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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역사 & 세상 만사

박혁거세 가문을 중심으로, 야벳 후손을 닮은 우리 민족 기원 증거들<노아 후손들의 분산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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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가문을 중심으로, 야벳 후손을 닮은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증거들<노아 후손과 우리 민족 기원(14)>

 

 

노아 아들 야벳의 후손 메섹과 우리 민족 기원 3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NEW 노아의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14)

 

우리 민족의 민속신앙을 닮은 러시아 부리야트 민속박물관 전시물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면 혁거세를 일명 “불구내왕”(不矩內王)이라 칭했다. ‘불구’는 바로 ‘붉’을 말한다. 이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붉을 ‘혁’(赫)자로 표시할 수 있다.

 

즉 박혁거세의 ‘박혁’(朴赫)은 ‘박불’이다. 이란어로 ‘박불’(bagh-fur, bagh-pur)은 바로 ‘천자’(신의 아들)를 말한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도 신라는 개국 당시부터 ‘박朴 : pak'이란 제사계급에 의해 전승되고, 그 제사를 주관하는 인물인 박수paksu를 거서간(居西干)이라 칭했다하였다. 즉 고대는 제사 중심의 사회로 처음에는 사제가 곧 군장(君長)이었던 셈이다. 이것이 사회 발전과 함께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가져왔는데 정치에서 독립한 종교를 곧 풍류(風流, 불pur)라 호칭했다고 육당은 밝히고 있다. 이것이 단재 신채호가 말하는 단군의 사관(史官)이라는 《신지(神誌)》와 연결되고 산악 순례의 신라 원화(源花, 따로 國仙으로 뒤에 花郞으로 호칭)로 발전했다고 육당은 전하고 있다.

 

여기에 홍수 이후 유라시아를 유랑하던 야벳 후손들의 구약적 율례와 신관이 일정부분 삽입되어 있는 것인지는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튼 박씨 가문은 자신들이 ‘천손’의 자녀들임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천손 사상은 바로 일부 야벳 일족들이 오랫동안 간직하고 전해 온 자신들의 전승 계보였다. 한반도의 이 천손 사상은 일본 천황가로까지 이어진다.

 

이밖에 변한 지역에 존재했던 귀틀집도 우리 민족 특유의 집이 아니라 그 기원이 바이칼 호수 서부와 알타이 지방 및 에니세이 강 유역이다. 우리 민족 기원을 단순히 고조선에만 국한하여 수구적, 토착인 중심의 우연 진화론적 기원에 집착하려는 시도는 분명 무리가 있다.

 

또한 우리 땅에서 출토되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積石木槨墳), 출자형 금관(出字型 金冠), 황금제 장식(裝飾), 환두대도(環頭大刀), 동물양식 대구(帶鉤) 등도 전혀 한반도 기원이라 볼 수 없으며 모두 중국 대륙과도 무관한 북방 스키타이 관련 유물들이다. 전형적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인 경주 천마총의 천마를 보면 어깨 위 날개와 몸 전체에 반달형 무늬가 선명하다. 반달형 무늬는 전형적인 스키타이 기법이었다.

 

이들 모든 자료를 따라 우리 민족의 주류를 역추적 해보면 남방이나 중국 대륙이 아닌(물론 일부는 이들 산동반도나 해양 경로 등으로 당연히 들어왔다고 보지만 민족의 주류 세력들은) 한반도->만주(고조선, 부여, 고구려)->내몽골->시베리아(바이칼 호수 주변)->흑해 연안(스키타이, 두발, 메섹 족이 초기 활동 영역)->카프카스(코카서스) 산맥->(터키, 아르메니아의) 아라랏 주변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이 방면의 탁월한 크리스천 전문 학자가 배출되어 이에 대해 더 깊은 연구 결과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전 김천대-안양대-평택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