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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속사도 교부들과 교부들(기독교 사상가 탐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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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도 교부들과 교부들(기독교 사상가 탐색 3)

초기 유럽(헬라) 선교의 전초 기지였던 데살로니키에서 현재 가장 오래된 아기아 소피아 교회

나는 86년 동안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선하게 대하신 분이다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내가 어떻게 욕 할 수 있는가?

--------

"오 축복 받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천사와 권세와 모든 창조 그리고 당신의 현존 가운데 사는

모든 의인의 가족의 하나님이십니다.

-중략-

나를 순교와 부활의 반열에

참여케 해주신

당신을 찬송합니다."

<화형으로 순교당하기 직전 폴리갑의 마지막 기도>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는 로마 총독에 대한 서머나교회 감독(속사도 교부) 폴리갑의 대답>

속사도교부들과 교부들

속사도 교부 중 한명이었던 폴리갑 기념상(성 폴리갑 기념교회 내부의 순교자 서머나교회 감독 폴리갑 상)

​A. 속사도들(Apostolic Fathers)들과 교부들(Church Fathers)

​1. 속사도들과 교부들이란 누구인가:

1) 속사도들: 12사도 이후 등장한 초기 기독교의 저자들을 말함.

누가의 묘 한글 표지판(에베소 지역)

​2) 교부들: 교부들이란 속사도들 이후 등장한 기독교의 인물(사상가)들을 말함

​2. 속사도시대 (주후 100-313년)

사도 요한이 사망한 후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주후 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의 시기를 續사도시대(Post-Apostolic Age) 또는 前니케아회의시대 (Ante-Nicene Age)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교회가 보다 구체적으로 형성된 시기요 발전된 시기였다.

로마 황제 유스티나아누스(527-565)가 건립한 요한 무덤 교회 전경

​3. 속사도 시대의 특징

1) 박해로 인한 순교

(1) 로마의 네로 (Nero) 황제로부터 약 250년간 박해가 지속된 순교의 시대

(2) 이그나티우스(안디옥), 폴리갑(서머나), 유스티누스(로마), 키프리아누스 (칼타고) 등의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

​2) 사도신경과 신약 성경의 완성

​3) 신앙의 혼돈 계속

(1) 온갖 박해 속에서도 복음은 왕성하게 증거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상적 활동도 왕성하게 이루어져서 가히 사상의 발효시대라고 할만 했다.

(2) 헬라 철학, 동방 신비종교, 유대의 율법주의 등 여러 사상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복음과 뒤섞임으로써 신앙적 혼란이 초래되었다. 따라서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이 새로 연구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3) 이런 가운데서 영지주의(Gnosticism)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 등의 절충 사상으로 사상적 혼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4) 특별한 기독교 사상 체계나 교리의 골격이 형성 되기 이전의 시대

​4) 기독교의 확장

(1) 예루살렘 :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12 사도를 중심으로 한 성도들

예루살렘 골고다언덕과 성묘교회(by JE.K.)

(2) 수리아의 수도 안디옥 : 주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된 후 페르시아의 통치 지역이었다가 셀류쿠스 제국의 중심지를 거쳐 아람(즉 수리아)의 수도는 바로 북부 안디옥이었다. 유대 총독은 항상 수리아의 통제 아래 있었다. 복음은 이곳을 거쳐 소아시아로 전파되었다.

(3) 에베소, 서머나 : 소아시아에서는 서남방 해안 지방에서 기독교가 가장 왕성하였는데 에베소, 서머나가 그 중심이었다. 이 곳을 기점으로 복음이 소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다.

에베소 지역 셀수스 도서관

(4) 빌립보, 데살로니가 : 마게도냐 지방 전도의 중심지는 지금의 그리스(곧 헬라)지역이었다.

데살로니가의 12사도(속사도교부들의 스승들) 기념교회

(5) 알렉산드리아 : 안디옥 다음으로 기독교가 흥왕한 곳이었다. 이 지방에 살고 있는 헬라인과 유대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3세기에는 성경의 애굽어(콥트) 번역도 이루어졌으며 신학교도 세워졌다. 또한 그노시스파의 근거지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6) 고린도, 아덴 : 헬라(그리스) 지방의 복음 전파의 거점 도시였다. 아테네에서도 변증자들과 순교자들이 나왔다.

아덴(아테네) 최초 그리스도인 디오누시오 기념교회

(7) 로마 : 서유럽 전도의 중심지였다.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각처에 교회가 있었고 북은 갈리아, 남은 북부 아프리카, 서는 스페인에 이르렀다.

로마의 카톨릭 대성당내 토리노 수의 사진

​B. 교부들의 신앙 세계

1.교부의 정의

교부들이란 사도들의 직계 제자로서, 사도들의 뒤를 이어서 교회의 건설과 진리의 체계화에 큰 역할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후세에 권위를 떨친 인물들을 일컫는다. 특히 교부의 자격 중 중요한 것은 그들이 교리에 정통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상이 순수하지 못하거나 정통적이지 못하면 교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첫 교부는 1세기 말에 활동한 로마의 클레멘스를 꼽고 마지막 교부로는 동방교회에 있어서는 다메섹의 요한(725년 사망)을, 서방교회에 있어서는 그레고리 1세(604년 사망)을 꼽는다.

교부는 시대에 따라서 니케아회의 이전의 교부와 그 후의 교부로 크게 나누어 지역과 언어에 따라서 동서로 구별한다. 즉

①속사도교부 또는 사도적교부(Apostolic Fathers)

②변증가 (Apologists)

③헬라교부(Greek Fathers)

④라틴교부(Latin Fathers)로 나눈다.

2. 주요 속사도 교부들 6인

1. 바나바(Barnabas)

1) 바울 동역자였는지는 불확실.

2) 강한 반 유대주의자(바나바의 편지 중).

3) 그는 유대교의 의식적 율법이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을 나타내는 것으로 봄

2. 허메(헤르마스)

1) 롬 16:14에 나오는 인물로 추정하나(오리겐) 불확실.

2) <헤르마스의 목자>에서 주로 회개를 권면

3. 로마의 클레멘트 (Clements of Rome)

1) ​클레멘트 또는 클레멘스는 1세기 말에 로마에서 사역한 유명한 장로이다.

2) 그의 저서로는 <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있다.

3) 그의 저서에는 구약 인용이 많아서 약 4분의 1이나 된다.

4) 그는 바울의 정신을 많이 이해하고 있었지만 야고보와 같이 윤리적 가르침을 많이 베풀었다.

5) 클레멘스의 관심사는 바울과 같이 진리를 세우고 확고히 하는 데 있었다기 보다는 교회 형제들의 선행과 덕행을 격려하는데 있었다. 그는 신앙인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4. 이그나티우스 (Ignatius)

1) 안디옥 감독으로 트라야누스 황제 때 로마에 끌려가서 맹수의 밥이 되었다.

2) 이그나티우스의 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상은 교회의 통일, 감독의 권위, 순교자의 영광 등이다.

3) 그의 저서로는 로마로 호송되는 도중에 쓴 7통의 서신이 있다. 이중 <에베소> <마그네시아>(Magnesia) <트라리아> <로마인에게>는 서머나에서 집필한 것이고 <빌라델피아> <서머나> < 폴리캅에게>는 드로아에서 집필한 것이다.

4) 그는 이 서신에서 대속 문제, 성육신 문제(주로 당시 교회를 괴롭히던 이단인 假現說者들을 취급하면서), 유대주의자들 문제, 감독직의 권위 문제를 취급했다.

5. 폴리캅(Polycarp)

1) ​2세기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인 폴리캅은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으며 사도 요한의 제자였고 이그나티우스 친구였으며 후일 이레네우스의 스승이 되었다.

2) 폴리캅은 155년에 서머나에서 화형당하여 순교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빌립보의 서신> 한 통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바울 서신들과 베드로서, 요한일서 등이 인용되어 있다.

​4. 파피아스(Papias)

1) 브프리기아(브리기아)의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으로서 150년 경에 버가모에서 순교하였다.

2)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저서로는 다섯 권으로 된 <주의 가르침의 설명>이 있다. 이 책은 사도들과 사도들의 제자들이 전한 것을 한 데 모은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전해지지 않고 단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속에 단편적으로 인용되어 있을 뿐이다.

3) 파피아스는 열정적으로 천년왕국을 주장하였다.

​3. 교부들의 신학

1) 기독론

먼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논쟁다운 논쟁은 없었다. 대체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믿었으나 신성을 더 강조한 편이었다.

① 클레멘트 (Clemens of Rome)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엄한 홀(笏)이다.

​② 이그나티우스 (Ignatius) : 그리스도는 신이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났다.

​③ 허메(헤르마스, Hermas) : 그리스도의 선재설(先在說)을 믿었다.

​2) 삼일신(3 1神) 교리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명백한 교리는 이 시대에 아직 확립되지 않았지만 희미하나마 삼위일체 교리를 믿은 듯하다.

​① 이그나티우스 : 신자는 건축재(돌)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것을 끌어올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기계로, 성령님은 밧줄로 비유함

② 로마의 클레멘트 : 사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충분한 확신을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견고하게 되고, 성령님의 보증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복음을 듣고 이것을 전하러 나아갔다"고 말했다.

3) 속죄론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열고자 피를 흘리셨고, 회개하는 자에게 죄 사함 받게 하는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죽으셨으므로, 믿는 자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건한 마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의(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의)를 주신 것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될 수 있다는 以信得義의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속죄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별로 철저하지 못했고 이신칭의의 근거에 대해서도 구약 말씀들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4) 천년설

그리스도의 재림이 멀지 않은 장래에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도께서 천 년간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신다고 가르쳤으며 파피아스는 상상력을 크게 활용하여 천년 시대의 상태를 묘사하기까지 했다. 전반적으로 주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윤리주의와 율법주의가 교회 내에 만연하였다. 따라서 바울이 크게 강조한 이신칭의의 복음 진리가 별로 잘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고 행함에 대해 강조한 야고보의 사상만 강조되고 있었다. 이것은 지도자 자신들이 바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리주의가 교회 안에서 만연되게 된 데는 당시 크게 세력을 떨치던 이방 철학 사상 특히 스토아주의의 영향이 컸다.

5) 구원론

1) 그리스도의 피 강조

2) 대속적 죽음의 교리

3) 도덕주의 잔재(사랑으로 죄 사함 받게 된다는 주장, 클레멘트)

4) 기독교 공로주의의 시초

6) 교회론

1) 교회 중시

2) 교회 선재론(클레멘트)

3) 교회는 창조의 진정한 목표, 감독의 중요성

4) “보편적”(카톨릭) 교회관(이그나티우스)

5) 신비적 성례론

6) 가벼운 죄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구분(로마 교회에 영향)

7) 성찬의 떡은 불사약이자 영원히 살게 하는 해독제(이그나티우스)

7) 종말론

1) 현세는 공허한 곳

2) 내세는 영원한 영광의 장소

3) 긴박한 재림 소망

4) 천년왕국시 곡식은 천 배 열매(파피아스)

5) 몸의 부활 신앙

4. 속사도 교부들에 대한 평가 12 가지

1) 사도 시대와 감독 시대를 연결

2) 기독교 사상과 교리사의 출발점

3) 성경 신앙을 전하려는 열심(순수한 교회 지도자)

4) 사도들이 전한 신앙 계승이 주요한 과업

5) 교회 질서 강조

6) 성경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중심으로 이단 사상 경계 지속

7) 유대교와 분명히 결별했으며 헬라 철학의 영향도 변증가들에 비해 덜함

8) 신학의 발아기였기에 신학적으로는 독창성이나 깊이 부족

9) 교리적 명확성 결여

10) 정통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

11) 도덕주의적 경향, 공로주의 통로를 염(미숙한 정통신학자들)

12) 순교

정리(묵상과 적용)

1) 주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초대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개인적으로 잘 묵상해 봅시다.

2) 기독교 사상가로서의 속사도교부들은 누구였으며 어떤 역할을 하였나요?

3) 속사도 교부들의 미숙함에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속사도교부들을 귀하게 보시는 부분은 어떤 점이었을까 묵상해 봅시다.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