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페트라Petra(고대 나바테아Nabataean 왕국) 풍경
나바테아 왕국은 예수님 탄생 전후 지금의 요르단 남서부 페트라를 수도로 존속하던 국가였다.
주전 6세기 무렵 부족국가로 시작되어 주전 2세기 전반 왕정국가의 형태가 갖추어진 나라였다.
히브리인들과 근접해있었음에도 이들의 종교는 전혀 달랐다. 이들은 산정에 산당이 있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바위산을 배경으로 성립된 왕국이기에 석주 숭배 사상이 강했다고 알려져 있다.
건조한 바위산 지역이었음에도 이들은 지정학적 위치를 잘 살려 무역과 상업으로 번창하게 된다.
바위는 그대로 이들 삶의 터전이었다.
유목과 대상무역을 통해 이들 나바테아 상인들은 에게해, 이탈리아 반도, 페르시아만 해안 등으로 진출하여 거점을 확보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도
이 지역과 나바테아인들의 소문을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예수님 탄생 시 유대 통치자였던 헤롯 대왕(주전 약 73-74~주전 약 4년)과 사마리아인 아내 Malthace 사이에서 난 아들인 갈릴리와 페레아Perea 지방 분봉왕 헤롯(일명 헤롯왕 안디바, 주전 약 21-주후 39년)의 첫번째 아내가 바로 나바테아 왕 Aretas 4세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헤롯 안디바는 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이복 형제인 헤롯 2세(일명 빌립왕, 마 13:3; 막 6:17)의 아내이자 조카인 헤로디아의 매력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였다.
헤롯 안디바는 바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전략에 말려
이 불법 결혼을 책망한 세례 요한의 목을 벤 그 왕이다.
이 분봉왕은
"예수의 최종 재판"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미룬다.
야비하고 잔인하고 비열한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법의 원조였다.
주후 36년 분노한 나타테아 왕은
안디바 군대와 전투를 벌여
억울한 딸에 대한 복수전을 펴 승리한다.
모두 생전의 예수님 생애 전후 있었던 사건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종교는 고대 아랍인들의 종교를 기반으로 헬라의 디오니소스에 해당하는 두사레스와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알라트이를 섬기며 바위산의 석주 숭배와 더불어 산당 제사를 지냈다. 왜 성경이 산당 제사를 경계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바테아 왕국은 팔레스틴지역처럼 주전 63년 로마에 굴복하여 근근히 독립을 유지하였고 주후 106년 라벨 2세때 로마에 완전히 복속되어 아라비아 주에 병합되었다.
그리고 무역(대상)로가 육로로부터 홍해로 옮겨지면서 3세기 무렵 세퇴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그 폐허의 모습을 통해 과거의 이 독특한 왕국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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