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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4개 루트 중 하나는 바로
이 아를의 알리스캉 로마 묘지에서 시작한다
알리스캉(Alyscamps)로마 공동 묘지 Alyscamps는
아를의 구시가지 성벽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큰 로마 묘지이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묘지 중 하나로, 이름은 라틴어 Elisii Campi(즉, 프랑스어로 Champs-Élysées, 영어로 Elysian Fields)에서 유래한 프로방스 Occitan 단어 Aliscamps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중세 시대에도 유명했으며 단테의 지옥(Inferno)에 두번이나 언급되었다.
로마 도시는 전통적으로 도시 경계 내에서 매장을 금지했다. 따라서 도시 바로 외곽의 도로에는 무덤과 영묘가 늘어서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Alyscamps는 거의 1,500년 동안 아를의 주요 묘지였다.
이곳은 도시 성문으로 이어지는 아우렐리아누스 길의 마지막 부분이며 단순한 석관에서 정교한 기념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념물을 보유한 부유한 시민들의 묘지로 사용되었다. 1981년 Alyscamps는 아를, 로마 및 로마네스크 기념물 그룹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분류되었다.
Alyscamps는 4세기에 도시가 기독교화 된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기독교인을 박해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303년에 참수된 로마 공무원 성 제네시우스는 그곳에 묻혔고 빠르게 이단의 중심이 되었다. .
아를의 초대 주교로 추정되는 성 트로피무스도 이곳에 묻혔다. 그리스도 자신이 의식에 참석하여 석관 뚜껑에 무릎 자국을 남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지역은 유명한 매장지가 되었고 무덤들이 곧 증가한다.
4세기에 이미 수천 개의 무덤이 있었고 석관을 3층으로 쌓아야 했다.
Alyscamps에 매장되는 것이 소원처럼 퍼져 유럽 전역에서 시신이 이곳으로 운송되었고 Rhône의 뱃사공은 관을 Arles로 운송하여 많은 이익을 얻었다.
Alyscamps는 1152년 대성당에서 Saint Trophimus의 유물을 제거함으로써 명성이 약해졌지만 중세 시대까지 묘지의 명성은 계속되었다. 르네상스 기간 동안 묘지는 체계적으로 약탈되었으며, 시의원은 석관을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장례용 돌을 저명한 방문객과 지역 주민들에게 선물로 제공했다.
1888년 10월 말에 고흐와 고갱은 Alyscamps를 탐험을 위한 첫 번째 장소로 선택하여 나란히 그림을 그렸다. 이때에는 Alyscamps가 예전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 이후로 야외 박물관으로 다소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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