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문화 차원에서는 민감한 주제인 기독교와 과학, 교육, 기술문명, 문화와 예술 등을 다룬다.
기독교와 과학의 문제
먼저 생명신학은 기독교와 과학의 상관관계에 있어 과정철학에 근거한 유신진화론과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집중하는 창조과학(Creation science) 운동을 서로 극단에 있는 상반된 견해로 보았다.
생명신학은 과학이 하나님의 전능성과 섭리를 입증하고 드러낼 수 있는 좋은 도구임은 분명히 인정한다. 하지만 생명신학자들은 과정신학의 진화론에도 많은 문제점이 존재함을 지적하나, 보편성(universality)과 검증성(verifiability)이라는 잣대를 무시하여 과학적 증거와 자료들을 오용(誤用)한 “창조과학자”들도 동시에 비판받아야 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면서 생명신학자들은 (1) 과학에 대한 맹신을 버리고 (2) 과학적 탐구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며 (3) 특정한 과학이론(예 진화론)에 대하여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맹신만을 드러내는 비판을 삼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내 기독교 대교단의 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백석학원이 “창조과학”과 “진화론”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코멘트를 했다는 것은 다른 교단이나 교단 신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유일한 것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맹신만을 드러내는 비판은 삼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만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교육과 기술 문명에 대해
교육에 있어서는 한국적 교육현실을 개탄하면서 기독교적 통합교육, 관계성을 중시하는 교육,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하는 교육을 표방한다.
기술문명의 발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오늘날 과학 기술의 발달이 질병을 극복하고 소통의 거리를 단축 시켰으며 새로운 기회 창출을 가져왔다고 긍정적 측면을 보는 학자들이 있는 반면 과학 기술이 인간 관계의 비인간화, 귀중한 자원의 고갈, 한경 오염, 대량 학살 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 존재에 대한 위협이 초래 되었다고 비난한다.
기독교도들의 경우도 현대 기술이 기독교적인 이해와 긴장 관계에 있다고 보는 자크 엘룰(Jacques Ellul)같은 학자가 있는 반면 과학 기술이 기독교와 조화와 공존이 가능하다는 하비 콕스(Harvey Cox)와 프리드리히 드사우어(Friedrich Dessauer)같은 학자들도 있어 기독교적 가치와 윤리를 세우기가 쉽지 않다.
기술문명에 대해 생명신학은 다양한 기술이 가져다준 긍정적 측면과 마성적(魔性的) 측면이 양면이 있음을 인정하고 (1) 기술 진보에 대한 감사 (2) 기술이 오용되지 않도록 윤리강령 등의 대비 (3) 창조신앙과 섭리에 타당한 기술 개발과 활용 등을 제안한다.
문화와 예술
문화와 예술의 측면에 있어서는 유스티누스와 터툴리안으로 대별되는 긍정과 부정의 양쪽 흐름과 리차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를 소개하면서 생명신학은 (1) 성경이 모든 문화 예술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긍정한다고 보며 (2) 하나님의 선물인 문화예술도 타락의 심각한 오염 아래 있음을 선언한다. (3) 따라서 문화예술은 다시 한번 성화를 회복함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 실천 방안으로는 (1) 문화 예술에 대한 교육 (2) 전문가들의 이론적 연구 수행 (3) 실제적 적용과 활동 (4) 문화적 변혁의 사명 등을 제시하고 있다.
2. 사회적 차원
사회적 차원으로는 교회와 정부, 통일운동, 경제, 사회복지, 여성주의, 환경에 대한 생명신학의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이 구속신학과 달리 세상의 다양한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정교분리와 종교 자유 보장과 교회와 정부 간 협력 부분과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와 저항권, 정부의 강제권 등에 대해 성경적 규범을 소개한다.
경제와 이 세상 나그네 관점
생명신학은 필연적으로 “상처 입은 치유자”요 복음의 사명과 사랑의 실천장으로서의 통일운동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 역할을 강조한다. 인간에게 있어 생명과 경제는 또한 얼마나 밀접한가! 개혁주의 전통은 물질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필요한 도구로 보면서 경제활동이 우상숭배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이 세상 나그네로서의 삶을 기억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사회복지와 여성
생명신학은 사회복지와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은 이데올로기적 여성주의운동이 아닌 본질상 동등한 관계로서의 남녀의 평등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 구별과 서로 간 존중을 통한 생명 충만한 공명을 꿈꾼다.
생태와 환경
자연에 대한 정통 기독교의 오만이 자연 파괴와 생태학적인 무책임성을 낳게 하였으므로 오늘날 환경 재난의 원천은 기독교라고 린 화이트(Lynn White, Jr.)는 주장한다. 기독교의 창조 교리가 인간을 자연과 대립시키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를 정당화하고 자연계는 모두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 화이트의 요지이다. 성경 창세기 1:28절은 바로 그 예증이라는 것이다.
프란시스 쉐퍼(F. Shaffer)는 인간 생태 환경에 대한 신념이 사람의 종교에 크게 좌우 된다는 화이트의 견해에 동의 한다. 하지만 기독교에 과오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굳이 기독교에 과오가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 자체(Christianity)와 성경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역사적 기독교 세계(Christendom)와 교회와 그릇된 신학의 과오일 것이다.
이 같은 환경 문제에 있어 생명신학은 (1) 창조 세계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과 자연의 차이 (3) 창조 질서에 대한 인식 (4) 위임받은 관리자로서의 인간 (5)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과 동료 피조물에게 유익한 길인가를 고려한 자연 관리와 개발을 촉구하고 있다.<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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