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조상숭배 풍습에 대한 서구의 인식 변화
과거에는 우상과 미신 섬기는 미개함 표본 여기다가
종교다원주의와 PC 운동 등 영향으로 분위기 바뀌어
조상숭배 서사 내세운 영화, 동아시아 몰이해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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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자리잡은 보수적인 중국계 가문 소녀의 사춘기 성장 이야기를 다룬 디즈니-픽사의 새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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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미디어가 본 조상숭배: 동아시아 종교문화에 대한 서구의 호기심이 집중된 조상숭배 풍습
<메이의 새빨간 비밀>에는 중국의 전통 종교문화를 이루는 세 축(도교, 유교, 불교) 가운데 도교와 유교적 요소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
이 가운데 유교적 종교문화의 요소는 주로 메이의 가족이 운영하는 사당에서 이루어지는 조상숭배 풍습을 통해 잘 드러난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메이 가족의 조상신을 모신 중국식 사당은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의 투어 장소로 이용될 만큼,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으로 소개된다.
서양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중국의 종교 전통은, 소림사로 대표되는 불교의 사찰 문화를 제외한다면, 단연 제사로 대표되는 조상숭배 풍습이다.
헐리우드와 미국 OTT 콘텐츠에서 중국 전통문화를 소개할 때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거의 예외없이 등장한다. <뮬란>에 등장하는 사당 조상신들의 회합 장면과 불교의 ‘나무아미타불’ 같은 염불 글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면 태극, 팔괘, 부적술, 진법 등 도교의 술법(術法)과 연관된 요소들이 미국 콘텐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아무래도 서구 및 영미권 관객들과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불교와 조상숭배보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질적 측면이 더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인 듯하다.
그나마 넷플릭스의 <마르코 폴로>(2014), 디즈니-마블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에 도교적인 요소들이 이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편이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에도 도교적 요소는 기본적인 기 사상이 반영된 정도로 그치고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국의 전통 종교문화에 대한 서구와 중국의 호기심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발견한다. 중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국의 전통 종교문화를 묘사할 때는 사실 불교나 조상숭배보다 도교의 술법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만큼 불교적 풍습이나 유교적 풍습은 그들의 생활에 깊이 배여 있어 더 이상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와 달리 기독교적 영혼 이해를 1,600년 이상 간직해 온 서구 문화권에서는 조상숭배라는 풍습이 직관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사실 서구에도 조상숭배와 비슷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숭배하는 종교문화가 있었다.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발흥하고 전파되기 이전의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생전에 영웅적인 업적을 남긴 이들의 영혼이 죽은 뒤 신좌(神座)에 오른다고 믿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들을 무던히도 괴롭혔던 황제숭배 종교도 이 사상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서구의 조상신 숭배사상은 중세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성인과 성유물 숭배 사상으로 잔존해 있다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개혁과 함께 개신교 내에서 사라졌다. 이후 조상숭배 사상은 서구문화 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종교전통이 되었고, 더 나아가 우상숭배로 규정되면서 아예 기피되는 풍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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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숭배를 위한 가내 사당을 투어 장소로 운영하는 메이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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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실 속 조상숭배: 쇠퇴 혹은 소멸이 예정된 조상숭배 풍습과 제례 문화
그래서 조상숭배 풍습은 처음 선교사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에 선교를 하러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현지인들과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부각되었다. 서양인 선교사들은 각자 신앙과 신학적 소양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다수가 조상숭배 풍습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배격했다.
개신교 선교사들보다 한 발 앞서 동아시아 선교활동을 펼친 가톨릭 교회 측에서는 선교사 개인의 견해에 따라 조상숭배에 대해 어느 정도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보다 늦게 활동을 개시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조상숭배 풍습에 강한 거부감을 표했다. 그들의 눈에 조상숭배 풍습은 개화되지 않은 우매한 우상숭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선에 들어온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 역시 조상숭배와 제사 문제로 조선인들과 많은 갈등을 겪었다. 무당들이 주도했던 샤머니즘 풍습 못지않게 조상숭배 풍습도 선교에 큰 장애물이 되었다. 특히 조선인 가족의 테두리 내에서는 조상숭배 풍습과 제례문화가 기독교 신앙을 후안무치한 믿음으로 매도하게 만드는 제일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듯 100여 년 전, 아니 60-7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아시아의 조상숭배와 제례 문화는 서양인들의 눈에 우상과 미신을 섬기는 미개함의 표본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그래서 서구의 미디어 콘텐츠 안에서도 조상숭배는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대변하는 요소로 채용되곤 했다.
그러나 최근 서구 미디어 콘텐츠를 보면 <뮬란>이나 <메이의 새빨간 비밀>에서와 같이, 중국의 조상숭배 풍습이 우상숭배에 대한 기독교적 거부감이나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해서 묘사되지 않는다. 지금은 동아시아의 조상숭배 풍습이 고유한 문화적 다양성을 대변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 전반부에서는 메이 가족의 사당 운영과 조상신에게 향을 올리며 절하는 풍습이 메이를 얽어매는 전통 문화의 족쇄로 그려진다. 그러다 메이와 어머니 밍이 서로의 성장 배경에 자리잡은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가면서 메이 역시 가족의 사당 운영을 돕고 조상숭배 풍습을 이해하는 쪽으로 인식이 변화된다.
이는 오늘날 미국의 학계와 미디어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C)의 신념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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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숭배를 위한 가내 사당을 투어 장소로 운영하는 메이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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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식 변화는 당연히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 약화가 초래한 결과이다. 동아시아의 조상숭배 풍습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으로 봤을 때 명백한 미신이며 우상숭배 행위이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 문화다원주의에 치중하는 작금의 미국사회에서 중국의 조상숭배 풍습을 개화되지 않은 우상숭배라고 지적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일로 간주된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적 시각이자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견해라는 날선 비판을 받게될 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사실은, 정작 서구 문화권에서는 동아시아의 조상숭배 사상을 존중해줄 준비가 되었는데, 동아시아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조상숭배 풍습과 제사 문화가 힘을 잃고 사라져가는 중이라는 점이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이 동아시아 4개 국가는 이미 고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 개인주의 문화의 발전, 혼인율과 출산율 저하로 인한 전통적 가족체계의 붕괴 때문에 유교적 조상숭배 사상이 날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우리나라의 경우, 1인 가구 급증과 비혼, 비출산 추세 강화로 젊은 세대에서는 더 이상 제례의 존속 자체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제사를 받들 자녀를 아예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제사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이런 추세는 한국이 독보적으로 앞서 있지만, 일본, 중국, 대만 역시 빠른 속도로 그 뒤를 따라오고 있다.
이미 조상숭배 풍습의 본산지에서는 그 쇠퇴와 소멸이 예정되어 있는데, 미국의 미디어 콘텐츠 업계는 이를 동아시아 문화의 고유성과 다양성의 핵심요소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처사는 전통 문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의도를 고려하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향후 현실을 예견한다면 시대착오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평가할 길이 없다.
이런 의미로, <메이의 새빨간 비밀>에서 유독 중국의 조상숭배 풍습을 주된 서사 요소로 내세운 처사는 미국인들뿐 아니라 도미 시 감독을 비롯한 미국 내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동아시아 현지 상황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다.
조상숭배 풍습은 이제 더 이상 동아시아 사람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들과 그 자손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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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경제구조와 인구변화 동향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향후 조상숭배 풍습이 쇠퇴하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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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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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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