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마저도 자유로울수 없었다.
백석 시인의 추방지인 양강도 삼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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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문청시절
백석(白石, 1912-1996)과 정지용을 지극히 좋아하던 친구 생각이 납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빼어난 토속어와 서정적 한민족의 시어를 구사했음에도 문학사에 있어 분단의 아픔과 상처와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들이기도 하지요.
1970년대는 이들 이름조차 함부로 발설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 친구가 청계천 헌 책방 구석에서 정지용의 낡은 시집을 발견하고 탄사를 연발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그 중고 책값이 당시에 30만원이라는 말에 친구가 고개를 숙여버렸습니다.
백석과 정지용은 그 당시 금기어였으나 청계천 책방 주인도 이미 정지용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겁니다.
여기 백석의 대표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강동완 교수께서 백석 시인의 아픈 역사를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시기에 여기 소개합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탸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탸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성》(193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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