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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학 질의 응답

성상 파괴 운동(Iconoclasm)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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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 파괴 운동이란 무엇인가요?

 

 

성상 파괴 운동이란?

 

 

성 조지의 이콘(©그리스 아테네, 비잔틴 박물관 전시물) ​

성상 파괴 운동이란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전 비잔틴 제국에서 일어난 운동을 말합니다. 지금도 유럽 중·남부 도시들 교회의 예배당을 가 보면 무수히 많은 이콘(icon, 성화상)들을 찾아볼 수가 있지요. 성상 파괴 운동(聖像破壞運動, Iconoclasm)은 8-9세기 동방 기독교에서 성상 공경이 금지되고 성상을 파괴한 운동이었습니다. 유럽 중세의 한 흐름을 장식한 중요한 역사임에도 이 운동의 전후 사정을 명확하게 정리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성상파괴운동은 비잔틴 제국을 양분시켜 내전을 초래하였으며 로마 교황청은 이를 비난하면서 이 운동은 비잔틴 황제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 좋은 명분을 제공하였으며, 다른 여러 요인들과 함께 결국 동서 교회의 분열, 즉 기독교가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으로 갈라서는 계기를 제공하였습니다.

 

교회는 초대 교회로부터 20세기까지 20여 회가 넘는 세계 공의회(일명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개최합니다. 그리고 이들 공의회 이전에도 성경에 나타난 예루살렘 총회(주후 48 혹은 49년)나 안디옥, 카르타고, 알렉산드리아, 세르디카(소피아), 리용 등지에서 지역교회 회의들이 열렸지요.

 

그런데 이들 공의회 가운데 로마 가톨릭과 동방교회 그리고 종교 개혁 이후의 개신교 사이에는 서로 인정하는 공의회가 서로 다릅니다. 개신교는 주로 4-6차 공의회까지 인정하는 편이고 제 7차 공의회인 제 2차 니케아 공의회(주후 787년)는 배척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7차 공의회가 다룬 문제가 바로 성상 사용에 관한 규정이었습니다.

 

정교회의 성(화)상 사용에 관한 제 2차 니케아공의회 규정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괄호 번호는 임의로 필자가 매긴 것임).

 

1) 우리는 글이든 말이 든 모든 교회 전승을 존중하는 바 복음 전파의 유용한 전승으로서 역사와 조화되는 그림 표현물 제작도 마찬가지다.

 

2)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이 단지 환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3) 따라서 우리는 왕의 길과 신성하게 영감 되어 진 거룩한 교부들의 권위와 공교회(Cathoric Church)의 전승에 따라 값지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의 형상처럼 존귀하고 거룩한 형상들 즉 그림과 모자이크 그리고 다른 적절한 재료로 만든 형상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설치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거룩한 제기, 제의, 드리운 천, 그리고 우리 주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 성모, 천사들, 모든 경건한 자들의 형상이 설치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4) 예술적 표현물들은 좀 더 쉽게 원형을 기억하게 하고 사모하게 만든다. 비록 이것이 신적인 본질에 속하는 신앙의 참 경배는 아니지만 형상의 원형들에게 당연히 경의와 흠모할만한 존경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 틀림없는 바 여러 성스러운 대상물에 속하는 것에게 향과 촛불을 전통적인 관례에 따라 드릴 수 있다.

 

5) 왜냐 하면 형상에 바치는 존경은 그 형상이 표현하는 실체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즉 그 형상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는 그 안에 표현된 실체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성상 파괴 운동의 등장

 

성상 파괴 운동은 730년 시리아 출신의 비잔틴 제국 황제 레오 3세(Leo, 717-41)가 성상 숭배를 금하는 칙령(성상 금지령)을 발표하면서 시작됩니다. 여기에는 그가 7세기말 이전에 성상 반대 운동이 일어난 동부 소아시아 가까운 지역에서 성장했으며, 황제가 되기 전에는 서부 소아시아의 총독으로 일한 경험과 통치 중 일어난 지진 참사와 이전 세기의 전쟁 패배 그리고 우상 숭배를 금지한 구약 율법(모세 십계명)과 우상 숭배를 금지한 이슬람의 발흥 등이 복합적으로 레오 3세를 자극했을 거라 교회 역사가들은 지적하지요.

 

이 칙령은 제국의 소아시아와 일부 성직자, 지식인들에게는 지지를 받았으나 고대 헬라 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는 수도 콘스탄티노폴(오늘날의 이스탄불)과 유럽 지역에서는 일반 시민들의 반발이 심했으며 문화적, 정치적 문제가 동반되어 제국을 이분시키는 대논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787년, 콘스탄틴 5세의 아들 레오 4세의 황후이자 비잔틴의 여제 이레네가 주재한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 의해 성상 파괴는 금지되고 성상 공경의 정통성이 재확인됩니다. 이 후 비잔틴 제국에서는 815년에도 다시 제2차 성상 금지령이 발해져서 843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소아시아에서도 성상 파괴 지지는 약화되었고 성상 공경이라는 신앙 전통이 부활합니다. 하지만 이 갈등 속에서 교회는 동방(그리스) 정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로 분리되는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동·서방교회에서 함께 공경하는 성인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성 조지(St George,게오르기오스, 275-281~303)가 있습니다. 서방 교회 예배당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이콘(인물)이지요. 성 조지에 대해서는 동화 같은 전설이 전해지는데, 어느 날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하는 용을 성 조지가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그 지역 왕의 딸 카시오페아를 구했다는 전설이지요. 창조과학에서 실제 용이었을 거라 묘사하는 바로 그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용은 늘 악의 상징이기에, 악을 대적해 하나님의 정의를 수호한 것을 표현한 내용으로도 여겨집니다. 우리 사회는 최근 용과 일명 가·붕·게 비유가 유행하였지요. 참으로 세속적인 천박한 비유였습니다. 서양의 용은 용을 출세의 상징으로 여기고 자랑하며 숭배하는 동양 문화와 분명 대비되는 내용입니다.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