리의 지도를 따라 신학함과 달리 신(그리스도)와의 초월적 만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구별이 됩니다.

4) 터툴리안이나 칼 바르트 같은 신학자에게서 이 같은 파라독스적인 신학관을 보게 됩니다.

 

칼 바르트(유광웅 교수님 제공)

 

4.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우선: “믿기 위해서 나는 이해한다”(Intelligo ut Credam)

 

1) 일단 성경적인 초월성과 신적 계시를 부정하고 인간의 합리성을 신뢰하여 이성을 따라 이성의 요구에 만족한 것을 따져보고 가능한 것들을 참된 것으로 믿으려는 입장입니다.

2) 이렇게 되면 초월적인 하나님은 사라지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만 남게된다는 면에서 신학적 자유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샬롬!

자주 연락주세요^^

 

조덕영 교수ki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