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처©KBS
[조찬영 칼럼] 조선시대 안남을 세 번 방문하고 돌아온 임천조씨 조완벽(趙完璧)
기자명 이상탁 기자
[세계뉴스통신]
정유재란(丁酉再亂) 시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가
안남(安南: 현 베트남)을 세 차례 다녀온 인물로
임천조씨(林川趙氏) 조완벽(趙完璧)이 있다.
그 이야기는 이수광(李睟光)과 정사신(鄭士信)에 의해 조완벽전(趙完璧傳)으로 저술돼 후대에 전해진다.
조완벽전은 지봉유설(芝峯類說) 저자 이수광이 북경에서
안남 사신 풍극관과 만나 주고받은 이수광의 한시(漢詩)가 안남에서 유행하고 있음이
조완벽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임천조씨 족보, 조완벽.
▣ 조완벽(趙完璧) 가계(家系)
정사신(鄭士信)의 조완벽전에 기록을 보면 :
진주 사족인 장령 하진보(河晋寶, 1530~1580)의 질손녀 사위라고 밝히고 있다.
하진보(河晋寶, 1530~1580)는 본관이 진양(晉陽)이고,
자는 덕재(德哉), 호는 영모정(永慕亭)이다. 할아버지는
안주목사 우치(禹治), 아버지는 숙(淑)이며
어머니는 대사간 어득강(魚得江)의 딸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병과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하진보의 형인 하위보(河魏寶)의 맏아들
하항(河恒)은 1남 3녀를 두었는데 하항의 맏사위가 바로 조완벽이다.
조선 진주지역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배출한 지역으로 당시 진주지역의 진양하씨(晉陽河氏)와
혼인(婚姻) 관계를 맺은
조씨(趙氏)는 진주에 세거(世居)하던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 1454~1504) 가문으로
조완벽은 지족당의 증손자이다.
조완벽의 증조부 지족당은 자는 백부(伯符), 호는 지족(知足), 충헌(忠軒)이며 본관은 임천(林川)이다.
생원시 1등으로 합격, 진사시에서 2등, 중시(重試)에서 1등으로 뽑혀서 3 장원(壯元)을 하였다.
연산군(燕山君)이 세자(世子)일 때 스승으로 진강(進講)과 연언(練言)에 유감을 품고 있다가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지족당이 화를 피하지
못하고 저잣거리에서 참수 당하였다.
중종반정 후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로 추증되었으며
신당서원(新塘書院)에 제향 되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가문과 통혼관계에 있었는데
남명의 할머니가 바로 지족당의 누님이다.
지족당의 셋째아들인 조리(趙理)의 아들 광익(光珝)의 장남이 조완벽이다.
그는 진양하씨 하항의 딸을 배필로 맞이하여 1남 5녀를 두었다.
그의 아들 이름은 조구(趙球)이며 자는 수연(粹然)으로 되어있다.
조완벽은 일본에서 피로인(被擄人) 1,418명과 함께 10여 년간의
피로인 생활을 끝내고 고향인 진주로 돌아오게 되었다.
조완벽(趙完璧)의 자(字)는 여수(汝守), 호는 송강(松江)으로 귀환 후 장인인 하항이 세거했던 진주 대곡리에서 거주하였다.
대곡리 앞 강을 용당진(龍塘鎭)으로 거주하였고
묘는 하동군 옥종면 삼장리 선영에 있다.
하진보 가계도.
조완벽 가계도
<참고문헌>
ㆍ남미혜, "정유재란(丁酉再亂)기 피로인(被擄人) 조완벽의 가계와 삶" 논문.
◾송남연구소 조찬영 목사
이상탁 기자 startlee@daum.net
'신앙과 역사 & 세상 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람어 텍스트, 데모틱(민속) 문자로 기록된 시편 20편의 초기 버전과 고대 이집트 사후 세계의 주문들 (0) | 2025.01.22 |
---|---|
윤석열 대통령의 성경, 유년 시절 신앙 회복할까?(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0) | 2025.01.22 |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나라 걱정 “나라 위해 헤세드의 사랑 구해야… 기도하자” (0) | 2025.01.20 |
목사 아들,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025. 3. 16) (0) | 2025.01.14 |
피렌체의 미켈란젤로와 갈릴레이 무덤 (0) | 2025.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