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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신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느낌이 있는 시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조덕영 박사의 기독교 시인을 만나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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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

조덕영 박사의 기독교 시인을 만나다(17)

기독일보

 
 

정호승 시선 서을의 예수(민음사 간, 1982)

서울의 예수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 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鄭浩承 시선 <서울의 예수>에서, 민음사 간, 1982)

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1950~)은 경북 대구 생, 경희대 국문과 출신으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에서 기도, 부활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시인 예수, 서울 복음, 공동 기도 등 기독교적 모티브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다비는 정호승 시집 <서울의 예수> 해설에서 정호승 시인의 시를 "민중적 감성의 부드러운 일깨움"이라 했다. 민중적 정서와 아픔은 무엇일까? 정호승 시인은 이 민중적 '상실감과 헤매임'을 의도적인 평이한 언어로 서술한다. 이것이 지속적인 정호승 시인의 특징이요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 우리네 정서를 통해 정 시인이 대중들의 사랑 받는 시인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덕영 박사

정다비는 정호승에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살아감의 슬픔보다는 살아감의 방식·양상·힘에, 경험의 정서적 구체성보다는 생존의 논리적 구체성에 더욱 관심을 가지기를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정호승 시인은 늘 자신의 중심에 스스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것이 꾸준히 정호승 시인이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사랑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변덕 많은 이 세상에서 정호승 시인의 이런 한결같은 모습이 때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앞으로도 더욱 좋은 시를 많이 내는 정호승 시인이 되었으면…

필자는 <서울의 예수>의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이 마지막 구절의 패러독스가 늘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슬퍼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는 윤동주 시인의 팔복(八福)처럼

조덕영 박사(신학자, 작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