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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신학

우리 민족은 셈족인가?-성경과 우리 민족 기원(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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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의 장남 엘람과 야벳 후손 메대의 연합 국가 페르시아 초대 왕 고레스의 묘지

우리 민족은 셈족인가?

성경은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창세기 10:22), 다섯이라 했다.

장남 엘람은 야벳 후손 메대와 함께 페르시아(오늘날 이란)가 되었고, 앗수르는 지금의 이라크 땅이요 아람은 지금 시리아의 옛 이름이다.

넷째 아들 룻은 조금 특별한 경로로 진출한다. 지금의 튀르키예 땅 옛 소아시아의 리디아(루디아) 땅으로 간다. 룻과 언어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룻과 루디아를 동일시하였다(Antiq. Ⅰ.6.4).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투스도 루디아 사람들을 셈족으로 비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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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비문도 루디아 사람을 루두(Ludu)라 하였는데 이는 히브리어 루드(Lud)와 동일한 어근이다. 폐허가 된 이곳 고대 유적지들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회당과 거주지들이 발견된다.

 

소아시아 농장 풍경

다른 셈족과 달리 룻의 후손들이 왜 야벳의 영역으로 흘러들어갔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다만 루디아는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 땅이었다. 기름지고 비옥한 초원이 널려 있고 각종 곡물과 포도와 무화과나무는 넘쳐 났다. 금이 풍부하여 금이 섞인 동전이 유통된 곳도 이곳이었다.

이곳 풍요의 땅에 언젠가 룻의 후손들이 찾아왔고 이들은 야벳의 후손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여 결국 오늘날 튀르키예의 주류에 편입되었다.

셈의 후손 룻의 정착지 사르디스(훗날 리디아 왕국의 수도). 신비감이 들 정도로 산세가 유난히 특별한 지역이다©조덕영

 

그런데 이 셈족은 아쉽게도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까지 신앙적으로 부흥을 이룬 민족이 없다. 셈이 아닌 야벳을 창대케 하신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이 셈족 후손이라는 주장을 넘어 집착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민족을 셈족으로 비정(比定)하는 주장에는 세 줄기가 있다.

먼저 심정적으로 막연히 셈족으로 보는 경우이다. 아시아인인 이스라엘 민족이 셈족이요 한때 페르시아제국을 이루었던 오늘날 이란의 주(主) 조상인 엘람족이 셈족이요 지금의 이라크 땅 주인이었던 대제국 앗수르의 주인공도 셈족이므로 같은 아시아 민족인 우리 민족도 당연히 셈족일 거라고 여기는 심정적 셈족설이다.

하지만 단지 심정적인 정서적 유대감만으로 셈족으로 여기는 이 같은 주장에는 성경적, 인종학적 결정적 증거는 전혀 없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단 지파를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보는 주장이다. 이 견해는 “단군”과 “단”지파의 언어적 유사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단 지파의 오랜 무대는 가나안 땅이었다.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이요 야곱 아내 라헬의 종 빌하가 낳은 첫 번째 아들이 단이었다. 출애굽 시 성막 제조를 도왔던 아히시막의 아들 오홀리압(출 31: 6)이 단 지파였으며, 사사 삼손도 단 지파였다(참조: 삿 13-16장).

야곱의 축복 예언 가운데 단은 독사로 말의 발굽을 물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창 49:16-17). 이 예언을 통해 단 지파는 싸움에 능하고 싸움에 직면할 처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모세는 단을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강한 사자 새끼’(신 33:22)라 묘사하고 있다. 이 예언처럼 단 지파는 요단강 동편에 있는 바산 부근의 한 지역을 점령하였다.

처음 단 지파는 유다와 에브라임과 베냐민 사이의 한 지역과 해안 평야 지대를 분배 받았다. 가나안 정착 이후 왕국 시대 이전까지 단 지파는 이렇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있었다(수 19:40-47). 이렇게 야곱과 모세의 예언대로 단 지파는 늘 가나안 땅의 블레셋과 아모리 족속과 충돌하면서 전쟁에 노출된 지파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오면 단 지파의 운명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스라엘의 12 지파 가운데 오직 단 지파만이 하나님의 종들 144,000명의 명단에서 누락된 것을 볼 수 있다(계 7:4-8).

단 지파는 여로보암 왕 시절 우상 숭배에 열심이었던 지파였다(왕상 12:29). 단 지파는 에브라임 중심의 북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우상의 미혹을 뿌리치지 못한 지파가 되었다.

에브라임 중심의 북 10개 지파가 사마리아 인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에서 단 지파는 더욱 하나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렇게 단 지파는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와서 12 지파 명단에서도 소멸되어버리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사라진 그들 단 지파가 고조선의 단군이 되었다는 것은 언어적 유사성 이외에는 논리적 근거가 없는 너무 큰 비약일 뿐이다. 설령 단군이 단 지파라 하더라도 그것은 명예는 커녕 비운의 민족이라는 멍에를 덧입을 뿐이다. 일부 일본인들조차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비운의 단 지파 후예들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참으로 애처롭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욕단을 단군과의 언어적 유사성이나 번성한 가문이라는 이유로 단군에 비정하는 주장이 있다.

에벨의 아들인 욕단의 후손들은 같은 셈족인 아브라함 조상 벨렉보다 번성한 가문이었다. 욕단(Joktan)은 13명의 아들들이 있었다(창세기 10:26~30). 알모닷, 셀렙, 하살마웻, 예라, 하도람, 우살, 디글라, 오발, 아비마엘, 스바, 오빌, 하윌라, 요밥이 그들이다. 이들이 사는 땅은 메사(Mesha)에서 동쪽 산간 지역 스발까지였다.

창세기 주석에서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이들 이름들을 궁극적으로 개인의 이름이 아닌 종족이 된 이름으로 해석한다. 이들 종족이 지금의 어느 민족을 말하고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현재의 어디를 말하는 지 명확히 밝히는 것은 어려우나 성경은 이들이 종족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별로 흩어져 살았다고 했다(창 10:31).

올브라잇이 언급한 것처럼 아람과 욕단(아라비아 지역)의 후손들이 앗수르와 남 아라비아에서 주전 1천년 이후 발견된 어떤 비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미스터리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이들 가운데 어떤 인물도 단군과 연결 시킬만한 종족은 발견되지 않는다.

구체적이지 않은 성경의 이 같은 모호한 표현이 단군을 욕단의 후손으로 해석하려는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금으로 유명한 오빌과 사베안족과 연관된 스바의 지명을 참고할 때 이들은 아마도 오늘날 아라비아 땅에 주로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벨렉의 후손들과 달리 욕단의 후손들 이름을 이렇게 상세하게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세기 기자가 성경을 기록할 당시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족속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라 본다. 이러한 해석은 헨리 모리스가 동쪽으로 이주한 함족 가나안의 아들 “신”(Sin)의 후손과 극동사람으로 지적된 “시님”(Sinim, 사 49:12)이라는 이름의 유사성과 중국 민족이 항상 “시노”(Sino-)라는 접두어로 불려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극동민족을 주로 함족으로 비정하는 것과 유사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우리 민족을 셈족 욕단의 후손이라는 전제 아래 모든 것을 꿰어 맞추려는 접근 방법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앙적 국수주의자들일수록 우리 민족을 셈족으로 비정하는데 집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셈족 아르박삿 후손도 아닌 곁가지에 불과한 욕단의 후손이라는 황당한 꿰맞추기 주장이 민족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자부심이 될까?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적 할례자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마음의 할례가 참 할례가 된 것이다. 즉 기독교적으로 볼 때 근거가 분분명한 가운데 우리 민족이 셈족이라는 막연한 집착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셈족이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인류는 한 족속이요 성경은 참 진리라는 논증이다. 성경과 우리 민족 기원의 추적도 바로 그런 성경 권위를 바르게 논증하기 위한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아브라함의 조상들도 갈대아 우르의 달신(月神)을 섬기던 우상숭배자들이었다. 심지어 육적 아브라함 후손들은 오늘날 대부분 그리스도 예수를 메시아로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굳이 우리 민족을 아브라함 계열도 아닌 욕단의 후손으로 비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을 셈족으로 비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한국 보수 기독교의 생각이기는 하다. 세계 최초의 민족 이동 대탐사를 모토로 내세우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창조사학회도 한민족기원대탐사의 부제로 “셈족의 루트를 찾아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탐사기 어디에도 우리 민족이 어떻게 셈족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증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라 왕릉에서 출토된 금관이 스키타이족(야벳족)과 연결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지리적 탐사 지역도 야벳 후손의 활동 영역인 터키와 슬라브족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과 많이 일치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야벳 후손들의 분산을 살펴보도록 하자.<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