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겐의 구원보편론의 배경은 무엇인가요?
Q.) 누가복음 16장 26절을 보면 큰 구렁텅이로 서로 오갈 수 없음이 나오는데 오리겐의 구원보편론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오리겐이 정경이 아닌 외경을 읽었던 이유인가요?(H.)
1. 그렇습니다. 오리겐(주후 185-254년 경)의 시대는 아직 정경 66권이 확립되지 않은 시절이라 외경의 내용도 작용했겠지요.
2. 철학이 융성한 알렉산드리아 출신 오리겐의 신학은 구원의 길에 대해 (1) 믿음과 (2)지식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3. 이신칭의 교리에까지 이루지 못한 초대 교회 신학의 율법주의적인 편린을 보여줍니다.
4. 또한 그는 교회 밖 구원은 없다고 보았으며 세례는 중생의 시초이며 죄 사함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성례도 중요시했고요.
5. 오리겐이 정죄 받은 것은 사실 콘스탄티노플 제 5차 공의회(주후 553)였습니다. 즉 그의 사후(死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영혼의 선재설과 보편구원에 대한 가르침으로 정죄를 받은 것이었지요. 개신교는 콘스탄티노플 제 5차 공의회를 보편적인 에큐메니칼 공의회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6.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정죄가 역설적으로 그의 저작물들이 세상에 크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헬라어를 사용한 신학자였음에도 그의 저작으로 알려진 저작의 대부분이 라틴어로 된 것들이라 그 정확성이 의심 받기도 하고, 그의 사후 정죄 되었기에 오리겐 스스로 변론의 여지가 없어진 것도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7. 오리겐 뿐 아니라 20 세기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를 비롯한 일부 신학자들에게서도 보편구원론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공의보다,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시라는 강한 신념이 보편구원설로 가는 사람들의 신학적 집념이라고 봅니다.
8. 아무튼 오리겐은 말이 없고 그의 저작들은 자신의 헬라어 언어가 아닌 라틴어로 남아 전해지고 있기에 오리겐의 정확한 진실은 알 수 없다고 보아야겠지요.
9. 교회 역사는 정경 66권도 결정되지 않았고 미숙하고 잠정적인 신학의 여명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평가를 한 것이지요. 오리겐이 자신을 변호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역사 속 일어난 신학자들의 신앙과 신학의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아닌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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