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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여호와 주님(신론 2-하나님 지배의 유효성과 보편성, 주권적 권위, 실체, 논증, 본질, 명칭<구약과 신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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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의 하나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유럽의 교회 내부 풍경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신론 2-실체, 논증, 본질, 명칭<구약과 신약> 등)

※출애굽 3:14에 대한 최근 그리고 전통적 해석

1) 모세 질문에 대한 대답 회피 또는 거절? 내 이름을 묻지 말라.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일뿐?=> "I am who I am".

2) 적절한 이름이 없으신 하나님(헬무트 틸리케, 1908-85, 함브루크대 총장)

3) 칼 바르트: 하나님의 이름 자체와 여전한 하나님의 숨으심(신비)

4) 하나님은 존재(God is Being)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하나님(토마스 아퀴나스)

※여호와에 대한 주도적 이름

1) 여호와(출 6:1-8)

2)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최초 언약문서(출 20:1-17)

3) 하나님 이름에 대한 모세의 갈망(내 얼굴을 볼 수는 없다, 출 33:16-20; 34:6)

4) 내가 그로라(유일한 신, 신 32:39-40; 사 41:4; 43:10-13; 44:6; 46:3-4)

5) 여호와 이름 설명(시 135:13;변역지 아니하심, 말 3:6)

6) 예수님의 "나는 ---이다"(I am)

7) 나는 존재한다(to be, 계 1:8; 22:13,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언약의 삼중적 관계:

1. 지배(여호와 지배자, 통치, 주권)

2. 권위

3. 임재

※하나님 지배의 유효성과 보편성

1. 유효성(목적을 항상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

1) 하나님은 어려운 것이 없으며(렘 32:27) 이상한 것이 전혀 없고(슥 8:6) 그분과 함께 하면 불가능이란 없다(창 18:14; 마 19:26)

2) 토기장이와 진흙 이미지(렘 18:1-10; 롬 19:19-24)

3) 불가항력적 은혜

2. 보편성: 자연세계

1) 자연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

2) 자연세계를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해와 비, 마 5:45; 새들을 먹이심, 마 6:26; 심지어 어리카락까지 세시는 주님, 마 10:29-30)

3. 인간 역사

1) 모든 것을 흙으로 지으시고(창 2:7) 많은 참새보다도 더욱 많이 인간을 돌보시는 하나님

2) 열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읽을 구절->시 33:10-11), 복을 받는 여호와 민족(시 33:12)

3) 주관자(a subject)

4)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사건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섭리하신다.

5) 전쟁까지 섭리(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삼상 17:47; 이김은 여호와께, 잠 21:31)

6) 절대 주권 속 인간 구원의 하나님(고레스, 성육신, 십자가, 사도 바울)

바울 모자이크상(데살로니가 교회 모자이크 전시회)

4. 개인적인 인간의 삶

1) 개인의 생명 과정 우연 아닌 섭리(렘 1:5)

2) 생명 창조의 신묘막측함(시 139:13-16)과 삶까지 디자인

5. 인간의 결정

1)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있는 인간의 결정

2) 즉 자유로운 인간의 결정조차 인간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있다(걸음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잠 16:9).

3) 구약의 예언들(예정된 계시, 예수 계시)

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샬롬!

6. 그렇다면 죄들은?

1) 신정론의 문제

2) 죄조차 다루시는 하나님

3)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니라(잠 16:4).

7. 믿음과 구원은?

1) 하나님의 긍정적 측면(당연히 하나님의 섭리 속)

2) 세상 창조 이전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딤후 1:9).

3)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 너희만 알았나니(암 3:2)

※하나님 주권의 속성들: 권위

1. 신적 권위의 뜻

1) 전지하심(히 4:12-13)

2) 거짓말하지 않으심(딛 1:2)

3) 창조와 통치

4) 사실에 대해 선언하실 권위

2. 주권의 한 측면으로서의 권위

1) 율법 수여자(출 20장)

2) 백성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순종할 필요성(신 6장)

3) 예수 그리스도(주님)께 적용(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눅 6:46)

4) 용서하시는 권위(중풍병자 죄 사함과 치유, 마 9:2-6)

3. 절대적 권위

1)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진흙과 토기장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

2) 다른 모든 왕권을 초월하는 언약의 절대성(그리스도를 위하여 유익한 것을 보두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해로 여김, 빌 3:7-8)

3) 삶의 모든 영역(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 사상)

4. 구속사 안 신적 권위

1) 말씀 속 구속사

2) 아브라함과 모세보다 크신 분 예수(영생의 말씀에 대한 베드로 고백, 요 6:68)

3) 말씀의 무오성(성경 무오성을 가볍게 여기는 현대신학자들을 조심할 것)

5. 신적 권위의 보편성

1) 우주적 주님의 명령(마 28:18-20)

2)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의 무릎을 꿇게 하시는 예수의 이름(빌 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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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창1:1,출3:14,요17:3,히11:3)

1.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알게되는 지식

1)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本有的 혹은 生得的 지식)

(1) 사람은 스스로 감각적, 이성적, 도덕적인 존재이기에 필연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

(2) 위급할 때나 불치의 병을 앓고 있을 때 혹은 사망의 위험에 직면할 때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된다.

(3) 이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본질적으로 종교심이 있기 때문이다.(행 17:22)

2)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獲得的 혹은 後天的 지식)

(1)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계시(자연)와 특별계시(성경)로부터 나오는 지식이다. 즉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연과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

(2) 그것은 지식의 축적과 감각과 반성, 숙고와 토의 등의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3) 제한된 것이기는 하나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참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

2. 하나님에 대한 논증

1)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논증하기보다 그 존재에 대해 전제(前提, presupposition)하고 있습니다(창 1:1). 즉 창조주 하나님은 논증할 필요가 없는 분이기 때문이지요.

2) 그래서 변증학자 반 틸은 전제론적 신학을 전개하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신학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시작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 개신교 신학은 4 가지 출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

신학은 하나님의 학문이요 하나님 계시의 학문입니다. 따라서 이 신학은 출발점이 창조주 하나님이기에 그 어떤 학문과도 전혀 다르게 아주 독특하고 특별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1518년(4.26일) 하이델베르그 논박에서 성자 하나님 예수가 나무에 달리셨다는 십자가 신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참된 신학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즉 이 십자가 신학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신학을 표현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은 주로 루터가 자신의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과 대응되는 단어로 사용한 말입니다.

루터는 모든 올바른 하나님 신학은 십자가의 지혜(sapientia)로부터 온다고 보았습니다. 즉 참된 신학과 참된 하나님 인식은 특별계시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 바로 십자가 신학의 출발점입니다.

반대로 로마 가톨릭의 스콜라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B.C. 384-322)의 방법론과 원칙을 바탕으로 신학을 전개하였습니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자연신학적이고 영광의 신학적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가 철저히 철학적 신학을 전개한 것은 아니고, 하나님 계시에 기초를 둔 종교적 신학이 필요함도 역설하고 있기도 합니다.

토리노 성당의 수의 흔적 전시물

하지만 루터란들이 본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영광의 신학이 분명한 것이지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자연(이성)과 은혜를 모두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 개념은 자연에서 은혜로 나아가, 그 은혜는 결국 자연보다 더 높은 차원이 되는 데 이것은 결국 은혜가 죄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립한다는 결과에 이르게 되어 버리지요.

로마 가톨릭 베네딕트 수도원(Monastero Di S.Benedetto, 로마근교, by E. S. Cho)

이것은 은혜가 자연을 보충하고 앙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회복한다는 개혁신학과 조금 다른 결론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다음 4가지 출발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성과 능력 신뢰>: "나는 이해하고, 믿는다"(intelligo et credo).

이 같은 입장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이성과 능력과 신뢰하고 확신한다는 면에서 하나님의 특별 계시 없이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자연신학과 연결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용한 로마 카톨릭 신학은 바로 이 자연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은혜는 자연을 찢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라고 한 말이 이것이다.

신앙을 실증적이고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들에 근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창조과학운동”이나 “지적설계운동”도 이 같은 경향이 반영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변증학에서는 이 같은 접근을 험증학(Evidentialism)이라 부르고 있다.

(2) 신앙에 있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선행>: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믿는다”(Credo ut intelligam).

​신학의 출발점을 믿음(fides)으로 보는 입장이다. 즉 신학의 출발점을 창조와 자연과 이성이 아니라 믿음과 특별계시로 본다.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 인간은 이성으로 믿고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모든 것에 선행하며(히11:3)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믿고 참된 하나님 인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연신학이 자연에서 은총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이 입장은 오히려 은혜가 자연을 회복한다고 본다. 어거스틴과 개혁주의의 일관된 입장이다. 코넬리우스 반 틸 같은 신학자의 전제(Presupposition)는 바로 이 같은 개혁주의 입장에서 나온 변증학이라 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초월성, 타자성> 강조: “불합리하므로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est).

이 신학은 기독교 진리는 합리적 분석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고 계시를 (그리스도와의) 실존적 만남으로 보고 주관적이며 내면적인 종교경험을 신앙의 근거로 내세우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신학적 입장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성, 타자성을 강조하게 된다. 개혁주의와 약간 다른 점은 개혁주의가 계시와 성경과 믿음과 그에 따른 교리의 지도를 따라 신학함과 달리, 신(그리스도)와의 초월적 만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부 구별이 된다.

정통인 듯 정통과 다르다는 점에서 신정통주의라 하기도 한다.

(4) 하나님을 믿기 위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우선>: “믿기 위해서 나는 이해한다”(Intelligo ut Credam)

일단 성경적인 초월성과 신적 계시를 부정하고 인간의 합리성을 신뢰하여 이성을 따라 이성의 요구에 만족한 것을 따져보고 가능한 것들을 참된 것으로 믿으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초월적인 하나님은 사라지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만 남게 된다는 면에서 신학적 자유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영원하시고 불변하신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

1) 인격성: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1)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에 인격을 부여하신 인격적인 분이다(엘/여호와/멜렉=왕=영원한 통치=출 15:18)

(2)이름을 안다는 것은 이름의 소유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3)하나님은 자의식과 자결정의 재량을 가진 ‘나’ ‘너’ ‘그’라는 대명사들이 의미있게 적용될 수 있는 존재이시다(지, 정, 의의 소유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4)하나님의 이름은 망령되이 불리워져서는 안 된다(출 20:7)

2) 유일성: 하나님은 한분이시다(사 45:18, 사 44:10, 렘 2:5, 사 44-46장).

(1)하나님이 한분이심을 알리는 모세(신 4:35, 39)

(2)하나님은 그 능력과 지혜에 있어 다른 모든 신들을 능가한다(시 66:6-7)

(3)다른 모든 우상은 변덕스럽고 어지러운 만신전(萬神殿, pantheon)으로 어리석고(렘 10:8) 무능하다(렘 14:22).

3) 영성: 하나님은 영(spirit)이시다.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시며 물질에 의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4) 불가견성: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이시다(딤전 6:16)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요일 4:12)

5) 생명성: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다.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렘 10:10) 자기 속에 생명이 있고(요 5:26) 살으시고(살전 1:9)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딤전 6:16).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시 42:2)

4. 하나님의 명칭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 성품 그리고 사역 등을 나타내주고 있다.

1)구약

(1)하나님(אלוהים엘로힘=영어의 God)

구약에 2000번 이상. 가장 일반적인 복수형 단어. 위엄의 복수형. 엘로힘은 하나님께서 강하시고 권능있는 분이기 때문에 경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2)주(אָדוֹן아도나이=영어의 Lord)

주 또는 주인 이란 뜻. 우리말의 ‘주’ 또는 ‘주님’이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소유자이시며 절대적인 만유의 통치자이심을 드러내는 이름이다.

(3)여호와(יהוה야웨=Yahweh)

특별히 하나님은 ‘여호와(야웨)’라는 이름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명칭은 가장 신성하고 탁월한 이름으로 출 3:14를 근거로 하여 히브리어의 ‘자존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하나님의 불변성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모음이 없어서 유대인학자들은 아도나이의 발음으로 읽음.

(4)복합 명칭

①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축복과 위안의 근원이 되심을 나타내주는 이름이다.

②엘 엘욘(지고하신 하나님, 높으신 하나님, 민 24:16, 시 18:13)

③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 창 21:33, 사 40:28)

④엘 로에(감찰하시는 하나님, 창 16:13)

⑤엘로힘 체바욧(안식의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삼상 4:4, 삼하6:2)

⑥여호와 닛시(여호와는 우리의 기;Banner, 승리, 출 17:15)

⑦여호와 샬롬(여호와는 평강, 삿 6:23)

⑧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회복의 하나님, 겔 48:35)

2)신약

신약성경에서는 구약 히브리어 명칭과 뜻이 같은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다.

(1)하나님(Θεός데오스=Theos=God)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가장 공통적인 이름이다. 이 용어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나 하나님 또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나 혹은 너의, 우리의 하나님 등으로 번역되었다.

(2)주(κύριος퀴리오스=Kurios=Lord)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사용된 이름이다. 그것은 아도나이와 여호와를 대신한 이름이다 이 명칭은 만물 특히 하나님의 백성의 소유자요, 지배자로서의 하나님, 왕의 권세와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3)아버지(πατέρας파테라스=Pater)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신 32:6, 사 63:16), 창조주, 삼위일체의 제 일위이신 성부 하나님, 하나님의 영적 자녀인 산자들의 아버지(윤리적 관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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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리 (묵상과 적용)

1.사람은 하나님을 어떻게 압니까(두 가지 지식)?

2.하나님의 5가지 본질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을 나타내는 1)하나님 2)주님 3)여호와는 각각 어떤 의미입니까?

조덕영(조직신학, T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