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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기독교와 세계 종교들(조직신학원론, 신학이란 무엇인가-조덕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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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들

 

1. 다원주의 시대

 

현대 유럽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년- 1998년, 영국 신학자, 선교학자, 인도 선교사/ 진보적, 보수적, 카리스마틱 개신교, 가톨릭 교인들과 이야기가 통하는 에큐메니컬 운동가 겸 선교사)의 언급

 

1) 우리가 다원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은 상식

2) 한 사회는 다양한 문화·종교·삶의 방식들을 포용해야 하는 시대

3)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다양성이 긍정되고 보존되어야 하는 시대

4) 삶의 실제로서의 다원주의와 이데올로기로서의 다원주의 구분

(1) 우리의 관심으로서 중요한 것은 삶의 실제로서의 다원주의다.

(2) 이데올로기로서의 다원주의= 다원주의가 소망되고 권장되고 진리에 대한 규범적 주장은 제국주의적이고 분열주의적인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포스트모더니즘적 세계관의 중요한 측면)

 

2. 유럽 다원주의와 종교 문제

※참조:기독교 사상가 등장 이전 불거진 세 가지 논점..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 다른 대안적 종교들과의 기독교의 경쟁

유대교를 모태로 복음 출현, 거짓 사상가 등장, 헬라 철학과 문화 속 복음의 확장, 로마 제국 안의 기독교 확장, 동남부 인디아 지역의 “쌍둥이 도마”의 교회 설립

2)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영국과 미국의 자족이고 게으른 기독교 지역주의

3) 영국으로 들어온 인도 이민자들(힌두교, 이슬람교 등)

4) 북아프리카 식민지인들의 프랑스 유입

5) 미국과 캐나다 서부 해안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도시들로 몰려든 아시아계, 중국 문화권 출신들의 유입

6) 종교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식

(1) ‘초연한’detached 접근 이해: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철학이나 사회과학 또는 느슨한 종교적 관점에서 설명하려한 사회학적 접근 방식(종교의 구속적 틀을 버리고 현상만 기술)- 종교는 다음의 4가지 것들, 즉 유일신론, 도덕적 규범, 세상에 대한 설명, 초자연적인 것 등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안토니 기든의 <사회학>)

(2) ‘기독교 신앙적’comitted 접근 방식

 

3. 종교 이해

 

1) 계몽주의(the Enlightenment, 17~18세기): 자연 종교의 타락으로서의 종교

" Aude Sapere!"

(아는데 용감하라)

“18 세기 유럽은

계몽의 시대였다 ”

​​​

(1) 계몽주의는 17-8세기 발흥한 사상으로 과학기술과 합리적 세계관으로 미신과 무지에서 깨어난 인간이 살아갈 새로운 정신세계와 문화 전체의 방향을 설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사상으로 참된 의미의 근대를 여는 정신적 운동이었다.

(2) "계몽주의의 아버지" 프랑스 철학자, 사상가, 정치가였던 볼테르(1694-1778)가 영국 무혈혁명(1688, The Bloodless Revolution)의 결과를 영국서 지낸 추방 기간(1726-1729)에 목격하다!

(3) 이 사상은 탈기독교화의 사상적 배경이 된다.

 

프랑스 유명인사들이 잠든 팡테온 지하의 볼테르 기념상

계몽주의의 이상

(1) 전통과 봉건적 구습과 미신과 독단에 매인 몽매(夢寐)를 자연의 빛 즉 이성에 비추어 인간의 존엄을 자각하고자하는데 두었다. 즉 계몽적 주체는 이성적 자아(rational subject)였다.

(2) 계몽주의의 유토피아적 희망을 나타내는 5가지 말: 이성, 자연, 행복, 진보 그리고 자유

계몽주의의 특징

(1) 이론적인 면=과학적 자연주의, 유물론적 실증주의, 전통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 이성의 표준 시도

(2) 윤리적 측면=상대주의적 이성, 공리주의(국민 행복 총량이 클수록 좋은 사회)

(3) 종교적 측면=기성종교 배격, 이성종교 내지 무신론

(4) 역사=진보적 이상

(5) 계몽주의의 수단=이성의 개혁을 실행하는 주요 수단은 교육이다!(루소-페스탈로치)

계몽주의의 의의

(1) 인간 이성의 신뢰: 하나님 없이 가능해진 것들이 많음을 발견(예:천동설)

(2) 휴머니즘(인본주의, 인간주의, 인도주의) 시대의 체계화 본격화 개막(19세기 전성기)

(3) 구애 받지 않는 성실함으로 지적 기능을 발휘하려는 영혼의 결단(칸트)

계몽주의의 영향

(1) 계몽주의란 무엇인가? 미숙의 굴레(주로 기독교)를 벗는 것

(2) Aude sapere(아는데 용감하라)

(3) 종교에서 인간으로 사상의 중심 이동:

광범위한 지적 자율성 아래 신앙과 계시를 노골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았으나 볼테르 같은 반기독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인간 스스로의 영광 추구 시작

기독교에의 영향

(1) 인본주의에 굴복한 19C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을 예비하다

*신앙의 목적은 인간화(humanization)

* 신앙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

* 축복위주의 보수적 신비신앙도 알고 보면 미신적 인본주의이다.

* 인간은 신을 섬기기 위한 노예가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행복과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 위대한 존재가 되다.

인본주의 자율의 결과: 인본주의 자율의 어두운 면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자리는 어디?

신앙의 자율화 시작

(2) 소외!(alienation):

인간 이성의 종착역은 결국 불안, 초조, 죄와 죽음 앞에 막다른 골목 같은 것!

(3) 인간의 radical은 실은 조급함의 발로(하나님 없는 조급한 계몽사상의 이성과 자유와 인권의 종착지는 비극):

프랑스 인권변호사 로베스피에르(1758.05.06. ~ 1794.07.28.)의 단두대 역설!(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자유와 인권을 전하는 의로운 탈북자들을 핍박하고, 최악의 반인권 지도자 김정은은 두둔하는 역설)

 

2)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 1804-1872): 인간 감정의 객관화로서의 종교

(1) 대학에 들어가 신학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다.

(2)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 (1841)

신학에 인간성을 부여

인간은 그가 이성적인 한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자신의 사고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

“종교는 무한에 대한 의식(意識). 따라서 종교는 "의식의 무한에 대한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무한에 대한 의식에 대해서는, 의식하는 주체는 자신의 객관에 따라 자기 본성의 무한성을 지니고 있다.”

신의 창조물은 신의 일부로 남아 있고, 동시에 신은 그 창조물보다 위대하다는 헤겔의 명상적인 신학

<참조: 위키피디아>

1부

책의 1부에서 포이어바흐는 "종교의 진실 혹은 인류학적 본질"을 주제로 내용을 전개한다. 그는 "오성(悟性)을 지닌 존재로서" 또는 "법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서", "사랑으로서" 등등의 여러 측면에서 신을 다룬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지성의 능력을 신의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인간이 신보다도 의식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논의한다. 인간은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다. 포이어바흐는 모든 측면에서 신은 인간 본성의 욕구나 특징에 대응한다고 했다. 그는 만약 인간이 신 안에서 만족을 찾으려 한다면, 신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신은, 인간의 내적 본성을 외부로 투사(projection)한 것이다. 신과 초월적인 존재는 인간의 자비심의 측면에 의존하며, 이 투사를 포이어바흐는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표현하였다. 포이어바흐는 "자비롭지도, 공정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신은 신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이 특징들은 그들의 신심 깊은 관계 때문에 갑자기 신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 지성을 갖추고 있고 신성함의 의미를 종교에 적용시키지만 종교가 인간 자체를 신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특징들은 그 자체가 신성하기 때문에 신을 신성하게 만들어준다.

 

종교로 이끄는 힘은 비록 신적인 형태에 신성함을 부여하나, 포이어바흐가 설명하기로는 신은 모든 형태의 인간으로 완전히 행동하는 존재이다. 신은 "[인간의] 구원의 원리이며, [인간의] 좋은 성질과 행위를 가지며, 그 결과로 [인간의] 선한 원리와 본성을 지닌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 종교의 우상에게 특성을 부여하게 하는데, 이런 특성이 없을 때에 신이라는 상징은 단지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게 되고 신의 중요성은 쓸모없어지며 더 이상 신의 존재에 대한 감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이어바흐가 말하기를, 인간이 신에서 모든 특성들을 제거한다면 "신은 인간에게 이제 부정적인 존재가 될 따름이다." 덧붙여 인간은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신은 특성을 부여받고 매력적인 존재가 된다. 신의 존재를 창안함으로써 신은 인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무욕구의 자기충족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과 신은 서로 갈라져 상관이 없게 된다.

 

2부

책의 2부에서 그는 "종교의 거짓 혹은 신학적인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다시 말하자면 인간에 비하여 신을 분리된 존재로 보는 시각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잘못된 신앙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도덕 관념을 해칠 뿐 아니라 인간의 가장 신성한 감정인 진리에 대한 감각을 망치고 파괴하는 계시에 대한 신앙이나, 성만찬과 같은 성사(聖事,Sacrament)에 대한 믿음은 "미신과 부도덕으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종교적인 물질주의의 한 단면으로 다가온다.

 

2부에서는 이전 설명을 철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요점. 포이어바흐는 신이 유일하게 하는 것은 "도덕성과 인간의 영원한 구원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실 자기 자신이 목적일 따름이다."왜냐하면, 인간의 행위들은 신에게 놓여있기 때문이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을 극단적인 관념론자라 선언. 실제로는 모든 존재들이 감각을 통해 이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겔에 의해 감각이 무시당해왔다는 것. ​

 

포이에르바하에 의하면, 종교도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발생. 인간이 신을 믿는 이유는 행복해지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없으면서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상태, 예컨대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행복의 상태를 신을 통해 실현코자 한다. 그러므로 신이란 현실적인 존재로 탈바꿈한 인간의 소망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신을 창조한 셈이 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종교를 통해 소망을 충족시키려는 유치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제 종교의 환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의 행동 가운데서 인간의 소망을 실현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난폭한 자연의 위력이나 맹목적인 우연의 힘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길이다.

 

신체를 지니고 자연 가운데서 존재하며 행동하는 인간, 인간이 감성적 주체로서 파악되는 자연주의적 휴머니즘의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포이에르바하가 말하는 인간학적 유물론이다.

 

3) 마르크스: 사회경제적 산물로서의 종교

(1) 포이에르바하의 이념들에 근거한 종교 이해 개진(1844년 필사 원고)

(2) 마르크스의 명제: “종교는 민중의 아편”

마르크스는 1843년 「독-불연보」에 발표한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이라는 논문에서 종교에 대해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정신을 상실해버린 현실의 정신이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3) 『공산당 선언』(1848):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 이외의 모든 “영원한 진리, 모든 종교와 사상들을 새로운 토대 위에서 구성하는 대신에 폐기”하고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적 경험과 반대로 행동한다”고 선언

(4)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그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과학으로 인정받는 것과 같이 유물사관도 과학적 사회주의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때에 과학이라는 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경험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 또는 진리를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적극적으로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끌어들여 유물사관을 유물진화론으로 발전시킴. 이것을 과학적 사회주의라 주장

 

(6)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기에다 레닌주의를 덧붙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최고 수준의 ‘과학적 무신론’이라고 주장.

4) 프로이트(1856-1939): 희망 충족(Wish-Fulfillment)으로서의 종교

(1) 종교적 이념이란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강하고 절실한 희망들의 충족

(2) 쉽사리 병리학적 무질서로 타락할 수 있는 종교적 희망

5) 에밀 뒤르켕(1858-1917): 종교와 의식ritual

(1) 막스 베버(1864-1920)와 현대 사회학 이론 창시

(2) 호주 토템 신앙 연구

(3) 종교적 전통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신화보다 제례 의식이 중요

6) 바르트(1886-1968)와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칼 바르트(1886-1968, 하나님의 자유로서의 초월성)

20세기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칼 바르트처럼 한국 신학 안에서 극명하게 평가가 나누어지는 신학자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존주의, 기독론중심의 신학자, 신정통주의, 변증법적 신학, 위기의 신학, 반자연신학주의자, 신보편구원설 등 그를 지칭하는 신학의 색깔이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국내적으로 바르트 신학은

비판적인 교단(예장 고신, 합동, 합신, 예장 개혁, 예성 등)이 있는 가하면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교단(예장 통합, 기성, 한신 등)의 신학자들로 나누어집니다.

또한 같은 교단 안에서도 신학자들마다 바르트에 대한 입장이 서로 갈라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 강좌는

바르트에 대한 개인적인 직접적인 옹호나 비판이 아닌

배우는 목회학 과정의 신학도들에게 단순한 정보 제공을 통해

앞으로 여러분들의 바른 신학적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1. 생애

1) 1886. 5.10. 스위스 바젤 개혁파 교회 목사(Fritz 바르트) 장남. 소년, 청년기 베른.

2) 1904. 베를린대. 종교사학파 구약학 궁켈(1862-1932), 하르낙(1851-1930) 사사

3) 튀빙겐에서 보수신학자 슐라터(1852-1938), 바르부르그 대학 헤르만 사사(당시 불트만, 고가르텐 동문)

4) 1911-21. 스위스 자펜빌 목회

5) 1911년 로마서 주석 출판("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과 인간, 시간과 영원 사이의 간극"-변증법 사용-,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가톨릭 신학자 Karl Adams)

6) 1921 괴팅겐 대, 1925 뮌스터 대 교수, 1930 본 대학 교수 취임(1932, 모차르트 음악 들으며 <교회교의학> 집필 시작 1968까지 계속, 8천면에 달하는 12권 미완성 저서)

7) 1933년, 나치가 복음교회 사실상 지배(롬 13:1). 1933년 복음교회는 75% 나치 지지

8) 당시 제자 본 회퍼(1906-1945)- 본 대학

9) 1934. 5. 31. 바르멘 선언 주도- 5개 조항(히틀러 정권에 대한 충성 서약 거부와 고백 교회 운동)-외국인으로 추방

10) 고향 바젤로 돌아와 신학 강의

11) 종전 후 다시 독일(1946-47) 교의학 강의

12) 바젤대 강의, 1968. 12.10일 83세 일기로 세상 뜨다. 명예박사는 많으나 학위는 못함

2, 신학적 방법(긍정과 부정)

1) 부정: 자연신학에 대한 회피

2) 긍정: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만남

3. 하나님 말씀과 성경

1) 하나님 말씀 세 가지(계시·복음 자체로서의 그리스도, 성경, 교회의 복음 선포 곧 설교)

2) 성경과 하나님 말씀의 구분

4.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 신학

1) 바르트 신학 구조의 핵심(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중심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신학의 기본으로 간주-네 가지 주제=(1) 하나님의 말씀론, (2) 신론, (3) 창조론, (4) 화해론==> 성령은 제 2장 하나님의 계시 제 1부분 §12. 성령 하나님과 제 3Part 성령의 유출 §16. 계시의 주관적 실재와 계시의 주관적 실현가능성으로서의 성령 등에서 다루고 있다)

2) 삼위일체 회복(존재 양태Seinsweise로서 위격보다 양태라는 말을 좋아함)

5.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

1) 신적 탁월성으로서의 자유로운 사랑

2)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

6. 선택 교리

1) 예수 그리스도만이 배척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2) 보편적 구원apokatastasis 문제에 대한 에밀 부룬너의 질문에 답변 거부

칼 바르트(사진 우편)와 불트만(유광웅 교수님 제공)

7. 바르트의 성령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너무나 힘들기만 하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로 인해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시대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분이 계신지를 알도록

눈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시여, 우리에게로 돌이키소서!"

"Komm, Schöpfer, Geist" (K. Barth & E. Therneysen, "Come, Creator, Ghost", 1924, 170)

-"Komm, Gott Schöpfer, Heiliger Geist"

( "Come, God Creator, Holy Ghost")-

<라틴어 "Veni Creator Spiritus"를

기반으로

마틴 루터가 쓴

오순절을 위한 루터교 찬송>

https://blog.naver.com/davidycho/221632019969

 
 

개신교 최초 예배 풍경의 원형이 남아있는 독일 북부 한자동맹 도시 뤼벡의 루터교회 예배 풍경(동영상)

한자동맹의 도시 뤼벡의 개신교 루터파교회 개신교 최초 예배 풍경의 원형이 남아있는 독일 북부 한자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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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인식(Gottes Erkenntnis)의 주체로서의 성령

(1) 계시: 성령은 계시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을 혼동하는 신 프로테스탄트 신학에 대한 비판(<로마서 강해 1판>, 1919)

(2) 구원: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갈 4:6; 롬 8:9; 빌 1:19; 벧전 1:11)이다.

*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결단에 대한 응답으로 인간의 결단을 통해 새 창조의 길을 여시는 영

* 즉 죄로 물든 세상과 부활 하신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시는 새로운 세계 사이의 결단.

* 성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믿음이라는 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시는 영이시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길을 여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성령이 그 계시의 주체다.

(3) 그리스도인의 삶: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새롭게 하는 영’이다.

바르트의 성령론은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중심에 있도록 하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제자직(Discipleship, Nachfolge)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바르트에게 있어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끄는 새롭게 하는 영이다.

2) 성령과 그리스도인의 삶(Der Heilige Geist und das christliche Leben, 1928, 뮌스터)

(1) 창조주 :

창조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인간이 개념 지을 수 없는 하나님의 유일한 현실이자 현존과 작용에서 계시의 사건 안에 있는 주관적 측면

(2) 화해자(화목자, Versöhner) :

* 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심판하시는 분이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통해 스스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성령 앞에 설 때 인간은 죄로써 하나님에 반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 하지만 은총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말씀을 통해, 혹은 그리스도를 위해” 칭의와 성화의 주체이다. 인간은 이에 순종함으로 응답할 수 있다.

(3) 구원자(Erlöser) :

* 성령은 약속의 영이다.

*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인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희망 속에서 진리 안에서 새로운 삶으로 인도되며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 즉 성령은 인간에게 “오시는 분”으로 존재하신다. 죽 성령은 주어진 것(선물, datum)이 아니라 주어지시는 분(dandum)이며, 이미 성취된 것이 아니라 ‘약속’(verheißung)으로 알려지는 분이다(Der Heilige Geist und das christliche Leben, 1928, 465).

뤼벡의 교회 풍경

3) 성령과 교회

(1) 성령은 교회를 부르시고 세우시고 파송한다

(2)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 즉 자신의 지상적-역사적 실존형식인 거룩하시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창조하시고 날마다 새롭게 만드시는 일깨우시는 영이시다.

(3) 성령은 공동체를 세우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친교로 이끄시는 영이다.

(4) 이 특별한 공동체는 성령을 통한 특별한 결속을 통해 고양(高揚) 되어 ‘성도들의 교제(communio sanctorum)’이 일어난다.

(5)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성령은 이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 교회가 되도록 격려하신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예수 자신이 주체이시다. 이렇게 예수의 영이 살아있는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개신교 초기 풍경이 남아있는 독일 뤼벡의 마리엔 교회(루터파)

4) 성령과 자유

(1)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신의 존재 방식”으로서의 성령의 자유:

신성(Gottheit)은 하나님의 자유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전제조건이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신성을 통해 하느님은 하느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본래적 하나님 자신이다.

(2) 자유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성령:

즉 성령은 ‘주격’, ‘주관적 동기’로서 다른 두 존재 방식(성부·성자)와 함께 세계의 영도, 교회의 영도, 한 그리스도인의 영도 아닌 자유하신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 자신이다.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현 발현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나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경배되고 존경 받을 분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성, 즉 자유의 영의 특성이다.

(3) 헬라어 프뉴마(Πνεύμα, 히브리어 "루아흐")를 통해 본 성령의 자유:

* 기운, 입김, 숨, 폭풍, 바람, 영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성령의 어원을 통해 예수님은 요한복은 3장 8절에서 성령의 자유를 말씀하신다.

*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그와 같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내재적 삼위일체 안에서의 성령의 자유로운 특성을 알 수 있게 한다.

(4) 경륜적 삼위일체 속 인간을 향한 자유의 영 :

성령은 인간을 “성령을 받고 성령을 소유하며 성령 안에서 살게 한다”.

(5) 진리의 영 안에서 비로소 자유인이 된 인간 :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기에 우리의 자유는 언제나 길이요 진리인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객체로 되지 않고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요 8:32).

(6) 즉 성령의 사역은 자유가 없는 것에서는 전혀 역사하지 않는다.

(7) 인간에게 자유를 주어 창조하신 하나님

5) 성령과 성경

(1) 하느님 말씀 신학자로서의 바르트: 선포된 말씀(설교-성령), 기록된 말씀(성자), 계시된 말씀(계시-성부)

(2) 성부-성자-성령의 일반적 순서가 아닌 선포된 말씀으로 시작하는 바르트의 성령론 전개 : 성경의 말씀 선포를 통해 하나님 말씀의 인식을 가능케 해 주는 성령

(3) 인간은 결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됨은 우리 인간의 판단이나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지와 결정과 주권에 달려 있다. 성경은 성령을 증거하는 책이다.

(4) 문자(γράμμα)는 사람을 죽이지만 성령은 사람을 살린다. 성령의 역사(조명)가 없으면 성경이 아무리 그 근원이 거룩하고 그 영광이 클지라도 그 글을 읽어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고후 3:14).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다(고후 3:17).

(5) 성경의 권위에 대한 성령의 역사 :

* 성령은 성경의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도록 역사한다.

* 그런데 가톨릭 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성령에 두지 않고 교회에 두었다. 정통주의는 문자에 성령을 국한시킴으로 하나님의 자유한 은총을 상실하였고, 슐라이엘 마허는 감정과 신앙에 말씀을 혼합하여 “주관주의”에 빠져버렸다.

7. 평가

1) 초월성의 회복

2) 세상과 인간 희생: 하나님을 큰소리로 말하며 정작 하나님의 세상과 자연과 인간에 대해 말하려 했던 실수

※본회퍼

1) 그리스도가 선포되고 있는 현대 세계의 문화적 상황

2) 히틀러 암살 음모 연루로 체포(1943. 4.5)

3) 인간은 본래 종교적

4)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 비판

5) 비종교적 그리스도교(바르트의 '종교의 제거' 개념

6) 전통 기독교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존 로빈슨, 1960년대)로 연결(신은 죽었다! 신 죽음 운동)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들

1. 특정주의(배타주의)Particularism

1) Sola Scriptura

2) Extra Ecclesiam Sola Salus

3)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배타주의(exclusivism)라는 말에 대해 논쟁적이라는 이유로 제외.

4) 하지만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도그마틱한 또는 배타적 진리임은 분명

2. 다원주의Pluralism

1) 존 힉(1922-)의 God and the Universe of Faith(1973)

2) 그리스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3) 하나님의 본성은 보편적 구원 의지

4)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면 단지 소수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 계시를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5) 점점 정교화되고 차별화된 이성적 자연종교 관념과 대단히 유사하여 무신론적 종교전통(불이론적advaitin 힌두교‘범아일여梵我一如’우주 근본원리인 '범'과 영원하고 불변하는 참 존재인 '아'는 하나! 이렇게 내가 바로 브라흐만<Brahman, 범, 창조 신,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 중 창조 신 >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곧 무명無明이요, 이를 몸소 체득하여 깨닫는 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다., 근본·상좌부·초기Theravada 불교) 등에 대해 난점을 가짐

3. 포괄주의Inclusivism

1) 예수회의 칼 라너(<신학탐구> 제 5권)

2) 기독교가 계시 중심의 절대종교인 것은 사실이나, 이 계시는 특정 시점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 사람들이나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의구원 문제에 있어 창조주 하나님 의지와 상충

3) 비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종교적 전통의 오류와 결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그들에게 알려지기 전까지는 이것들이 효력이 있음 하나님의 구원 은총을 중재할 능력이 있다.

4)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논리

5) 다른 종교적전통들은 기독교에 의해 대체되지 않을 것이요, 종교적 다원 주의는 인간 존재의 한 모습으로 지속될 것이다.

6) 제 2차 바티칸공의회(1965. 10.28)

(1) 카톨릭교회는 종교들의 참되고 거룩한 그 어떤 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2) 가톨릭 가르침과 다를지라도 진리의 광선을 반영하는 삶과 행위의 방식. 규범들과 교리들을 존중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 14:6) 그리스도 선포와 서포해야만 하는 의무를 우리는 안고 있다.

(4) 하나님께서 만물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고후 5:18-1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경건한 삶의 충만을 발견한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