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과 역사 & 세상 만사

조선 시대의 ‘인간 기원 논쟁’, 사람은 짐승인가?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

728x90

조선 시대에도 ‘인간 기원 논쟁’이 있었을까?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기원 논쟁이 조선 시대 학자들 사이에도 있었을까? 기원 문제에 있어 조선 시대 우리 민족 교육의 바탕은 범신론이요 표면적으로는 유교였다. 우리 민족은 본래 무신론적 우연주의나 진화론 교육 자체가 없던 나라였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되면서 비로소 근대 교육이 들어오고 우연주의 진화론도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기원 문제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먼저 조선 시대 이전에도 사람과 짐승의 심성을 말한 학자가 있었다. 고려 말 학자 이규보(李奎報)는 ‘슬견설’에서 개가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앞으로 개·돼지고기는 먹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개의 죽음은 슬퍼하면서 왜 이 사람의 죽음은 슬퍼하지 않느냐며, “무릇 혈기가 있는 것은 사람부터 소·말·돼지·양·곤충·개미까지 모두 삶을 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은 동일하다”라고 충고했다. 이규보는 어떤 면에서 인간과 짐승이 같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조선 후기 성리학의 심각한 논쟁 가운데 인간이 과연 짐승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사람과 사물(事物·짐승 식물)의 본성이 같으냐 아니면 다르냐 하는 것이 논쟁의 중심이었다. 이를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이라 한다.

이 논쟁은 본래 영남의 남인 집안인 이휘일(李徽逸)·이현일(李玄逸)·이숭일(李崇逸) 형제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서울과 충청도 지역의 노론 계열 학자들에게 이어져 100년 이상 계속되었다.

 

특별히 이 논쟁에서 유명한 수암 권상하(遂庵 權尙夏·1641∼1721)와 그의 제자인 외암 이간(巍巖 李柬·1677∼1727),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1682∼1751) 등이 함께 인성물성논쟁(人性物性論爭)을 벌이던 ‘한수재(寒水齋)’ 터는 지금 월악산 아래 충주호에 잠겨 있다. 권상하는 충북 월악산 아래 고향 한수면 황강에 낙향하여 살았다.

기호학파의 지도자 권상하의 초상화(제천 청풍 수몰지역 전시관)

그의 제자 이간은 짐승도 인간처럼 도덕적 본성을 온전히 가지고 있고, 본성이 겉으로 드러나기 전의 마음의 뿌리는 모두 선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한원진은 사람과 짐승의 본성이 다르다(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는 주장을 폈다. 박필주(朴弼周), 어유봉(魚有鳳), 이재(李縡) 등이 이간을 지지했고, 윤봉구(尹鳳九), 최징후(崔徵厚), 채지홍(蔡之洪) 등은 한원진의 주장에 동조했다. 스승 한수재는 인물성이론를 따르는 호론(湖論)의 입장을 취하였다.

 

도덕성을 근거로 짐승 또는 오랑캐와 인간의 차별성을 논한 이 논쟁은 ‘사단칠정논쟁’과 함께 조선성리학계 최대의 논쟁이 된다. 율곡은 ‘사람과 짐승의 본성(性)이 다른 것은 만물을 형성하는 기(氣)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고, 사람과 짐승의 이치(理)가 같은 것은 리(理)가 본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성리학은 본래 여러 사람의 여러 학설을 남송(南宋)의 주희(朱熹:朱子)가 집성(集成)·정리하여 철학의 체계를 세운 것으로, 일명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한다. 이와는 달리 육상산(陸象山)은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하였는데, 이것을 왕양명(王陽明)이 계승하여 육왕학(陸王學)을 정립, 이것 역시 성리학이라 하나 대개의 경우는 성리학이라 하면 주로 주자학을 가리킨다.

 

성리학은 그 내용을 태극설(太極說)·이기설(理氣說)·심성론(心性論)·성경론(誠敬論)으로 구별한다. 이는 이(理)·기(氣)의 개념을 구사하면서 우주(宇宙)의 생성(生成)과 구조(構造), 인간 심성(心性)의 구조,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세(姿勢) 등에 관하여 깊이 사색함으로써 한·당의 훈고학이 다루지 못하였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내성적(內省的)·실천철학적인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유학사상을 수립한 것이다.

 

고대 서양 철학에 나타난 형상(form)과 질료(matter) 논쟁은 사실 동양 성리학의 이(理, 근원적 원리)와 기(氣, 실재, 현상) 이론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것은 철학이나 성리학이 하나님의 일반 은총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성경) 없이 우주와 세상 원리를 설명하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특성이라 보여진다.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은 이(원리)도 현실에 나타나고 기(실재, 현상)도 당연히 나타난다는 것을 주장하고, 당연히 원리인 이가 먼저 나타나고 그 뒤를 실재인 기가 따라간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율곡 이이는 원리인 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원리가 없다면 실재인 기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원리인 이의 존재는 인정하되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고, 실재인 기는 현실에 당연히 존재하므로 원리인 이가 현실에서 실재하는 기의 근본적인 이상으로서 기를 타고 있다(기발이승일도설)고 하였다.

 

이들 성리학이 다룬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간의 심성과 짐승의 심성에 대한 것이었다. 조선 시대 이 논쟁에 있어 사람과 짐승·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보는 것이 동론(同論)이고 다르다고 보는 것이 이론(異論)이었다. 대체로 연소자들은 동론을 주장했고, 연장자들은 이론을 주장했다. 아마 삶의 연륜이 쌓일수록 사람이 여타 동물과는 분명 다른 특이한 심성이 있음을 일반 은총 가운데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자들은 이를 진보·보수의 정치적 논쟁으로 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을 중화(中華), 짐승을 오랑캐(청나라)로 해석해 청나라가 지배하는 현실을 인정할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의 문제가 배후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늘 진리보다 정치 성향이 더 앞서는 민족적 심성이 강함을 보게 된다. 오늘날 교회가 진리(창조와 구속)을 말하면서도 진리 추구는 뒷전인 채 온통 분열과 분쟁의 혼동 가운데 빠져버린 감이 있다. 우리 민족의 감정적 정치 성향이 여실히 요즘의 교계 모습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점에서는 동물과 다르며 육체적으로는 다른 동물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게 인간의 본 모습이다. 그러니 조선시대 인간 기원 논쟁이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짐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 ‘짐승에게도 한 가닥 이치가 있다’는 뜻의 ‘금수일로(禽獸一路)’라는 마찬가지 뜻의 글을 썼다. 이익은 명나라 왕기(王圻)의 ‘속통고(續通考)’ 의물과(義物科)에 의로운 개(義犬), 의로운 원숭이(義?)·고양이(義猫)·망아지(義駒)·거위(義鴉)·돼지(義猪) 등이 실려 있는데, ‘천지 사이에 짐승에게 이런 일을 권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짐승들의 의로운 행위도 본성의 발로로 보았다. 그중에서도 개는 예부터 사람과 비슷한 대접을 받아왔다.

 

성경은 잠언에서 악한 자는 짐승에게도 악하고, 또한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였다. 짐승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삿대질을 하는 경우는 없다. 짐승은 본능대로 활동해도 인간처럼 비열하거나 음흉한 사기꾼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인간은 공의의 법 안에서 분명 짐승보다 더 악한 것이다.

 

미셸 푸코는 겉으로 멀쩡한 정상인이 비정상적 광기의 사람일 수 있음을 논증한다. 어느면에서는 타당하다고 본다. 비정상인은 최소한 비열하고 교묘한 악한 계획을 하지는 않는다. 깊은 정신병은 그 내적 상태가 평온하다. 하지만 우리는 엘리트라는 많은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의 교묘한 사기와 거짓말과 부정부패에 너무 익숙하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가장 기본적 자유인 언론, 출판, 결사, 집회,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은 또한 어떠한가. 선량한 백성들의 기본권을 철저히 억압하면서 오직 자신들과 자신들 가족들만 특권을 만끽하는 북한 일부 소수 귀족 중심의 사회를 보면 인간이 얼마나 간악하고 잔인하며 더럽고 죄악 된 존재인가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동족을 향해 아무런 경고도 없이 총을 쏘고 포격을 한단 말인가. 최근 모 대학 현직 총장이 말한 다음의 글은 정말 마음을 울린다. ‘당신은 당신 가족들을 데리고 북에 가서 살 자신이 있는가? 만약에 당신은 가기 싫은데도 학생들에게 종북 이념을 계속 가르친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왜 제자들에게 따르기를 강요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투쟁할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바로 북한이다. 북에 가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생존의 기로에 있는 동포들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비록 짐승은 아니나 어느 면에서는 성경이 말하듯 짐승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 어찌 그러고도 인간이 죄 없다 변명할 것인가!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