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은 왜 하늘을 복수로, 땅은 단수로 표현했을까?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하늘’이라는 복수형 단어의 특수성
우리말은 ‘하늘’에 대해 ‘하늘들’이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420여회 나오는 ‘하늘’에 대해 ‘하늘’이라는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의 ‘하늘들’('솨마임', shamayim)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역(英譯) 성경들도 이 단어의 용법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 ‘하늘’(heaven) 또는 ‘하늘들’(heavens)로 각각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형태는 복수형이나 일반적으로 단수로 해석하는 단어는 ‘하늘’ 말고도 하나님(‘엘로힘’)이나 물(maim,창 1: 6-10), 생명(chayyim,=> 生/‘하야’, ‘chayah’의 복수형) 등이 있다.
영어 성경(KJV, NIV)을 읽다 보면 창세기 1장 1절 첫 구절부터 heaven과 heavens로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며 상담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사실 성경을 꼼꼼히 읽기 시작하면 성경이 그리 단순한 책이 아니고, 사본과 성경마다 서로 다른 부분도 많고 해석상 충돌도 많으며 어려운 구절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히브리적 하늘관
하늘의 복수형은 유대인들이 하늘을 우리가 숨 쉬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구름 아래의 하늘과, 그 위 해와 달과 별들이 존재하는 천체(天體)로서의 하늘, 그리고 영적 존재인 천사와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이 함께하는 영적 천상 세계(삼층천)로서의 하늘 등으로 다양한 측면으로 이해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위르겐 몰트만도 자신의 책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에서 전체로는 하나(단수)이나 천체를 다층구조(多層構造)로(복수로) 이해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하늘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이 하늘(들)의 하늘(쉐메 핫솨마임, 왕상 8:27; 대하 2:6; 6:18; 느 9:6; 시 148: 4)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이 같은 유대인의 사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성경은 그 하늘을 궁창(라키아, 창 1:6, 7, 8)과 같은 말로 치환하기도 하고, 하늘의 궁창(창 1:14)이라는 말도 사용하여 하늘을 궁창보다 좀 더 포괄적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단수형 땅에 대한 바른 해석
땅(erets)은 복수형 ‘하늘’과 달리 여성단수명사휴지형으로 표현되었다. 단수형이기는 하나 ‘하늘’과 마찬가지로 좁은 의미와 포괄적 의미를 모두 가진다. 즉 땅을 단순히 하늘과 비교해서 사용할 경우에는 우리들이 발을 붙이고 사는 지구(地球)를 말하기도 하고, 땅 아래의 지하 세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가나안 땅 같은 특별한 땅(창 12:5)의 한 부분이나 단순한 터(ground)나 대지(land)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지구만이 아닌 우주 세계 전체의 온 물질과 땅을 포함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전한 모든 창조 영역(창 2:4; 14:19; 출 20: 11; 31:17; 신 3:24)을 표현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의 땅은 앞에서 설명한 단순한 지구나 특별한 땅이나 터나 대지를 설명한 단어가 아닌, 우주의 모든 원초적 물질(기본 요소)로서의 땅 전체를 표현한 단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해석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창세기가 시간(태초), 공간(천=하늘), 물질(지=땅) 창조의 이 첫째구절을 바탕으로 빛(첫째 날)과 두 광명과 별(넷째 날) 등이 창조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 해석의 어려움
신앙의 선배들이 해석에 완전 일치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고 때로는 구체적 해석을 꺼렸던 것처럼, 창세기 1장 해석은 연약한 인간이 해석하기에는 늘 부족하고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만드는 구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든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남겨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에 대한 요약압축선언문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성령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따라, 어떤 해석이 바른 해석이고 제대로 된 해석인지 바르게 이해하여 전파해야 하는 당위성과 사명이 인간에게는 있다. 주님 오신 지 벌써 2천년이 지난 지금,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 속히 나와 더욱 명쾌한 창세기 해석을 많은 성도들에게 제공해 줄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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