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에 대한 워치만 니의 입장은 무엇인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워치만 니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여러 질문이 있어, 여기서는 그의 창조론에 대한 입장만을 살펴보려 한다.
워치만 니(Watchman Nee, 1903- 1972)는 중국 푸저우(福州)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 때 푸저우 삼일(三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신앙을 갖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워치만 니는 1920년 당시 영국성공회 선교사였다가 탈퇴한 뒤, 형제회 소속으로 푸저우에서 활동하던 M E 바버(중국명 허셔우언)를 만나 침례를 받고 그녀를 영적인 어머니라고 불렀는데, 바버 선교사는 교회 건물을 짓지 말고 신자들의 집에 집회소를 세워서 평등하게 서로 영적인 체험을 나누는 모임을 가질 것을 강조하였기에, 워치만 니도 1922년 푸저우에서 지방교회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영적 체험을 기록한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발행, 배포하며 활동하게 된다. 1931년에는 영국형제회의 대표단 8인이 상하이에 도착, 선교활동을 펼치게 되면서 워치만 니는 그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이후 런던의 ‘기독인교제센터’ 책임자였던 T A 스파크를 만나면서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워치만 니는 고난의 길을 걷게 되는데, 1952년 중국 정부에 체포되어 1956년 6월 21일 상하이고등법원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1972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지만 병으로 생을 마치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제도권 교회 안에서 워치만 니의 신앙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그가 영국형제단의 영향을 받고 평신도 집회소를 중심으로 활동한 데 기인한다. 그는 또한 독서를 즐겨 수천 권의 신앙서적을 독파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독자적으로 정립해 갔다. 그의 책들은 주로 중생과 영적 생명의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워치만 니 개인의, 창조론에 대한 견해만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성경에 관한 입장
워치만 니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었다. 그는 창세기와 지질학 양자가 놓여 있다면, 당연히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지질학이 아니라 창세기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성경은 기본적으로 과학에 대한 책이 아니면서도 과학적인 오류를 갖고 있지 않은 책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견해로 볼 때 그는 일종의 성경축자영감설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그의 창조론도 성경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을 믿는다고 모든 학자들의 창조론이 같은 것은 아니다. 사실 기독교인 숫자만큼 창조론도 다양하다. 창조신앙은 같으나 창조론은 그렇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것은 성경이 우주 창조의 대드라마에 대해 단순하고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즉,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도 어리석은 인간은 온전히 깨닫지 못했을 텐데, 창조 사실의 골격만 제공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따라서 워치만 니의 창조론도 그런 범주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2. 위치만 니의 창조론
1) 간격 이론(The Gap Theory) 수용
위치만 니는 재창조론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간격 이론(The Gap Theory)이라고도 하고 ‘파괴와 재창조론’, ‘아담 이전 격변론’, ‘아담 이전 아담론’이라고도 불리는 이론이다. 이 주장은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초대 의장이었던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에 의하여 재현되어 스코틀랜드 개혁 성경에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학설이다. 지난 19-20세기 미국의 여러 성경연구소들과 근본주의 신학교에서 이 이론을 가르쳐왔다. 장로교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나, 한국에서도 몇몇 교단에서 이 주장을 따르고 있다.
이 학설은 지질학적 연대 구분과 성경적 연대기를 조화시키려는 과정에서 나온 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 세상의 황폐화와 그 심판의 원인 제공은 인류가 아니라 사탄이었으며, 그 이후 세상의 타락은 인류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 아래 그는 현대 지질학에서 말하는 지층의 연대 문제나 화석 생성에 대해 하나님의 재창조 이전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견해를 펴고 있다.
위치만 니는 이러한 창조 이전의 심판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이사야 14:12에 나타난 사단의 타락과 에스겔서(겔 28:12-15) 등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중요하고도 엄청난 역사적이며 영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성경이 보다 분명하게 그러한 사실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다른 성경구절에서는 그런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사야서 14장 12절의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사단을 나타내는지도 분명하지가 않다. 계명성(‘헤렐’, Day star)이란 해가 뜨기 전 새벽 동쪽에 하늘에 나타나는 샛별, 즉 금성(Venus)을 말한다(벧후 1:19; 계 2:28 참조).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통치자를 나타낸다. 열국을 얻었던 바벨론 통치자가 멸망당한 모습을 하늘에서 떨어진 계명성에 비유하고 있다. 과거 교회 교부들은 이 구절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여, 사단의 하늘에서의 타락과 연관시키기도 했다. KJV에 나타난 ‘Lucifer’라는 단어는 바로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인데, 이 말이 비유적으로 사단을 칭하기는 하나 신약의 예수님은 루시퍼와 사단을 구분하고 있다(눅 10:18 참조). 오히려 베드로후서는 샛별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짓고 있고, 사도 요한은 ‘새벽별’이 두아디라 교회를 도울 그리스도임을 암시하고 있다(계 2:28).
즉 워치만 니가 자신의 주장에 인용한 구절들은 사실 달리 해석이 가능한 것들이고, 오히려 그러한 해석들이 워치만 니의 해석보다도 더 전통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14장의 ‘루시퍼’를 사단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며, 사단이라고 보는 것은 단지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된다.
화석의 문제에 있어서도 위치만 니는 화석들이 바로 재창조 이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나, 그럴 경우 좋으신 하나님께서 거듭 실패를 하셨다는 논리로 귀착될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 교리와 충돌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문제점으로는 그와 같이 화석을 재창조 이전에 의거한 결과물로 해석할 경우, 창세기 7장에 나타난 전 세계적인 대홍수에 의한, 지구 생태계 파멸에 따른 생물의 유기체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해석이 복잡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지층과 화석에 대한 해석에 있어 오늘날의 진화론적 동일과정설에 따르는 지질학과, 창세기 7장을 문자 그대로 믿고 따르는 대홍수지질학, 그리고 재창조 이전의 지층 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등 아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세속 지질학은 동일과정설이 절대 우세한 편이나, 기독교 관련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지층 형성에 있어 합의된 견해가 나오지 않고 견해가 다양하므로, 앞으로 관련 학자들의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고 여긴다.
2) 창세기 1장 ‘욤’ 해석에 있어 24시간 적용
창세기 1장 해석에 있어 워치만 니는 창조 기간의 ‘욤’을 오늘날의 24시간으로 보는 점이 이채롭다. 즉 워치만 니는 재창조 이후에는 창조 주간의 하루를 오늘날 24시간으로 보아야 하다고 주장한다. 출애굽기 말씀(20: 8-11)을 참고할 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 7일은 24시간의 날들을 가리킨다고 본 워치만 니의 주장은, 재창조설만을 제외하면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우주와 지구 기원에 있어 오랜 연대와 젊은 연대에 대한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워치만 니의 주장은 두 입장을 절묘하게 절충할 수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3) 창조와 그리스도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
워치만 니의 창조론에 있어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기독론을 창조와 구속의 관계로 확장한 점이다.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창조와 구속의 중심(요 1:3; 골 1:16)이라는 관점에서, 워치만 니는 창세기의 물리적 창조 기사를 물리적 창조에 그치지 아니하고 영적 창조의 모형으로 끌고 간다.
이와 같은 입장은 필연적으로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낳게 되었다. 워치만 니는 창조 주간의 첫째날은 예수님의 출생을 상징하고, 둘째 날은 주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며, 성경은 3일(사흘)을 부활을 상징하는 날로 계시하므로(고전 15:4; 유월절 후 제3일 맥추절 등) 셋째 날은 주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넷째 날은 주 예수의 승천(승귀)를 의미하며, 다섯째 날은 생명의 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여섯 째 날의 사역은 주님의 재림과 왕위 등극을 상징하고, 마지막 일곱째 날은 영원하신 주 예수님을 상징한다. 워치만 니의 이런 입장은 그가 알레고리 해석에 능했던 초대교회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4) 창조와 시대 구분에 있어 세대주의 입장
세대주의는 하나님께서 잘 구분된 시대를 통해서 각 시기마다 성취되어야 할 특정 목표를 계시하고, 그에 대해 인류가 신앙이나 불신앙으로 반응을 보이는 세대들(dispensations)을 통해서 우리 인류를 대해 오셨다는 견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워치만 니는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특수한 시대에 사람들을 특수하게 다루신다고 보고 시대 구분에 입각한 성경 연구가 필연적임을 역설하여 세대주의를 받아들인다. 그는 세대를 무죄 시대, 양심 시대, 인간 통치 시대, 언약 시대, 율법 시대, 은혜 시대, 막간, 왕국 시대로 나누고 있다. 세대주의자들마다 조금씩 입장이 다르기는 하나, 워치만 니의 세대 구분은 인간 통치 시대와 막간 시대를 부가한 것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세대주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3. 마치면서
위의 네 가지 입장이 워치만 니 창조론의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창세기 1장에 대한 해석은 아직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쟁점과 상이점들이 존재한다. 물론 창조된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사안이기는 하나, 인류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창조 방법이나 시기 등에 관해 다양한 호기심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런 가능한 해석들 가운데서 교리의 차별화를 가져온 면이 없지 않다.
위치만 니의 창조론도 바로 그런 가운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치만 니의 재창조설이나 창세기 1장의 알레고리적 해석은 창조론의 역사적 정통 견해라기보다는 다소 이견(異見)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워치만 니가 성경을 부인해서가 아니었다. ‘영국형제단’ 선교사들에게 영향을 받고 주로 그들의 책들을 섭렵한 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워치만 니를 따르는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더불어, 그의 창조론에 대해서도 앞으로 좀 더 심도 높은 연구와 많은 토론과 비평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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