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교회론
종교개혁 교회의 중심 인물 파렐, 칼빈, 베자, 녹스
어머니로서의 교회
인간에게는 신을
의식할 수 있는 본능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 속에 신적 위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놓으셨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나는 나의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칩니다"
칼빈의 신학은
한국교회 가장 큰 교단인
장로교회의 신학 사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과연 누구이기에
한국기독교교회의
가장 큰 교단인 장로교신학을
형성한 인물이 되었을까요?
여기서는
그 칼빈의 교회론을
살펴봅니다.
(좀 더 자세한 칼빈의 신학과 사상은
본 블로그 <칼빈의 신학과 사상>을
참조하세요>
※칼빈에 대한 간략 연보(일반적 추정)
1) 1509년 7월 10일, 파리 동북쪽 노용(Noyon)에서 출생
아버지 제라드는 공장직공과 뱃사람에서 노력으로 시 등기관리인과 주교관 행정직 그리고 대성당 소송대리인(일종의 오늘날 변호사 역할)까지 한 사람
칼빈은 12세 때 교직자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 뜻에 따라 교회 신부 보조하는 목사보에 임명
1520 혹은 1521, 마르슈대학 입학
여기서 훗날 개혁신앙의 동지 파렐 만남
1521~1522,
몽태규 대학(에라스무스, 로욜라)에서 신부가 되기 위한 성경과 스콜라 신학을 배움
종교개혁 운동 확산(1522 취리히의 쯔빙글리, 1523 스트라스부르의 마르틴 부처Martin Bucer<1491-1551>, 1530 누샤텔의 윌리엄 파렐, 파렐 1535년 제네바 행, 1536년 칼빈 제네바 도착, 파렐은 칼빈에게 제네바에 남아줄 것을 권유)
2) 1523~27 혹은 1528년 파리 대학
1525 혹은 1526, 석사학위 취득
3) 1527 혹은 1528~29, 오를레앙 대학
아버지의 뜻대로 신학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꾼 시기
4) 1529~31, 부르줴대학
5) 1531~33, 파리와 오를레앙 대학에서
처녀작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
칼빈이 회심한 시기
6) 1533~34, 파리와 앙굴렘과 노용에서
7) 1534,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바젤로 향함
8) 1536, 라틴어로 된 기독교 강요 제 1판(만 26세)
9) 1536년 파렐의 권유로 제네바로 가다
10) 1538년 두 사람 추방
11) 3년 간 부처와 함께 스트라스부르
12) 1541년 부처와 함께 다시 제네바 행
13) 1564년 사망
14) 이후 칼빈은 성서 학자, 신학자, 교회 행정가로 널리 알려지며, 장로교회의 통치 조직을 가진 종교개혁교회들의 아버지로 간주되다(일명 교회 종교개혁의 키프리안, 개혁·장로교회의 창시자).
제네바 칼빈이 설교하던 강대상(스위스 생피에르교회 내)
칼빈의 교회론
칼빈은
자신의 책 기독교강요(1536 초판, 1539, 1543, 1559) 제 4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인도하시며
그 안에 있게 하시려는 외적인 은혜의 수단으로서
교회(1-19장)와 국가 통치(20장)를 다룹니다.
칼빈은 당시
종교개혁을 비방하는 세력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또 한편으로는 열광주의자들의 잘못도 염두에 두면서
그의 교회론을 전개해 나갑니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칼빈의 교회론을 살펴봅니다.
1. 참 된 교회
1) 어떤 개혁자가 교회론에 의해 제기된 문제와 씨름했다면 그 사람은 칼빈이다.
2) 교회론에 관한 그의 첫 번째 주된 논의는 1539년 출판된 ‘기독교 강요’의 제 2판에서 발견된다.
3) 비록 칼빈이 1536년의 초판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나, 당시 그는 교회의 목회나 책임 있는 자리를 떠맡아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제 2판이 출판될 무렵, 칼빈은 새로운 복음적인 교회들에 제기된 문제들에 관해 많은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4) 칼빈이 본 참 된 교회의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올바르게 시행>되는 교회였다. 또한 고대교회 신조에 나타난 교회의 4가지 특징(보편성, 일치성, 거룩성, 사도성)을 수용한다.
5) 즉 칼빈이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교회의 최소한의 정의조차 만족 시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칼빈은 복음주의자들이 가톨릭교회를 떠나는 것이 지극히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
6) 따라서 참 된 교회(복음적 교회)들이 또 다시 분열한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복음적 회중이 여러 파당으로 또 다시 분열된다는 것은 종교 개혁의 목적에 치명적이라는 칼빈의 정치적 판단을 반영한다.
7) 이렇게 보편 교회는 참 된 교회로서 세계창조시부터 마지막까지 존재하며 가톨릭을 분리·구분할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싸워서 승리하는 교회(ecclesia militans et triumphans)상을 가진다.
2. 칼빈의 스트라스부르에서의 교회
1) 1543년 무렵, 칼빈은 스트라스부르에 체류하면서 목회사역에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된다.
2) 이곳에서 칼빈은 목회자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던 마르틴 부처를 만나, 이후 칼빈의 교회론은 개인적으로 부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3) 예를 들면, 칼빈이 말하는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구별은 부처의 저술들 속에서 발견된다. 또한 칼빈은 부처가 사용한 교회의 사중직(quadruplex, 목사, 장로, 교사, 집사)을 제 2차 제네바 귀환 후 그대로 수용하여 교회법에 명시하였다.
4) 칼빈에 따르면, 성경에서 “교회”는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먼저, 교회는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포함하여 "불가시적인 전체의 선택된 무리"를 지칭하며, 다른 경우 현존하는 회중들로 대표되는 “가시적 교회”를 지칭한다.
5) 칼빈은 가시적 교회의 올바른 목회 질서를 위한 구체적 성경적 원리에 따른 교회 행정(세속정부가 사용하는 administratio)을 “순수하게 선포되는 복음”속에 포함시킨다.
3. 칼빈, 개혁교회의 제도적 체제를 갖추다
1) 참된 교회는 복음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올바르게 시행되는 곳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이 정의에는 교회 제도와 행정의 특정한 형태가 포함된다.
2) 칼빈은 “주께서 자신의 교회가 다스려지기를 원하는 질서”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신약 성서 해석에 근거하여 교회 행정에 관한 자세한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3) 이 과정에서 그는 광범위하게 로마 제국 행정상의 용어들을 차용하고 있다. 급진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칼빈은 교회의 구조와 행정에 관한 특정한 형태가 성서에 규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4) 따라서 칼빈은 “목사”, “장로”, “집사”, “교구민” 등의 구별처럼, 교회의 목회와 행정 조직은 신적으로 규정된 것이라 생각했다.
5) 교회론에 있어서의 새로운 진전
(1) 루터가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라는 관점에서 정의한 반면,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중요성을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조직의 특정한 형태를 규정해 준다고 주장한다.
(2) 즉 칼빈의 교회관은 로마 가톨릭과 급진주의자들을 판단하고 이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 주었다.
(3) 가톨릭 신부였던 루터가 모호한 입장을 취했던 반면, 칼빈은 교회관의 진전을 이룬 것이다.
(4) 칼빈이 사망하던 해인 1564년, 개혁파 교회는 제도적인 체제를 갖추며, 가톨릭에 대응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4.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1) 칼빈은 먼저 교회를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이라 했다. 그는 기독교강요 제4권 1장의 시작 부분에서 교회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 되는 것과, 또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매ㅣ암아 가져온 구원과 영원한 축복에 참여자가 되는 것은 복음을 믿는 신앙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우리의 무지와 태만으로 인해(나는 이것들 외에 마음의 허망을 하나 더 첨가한다), 우리 안에 신앙을 일으키고, 증진시켜, 또한 그 목적지까지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이러한 도움을 하나 더 마련해 주신 것이다.”
2) 칼빈은 교회의 설립을 사람의 일로 돌리지 아니하고, 우리 인간의 약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기관임을 말하고 있다.
3) 칼빈은 계속하여 교회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복음의 설교가 넘쳐나기 위해 하나님은 교회 안에 이 보물을 위탁하셨다. 하나님은 목사와 교사(엡 4:11)를 제정하시로, 그들의 입술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가르치시고 그들을 권위로 옷 입히시기로, 마침내 신앙의 거룩한 일치와 바른 질서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셨다.”고 했다.
5. 교회의 본질
1) 칼빈은 교회의 본질을 ‘성도의 교통’에서 찾는다. 그는 기독교강요 제4권에서 교회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사도신경에 거룩한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들이 형제로 하나가 되며 또한 교회의 정당한 권위를 승인해야 한다는 간단히 말해서 우리 각자가 양무리에 속한 한 마리의 양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견적 교회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 따라서 여기에 ‘성도의 교통’이란 말이 첨가되었다.”
2) 교회의 일치와 순결을 위한 칼빈의 열심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교회의 제도에 대항하여 기존 교회의 하나 됨을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참 교회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3) 칼빈이 교회를 "성도의 교통"으로 표현한 것은 그가 불가시적 교회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사실 불가시적 교회를 교회의 두 표지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교회는 존재해 왔으며,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우편에서 다스리시는 한 교회는 살아 있습니다. 교회는 외적인 표지가 아니라 말씀과 성례의 두 표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4) 칼빈은 가견, 불가견 교회의 이중적 측면(ecclesia visivilis et invisivilis)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경우 보편적 교회는 공간적으로 나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된 교회에 동의하고 같은 신앙의 매는 줄로 뭉쳐있는 교회“라 했다. 즉 교회는 불가시적인 동시에 가시적인 한몸(unum corpus)이다. 그리고 이 보편적 교회는 개교회들이 상호관계 속에서 철저하게 교회의 표지를 지향하는 데서 도모될 수 있다고 보았다.
5) 칼빈은 교회들 사이에 비본질적인 요소 때문에 분리하고 반목하는 일을 금지하고 교회의 평화와 일치를 추구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르세투스를 “우리의 모든 종교적 원리를 근원부터 전복시키는 자”라 하였다. 또한 삼위일체를 반대했던 마테오 그리발디에 대해서도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파괴하는 자”라고 했다.
6) 칼빈이 말하는 성도의 교통이란, 하나님 말씀안에서의 교통이요 교제였다. 그리고 기독교의 가르침에는 비본질적 요소가 포함될 수도 있으나, 본질적인 또는 근본적인 조례가 있음을 말한다. 즉 그는 신앙의 근본적인 조례를 제쳐 놓고 교회의 일치를 추구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6. 어머니로서의 교회
1)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 1장에서 가견교회를 신자들의 어머니로 칭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우리가 가견교회를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유용하고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어머니가 우리를 자기 태 속에 잉태하고, 낳고 자기 가슴에 안고 젖을 먹일 뿐만 아니라, 마침내 우리가 죽을 육신을 벗고 천사들처럼 될 때까지, 어머니가 우리를 지켜 보호하고 인도하 지 않는다고 하면 생명으로 들어가는 다른 길은 없다."
2) 칼빈은 우리는 우리의 약함 때문에 어머니 학교로 부터 일평생 학생 신분으로 남아야 하고 물러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어머니학교의 유용성에 대해 칼빈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의 품을 멀리 떠나서는, 이사야(사 45:22,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와 요엘(욜 2 :32.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자는 구원)이 증거하는 것처럼 죄의 용서와 구원의 소망이 없다."
3) 교회를 어머니라 한 표현은 당연히 칼빈 자신의 창작이 아니다. 칼빈은 어거스틴 이후 로마교회가 교회의 절대권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한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신자들의 신앙의 훈련소로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강조한다. 가부장적 권위를 가진 로마교회와 달리 어머니로서 자식을 보호하고 훈련하듯 신자들의 신앙을 훈련하는 곳으로서 교회를 어머니라 표현하였다.
4) 이처럼 교육훈련을 강조한 칼빈의 교회관은 제네바 교회뿐만 아니라 그 후 개혁파 교회의 특징을 이루는 동기가 되었다.
“하나님은 ‘교회의’ 품안에 자기 자녀들을 모우기를 기뻐하시며, 저들이 어린아이로 있을 동안 교회의 목회로 말미암아 성장할 뿐 아니라, 저들이 어른이 되고 마침내 신앙의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그 어머니 같은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저들은 인도함을 받게 된다.”
5) 칼빈은 또한 바로 이 교회 안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역자들을 두셨으며, 이들이 멸시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고 또한 교회교육의 가치와 필요성을 역설했다.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0-13).
6) 한 순간에라도 자기백성을 온전케 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들이 오직 교회의 교육을 받고 성인으로 자라나기를 바라고 계신지 우리는 알게된다. 이를 위해 방편을 세우셨으니, 곧 천상교리의 설교가 목사들에게 부과되어졌다.
7) 이렇게 칼빈은 무엇보다 교회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임을 강조하고 이 땅에서 신자들의 어머니로서의 막중한 역할을 강조했다.
7.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교회.
1) 칼빈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곧 교회라 했다. 교회는 성도들의 단체 곧 피택자 전체를 말한다.
2) 그러나 칼빈은 참으로 적은 수의 사람이 수 많은 군중 속에, 그리고 몇 알의 밀알이 쭉정이 더미에 묻혀있다 말하고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은밀하신 선택과 내적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3) 그는 “하나님의 은밀하신 선택과 내적인 부르심은 매우 신중히 생각하여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만 자기 백성을 아시며(딤후 2:19) 그들은 인치심으로 둘러지키시기 떄문(엡 1:13)”이라 했다. 그리고 “이 은밀한 선택에 기초한 교회를 아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했다.
4) 칼빈은 택함을 받을 자들만이 속한 불가견교회와, 참신자와 위선자를 다 포용하는 가견교회를 구분한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선택함을 받았는지 또는 버림을 받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했다.
5) 칼빈은 신자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실제로 가견교회와 불가견교회를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는 가견교회만이 실제적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견교회와 불가견교회는 두 교회가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나뉠수 없는 두 면인 것이었다.
6) 다시 말하면, 칼빈은 가견교회와 불가견교회는 두 교회의 대칭이 아니라 오히려 가견교회는 불가견교회의 필수적이며 유용한 표현이요, 우리가 금생에서 머무는 한 가견교회가 우리의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7) 따라서 이땅 위의 삶속에 우리가 알도록 주어진 유일한 교회는 바로 이 유형교회이며, 이땅 위에 택자들의 불가견적 교통의 표지가 되는 관계이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불가견적 몸의 회원이 되기위한 핑계로 가견교회를 버리면 안된다고 했다.
8) 하나님은 말씀의 선포와 신자의 성화를 위해 가견교회를 세상에 외적방편으로 두신 것이라는 칼빈의 주장은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8. 교회의 표지(marks, ecclesia notae) 로서의 말씀 선포와 성례전
가. 말씀의 선포
1)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지하게 전해지고 그리고 그것이 들려지는 곳과 또한 성례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그대로 시행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은 말씀의 사역과 성례의 사역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식별하는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한다.
2) “ 말씀에 대한 순수한 봉사와 성례전 시행의 바른 의식은 충분히 보증이 되며 이 두가지 표적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를 우리는 확실하게 교회로서 받아들일 수 가 있다” .
3) 따라서 교회를 식별하는 표지인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의 준수는 반드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번성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말씀이 전해지는 곳 어디서나 열매가 생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받아들여지고 말씀이 확고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된 곳에서 말씀이 그 열매를 맺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교회를 일컬어 진리의 기둥과 터라 불리워 지는 것은 작은 의의가 아니라 했다.
4) 이렇게 칼빈은 설교를 매우 중시하였고 스스로 이를 실천해 옮긴 개혁자였다. 말씀의 선포를 통해 그리스도의 은총이 전달되고 그 말씀이 성령안에서 결실을 맺게한다. 그 결실이란 회개, 죄의 용서, 성화의 역사를 말한다.
5) 칼빈은 아직도 로마교회를 참된 교회로 인정하려는 사람들에 반대하여 로마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교회가 아니라 했다. 그는 참된 교회의 표지를 구성하는 것은 어떤 제도가 아니며 상당한 종교 단체의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는 그 단체가 누구에게 예배하느냐 하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 하나님의 교회가 모든 부패한 종들과 구별되는 것은 주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주의 명령에 의해서만 지도 받기를 윈할 때 그렇게 된다.” 고 했다.
나. 성례의 시행 :
1)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제4권 14장에서 19장에 이르기까지 로마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비판하고 개혁파 성례관을 확립한다.
2) 칼빈은 성례를 정의하기를 “성례란 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한 신앙을 복돋우어 주시고자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자비의 약속을 우리의 양심에 인치신 일의 외면적 표지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의 경건을 간증하는 일”이라 했다.
3) 어거스틴도 성례를 일컬어, “거룩한 것의 가견적 표현이요, 불가견적 은혜의 가견적 표현”이라고 하였는데, 칼빈의 성례관은 이 점에서 어거스틴의 성례관과 동일하다. 칼빈은 로마교회의 7성례 가운데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 성례로 인정하고 특히 로마교회의 성찬에 대해 많이 비판한다. 이 점은 루터와 견해를 같이 한다. 다만 칼빈의 성찬에 대한 강조는 기독론적이요 성령론적인 이해에 기반한다.
4) 칼빈은 성찬을 통한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하여 카톨릭의 화체설을 정면으로 부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루터교의 공재설에 대해서도, 또 한편으로서 쯔빙글리의 상징설에 대해서도 다른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것은 칼빈이 성찬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라 말씀의 선포와 더불어 시행되는 성찬의 의미를 바로 해석한 것이다.
다. 권징(disciplina)의 중요성:
1) 칼빈은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 할 수 있는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 의 올바른 시행을 말하면서, 동시에 말씀의 순결함과 성도들의 성화의 생활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권징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2) 칼빈은 이 권징을 교회의 제3 표지로 여기지 아니하고 교회의 본질엔 속하지 아니하나 교회의 안녕과 질서유지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칼빈 이후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 권징을 교회의 제3의 표지로 간주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4권 12장에서 권징을 다루고 있다.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권징의 목적은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①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불명예스러운 생활을 보내는 자가 하나님께 모욕을 끼치며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사악하고 모독적인 사람들의 소굴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다.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이름에 치욕의 낙인을 직는 자가 없게 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이름에 불명예를 초래하는 자들을 교회의 가족으로부터 추방하지 않으면 안된다.
② 선량하나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타락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③ 이 사람들이 자신의 추악함에 대한 부끄러움에 놀라 스스로 회개하도록 하고자 함이다「강요Ⅳ. 12.5 」 그리하여 교회는 교리의 혼란과 회원들의 건덕상의 추문이 있을 떄는 순결함과 성화의 생활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교회는 권징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칼빈도 교회에서 교리의 순결을 유지하고 성도들의 성화의 생활을 지도하고 도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3) 이 권징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그것이 교회 본질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기거나 무시될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교리의 순결과 질서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겼다. 권징을 세우신 교회의 본질로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의 올바른 시행이 바르게만 된다면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다고 보았다.
4) 또한 칼빈은 지상교회는 완벽하게 순정한 교회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칼빈의 이런 생각은 1세기 후 대소요리문답에 잘 반영되고 있다. “하늘 아래 가장 순결한 교회들이라도 혼잡과 오류에 빠지기 쉬우며 또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사단의 회가 될만큼 타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경배하는 교회가 지상에 항상 있게 될 것이다.”
5) 칼빈은 이 지상교회에 있어서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말씀대로 집해오디는 곳에는 교회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동시에 이 지상교회의 말씀의 순결과 교회의 질서유지를 위해서 비록 교회의 제 3의 표지로는 여기지 않았으나 권징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상교회는 너무 자주 “하늘 아래 가장 순결한 교회들이라도 혼자보아 오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후대의 개혁파 신학자들이 권징을 교회의 표지에 포함시킨 것은 칼빈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
6) 칼빈은 이러한 표지가 보이지 않고 도리어 모든 기본적인 교리가 왜곡되었거나 성례가 올바르게 진행되지 않는것에는 틀림없이 교회의 파괴가 뒤따를 뿐이라고 말해따. 신자들은 구원의 근거를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두어야 한다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교훈이 교회의 기초인데 이 기초다 제거된다면 교회라는 건물은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교회는 말씀으로만 존속할 수 있으며 따라서 “말씀에 순복하지 않고 말씀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라 했다.
그리고 칼빈은 종교개혁자들이 교회개혁이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분리라고 하는 비난에 대하여 그가 로마교회의 추기경 사돌렛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군사들이 대열을 떠나서 혼란을 빚고 있을 떄, 한 병사가 군기를 쳐들고 모두 본 위치로 돌아오도록 외친다면 무엇이라고 할것입니까? 그와 같은 행위를 교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가 와서 자기 교회를 해칠 것이고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미혹할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전투장에 어느 한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누워있다고 하여 그것을 분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또한 계속해서 답변하기를, “그럴 수 없지요. 당신은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불뭍은 열심으로 임하지만 교히를 하나로 매는 줄은 다만 주의 진리뿐임을 저는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칼빈은 성경에 기초한 성경적 교회관을 후대의 개혁파 교회에 남겨 주었다.
9. 교회와 국가
1) 교회와 국가 통치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2) 국가 통치의 필요성과 하나님의 허용
3) 제네바 시와 교회의 협력
4) 제도권 권력과의 관계(아모스서와 로마서 사이의 견제와 균형)
5) 무정부 상태에 대한 우려
6) 정부의 전쟁수행권
7) 정부의 과세권 인정(책임, 낭비와 사치 삼가)
※ 정리(칼빈 교회론의 강조점)
1) 외적 수단으로서 신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신도의 어머니(mater fidelium)로서의 교회
2) 예정론적 관점에서 교회의 철저성, 완전성, 영원성이 나온다. 오순절 이전부터 교회는 존재하며 태초부터 종말까지 존재한다.
3) 불가견적 교회인 참교회의 소속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4) 그리스도가 분리되지 않듯 교회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비본질적 문제로 교회를 분리해서는 안된다. 분열은 큰 죄다.
5) 말씀 선포가 왕성할 때 성직이 보존되고, 거기에 성례가 붙는다.
6) Calvin은 로마교회의 교직지상주의에 반대하나 교직 제도는 매우 중시.
7)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한 하나됨과 그 유익이 전제.
8) 인간이나 성례라는 instrument를 통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목사 제도는 성령의 통로이다.
9) 말씀 선포의 중요성, 그리고 교회법의 권세. 그러나 바른 회의로 결정.
※평가
1) 칼빈은 교회의 본질은 먼저 성도들의 교통에서 찾았다. 동시에 교회를 어머니라고 지칭하여 지상교회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외적 일치에 반대하고 어거스틴을 따라 가견적 교회와 동시에 불가견적 교회를 말하였다.
2) 이 모든 것 위에 그는 말씀 선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말씀대로 바르게 시행되는 곳에는 교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상교회의 불완전성을 말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일치에 힘써야 할 것을 강조했다. 동시에 말씀의 순결한 선포와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권징이 교회의 필연적 요소라고 지적했다.
3) 칼빈에게 교회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교회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교회를 성도의 교통이라고 칭하므로써 유기체적 교회를 강조하는 동시에 교회는 말씀 선포와 성례의 집행을 위해 교회의 직원인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성되는 제도적 교회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4) 그리고 이 지상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복종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5) 이런 의미로 칼빈에게 교회는 신자의 어머니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선택받은 자의 교회요, 성령의 전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칼빈에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교회로써 설교자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강조한 것이 특징일 수 있겠다. 즉 오늘날 한국장로교회의 특징이 여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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