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르다노 브루노는 어떤 순교자였을까?
브루노 기념비
(로마 중심가 시장 Market at Piazza Campo de'Fiori), by E.S. Cho
수도사, 철학교수였던 브루노의 화형(火刑)
16C 이탈리아 르네상스 사상을 대표하는 한 사람인 지오르다노 브루노(1548-1600)는 이탈리아 남부 네아펠(Neapel) 부근 치칼라 산 아래 놀라(Nola)에서 태어났다. 1563년 네아펠(Neapel)에 있는 도미니크회에 가입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공부한다. 1572년 여기서 그는 사제가 되었다.
하지만 B. 텔레지오의 자연주의로부터 영향을 받고 이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자 1576년 그는 수도원을 나와 이탈리아와 스위스, 프랑스, 독일을 다니며 유랑 생활을 한다.
1579년에는 유럽 개신교인들의 피난처였던 제네바에 도착하여 이탈리아 개혁교회 공동체에 입교했다고 알려진다. 이 교회의 교회 공동체와 제네바 아카데미의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교단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그는 종교개혁의 지지자라기보다 르네상스의 이단자였다. 그 뒤 그는 리용(Lyon)과 대학도시 툴루즈를 거쳐 파리에서 캄브레(Cambrai) 대학 교수로 자리 잡는다.
수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뛰어난 기억술은 그가 인간의 뇌를 하나의 생각하는 기계로 만들 수 있다는 상상까지 이르게 한다. 오늘날 돌아보면 일종의 기계론적 사고였다. 브루노의 이 같은 생각은 오늘날 브루노야말로 인공지능에 대한 과학적 상상력의 선조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는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후 그는 1583년 4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프랑스 대사의 집에 머무르면서 그 해 여름 옥스퍼드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에 관한 과목을 가르친다. 그리고 『무한, 우주와 모든 세계에 대하여』(1584)를 출간한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따라 우주는 고정된 중심이 없는 끝없는 공간이며 무한한 천체가 운동하는 영역이라고 했다.
또한 철학자로서 그는 사물의 내적 구성으로서의 원리와 외적 힘으로서의 원인을 구별하였다. 1585년 파리로 돌아온 후 그가 종교개혁의 중심 도시 비텐베르크로 초빙을 받아 겐틸리스(Gentilis)의 추천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가르친 것도 그의 철학자로서의 소양을 알 수 있다.
그는 독일의 철학적 자유함과 마르틴 루터를 찬양하기도 했다. 1589년에는 헬름슈테트의 유명한 루터 교회 대학에서 가르치고 1591년에는 개혁교회의 중심지였던 취리히에서 가르칠 수 있었던 것도 진리 안에서의 개신교 신앙의 똘레랑스와 자유함을 느끼게 한다.
철학에 능한 그의 생각은 성령에 대해서도 철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세계(우주)의 영(靈)은 무한한 우주의 제 1원인으로서 만물을 만들어 움직이게 하는 형상으로, 질료(matter)에 형태를 준다고 했다. 바른 신앙적 논증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사고의 편린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는 하다.
브루노가 볼 때 무한한 우주는 바로 이 세상의 영에 의해 전개되는 신의 발자취였다. 그리고 인간은 인식할 수 있는 능력으로 우주사물을 이해할 수 있기에 하나님의 형상(그림자)이라 했다.
브루노가 자기의 입장을 방어할 때 자기는 철학자이지 신학자가 아니며 루터적인 두 왕국론을 자연의 오성(悟性)에 따라 논증한 것이지 신앙에 따라 논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 이해가 간다
지금 보면 16C 당시의 앞서간 한 철학자가 충분히 구상해 볼 수 있는 “우주상(想)”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사색은 신앙을 초월하여 시대를 앞서 갔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간 그 점이 바로 문제였다. 수도사였던 그는 16세기 후반 태양중심설을 가장 열렬하게 옹호한 인물이었으며 우주가 수많은 태양과 행성이 있는 무한한 공간이라고 여겼다.
태양계 시스템이 태양계 밖에도 존재하고 행성이 태양계 밖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발견된 것은 겨우 1990년 대 중반이요 이것을 발견한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천문학자인 미셸 마요르(Michel Mayor,77)와 그 제자 디디에 쿠엘로(Didier Queloz,53)교수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19년이었다. 노벨상 위원회는 2019년, 1990년 대 중반 태양계 밖에도 행성 시스템이 있음을 발견한 두 천체물리학자에게 노벨상을 수여하여 지구 밖 행성 시스템에 대하여 드디어 공인하였다. 이 둘은 우주 초기 상태(빅뱅 이후 초기)를 연구한 미국 프리스턴 대학교의 이론물리학자 제임스 피블즈(James Peebles, 84)교수와 함께 201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피블즈 교수에게 절반을, 마요르 교수와 쿠엘로 교수에게 절반이 수여되었다.
브루노는 16세기 이미 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는 무한히 넓고 그 무한하게 넓은 세상 속에는 지구처럼 생명체가 사는 무수한 별들이 있을 것이라고 16세기 당시로서는 남들이 상상하기 힘든 획기적인 생각을 품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1591년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나 1592년 베네치아에서 제소되었고, 1593년 로마로 송치되어 8년 동안 옥중 생활을 하다 결국 1600년 2월 17일 형장으로 비참하게 끌려가 화형을 당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아웃 복싱하듯 “우회”하였으나 브루노는 “파이터”처럼 자기의 주장을 “우회”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순교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의 신앙과 사상이 오류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정말 세상을 전혀 오류 없이 보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가 정말 형장에 질질 끌려가 화형을 당할만한 대역죄를 범했던 것이었을까?
이탈리아는 그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네이팔에 기념비가 있고, 로마의 꽃 시장에도 그의 기념비(1889. 6. 9일)가 서 있다. “나는 가장 높고 하나님에게 가장 가까우며 우주 안에 내표되어 있는 것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는 어떤 희생양이었다고 미래의 역사는 평가할까? 과학기술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는 뚜렷한 정답이 없이 오히려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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