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학/조직신학

"챗GPT", 설교와 목회에 미칠 영향(과학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이해, AI시대의 목회와 설교에도 타당할까)

728x90

"챗GPT", 설교와 목회에 미칠 영향(자연과학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이해, AI시대의 목회와 설교에도 타당할까)

 
 

챗GPT 시대의 설교와 목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벧전 3:15)

4. 챗GPT 시대, 설교와 목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신학은 가끔 예언자적인 예측의 짐을 져야 할 때가 있다. 챗GPT가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통해 쌍방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던 시절 일부 고민하고 당황한 점도 있었으나 결국은 목회와 설교 준비에 활용하게 되었던 것처럼 목회자들은 AI라는 이 도구도 자연스럽게 활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챗GPT류의 대화형 로봇들은 목회와 설교 환경뿐 아니라 상상도 못할 세상의 놀랍고도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이를테면 신앙의 유무를 떠나 이제 사람들은 참 된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도 AI에 질문할 뿐 아니라 신의 존재도, 삼위일체의 판단도, 기도문도, 목회와 설교의 가치 판단도 AI에 자연스럽게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이비 기독교 정보도 더욱 범람하게 될지도 모른다. 악마의 선전선동술은 컴퓨터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유혹할 것이다. 결국 AI로 손쉽게 설교문을 작성하고 목회 계획도 AI의 손을 빌리려던 일부 목회자들은 크게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자들은 목회자의 설교의 표절 여부나 목회에 대한 가치 판단까지 AI에게 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AI는 갈수록 정교한 모범답안(진리 답안이 아님)만을 제공해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가 과거 자연과학 영역에 대한 대응에 있어 늘 미숙한 대응을 해왔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경솔하게 AI에 의지한 목회나 설교에 익숙해지다가는 목회자 못지않게 AI를 수시로 활용하는 신자들에게 금 새 목회자의 신앙과 신학의 내공이 들통나버리는 난감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에 목회자들은 더욱 말씀과 기도에 충실하고 참 된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설교와 목회에 있어 AI정보의 딜레마요 패러독스요 반전인 셈이다. 

 

AI가 세상의 변혁을 가져올 것은 분명하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본질적 변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AI의 기능을 활용하려 들 것이고 누군가는 AI의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기를 시도할 것이나 이것이 인간 본성의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경제의 양극화와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도 있고 인간은 여전히 죄성을 가지며 유한함에 외로워하고 슬퍼하며 영원한 것을 희구할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늘 과학에 밀려 어리석은 대응을 해 온 기독교 역사를 늘 반추할 뿐 아니라 AI시대를 어떻게 맞을 것인지 기도하고 연구하며 준비해야 한다. AI는 이렇게 목회자들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AI에 능수능란한 신자들보다 더욱 다방면에 탁월하고 철저한 참 된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서를 내밀고 있다.

 

설교자들은 디지털 시대에 세뇌되어 과학을 마치 절대선, 절대군주처럼 여기며 설교하는 누(累)를 범하지 않도록 늘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내재(內在)적 도구에 불과한 자연과학으로 초월의 창조주를 설명할 수 있다는 과욕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과학에 묶인 설교보다 과학을 초월한 전능자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자연과학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이해, AI시대의 목회와 설교에도 타당할까(Deus Semper Maior-모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당연히 그렇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역사, 모든 민족,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식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만물의 하나님이다. 성령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상관없이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 진리를 계시하여 왔다. 또한 신학도 늘 종교 개혁 시대 하나님의 사람들의 해석이 탁월한 성령의 지혜임을 논증하여 왔다. 종교개혁시대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성경을 해석했으며, 그것은 오늘날 AI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살펴보려 한다.

 

종교개혁의 주요 인물 칼빈(왼쪽)과 루터(중앙) 그리고 멜랑흐톤(오른쪽)/독일 작센-안할트주, 비텐베르크 멜랑흐톤하우스 전시물©조덕영

1) 창조와 피조 세계를 결코 혼동하지 말라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계시의 종교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창조주요 인공지능을 만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유한한 피조물인 것이다. 이 같은 텍스트(Text)와 컨텍스트(Context), 본질과 비본질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AI는 결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한 톨도 만들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고안한 장치일 뿐이다. 

 

2)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

AI의 디테일한 속성은 다시금 시한부 종말론자들과 같은 바른 신학을 이탈한 세력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어 교회 분열을 자극하는 수단과 도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계시록 13장의 666을 컴퓨터, 바코드, 신용카드, 스마트폰, 베리칩 등 과학기술에 잘못 적용하여 기독교를 우스꽝스러운 종교로 만든 일부 기독인들은 AI에 대해 또 얼마나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될까? 목회자들은 이 시한부종말론의 파고가 AI시대 또다시 시작될 것임을 인식하고 준비하고 선지자적 성경의 바른 진리를 명료하게 선포해야 한다.<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