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손 사상(단군신화)에 '삼위일체의 흔적'이 있나?
▲조덕영 박사. |
천손사상(단군신화)과 삼위일체론
이 문제는 주로 윤성범 박사가 단군신화를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로 해석한 데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윤성범은 단군설화의 환인·환웅·단군 삼신이 모두 다 남성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환인·환웅·단군을 삼위일체의 '아버지', '아들', '성령'에 대응시킨다. 고조선 시대는 교회 시대 이전이다. 신화도 당연히 고조선 멸망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교회 시대 이전 구약성경에 성부·성자·성령에 대한 희미한 계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계시의 점진성 아래서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것을 단군신화가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황당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자신의 이 연구에 대해 윤 박사는 신화의 종교현상학적 해석이 가능하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자의 주관에 의존하는 것으로 객관화될 수는 없으므로 기독교 진리와 우리 문화와의 접촉점 또는 친근성을 보여 주기 위한 것에 그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고 선을 긋고 있다. 또한 윤성범은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라는 용어조차 삼위일체의 흔적이라는 용어보다는 삼위일체의 잔해(殘骸)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신앙적·적극적 접촉 용어로서가 아닌 마치 신앙의 본질과 멀어진 부스러기처럼 취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삼위일체 신앙은 사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다. 그만큼 삼위일체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성범은 이 교리의 흔적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 잔해(殘骸)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모를 리 없으면서도 삼위일체와 단군신화의 유비관계에 이 단어를 적용하여, 자신의 연구도 단지 '잔해' 수준이라고 표현하는 듯 물러선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삼위일체 신앙의 품격을 심각하게 격하시키는 결과가 되고 만다. 필자가 보기에 윤성범은 삼위일체 신앙의 신성함을 훼방치 않음으로써 보수적 신앙과의 공연한 충돌을 피하려다가 그만 이 같은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단군신화가 경교적 영향인가?
윤성범이 단군신화가 기독교적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를 6세기 중국에 들어온 경교의 영향에서 찾고 해석하려 한 것은, 그가 단군 신화에 대한 깊은 역사적 이해 아래 이 문제에 접근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고조선 역사에 대한 윤성범의 이 같은 오해는 오히려 그가 고조선(古朝鮮)과 한반도 삼국의 초기 역사를 불신하는 일제 식민사관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만 등장하는 국가가 아니다. 이미 중국 사서(史書)인 <사기(史記)>의 조선열전, <한서(漢書)> 지리지, 가장 오래된 지리책인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분명한 역사적 국가였다. 이 외에도 고조선 관련 내용은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진서(晉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수서(隨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통전(通典)>, <통감> 등 여러 중요 사료에 등장하고 있다. 즉 고조선 역사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고조선이 정말 있었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아니다. 고조선 역사의 문제는 그 초기 역사를 어디까지 상향할 것인가 하는 것과, 초기 고조선 신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느냐인 것이다.
이 고조선이 멸망한 것은 경교와 전혀 무관한 주전 108년경이었다. 따라서 이만열 박사도 단군을 역사로 인식하는 문제와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문제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보면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를 통해 실증주의적 사관을 전파한 학자답게 과학적 역사 인식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즉, 단군신화를 고조선 멸망 이후 등장하였다고 본 윤성범식 판단은 식민사관의 영향인 것이다.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위한 신학자들의 노력
한 하나님의 본질 안에 세 개의 위격이 존재한다는 삼위일체 신비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많은 신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가 고대부터 있어 왔다.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Vestigium Trinitatis)는 바로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것은 신학이나 철학에서 어떤 사물이나 문제를 설명할 때, 그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다른 사물이나 현상을 통해 설명하는 형식과 자료를 의미한다. 즉 자연의 예증이나 사변적 유추에서 그 흔적들을 찾게 된다. 일반적으로 '베스티기움'은 '흔적'이라고 번역한다.
윤성범의 연구가 큰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어떻게 감히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그분의 피조 세계의 흔적들을 가지고 본성을 찾으려는 우매한 도전을 하느냐는 비판 앞에, 삼위일체의 흔적에 대한 연구나 설명은 늘 위축되거나 주춤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칼 바르트는 늘 그 선봉에 있다. 이렇듯 자연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찾는 작업은 성경에서 찾는 삼위일체의 논증에 비해 완전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유비(analogy)와 흔적 연구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은, 이 부분의 대가인 어거스틴도 솔직히 인정한다.
그러나 유비와 흔적을 찾는 작업은 어쩔 수 없이 피조물인 인간의 제한 아래서 인간에게 여전히 많은 유익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즉 하나님이 모든 진리의 궁극적 원천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유비적인 논법에 의미가 부여된다. 죽음을 향해 가는 피조물에게 완전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신론에 있어 어거스틴에게 많은 영향을 준 터툴리안(Terturianus, 163-225)은 삼위일체의 삼위를 '뿌리, 나무 줄기, 열매'나 '샘, 시내, 강'이나 '태양, 광선, 광선의 종착점'의 관계로 묘사하면서, 이것이 보혜사 성령에게서 받은 계시라 하였다.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름(Anselm, 1033-1109)은 나일강에 있는 '샘, 시내, 호수'의 존재와 상호 관계 속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비유했다. 샘은 시내가 아니고, 시내는 호수가 아니며, 호수는 시내가 아니지만, 세 나일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의 나일강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샘, 시내, 호수는 각각 그 자체로서 나일강이라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나, 샘을 시내에서나 호수에서 꺼낼 수 없는 것 같이 시내는 호수에서 꺼낼 수 없고, 호수를 샘과 시내에서 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틴 루터가 본 삼위일체의 흔적
마틴 루터도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는 거룩한 삼위일체의 지시가 있고 또 이를 볼 수 있다. 피조물들의 자연은 아버지 하나님의 전능성을 의미하고, 그것들의 형태는 아들의 지혜를 보여 주고, 그것들의 유용성과 능력은 성령의 표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 속에, 비록 가장 작은 풀잎이나 양귀비의 씨 속에도 현재(顯在)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자연에서 삼위일체 흔적을 말했다.
창조과학자 헨리 모리스의 오해
미국창조과학연구소(ICR)의 소장이었던 헨리 모리스는 우주와 만물에 나타나 있는 삼위일체의 예증으로 '공간, 물질, 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우주, '3차원'(가로, 세로, 높이)으로 이루어지는 공간, '과거, 현재, 미래'로 이루어지는 시간, '본성, 본체, 인격'으로 이루어지는 사람 등을 내세웠다. 그 외에 세 잎사귀의 클로버나 삼각형과 같이 세 개의 것이 모여 전체가 하나를 이루는 사물들, 그리고 '고체, 액체, 기체', 삼원색의 '빨강, 노랑, 파랑' 등을 들었다. 이 같은 설명은 일종의 단일신론인 양태론적 해석으로 비판받을 오해의 여지가 있다. 즉 물질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피조 세계의 현상(물질 등)을 가지고 유비적 설명을 시도할 때 생기는 치명적 한계요 미숙함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성경에 능통한 신앙의 사람이었기는 하나, 신학자가 아닌 과학자였던 헨리 모리스의 한계라고 볼 수 있겠다.
성 어거스틴의 생각
성 어거스틴은 그의 책 "삼위일체"의 제8권 이후에서 사람의 마음과 영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들어서 삼위일체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지켜야 할 원칙이 있음을 밝힌다. 그 중 흔적과 관련된 몇 가지 원칙을 발췌하여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 안에서는 한 위격보다 세 위격이 더 크지 않다는 것을 이성으로 밝혀야 한다.
둘째 하나님이 어떻게 진리이신가를 이해하려면 모든 물체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바른 믿음으로 그를 알아야 한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자아 안에 있는 세 가지 형태인 존재와 지식과 의욕(esse, nosse, velle)을 가지고 삼위일체적 흔적을 말한다. 나는 존재하며 그것을 알고 의욕을 가진다. 이 세 가지 안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의 삶이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에 있음을 발견한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마음과 지식과 사랑(mens, notitia, amor)도 삼위일체의 흔적이다. 마음이 그 자체를 알아야 하며, 자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사랑해야 한다고 보았다. 지식 행동에서 사랑을 중요시한 것은 플라톤이었으나, 어거스틴도 지식과 사랑을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것으로 생각한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한 요한 서신에서 이 같은 착상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어거스틴은 이 사랑이야말로 삼위일체의 지식에 도달하는 길이라 볼 정도였다. 지식은 복음을 말할 때 거부되지 않는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기억과 지식, 의지(Memoria, intelligentia, voluntas)도 흔적이다. 어거스틴은 지각이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라 보았다. 그 지각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과 진리와 선을 알게 된다. 동시에 영혼은 그 자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과 그 결과 자체도 알게 된다. 그것은 이성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성은 주로 추리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지각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사유하는 기능을 말하는 인식과도 다르다. 오히려 그것은 사유의 근원이며, 따라서 사유적 지식을 넘어서 있다. 이와 같이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ia)는 무의식 중의 명상과 직관적 비전을 의미한다. 중세기 초에는 주관적인 종교적 의식의 현상에 관심이 집중된다. '인식, 고찰, 명상' '신앙, 이성, 명상' 또는 신비주의의 '정화, 조명, 직관'이 삼위일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많은 신학자들이 제한적이기는 하나 삼위일체를 유비적으로 해석하려 들었던 것처럼, 단군신화의 천손 사상을 기독교적으로 접근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무조건 불경한 것은 아니다. 어거스틴은 알지 못하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사랑에도 마치 삼위일체의 형적처럼 세 가지 면이 있다고 본다. 그는 자신의 책 "삼위일체" 15권 2절의 제목으로 "하나님은 비록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항상 찾아야 한다. 삼위일체의 흔적을 피조물에서 찾는 것은 무익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변질된 천손사상(단군신화)
삼위일체의 흔적을 피조물에서 찾는 것이 무익하지 않다 하더라도, 단군신화에 나타난 신화적 구조는 어떤 거창한 신앙이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삼위일체의 흔적으로서의 '베스티기움 트리니타티스'(Vestigium Trinitatis)보다는 국가 체제가 특별한 존재성을 가진다는 왕통 보존과 권위적 요소를 더 많다고 보인다. 단군신화가 일본으로 건너가 더욱 변질된 천손 사상이 되어, 철저히 "만세일계의 천황 권위" 강화에 악용된 것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설령 일부 유대교적 유일신 사상이 가미되었더라도 그것은 기독교가 수용 가능한 범위를 훨씬 벗어난, 너무도 많이 변질된 신학 사상일 뿐이다. 고조선은 주전(主前) 이미 역사적으로 등장한 국가다. 필자는 고조선의 역사성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조선 역사를 인정한다는 것과 단군신화는 차원이 다르다. 단군신화는 정상적 창조론이나 삼위일체의 흔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토테미즘과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혼재된 고대의 신화를 그대로 보여 준다. 갈등과 탐욕의 인간 역사 패턴을 볼 때, 단군신화는 곰 토템과 호랑이 토템을 가진 씨족 간 결합의 모습을 더욱 반영할 뿐이다.
삼위일체 흔적이 구약에 있다 하더라도 계시의 점진성 아래 삼위일체에 대한 뚜렷한 모습은 초대 교회 시대부터 시작된다. 그것도 많은 초대 교부들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립된 것이다. 그런 기독교적 교리를 단군신화에 적용하는 것에는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조직신학의 관점에서 단군신화의 창조론과 삼위일체론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볼 만큼, 성경과 다른 윤색과 변질 투성이인 것이다. 더군다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독론이나 구원론의 모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는 성경이라는 불변의 토대(constant ground) 속에서 진리를 모색한다. 그 한계치를 벗어난 기독 운동은 변질이며 오히려 해롭기까지 하다. 그런 면에서 단군이나 삼일신고 등의 천손 신화를 비신화화하여 기독교적 관련성을 찾으려는 일부 시도는, 학문적 가치는 있을지 모르나 기독교적 가치 평가의 범위를 벗어난 영역으로 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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