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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개신교 신학의 출발점,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서론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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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함의 출발점,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서론, 강의참고자료) 

 

 

마르틴 루터

 

신학은 하나님의 학문이요 계시의 학문이다. 따라서 그 어떤 학문과도 다르게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학문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1518년(4.26일) 하이델베르그 논박에서 십자가 신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참된 신학의 본질을 보여준다. 즉 이 십자가 신학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신학을 표현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고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은 주로 루터가 자신의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과 대응되는 단어로 사용한 말이다.

 

루터는 모든 올바른 신학은 십자가의 지혜(sapientia)로부터 온다고 보았다. 즉 참된 신학과 참된 하나님 인식은 특별계시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 바로 십자가 신학의 출발점이다.

 

반대로 로마 가톨릭의 스콜라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B.C. 384-322)의 방법론과 원칙을 바탕으로 신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자연신학적이고 영광의 신학적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가 철저히 철학적 신학을 전개한 것은 아니다. 계시에 기초를 둔 종교적 신학이 필요함도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토리노 성당의 수의 흔적 전시물

 

하지만 루터란들이 본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영광의 신학이 분명하다고 볼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자연(이성)과 은혜를 모두 존중한다. 하지만 그 근본 개념은 자연에서 은혜로 나아가, 그 은혜는 결국 자연보다 더 높은 차원이 되는 데 이것은 결국 은혜가 죄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립한다는 결과에 이르게 되어 버린다.

 

로마 가톨릭 베네딕트 수도원(Monastero Di S.Benedetto, 로마근교, by E. S. Cho)

이것은 은혜가 자연을 보충하고 앙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회복한다는 개혁신학과 조금 다른 결론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다음 4가지 출발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1.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성과 능력 신뢰>: "나는 이해하고, 믿는다"(intelligo et credo).

 

이 같은 입장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이성과 능력과 신뢰하고 확신한다는 면에서 하나님의 특별 계시 없이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자연신학과 연결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용한 로마 카톨릭 신학은 바로 이 자연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은혜는 자연을 찢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라고 한 말이 이것이다.

 

신앙을 실증적이고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들에 근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창조과학운동”이나 “지적설계운동”도 이 같은 경향이 반영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변증학에서는 이 같은 접근을 험증학(Evidentialism)이라 부르고 있다.

 

 

2. 신앙에 있어 <믿음 선행>: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믿는다”(Credo ut intelligam).

 

​신학의 출발점을 믿음(fides)으로 보는 입장이다. 즉 신학의 출발점을 창조와 자연과 이성이 아니라 믿음과 특별계시로 본다.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 인간은 이성으로 믿고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모든 것에 선행하며(히11:3)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믿고 참된 하나님 인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연신학이 자연에서 은총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이 입장은 오히려 은혜가 자연을 회복한다고 본다. 어거스틴과 개혁주의의 일관된 입장이다. 코넬리우스 반 틸 같은 신학자의 전제(Presupposition)는 바로 이 같은 개혁주의 입장에서 나온 변증학이라 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초월성, 타자성> 강조: “불합리하므로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est).

 

이 신학은 기독교 진리는 합리적 분석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고 계시를 (그리스도와의) 실존적 만남으로 보고 주관적이며 내면적인 종교경험을 신앙의 근거로 내세우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신학적 입장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성, 타자성을 강조하게 된다. 개혁주의와 약간 다른 점은 개혁주의가 계시와 성경과 믿음과 그에 따른 교리의 지도를 따라 신학함과 달리, 신(그리스도)와의 초월적 만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부 구별이 된다.

 

정통인 듯 정통과 다르다는 점에서 신정통주의라 하기도 한다.

 

 

4.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우선>: “믿기 위해서 나는 이해한다”(Intelligo ut Credam)

 

일단 성경적인 초월성과 신적 계시를 부정하고 인간의 합리성을 신뢰하여 이성을 따라 이성의 요구에 만족한 것을 따져보고 가능한 것들을 참된 것으로 믿으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초월적인 하나님은 사라지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만 남게 된다는 면에서 신학적 자유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