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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성경이 없던 시절, 복음은 어떻게 계시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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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없던 시절, 복음은 어떻게 계시되었을까?

조덕영 목사의 창조신학

 

▲조덕영 박사

성경이 없던 시절, 복음의 미스터리

 

분명 성경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아담에게도 노아에게도 모세에게도 성경은 없었다. 그래서 모세는 계시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를 친히 기록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성경은 1600년 이상 약 20가지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40명에 달하는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계시를 기록한 책(딤후 3:16-17)이다. 그렇게 해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성경이 기록되지 않고 또 성경의 일부만이 알려져 있던 아주 먼 옛날 하나님은 무엇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본 원리를 계시하였을까?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그저 방치하셨을까?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인류에게 말을 거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사라와 모세 등 여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을 거셨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계시의 핵심 내용은 물론 인류 구원을 향한 복음의 원형이었다. 성경이 없던 시절 하나님이 전하신 이 복음의 구체적 내용은 어떤 방식으로 보존되었을까?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성경이 알려주는 실마리

 

그런데 한 가지 실마리가 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천체 창조 목적 가운데 징조(徵兆)를 이루려 하셨다는 구절이 있다(창 1:14). 특별히 땅에 비취는 하늘의 궁창에 있는 광명으로 그런 징조를 주셨다고 했다. 이 말씀은 넷째 날 두 큰 광명인 해와 달의 창조 이전을 서술한 구절이니 이 징조가 태양을 지칭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징조”(창 1:14, 9:13)를 나타내는 히브리 단어 ‘오트’(oth, 헬라어로는 semeion)는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신 ‘표’(창 4:15)와 노아와 맺은 언약의 표인 무지개(창 9:13)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표적(sign, 출 4:8,9; 민 14:11,22; 신 4:34)과 기사(奇事, miraculous sign, 시 105:27)를 나타내는 경우에 자주 사용되었다(출 7:3).

 

표적은 구약의 경우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관계나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출 12:13; 신 22:14, 17, 20)되며 신약에서는 주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이나 그에 대한 반응에 표적과 징조와 기사(semeion, 마 12:38, 마 24:3, 30; 막 13:4; 눅 21:7, 11,25; 행 2:19)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4절의 ‘징조’는 분명 하늘에 특별한 언약의 표가 있음을 나타낸다는 의미인 것 같다. 즉 별은 단순히 반짝이는 아름다움 이상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징표인지도 모른다. 시편 기자도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신다(시 19편)고 하였다.

 

욥기서 38장 32절에 보면 하나님은 욥에게 “네가 열두 궁성(宮星)을 때를 따라 이끌어낼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 개역개정판은 “네가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느냐”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하늘에 그렇게 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열두 궁성(별자리들)은 무엇이었을까?

 

전세계에 남아 있는 별들에 관한 관심

 

신기하게도 고대 모든 나라에는 다양한, 또는 일치된 별자리 이름들이 남아 있다. 밤이 되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항성들이 만들어내는 별자리들을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하늘에 펼쳐놓으셨던 것이다. 놀랍게도 이 같은 고대 천문 기록은 가나안 지방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산재해 있다.

 

서방에서는 별들이 주로 신화로 변질되었다. 별에 관한 관심은 동방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은 약 2800년, 우리 나라는 약 2100년, 일본은 약 1400년간에 걸친 천문과 자연 현상에 관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면 박혁거세로부터 벌휴이사금(주전 57-주후 196)에 이르는 총 264개 기사 가운데 34개가 천문 현상에 관한 기록이다. 고조선 시대 유물로 알려진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들이나 천문도가 그려져 있는 고구려의 여러 고분들(최소 24개 고분들)과 경주의 첨성대(주후 633년) 그리고 조선초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천문 관찰을 중요시 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사>에 보면 5천여 개에 달하는 고려 시대 관찰된 천문현상기록이 남아있으며 고구려처럼 천문도가 그려진 고분을 남기고 있다. 심지어 수도 개성에는 천문관측시설(첨성당)을 두었다. 단군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이 같은 천문 관측 기록들은 우리 민족 역사 추적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하늘에 담긴 복음

 

이들 별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예수님이 탄생하기 150년 전, 당시의 천문학자들이 별들의 숫자를 세기 위해 하늘을 구역별로 나누어 세밀하게 조사한 적이 있다. 이들의 결론은 별들의 숫자가 약 3천여 개라는 것이었다. 고대 학자 톨레미는 1,056개, 기원전 1세기 반 전 히파르쿠스는 1,022개, 중세 천문학자 브라헤는 777개, 한때 목사가 되려 했던 브라헤의 제자요 갈릴레이 못지않은 위대한 과학자였던 케플러는 1,005개의 별들을 세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은 이들 학자들이 세어본 것처럼 1천여 개에서 3천여 개 정도이다.

 

혹시 성경도 별들의 숫자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성경은 하늘의 별들의 숫자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렘 33:22) 그리고 하나님은 그 별들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그 별들을 다 이름대로 부른다고 했다(시 147:4). 별들과 그 별자리에 복음을 담은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였는지 아니면 아담이나 노아와 그 후손들의 믿음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의도적으로 별자리를 만들어 복음의 시청각 구술 도구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별자리 안에 무언가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런 해석이 많이 남아있다.

 

하나님이 이들 하늘의 별들에 정말 징조를 두셨다면 그 먼 옛날 처녀자리 별자리는 약속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알리는 별자리였을 것이다. 하늘의 별 가운데 가장 크게 빛나고 흰 큰개자리(Canis Major)의 시리우스(Sirius)는 예수님을 상징할 것이다. 실제로 시리우스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Sara)와 그 어원이 같다. 이 사라에서 영어의 존경어인 Sir가 왔다.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의 700년 전 예언인 ‘평강의 왕’(사 9:6)의 ‘왕’은 사라와 그 어원이 같다. 시리우스별은 평강의 왕인 것이다.

 

전갈자리(全蠍─, Scorpius)는 예수님에게 가해진 마귀의 독침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말 여름의 남쪽 하늘을 빛내는 전갈자리의 꼬리 끝에는 유난히 붉은 색을 발하는 1등성 안타레스라는 별이 빛난다. 태양은 지구 지름의 109배이며 부피는 130만배에 달한다. 그런데 안타레스는 반지름이 약 3억만 Km에 달해 태양 지름의 700배나 되는 큰 별로 알려져 있다. 화성 공전 궤도의 반지름은 약 2억 2천 700만 Km이므로 만일 안타레스가 태양 위치에 있다면 화성 궤도까지 집어삼킬 수 있는 커다란 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안타레스가 얼마나 큰 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큰 별을 소유한 전갈자리가 탐욕과 악을 상징한다면 양(羊) 자리는 반대로 어린 양 예수의 모습을 상징할 것이다(, E. W. Bullinger, D.D.).

 

나가면서

 

이들 별자리의 의미가 지금도 필요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제는 이런 의미를 잘 몰라도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이 주어진 은혜의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혜택받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오히려 하늘의 만상에서 엉뚱한 점성술적인 원리를 이끌어내려는 변질된 계시주의자들을 걱정해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늘의 달과 별들은 결코 무의미한 피조물이 아니란 것이다. 달과 별들은 어둠 속에서 변치 않는 빛을 발하며 징조와 일자와 사시와 연한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와 관심과 사랑을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전해준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 별의 수효를 모두 헤아리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놓으셨다(시 147:4).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보고 오히려 인간을 배려하고 영화와 존귀의 관을 인간에게 씌워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시편 기자의 고백(시 8)은 예사롭지가 않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한 별들은 어떤 별들이었을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과거처럼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상상의 날개를 펴서 신기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더 깊이 느껴보면 어떨까?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